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55화 (155/1,307)

# 155

“충격 후 스트레스 장애라면……?”

“일종의 정신병이에요. 어머니도 상처를 입으셨지만 그건 다 아물었어요.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그 끔찍했던 장면이 눈을 감아도 보이신대요. 그러더니 모든 기억을 상실하셨어요.”

“으으음!”

“그래서… 그래서 지금은 요양원에 계세요.”

“으으음……!”

나직한 침음만 낼 수 있을 뿐이다.

“아버지와 전 사흘에 한 번씩 교대로 어머닐 보러 가요.”

“상태는 여전하신 거예요?”

“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몰라요. 지금은 일곱 살짜리 어린애와 같아지셨으니 그때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지현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늘 밝기만 하던 지현에게 이런 아픔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기에 현수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한데 문득 스치는 상념이 있었다.

예전에 지현이 성폭행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그때 자궁의 모든 마나들이 쪼그라들어 있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만일 지현의 모친 역시 같은 상황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상적인 마나의 움직임을 보일 경우 또 다시 그때의 끔찍했던 기억 때문에 고생하게 될 것이다.

그때 메모리 일리머네이션 마법을 구현시키면 당시의 기억이 삭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어쩌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요. 다음에 갈 때 연락하면 같이 한번 가요.”

“상처가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수술 같은 걸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라구요.”

현수가 혹시 잘못 알아들었나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한번 가서 뵙시다. 아버님도 뵈었으니 이제 어머님도 한번 뵈어야 하지 않겠어요?”

현수는 그냥 말한 것이다. 그런데 말을 해놓고 나니 뭔가 조금 이상하다. 하여 아무런 말 없이 있었다.

다행히 별뜻 아닌 것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고마워요. 마음 써주셔서. 그래요, 같이 가요.”

“이번 주말엔 러시아 출장이 잡혀 있어요. 그러니 갔다 와서 곧장 연락드릴게요.”

“네. 그러세요.”

지현이 가고 난 뒤 현수는 한참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줄로만 알았던 지현에게도 말 못한 아픔이 있었다.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은정도 그랬을 것이다.

수진은 졸업 후의 취직 걱정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 했을 것이고, 지혜는 여전히 실업자 상태로 있을 것이다.

주영은 계속해서 외팔이 신세일 것이고, 대한약품의 민윤서 사장은 어쩌면 경영권을 잃고 시름에 잠겨 있을 것이다.

주윤우 사장의 극동 솔라파워는 도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미스 김은 실업자가 되어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만나는 사람 모두 하나 이상의 어려움을 겪는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극히 몇몇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각기 하나 이상의 아픔 내지는 곤란을 겪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수는 만일 마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돕자는 생각을 했다. 하여 지그시 아랫입술을 물었다.

지금부터라도 주변 사람의 아픔 또는 어려움을 둘러보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하는 순간이다.

하나 나쁜 놈들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응징을 하여야 한다.

첫 번째 대상은 당연히 변의화 의원과 변병도, 그리고 보좌관들이다.

아무튼 현수와 지현, 그리고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직원들은 퇴근 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회식을 했다.

간단히 맥주 몇 병을 비우곤 곧장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늦은 밤이 되도록 고성방가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밤 11시!

바디 리프레쉬 마법으로 술기운을 지운 현수는 세정빌딩 앞에 당도하였다.

‘후후, 이제 한번 시작해 볼까?’

잠시 후 현수의 신형은 어둠 속에서 사라졌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이 구현된 때문이다.

첫 번째 비명이 나온 곳은 한창 영업 중인 락희이다.

“아아악! 귀, 귀신……! 귀신이다! 으아아아아악!”

추가 주문을 말해주려 룸을 나섰던 민정은 길고 긴 비명을 지르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룸의 문을 열고 나서니 복도 한가운데 긴 머리가 얼굴을 뒤덮은 소복을 입은 여자 귀신이 보인 때문이다.

잠시 후,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22번 룸의 손님 역시 귀신을 보곤 기절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해병대에 몸담았던 백전불굴의 용사라 헛소리를 지껄이던 놈의 아랫도리는 흥건했다.

겁에 질려 방뇨해 버린 것이다.

37번 룸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손님과 호스티스가 우르르 튀어나온다.

