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53화 (153/1,307)

# 153

“아, 저는 국희부의장이신 변의화 의원님의 보좌관 박인수입니다.”

“그래요? 지금 전화주신 내용은 보좌관님의 의견이 아니라 의원님의 의견이신 거죠?”

“하하, 네에. 물론입니다. 주 변호사님이 수락만 하시면 올해 안에 판사가 되실 겁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방금 하신 말씀은 전부 녹음되었습니다.”

“……? 야, 이 새끼야. 지금 뭐라고? 너, 변호사질도 해먹기 싫은 거야? 어른이 충고를 하면 들어야지.”

역시 한심당 소속답다. 지금껏 감춰두었던 천박함이 한 방에 드러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 변호사의 음성은 부드럽다.

“저어, 박인수 보좌관님!”

“왜……?”

“밤에 잘 때 입에 걸레 물고 주무십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그 따위냐는 말씀입니다. 쯧쯧! 당신 같은 사람이 의원 보좌관을 하고 있으니 나라꼴이 이 모양이지.”

“너, 이 개새끼! 죽었어!”

쾅―!

정주철 못지않게 다혈질인 듯 전화를 끊는다.

통화가 끝나자 주효진 변호사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중앙지검 김 검사이십니까?”

“누구세요? 아! 주 변……! 야, 웬일이야, 이 시간에……! 술 마시고 싶어? 어디야? 근처에 있어? 말만 해. 후다닥 나갈게.”

주효진 변호사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서울중앙지검 김세윤 검사이다. 주 변호사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기동창이다.

그리고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운 1등공신이 바로 주효진 변호사이다.

김세윤 검사가 대학 등록금을 내지 못할 때 자신이 받을 장학금을 양보했다. 그렇게 네 번의 장학금을 양보 받은 것을 알기에 김세윤 검사는 주효진 변호사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나 지금 어떤 놈으로부터 협박을 받았거든.”

“뭐어? 어떤 놈이……? 어떤 시러배 잡놈이 감히 주 변에게 협박을 해? 말만 해. 어떤 자식인지 확실하게 교육시켜 줄게.”

김세윤 검사가 생각만으로도 핏대가 선다는 듯 소리쳤다.

“됐다. 임마! 니 목소리 들으니 위안이 된다.”

“야! 무슨 일인데 그래? 뭔 일인지 모르지만 내가 도와줄게. 내 힘이 미치는 일이라면 뭐든 할 테니 말만 하라고.”

“됐어! 이미 큰 도움이 되었다. 니 목소리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거든. 나중에 진짜 힘들게 되면 그때 전화할게. 알았지?”

“그, 그래! 꼭 전화해라.”

“참, 너도 권철현 대구지검장님 알지?”

“그럼! 사법연수원 시절 그분 강의에 감명 받았다는 거 아니냐, 내가! 그분 말씀 덕에 오점 하나 없는 열혈 검사로 재직 중이시다. 근데 갑자기 그분 말씀은 왜……?”

“그분께서 내게 사건 하나를 연결시켜 주셨어.”

“뭔 사건?”

“혹시 신문 봐서 아는지 모르겠다. 국회부의장인 변의화 의원 아들 폭행사건 있잖아.”

“아……! 조직폭력배들에게 의원 아들이 맞은 거? 그럼 변의화 의원 쪽에서 사건을 수임한 거야? 설마, 권 지검장님이 한심당 인물과 연결시켜 주셨다고?”

김 검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음성이다.

“에이, 그럴 리가 있겠냐? 내가 맡은 쪽은 반대쪽이야.”

“휴우∼! 그럼, 그렇겠지. 아무렴……! 근데 그 사건에 뭐 있어?”

“응, 아무래도 변의화 의원 쪽에서 증인 빼돌리고, 증거를 조작하는 거 같아.”

“오케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내가 한번 알아볼게.”

“조심해라. 국회부의장 힘 세다는 거 알지?”

“당연히 알지. 걱정 마라, 최대한 조심할게.”

김 검사의 음성은 자신감으로 차 있었다.

“오냐! 나중에 술 한잔하자.”

“너, 검사 월급 얼마 안 되는 거 알지?”

“알았어, 인마! 술은 내가 살게. 초록색 병에 든 걸로. 대신 안주는 네가 사라.”

“짜식! 돈 많은 변호사가 뭐 그리 쩨쩨하냐? 안주도 네가 사!”

