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59화 (159/1,307)

# 159

하필이면 그날 신문에 안 좋은 기사가 난 때문이다.

동남아시아로 놀러간 한국인 여행객들이 추문을 일으켰다.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는 성매매할 여성을 데려오라는 난동을 피우다 체포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기사가 여러 번 보도되었다.

그렇기에 드미트리는 한국인 남성 대부분이 그런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고르고 고른 끝에 이리냐가 낙점되었다.

학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이리냐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지르코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돈만 있으면 나머지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할 수도 있다.

생활고로부터 벗어날 기회인 것이다. 그렇기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순결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아무튼 돈은 이미 선불로 받았다.

그것을 받을 때 아주 귀한 손님이니 조금도 기분 상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거듭해서 들었다.

협박 아닌 협박이다. 왜냐하면 돈을 준 사람이 레드 마피아 노보로시스크 지역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소개해 준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이웃에 살던 사람이다.

현재 레드 마피아의 행동대원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길 만일 지르코프의 심기를 어지럽히면 진짜 윤락녀로 전락하게 되거나 귀신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어젯밤 현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 결과 성공적으로 룸까지 유혹했다.

그런데 그만 잠들어 버렸다. 샤워까지 한 것은 기억나는데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 술에 취해 잠든 모양이다.

가장 중요한 임무를 실패했기에 이리냐는 사색이 되었다.

“미스트르 킴! 어젯밤엔 제가……. 지금이라도……!”

침대에서 일어난 이리냐가 서둘러 가운을 벗으려 한다. 물론 속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이내 저지되었다. 무슨 뜻인지 알기에 현수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던 것이다. 이를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인 이리냐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사, 살려줘요. 그냥 나가면 난 죽을지도 몰라요.”

과년한 처녀가 샤워 가운만 걸친 채 고개를 숙이자 못 볼 것이 보인다. 하여 현수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리냐는 이마저 오해했다. 자신의 청을 차갑게 거절했다 생각한 것이다.

이러다간 죽게 생겼다.

그렇기에 얼른 일어나 현수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의 무릎 앞에 무너지며 눈물을 터뜨렸다.

어쩌면 호텔을 나가는 즉시 머리에 바람구멍이 뚫릴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로 인한 눈물이다.

“흐흑! 미스트르 킴, 제발, 제발……! 흐흑! 흐흐흑!”

이리냐가 가늘게 떨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현수는 왜 우는지를 깨달았다.

“이리냐!”

“네?”

“지난밤에 아주 즐거웠어. 이리냐 덕분에 러시아에서의 밤이 아주 기분 좋았거든.”

“……?”

“언제 이곳에 또 올지 모르지만 그때도 다시 봤으면 좋겠는데……. 그때도 지르코프에게 연락하면 되지?”

“물론이에요. 흐흑! 미스트르 킴!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머리 좋은 이리냐는 현수가 말하는 뜻을 금방 알아들었던 것이다.

“아침 식사는 룸서비스가 어떨까? 여기 음식을 잘 모르는데 이리냐가 알아서 주문해 주겠어?”

“네에. 그래요. 그럴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리냐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속사포처럼 무언가를 주문했다.

그러다 화장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본 모양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후다닥 욕실로 들어가 버린다.

피식 실소를 지은 현수는 창밖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하나 초점이 맞춰져 무언가를 보는 것은 아니다.

오늘 오후에 있을 일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이리냐는 현수가 제 남편이라도 된다는 듯 지극한 정성을 보였다.

정오 무렵, 지르코프가 아래층 커피숍에 당도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김현수 사장님! 어젯밤은 어떠셨습니까?”

지르코프는 현수의 안색을 살피는 듯하다. 어제 모스크바의 보스로부터 조금도 실수하지 말라는 명령을 들은 때문이다.

“미스터 지르코프! 어젯밤은 이리냐 덕에 아주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지르코프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져 간다.

“하하! 흡족하신 모양입니다. 저도 기분이 좋군요.”

“네에, 이리냐를 곁에 두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오……! 그 정도였습니까?”