이들이 본 것은 반쯤 썩은 시체이다.

하얀 소복을 입은 시체는 일행에게 다가서는 순간 입안에서 바퀴벌레 비슷한 벌레들을 쏟아냈다. 날카로운 손톱을 내밀며 다가왔기에 비명과 함께 튀어 나온 것이다.

다음은 8번 룸이다.

방금 무덤에서 나온 듯한 시체는 머리카락이 반쯤 빠져나갔다. 하여 구더기가 꾸물거리는 뇌가 보였다.

한쪽 안구가 빠져나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벌린 입안엔 날카로운 이빨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크크크크, 신선한 피를 마시고 싶어!”

시체의 입에서 발음도 이상한 말이 나오자 손님들 모두 뒤도 못 돌아본 채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결국 락희는 피크타임에 영업을 중단했다. 그리곤 룸의 전등도 끄지 못했지만 아무도 내려가지 못했다.

물론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형상의 귀신들 때문이다.

깍두기들 역시 부들부들 떨었다. 귀신은 폭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12층 세정상사 사무실에도 비슷한 소동이 일어났다.

미처 퇴근하지 못하고 잔무를 보던 직원들 가운데 셋이 기절했고, 넷은 바지에 오줌을 쌌다.

놀란 메뚜기처럼 도망간 놈들 가운데에는 유진기도 포함되어 있다.

유진기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쏜살처럼 도망갔다.

그도 그럴 것이 3년 전에 자신의 손으로 죽인 옛 애인이 손톱을 세운 채 다가섰던 때문이다.

처녀 귀신과 반쯤 썩은 시체는 다음 날에도 세정빌딩을 방문했다. 이번에도 락희와 세정상사에만 등장했다.

소문을 들은 세입자들은 해도 떨어지기 전인 오후 5시에 모두 퇴근했다. 영문 모르고 방문했던 사람들도 서둘러 되돌아갔다.

경찰이 출동했다. 그러나 경찰이라 하여 별수 있겠는가!

너무도 공포스런 모습에 경찰 둘이 기절하고, 다른 하나는 바지에 오줌을 쌌다. 하긴 경찰에게 총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대한민국의 공권력으로 어찌 귀신을 다루겠는가!

양일간에 걸친 귀신 소동은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하여 취재 차량이 왔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며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본 리포터가 취재를 거부했다.

그렇기에 건물 외부만 비춰지는 대략적인 영상만 녹화해 갔다.

유진기 본인은 겁이 나서 오지 못하는 듯 나타나지도 않았다.

대신 퇴마사라 불리는 사람들이 와서 한바탕 굿을 치르고 갔다. 그러면 뭐하겠는가!

세정빌딩에 나타난 귀신들은 평범한 것들이 아니다.

멀린이 아르센 대륙의 흑마법사들을 제거하면서 그들의 마법서 전부를 없애버린 것은 아니다.

그것들 가운데 일부는 충분히 응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하여 마계에서 마신을 불러들이는 마법과 제물을 바치는 마법을 제외한 마법들은 이실리프 마법서에 따로 기록해 두었다.

대신 이에 대한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

첫째는 마성에 젖을 심성의 소유자는 열람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둘째는 7써클 이하는 접근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현수는 이에 해당되지 않기에 흑마법을 열람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락희에 처녀귀신과 썩은 시체가 등장한 것이다. 이것들은 사실 락희 화장실에 있던 대걸레이다.

먼저 대걸레가 움직일 수 있도록 마법을 걸었다.

다음엔 이를 본 사람들이 각기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무서운 것을 상상하도록 하는 마법을 걸어두었다.

그렇기에 똑같은 대걸레를 보고도 어떤 사람은 처녀 귀신을 보았다 한다. 반면 다른 어떤 사람은 반쯤 썩은 시체를 보았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후후, 흑마법도 쓸 데가 있긴 있네.”

인근 편의점 의자에 앉아 세정빌딩을 바라본 현수는 실소를 머금었다. 방금 한 떼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온 때문이다.

2013년 7월 5일 금요일 오후 9시경.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던 현수의 휴대폰이 몸살을 앓는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여보세요.”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김현수 사장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엊그제 역삼동에 있는 부동산 사무소에 오신 적 있죠?”