“하여간 너는……. 알았다. 대신 노래방비는 니가 내.”

“오케이!”

* * *

유치장에 안에 갇힌 현수는 머릿속의 영상을 보고 있다.

패밀리어 마법에 현혹된 무당벌레이다. 주 변호사가 접견하러 왔을 때 그의 양복 속으로 스며들도록 했다.

권지현의 부친이 소개해 준 변호사지만 100% 신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흐음, 주 변호사님은 괜찮은 분이시군. 김세윤 검사라는 사람도…….”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낼 바엔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 한 번도 시전하지 않은 마법을 되새겨 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김현수 씨, 면횝니다.”

‘주 변호사님인가?’

접견실에 발을 들여놓았더니 뜻밖의 인물이 보인다.

“어라, 권지현 씨! 지현 씨가 이 시간에 어떻게……?”

“퇴근하고 올라온 거예요. 그리고 이쪽은 제 아버지세요.”

지현의 곁에는 중후함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근사한 중년인이 서 있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다. 새치가 있어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중후함 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아우라를 싣고 있다.

“권철현이라 하네. 지현이와는 친구처럼 지낸다 하니 초면이지만 말을 놓겠네.”

“네, 당연하지요.”

“일전에 내 아버님께서 병석에서 일어나 회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음에도 변변한 인사조차 못했네. 고맙네.”

“아닙니다. 지검장님.”

“지현이에게 이야길 듣고 주 변호사와도 통화를 했네. 함정에 빠진 듯하더군. 그래서 자넬 지원하기 위해 올라왔네.”

“고맙습니다. 몹시 바쁘실 텐데…….”

“아닐세! 자네 덕을 얼마나 보았는데 어려움에 처한 자넬 외면하겠는가? 내일 아침엔 중앙지검에 들러볼 생각이네. 책임지고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권지현은 현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다는 듯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개한 장미 같이 아름다운 모습니다.

권철현 지검장은 이를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밖에 모르던 딸이 이제 제 짝을 찾을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끄덕임이다. 또한 지현이 자신의 짝으로 현수를 택했음을 추인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루가 흘렀다.

하나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하루는 결코 아니다. 마법에 대한 착실한 공부가 이루어진 하루였다.

2013년 7월 4일 목요일.

“아니? 권 선배님 아니십니까?”

정시에 출근하여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서던 서울 중앙지검 송준석 지검장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였다.

비서실에 고등학교와 대학교 2년 선배인 대구지검의 권철현 지검장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이네.”

“네, 선배님! 어인 일로 아침부터 제 방에 오셨는지요?”

“자네 본 지도 오래 돼서 겸사겸사해 들렀네. 방해되었는가?”

“아, 아닙니다.”

권철현 대구지검장은 독립투사의 후손이다. 아울러 존경받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게다가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직계 선배님이시다.

같은 지검장이라 하더라도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송준석 지검장은 상당히 공손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현재 경찰서 유치장에 있네. 듣기론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고 하더군.”

“누군지 말씀하시면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아닐세.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사사로운 일로 청탁하겠는가?”

“그럼 왜……?”

하도 청탁을 많이 받아 저도 모르게 전화기로 손을 뻗었던 송 지검장이 계면쩍은 표정을 짓는다. 청렴결백한 선배 앞에서 오염된 조직원 같은 느낌을 받은 때문이다.

“그 사람은 이름은 김현수이네. 그저 공정한 수사를 받게만 해주면 좋겠는데.”

“네에, 김현수요. 지금 어느 유치장에 있습니까?”

“강남경찰서이네.”

송준석 지검장이 일필휘지로 메모지에 내용을 메모하는 순간 권철현 대구지검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 친구는 내 사위가 될지도 모를 사람이네.”

“네에……? 그럼 지현이의……?”

“그래, 지현이가 몹시 좋아하는 녀석 같으네. 어제 만나보았는데 조직폭력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조폭을 결성하여 집단 폭행한 걸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듯하더군.”

“그럼 변의화 의원의 아들을 폭행했다는 그……!”

송준석 지검장은 이내 어떤 사건인지를 깨달았다. 어제 저녁 변의화 의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밑에 있는 부장검사가 배당받은 그 사건이 괜한 분란으로 번지지 않도록 당부하는 내용의 전화였다.

언론엔 노출되기 싫고, 아들을 때린 놈은 법에 따른 처벌을 받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의례적인 것이고, 단순 폭행사건이라 생각하였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이상 그냥 있을 순 없어서 담당 검사와 통화를 했다.

