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동영상을 본 김세윤 검사가 방면지시를 한 것이다. 결정적 증거의 등장은 수사의 급물살을 의미했다.
곧이어 변병도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어 불구속을 요구받았으나 묵살한 것이다.
아울러 위증 혐의가 있는 놈들 전부를 소환했다. 클럽 제이의 관계자들은 지배인으로부터 웨이터 보조까지 덜덜 떨게 되었다.
불의와 타협한 클럽 제이를 그냥 놔둘 김세윤 검사가 아니다. 패기 넘치는 열혈 검사답게 모든 장부를 압수하여 조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된 탈세 혐의가 국세청에 전해졌다. 그 다음 수순은 국세청 직원들에 의한 모든 장부 및 컴퓨터의 압수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어찌 영업을 하겠는가!
결국 클럽 제이는 무기한 영업 중지에 돌입하게 된다. 하나를 얻으려다 열을 잃는 우를 범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는 것이다. 이를 한자성어로 표현하자면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구……? 헉! 너, 너는……?”
곤한 잠에 빠져 있다 누군가 흔들어서 눈을 뜬 변병도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현수가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나 기억하지? 몸은 좀 어때? 수술은 잘 되었다며?”
“여보세요! 밖에 누구 없어요? 여보세요!”
변병도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주먹에 맞아봐서 얼마나 아픈지를 알기에 감히 덤벼들지는 못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건만 현수는 빙그레 미소만 짓는다.
주영의 방을 청소하면서 시전했던 논 노이즈 마법을 펼쳤기에 어떠한 소리도 병실 밖으로 나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소리 다 질렀어? 기운 좋은 거 보니까 조만간에 있을 감방 생활을 잘 견뎌내겠네. 안 그래?”
“무, 무슨 소리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네놈이 폭력 조직을 결성해서 무고한 날 때린 거잖아.”
“대체 어떤 놈 대가리에서 그런 소설이 나온 거냐? 내가 폭력 조직을 결성해? 언제, 어디서, 누구랑, 왜?”
“그, 그거야 내 알 바가 아니지. 아무튼 나가! 너랑은 말도 하기 싫으니 어서 나가란 말이야.”
“글쎄, 난 나가기 싫은데? 아직 할 말이 남았거든.”
현수는 느긋한 표정이고, 변병도는 몹시 불편한 표정이다.
“뭐, 뭐냐? 할 말이 뭔지 모르지만 빨리 하고 나가. 안 나가면 계속해서 소리칠 거야.”
“흐음,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없다는 듯 병실을 휘휘 둘러보았다. 지현의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던 특실과 다를 바 없다.
“아버지가 국회부의장이라며? 한심한 한심당 소속이고…….”
“하, 한심당이라니?”
“한마음당이라며? 마음 심(心) 자를 써서 한심당이라고 부르는데 뭐가 잘못 되었어?”
“……!”
변병도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독사 같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지금까지 대체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한 거니? 그걸 알아보고 싶어서 왔어. 리딩 메모리!”
현수의 손이 머리 위에 얹어지자 변병도는 꼼짝도 못한다는 듯 행동을 멈췄다.
그러는 동안 그의 뇌리에 기억된 것들이 현수의 머릿속에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변병도는 중학교 시절부터 악행을 저질렀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는 배경을 믿고 급우들을 괴롭혔다.
여러 차례 폭행과 절도 행위를 저질렀지만 모두 무마되었다. 그러다 중3부터 여학생들을 성추행하기 시작했다.
고1 때부터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날치기까지 했다.
고2가 되면서 못된 놈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본드 흡입, 대마초 흡연, 마약 투약 같은 일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온갖 못된 짓을 다 하고 다녔다. 그것을 지워준 놈들이 성질 더러운 정주철과 박인수이다.
사건이 있던 날 변병도에 의해 성폭행 당한 여인은 아버지의 비서이다. 아버지에게 보내야 할 서류가 있으니 와달라 했다.
그리곤 몰래 흥분제를 복용시킨 뒤 성폭행한 것이다.
이놈의 심사를 확인해 보니 가히 악마라 해도 좋을 정도이다. 다시 말해 뒤틀려도 보통 뒤틀린 게 아닌 인간성을 지닌 놈이다.
현수가 손을 떼었음에도 변병도는 움직임이 없었다. 독사에게 노려진 생쥐처럼 온몸이 굳은 모양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현수는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한참 동안이나 끄적였다. 새로운 마법은 창안하기 위함이다.