지르코프의 시선이 이리냐에게 향하자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하나 그것은 부끄럽다는 뜻이 아니다.

혹시라도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알까 두렵다는 뜻이었기에 얼굴을 들 수 없었던 것이다.

현수는 이리냐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한마디 더 했다.

“다음에 이곳에 올 상황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도 이리냐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수의 말이 끝나자 지르코프는 환한 웃음을 짓는다.

“하하, 물론입니다. 근데 듣자하니 드모비치 상사와 오랫동안 거래를 하게 되셨다고요.”

“네, 최소 1년간은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흐음, 드모비치 상사는 웬만해선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 회사입니다. 그렇다면 더 오랫동안 거래를 하게 될 겁니다.”

자신의 말이 틀림없다는 듯 단정적으로 이야기이다.

“그런가요?”

드모비치 상사에 대해 잘 모르기에 반문한 것이다.

“네, 드모비치 상사에 몸담은 적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야 좋지요.”

현수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이자 지르코프가 현수의 곁에 있던 이리냐에게 웃음을 보여주었다.

밤새 수고했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튼 이리냐가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아! 네에. 미스터 지르코프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음에도 또 보고 싶다고요?”

지르코프의 의미심장한 시선이 이리냐에게 향했다.

“네. 제 이기적인 생각으론 그렇습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한편 이리냐는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현수의 말 한마디에 목숨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기 때문이다.

“같이 점심이나 하실까요?”

“저야 좋지요. 그런데 이리냐를 대동해도 되겠습니까?”

“하하! 그렇게도 마음에 드십니까?”

“후후……!”

현수는 대답 대신 웃음을 보여주었다. 이에 지르코프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자아, 그럼 갈까요?”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가니 이미 세팅이 되어 있다. 점심이라 하기엔 과할 정도로 많은 음식이다.

“어떤 게 입맛에 맞을지 몰라 조금 많이 준비했습니다. 마음껏 즐기십시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리냐! 나 좀 도와주겠어?”

“네에.”

이리냐가 냉큼 다가가자 현수가 나직이 속삭였다.

“뭐가 맛있는지 모르겠어. 적당히 알아서 골라줄래?”

“네, 제게 맡겨요. 그리고 고마워요.”

이리냐가 현수의 접시를 들고 음식을 담는 동안 지르코프가 물었다.

“저 아이가 마음에 드신다니 계시는 동안 시중들게 하겠소.”

“그래주면 저야 좋지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언제 출국할 생각이십니까?”

“모스크바에서 볼일이 끝나면 곧장 영국으로 가야 합니다.”

“업무상 출장인가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루는 더 머물겠군요.”

잠시 후, 현수의 곁에는 이리냐가 착 달라붙어서 식사를 했다. 조금 불편하기는 했으나 어쩌겠는가!

지르코프가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힐끔힐끔 바라보곤 했기에 불편해도 참았다.

한 시간이 넘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는 곧장 부두로 향했다.

러시아의 항구도시 노보로시스크는 흑해 북쪽 해안 캅카스 반도의 체메스만이 오목하게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해군기지와 조선소, 그리고 곡물 창고와 송유관 터미널, 통조림 공장 등을 볼 수 있었다.

지르코프가 상세한 설명을 했기에 알아들은 것이다.

이중 냉동창고와 통조림 공장은 레드 마피아의 소유라 하였다. 하여 다시 보았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한 후 컨테이너 야적장에 당도하였다. 주변엔 총을 든 경비원들이 삼엄한 기세로 서 있다.

“김현수 사장님! 저기 보이는 것들이 확인할 겁니다. 그런데 진짜로 일일이 확인할 겁니까?”

“그렇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지르코프는 언제 그 많은 것들을 확인하겠느냐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간깨나 걸릴 일이기 때문이다.

“참, 이것들이 천지건설 화물 컨테이너와 섞이면 안 되겠기에 비표를 부착하려 합니다.”

“아! 그럴 필요 없을 겁니다. 전부 새로 도색할 겁니다.”

“그러면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통관할 때 가급적이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 도색하면 이를 이상히 여길 수도 있습니다.”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래서 이 비표를 붙였으면 합니다. 크기도 작으니 눈에 뜨이지도 않을 겁니다.”