“아! 부동산 사장님이세요? 좋은 건물 나왔습니까?”

현수는 무슨 일인지 짐작되었기에 웃음 지었다.

“네, 혹시 전에 말씀하셨던 세정빌딩이 매물로 나오면 사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세정빌딩이요? 오늘 뉴스에 나온 그 건물 말씀하시는 거군요.”

“네, 귀신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그 빌딩 맞습니다. 제가 좋은 가격으로 이야기해 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글쎄요? 귀신이 나오는 건물이라 조금 그렇긴 하네요.”

현수가 말끝을 흐리자 공인중개사가 말을 이었다.

“공시가로만 따져도 230억짜리입니다. 말만 잘 하면 왕창 깎을 수 있을 거 같아서 하는 말이지요.”

“흐음, 그렇긴 해도…….”

현수는 여전히 말끝을 흐렸다.

“말씀만 하시면 제가 나서 보겠습니다.”

“으으음……! 좋습니다. 한번 이야기해 보십시오.”

현수는 마지못해 승낙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려 애썼다.

“근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귀신이 나온다는데.”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해요. 귀신이 계속해서 나온다면 조금…….”

또 말끝을 흐렸다. 이에 중개사가 나선다.

“제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성당에서도 구마의식이라는 것을 하거든요.”

“압니다. 엑소시스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일단 한번 시도는 해보자는 겁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귀신이 출몰하면…….”

“그럼 당연히 없던 일이 되는 거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런데 제가 이번 주말엔 외국으로 출장을 나갑니다. 다음 주에 오니 그때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네에,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통화하죠.”

중개사와의 통화가 끝난 현수의 입가엔 웃음이 배어 있었다. 공시가가 230억이라면 실거래가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하나 그 가격을 지불할 의사는 없다. 유진기 역시 그 가격을 주고 샀을 리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억까지는 어떻게 해볼 생각이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것과 임대보증금 들어와 있는 것까지 포함시키면 실제론 거의 돈을 안 들이고 건물 하나를 갖게 된다.

또한 새롭게 만들 이실리프 상사의 사무실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는 것이다.

늦은 밤, 세정빌딩 안에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경비원까지 모두 철수한 때문이다.

밖에는 혹시 모를 귀신 출현을 녹화하기 위한 방송사 차량들이 즐비하였고,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다.

하지만 귀신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용감한 PD 하나가 캠코더를 들고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그가 다시 튀어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분이다.

로비를 지나 코어로 접근했던 PD는 ‘땡!’ 소리와 함께 열린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는 저승사자를 보곤 비명을 질렀다.

시커먼 로브를 걸친 저승사자의 허리춤은 해골이 주렁주렁 매달린 밧줄 비슷한 것으로 질끈 동여져 있었다.

그리고 날이 시퍼렇게 선 긴 낫을 들고 있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텅 빈 공간인 눈을 바라보게 된 PD는 자신의 귀를 울리는 나지막한 저음을 듣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뛰어나온 것이다.

“크흐흐흐! 김천수 PD,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자.”

이게 PD가 들은 소리이다. 평상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기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환청을 들은 것이다.

김 PD가 튀어나온 이후 어느 누구도 감히 세정빌딩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오전 8시경, 세정빌딩에 입주해 있는 회사의 직원들이 출근을 했다.

하나 어느 누구도 먼저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두려움이 엄습해 있는 까닭이다.

오전 9시, 용감한 누군가가 다 함께 들어가자는 말을 해 일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예상대로 아무도 없다.

하루 종일 언론사 카메라들이 구석구석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방송사에서 초빙한 무당 및 퇴마사들도 드나들었다.

이들 중 일부는 음산한 귀기가 느껴진다 했고, 나머지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결론이 없는 셈이다.

오후 5시, 아직 환한 대낮이지만 세정빌딩 입주사 직원들은 모두가 퇴근했다. 이 시각이면 락희에선 영업 준비가 한창이어야 한다. 하나 어느 누구도 들어가지 않아 컴컴한 어둠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현수는 모스크바행 항공권을 확인하고 있었다.

“흐음, 모스크바라……!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하게 되는 건가?”

세계전도 앞에 선 현수는 모스크바로부터 노보로시스크까지의 이동경로를 살폈다. 차량으로 이동한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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