이는 현수가 워터 드릴 마법을 창안하는 과정에서 마나의 배열에 대한 확실한 공부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참 동안 수식 계산을 한 현수가 나직이 읊조렸다.
“마나여, 평생토록 진실만을 말하며 살게 하라! 올 웨이즈 텔 더 트루스(Always tell the truth)!”
샤르르르릉―!
마나 배열이 잘못되어 악영향을 끼친다 해도 상관없기에 수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지 않고 마법을 걸었다.
그런데 재수없게도 수식이 제대로 만들어진 듯하다.
“어이, 변병도!”
“왜, 이 자식아.”
“곧 검찰 조사를 받을 테니. 내가 하나만 충고하지.”
“뭐냐? 어서 말하고 꺼져.”
“그래. 가거든 진실만을 말해. 알았지?”
“시끄러.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잖아.”
속에 있는 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때 현수에게 문득 스치는 상념이 있었다.
하여 나직이 읊조렸다.
“퍼머넌트 플라토닉 커스! 얼웨이즈 시리어스!”
이제 변병도는 평생토록 진지한 표정과 생각으로 살게 될 것이다. 아울러 정신이 몸을 지배하여 색욕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병실 밖으로 나온 현수가 또 한 번 중얼거렸다.
“변병도, 그게 끝이 아니야. 너와 네 애비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어. 외국에선 그 강 이름을 루비콘 강이라 하더군.”
병원 로비를 지날 즈음 현수의 뇌리에는 더 팰러스 오브 마우스의 마나 배열이 그려지고 있었다.
친일파들에게 시전하리라 마음먹었던 바로 그 마법이다.
“변의화! 일찍 죽지 못했음을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택시를 타고 난 직후 중얼거린 말이다.
* * *
“지현 씨……! 지현 씨가 어떻게 여길……?”
“현수 씨 걱정이 돼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매 시간마다 아빠에게 물어보기도 그렇고 해서 휴가를 냈어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요.”
지현은 현수의 안내를 받아 이실리프 무역상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장님! 흐흐흑!”
“사장님, 어떻게 된 일이에요? 흐흑!”
“어휴! 저흰 사장님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정과 수진, 그리고 지혜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물짓는다. 진심으로 걱정한 모습이다.
“난 괜찮아요.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돼요. 신문 봤죠? 내가 조폭 두목이라는 기사 말이에요.”
“……!”
“내가 두목이면 여러분들이 조직원이란 소리잖아요. 안 그래요? 내가 가진 조직이라곤 이실리프 무역상사밖에 없잖아요. 근데 조직원들이 너무 여린 거 아니에요?”
“흐흑! 흐흐흑!”
짐짓 너스레를 떨었지만 은정과 수진, 그리고 지혜는 눈물만 흘렸다. 그간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전부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그간 내 걱정 했으니 오늘 저녁엔 회식이나 합시다.”
“흐흑! 네에, 하지만 클럽엔 안 갈 거예요.”
“맞아요. 클럽에 갔다가 또 문제가 생기면 안 되잖아요.”
“에구……. 네에, 그럼 그럽시다. 지현 씨 안으로 오세요.”
현수의 말에 따라 문밖에 있던 권지현이 사무실 안에 발을 들여놓자 은정과 수진, 그리고 지혜의 시선이 쏠린다.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사무실은 자신들만의 평화로운 성역이다.
이 왕국의 왕은 김현수라는 인정 많고, 잘 생긴 사장이고, 자신들은 왕비 후보로 간택되어 함께 머무는 정도로 여기고 있다.
특히 현수가 유치장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의 결속력은 더 단단해졌다. 하여 수진과 지혜는 아예 퇴근조차 하지 않았다.
은정의 집에서 가재도구를 가져다 사무실에서 밥해먹고 반찬해 먹으면서 현수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 여자를 하나 데리고 왔다. 사무실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여자에게서 후광이 비치는 듯하다.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당연히 경계심이 생긴다. 배척해 내야 한다는 본능이 발동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스르르 사라진다.
지현이 내뱉은 한마디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권지현입니다. 만나서 반갑네요.”
따지고 보면 별말 아니다.
간단한 인사말과 본인의 이름 정도를 밝힌 것이다. 그런데 경계하려던 마음이 사라짐을 본인들은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현수가 참(Charm) 마법을 구현시킨 때문이다.