지르코프는 현수가 내민 스테인리스 철판 하나를 살펴보았다. 가로 세로 6㎝ 정도 크기에 아무런 뜻도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그려진 것이다.

원과 삼각형, 오각형, 그리고 육각형과 팔각형 문양이 보이고 작은 점들이 줄지어 찍혀 있다. 여기서 작은 점들이란 마법 구현에 필수요소인 룬 문자들이다. 원래 크기의 16분의 1 정도로 축소되었기에 점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쨌거나 컨테이너를 제작한 회사의 QR코드9)처럼 보인다.

“새로 도색하는 것보다는 이걸 붙여놓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미스터 지르코프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흐음, 나쁘지 않군요. 근데 이걸 어디에 붙이지요?”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가로 세로 6㎝짜리 작은 철판 하나로 무엇을 하겠는가!

“가장 식별하기 좋은 곳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어쨌든 가서 보십시오.”

“네. 그럽시다.”

잠시 후, 현수는 컨테이너에 적재된 무기들을 볼 수 있었다.

이미 다 적재한 상황이라 깊숙한 안쪽에 무엇을 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수박 겉핥는 식의 확인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일일이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나를 확인할 때마다 문을 닫고 용접공이 용접을 했다.

전체를 다 한 것이 아니라 위와 아래 부분만 했다. 주로 사람의 시선을 받는 곳은 내버려 두었다. 의심받지 않기 위함이다. 물론 현수가 건네준 스테인리스 철판도 부착되었다.

이건 용접이 아닌 실리콘으로 코킹했다. 용접하다 마법진에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혹시라도 의심받을 경우 금방 떼어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지르코프는 현수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련의 일들이 마쳐지는 데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예정보다 한 시간 초과된 셈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협조해 주신 덕에 잘 확인했습니다.”

“그럼 이제 모스크바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그러지요.”

노보로시스크에서 런던으로 가는 직항로는 개설되어 있지 않다. 어차피 모스크바로 가야 하는 상황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현수는 공항에 당도하였다.

지르코프가 안내한 곳에는 미국 페어차일드사의 19인승 소형 항공기 메트로 23이 계류되어 있었다.

현수가 다가가자 기장이 허리 숙여 인사를 한다.

지르코프는 편안한 비행이 되길 빌며, 만나서 반가웠다는 말을 했다. 아울러 모스크바의 보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도 했다.

당연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힘찬 악수를 하고는 탑승했다.

“어서 오세요.”

“어라, 이리냐! 이리냐가 어떻게 여기에……?”

“저 일일 스튜어디스가 되었어요. 편안하게 모실게요.”

방긋 미소를 짓는데 고르고 흰 치열이 보기에 좋다.

탑승 직후 이륙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 정도 더 걸렸기에 정기 항공편 대신 자가용 비행기가 동원된 것이라 한다.

모스크바에서 보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수는 폭력조직이라고 하기엔 너무 덩치가 큰 레드 마피아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냐는 오늘 밤 모스크바 최고의 호텔인 ‘릿츠 칼튼 모스크바 호텔’에서 머물게 되었다며 신난다는 표정이다.

그리곤 비행하는 내내 현수의 곁에 달라붙어 온갖 애교를 다 떨었다.

노보로시스크 조직의 책임자가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수도 있을 자신을 구해준 때문이다.

게다가 현수에게서 풍기는 카리스마가 왠지 좋았던 때문이기도 하다.

짧은 미니스커트에 탱크 탑 차림인지라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현수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하였다.

하나 어쩌겠는가!

조종사를 제외하곤 단둘만이 있다. 지르코프의 배려인 듯하다. 곤혹스런 시간은 호텔에 당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릿츠 칼튼 모스크바 호텔엔 귀빈들을 위한 룸 바가 있다.

여러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바의 한쪽에 별도의 룸이 있는 것이다.

현수는 대략 10분 정도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두 번이나 전언을 들었다.

첫째는 교통 사정 때문에 보스가 약간 늦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호텔 로비에 당도했으니 곧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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