간단한 보고에 의하면 변 부의장의 아들 변병도가 집단 폭행을 당해 전치 16주의 상처를 입고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상대는 겉보기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웨이터 보조 세 명과 폭력 조직을 구성한 자라고 했다.

최근 들어 조폭들이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가 싶어 발본색원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존경하는 선배의 사위 될 사람이라고 한다.

선배의 딸인 지현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다. 내심 며느리 삼고 싶은 재원이기 때문이다.

하나 공부밖에 모르기에 이제나 저제나 사내에게 관심을 갖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현재 미국 MIT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아들이 학위만 따면 곧장 매파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 지현이 선택한 남자라면 결코 조폭일 리가 없다. 그렇기에 선배의 마지막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아무튼 권철현 지검장은 자신의 뜻을 곡해할 수 있기에 사족을 달았다.

“청탁하는 것 아니네. 그저 공정하게 해달라는 것뿐이지.”

“네, 선배님! 이런 건 청탁이 아니지요. 아무튼 제가 확실히 챙겨보겠습니다.”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그나저나 저도 그 친구 한번 봐야겠습니다.”

“누구……? 김현수라는 친구?”

“네, 사실 지현일 제 며느릿감으로 점찍어 놨었는데 어떤 녀석이 무엄하게도 먼저 채가려는 상황 아닙니까?”

“하하, 그랬는가? 근데 성현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어?”

“네, 제 아들 놈도 내년 초면 MIT에서 박사 학위를 따게 됩니다.”

“그랬나? 난 아직 대학생인줄 알았네. 그 녀석 중학생 때 본 게 마지막인가 그렇지?”

“선배님! 섭섭합니다. 지현이가 큰 생각은 안 하십니까? 그리고 성현이가 지현이보다 두 살 많다는 거 잊으셨습니까?”

“하하, 미안하이. 자네가 속도위반한 걸 가끔 잊어서……. 그때가 대학교 4학년 때였지? 자네가 아버지 되었다면서 좋아하던 때가.”

“선배님……!”

송준석 지검장은 깜박 잊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권철현 지검장은 오랜만에 후배 놀려먹는 재미를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한마디 더했다.

“생각해 보니 제수씨가 예쁘긴 참 예뻤어. 그러니 자네가 정신 못 차리고 빠져들었지. 안 그래?”

“쩌업……!”

“아무튼 공정하게 해주게. 난 이만 일어서겠네.”

“네, 선배님! 확실히 할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송준석 지검장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은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법무부장관도 아니다. 눈앞에 서 있는 권철현이란 인물이 멘토이고, 본받고 싶은 사람의 전형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임기가 끝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다.

하지만 권철현은 매년 동문회에서 만나야 하는 사람이다. 또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송 지검장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권 지검장이 간 후 송준석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 어떤 검사에게 사건을 맡길 것인가를 고심한 것이다.

삐이이잉―!

“네, 지검장님!”

“김세윤 검사 좀 올라오라고 해줘. 그리고 현재 김현수 사건을 맡은 이강식 부장검사도 같이 올라오라고 해줘.”

“네, 지검장님!”

자리에서 일어선 송준석은 뒷짐을 쥔 채 잠시 상념에 잠겼다.

세속적인 출세에도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그래, 그 사람이 다음에도 국회의원이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이날 김현수 사건의 담당 검사가 바뀌었다. 새로 사건을 맡게 된 김세윤 검사는 물 만난 고기 마냥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강남경찰서 유치장이 첫 방문지였다. 김세윤 검사는 지청으로 보내졌던 구속영장 청구 신청서를 서장에게 반려했다.

한쪽의 일방적인 진술에만 의존한 신청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김현수 사건을 직접 지휘하겠다고 했다.

서장은 김세윤 검사가 당도하기 전 받은 전화가 있기에 찍소리 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은 가끔 하늘을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효진 변호사를 만나게 된 현수는 클럽 제이의 하드디스크 안에 숨겨진 증거를 알려주었다.

즉각 클럽 제이의 CCTV 관련 컴퓨터가 압수되었다. 또한 당시 녹화 장치에 이상이 있다고 했던 사람들 모두 위증 혐의로 소환되었다.

이때 변의화 의원으로부터 김세윤 검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그의 경력과 연륜, 그리고 권력과 관록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현수는 반나절 만에 무혐의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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