“여기가 현수 씨 사무실이군요.”
사장실을 둘러보는 지현은 지청 내 자신의 사무실과 사뭇 다른 풍경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본다.
하긴 검찰청에 아기자기하게 꾸민 사무실이 있을 리 있겠는가!
현수의 사무실 창엔 예쁜 무늬가 그려진 커튼이 걸려 있다. 창틀엔 작은 화분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벽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 좋아지게 하는 풍경 그림들이 걸려 있고, 책상 위에도 앙증맞은 화분들이 놓여 있다.
소파엔 푹신하면서도 귀여운 쿠션들이 있다. 그리고 바닥엔 파스텔 톤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양탄자가 깔려 있다.
지현이 태어난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사무실이다.
“네에. 제 사무실인 건 맞는데 여직원들이 수시로 인테리어를 바꾸는 통에 가끔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네에. 보니까 여직원 분들이 현수 씨를 상당히 따르나
봐요.”
“하하! 네에. 저야 고맙지요. 게다가 일도 아주 열심히 해서 회사가 팡팡 돌아갑니다.”
“호호, 호호호!”
현수의 너스레와 몸짓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참, 만난 김에 주고 싶은 게 있어요.”
현수가 책상 아래에서 쇼핑백 두 개를 꺼내서 건넸다.
“어머! 이건 뭐예요?”
“듀 닥터라는 화장품이에요. 상당히 효능이 좋은 듯합니다. 한번 써보세요.”
“어머……!”
지현은 자신을 위해 화장품을 준비해 놓은 것으로 알고 감격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빠를 제외한 남자에게서 받아본 첫 번째 선물이었던 것이다.
내용물을 꺼내 본 지현이 냄새를 맡아보는 등의 행동을 한다. 받은 선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그런데 왜 두 개예요?”
“하나는 지현 씨 어머니 드리라고요.”
“네? 어머니요……?”
“그거 연세 있으신 분들에게도 좋다고 하더군요.”
“고마워요.”
현수는 어째 반응이 시원치 않다는 느낌이었지만 캐묻지 않았다. 그런데 지현의 움직임이 멈춰 있다.
그러고 보니 지현에게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회의 때문에 서울로 갔을 때 괴한이 침입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바 없다.
혹시 사고 또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게 아닌가 싶어 아차하는 마음이 든다. 간신히 아문 상처를 건드린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현 씨……!”
“미안해요. 좋은 선물을 주셨는데……. 사실 어머닌 이런 화장품을 쓰실 수가 없어요.”
“왜요? 벌써 돌아가신 겁니까?”
“아뇨. 돌아가신 건 아니에요. 어머닌…….”
아니라는 소리에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나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였기에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어디 편찮으신 거라면 제가 봐드릴 수 있잖아요. 그쵸? 그러니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현수 씨……!”
지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나 현수는 반문하지 않았다. 기다리면 알게 되기 때문이다. 과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약 2분쯤 지난 후 지현이 큰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던 것이다.
3장 흑마법도 쓸 데가 있어
“어머니는 몇 년 전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
어디 심하게 다친 것이라 생각한 현수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쩌면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화장품을 쓸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수년 전이라면 시간이 꽤 지난 일이다. 그렇다면 상처는 아물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아물어 버린 상처를 컴플리트 힐이나 리커버리가 원상대로 회복시킬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본 것이다.
“사고 당일 어머닌 눈앞에서 두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셔야 했대요. 그런데 사고는 너무 끔찍한 사고였어요. 그래서 충격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얻었지요.”
이 사고는 지현이 서울에서 대학에 다닐 때 일어난 일이다.
당시 지현의 모친은 고교 동창회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이동했다. 그런데 차를 운전하던 친구의 운전 미숙으로 인해 사고가 났다.
앞자리에 탔던 둘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느라 안전벨트 매는 것을 깜박했다. 그 결과 머리 부분에 심한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두개골이 깨진 것이다.
한편, 뒷좌석에 탔던 지현의 모친은 친구의 운전이 서툴기에 안전벨트를 맸었다. 그 결과 그리 크지 않은 부상만 입었을 뿐이다.
하지만 안전벨트가 풀어지지 않아 친구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목격해야만 했던 것이다.
현수는 생전 처음 듣는 용어이기에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