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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60화 (160/1,307)

# 160

긴장된 마음으로 보스를 기다렸다. 레드 마피아를 총괄하는 보스는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들어선다. 희끗희끗한 흰 머리가 인상적이다.

안경을 끼고 있어 이지적인 대학 교수처럼 보인다.

다만 눈빛이 일반인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이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주눅들 카리스마가 뿜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의 뒤로 덩치 좋은 놈 둘이 따라 들어왔다. 각종 격투기로 제대로 단련된 몸매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압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장 195㎝쯤 되는 두 놈의 상의 한쪽이 불룩하다. 자동권총이 들어 있는 듯하다.

이쯤 되면 쫄아야 한다. 하나 현수가 누구인가!

7써클 대마법사이며, 비록 뻥이긴 하지만 제국의 백작이다. 이 정도 기세론 조금의 자극도 받지 않는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라 하네.”

“반갑습니다. 김현수입니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이기에 고개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우리말을 아주 잘하는군. 먼 길 오느라 애를 썼네.”

“준비된 배려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화물 확인은 다 했다고 들었네.”

“이미 다 선적하여 제가 의도하던 바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알렉세이는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보았던 서류상의 물품 이외엔 없을 것이네.”

이제와 아니라 하여 무엇하겠는가!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믿겠습니다.”

“고맙군. 근데 자네는 내가 누군지 아는가?”

“보스라 들었습니다만…….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요?”

“보스라……! 레드 마피아의 총괄 보스는 아니네. 모스크바라는 작은 동네만 주무르고 있지.”

이 정도면 레드 마피아 전체에서 최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물이라는 뜻이다.

“아……!”

“기능성 화장품 듀 닥터의 효능이 아주 좋더군. 우리 집사람과 딸 아이가 아주 좋아했네.”

“마음에 든다니 다행입니다.”

현수는 당연하다는 듯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내가 왜 보자고 했는지 아는가?”

“아뇨, 솔직히 잘 모릅니다.”

“드모비치는 내가 소유한 것 중 하나이지.”

“……?”

“좋은 거래 상대가 될 것 같아 보자고 했네.”

“감사합니다. 하면 엘딕과 스피드는 어떻습니까?”

“그 회사의 브로셔만으로도 이미 모두 예약되었네. 귀국하거든 대수를 늘려주게.”

“아!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알렉세이 이바노비치가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콩고민주공화국에 들어가는 무기들은 반군을 돕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네.”

“……?”

“반군으로부터 무기를 팔아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보내주는 것뿐이라는 뜻이네.”

“이런 말씀을 제게 해주시는 의미를 듣고자 합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개발이 덜 되어 큰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지. 그런데 거기에 발을 디딜 발판이 부족하네.”

레드 마피아는 조직적이고 규모가 크기는 하지만 공인된 국가가 아니다. 따라서 콩고민주공화국으로의 접근이 쉽지 않은 상태이다.

수년 전, 몇몇이 들어가서 조직을 키워보려 했지만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오랜 기간 동안 식민지였다. 그렇기에 백인의 접근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무력을 동원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레드 마피아의 행동대원들이 겁을 먹을 정도로 무식한 보복을 가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초기에 투입되었던 대원 2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신조차 회수하지 못했을 정도이다. 모르긴 몰라도 정글 어딘가에서 썩었거나 맹수들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천지약품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돈은 돈대로 벌면서 정부는 물론이고 킨샤사 주민들의 호감을 산 아주 모범적인 사례이다.

하여 비슷한 시도를 했다. 이전의 사건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벨기에 사람의 이름을 빌렸던 것이다.

하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천지약품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호감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여 레드 마피아는 차선책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가 현수의 협조를 얻는 것이다.

협조를 얻기 위해 이전처럼 협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 해놓고 마지막 순간에 배신을 하게 되면 엄청난 금전적 손실뿐만 아니라 조직원들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수의 도움을 얻어 막대한 이득이 발생될 광물 채굴권을 땄다고 치자.

광산을 개설하기 위해 엄청난 장비와 인원, 그리고 시간과 돈이 투자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들을 다해놓은 상태에서 현수가 콩고민주공화국 정부와 짜고 배신해 버리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그때 현수가 자신의 가족을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이주시킨 상태라면 아무런 협박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렇기에 자발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어쨌거나 알렉세이의 말에 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더 들어보겠다는 뜻이다.

“……!”

“자네가 징검다리 역할을 해줬으면 하네. 듣자하니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의 전격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더군.”

이쯤 되면 한마디쯤 거들어야겠기에 입을 열었다.

“네, 작은 인연이 있어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콩고민주공화국에 우리가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하네.”

알렉세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카리스마로 상대의 기를 꺾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함이다.

하나 현수가 어찌 이 정도에 머리를 숙이겠는가!

‘이놈이 날 보자고 했던 게 이거군. 아주 끝까지 빨아먹을 심산이었어. 하긴 6억 달러 규모의 교역치고는 대가가 조금 적다는 느낌이었어!’

현수는 슬그머니 화가 났다.

상대가 자신을 철저히 이용해 먹으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표정의 변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웃는 표정을 지으며 잔을 들었다. 그리곤 나직이 속삭였다.

“마나여, 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내게 지극한 호감을 느끼게 하라. 어펜시브 참!”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마나가 알렉세이에게 스며든다. 그러자 곧바로 눈빛이 부드러워진다.

“어떤가? 우릴 도와주겠는가?”

알렉세이의 뒤에 있던 사내 둘이 흠칫거린다. 보스의 이런 은근한 음성을 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알아는 보겠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제가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과 안면이 있다곤 하지만 큰일을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아무튼 잘 좀 부탁하네.”

오늘 알렉세이는 현수에게 부탁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콩고민주공화국에 레드 마피아가 스며들 수 있도록 발판을 제공하라는 명령을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위대한 마법 덕분에 명령이 부탁으로 바뀐 것이다.

“그나저나 드모비치 상사 말입니다.”

“드모비치 상사? 왜……? 뭐 궁금한 거라도 있나?”

“우리 이실리프 무역상사와 딱 일 년만 거래하실 건 아니죠? 지르코프가 그러더군요. 드모비치 상사는 웬만해선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다고요.”

“그 녀석이 그랬나? 맞네. 상대가 실수하지 않는 한 드모비치 상사는 거래선을 바꾸지 않지.”

“그럼 오래도록 교역을 했으면 합니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자네가 쓸데없는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우리의 거래는 오래 갈 것이네.”

“네, 알겠습니다.”

알렉세이 일행이 가고 난 뒤 현수는 웨이터의 뒤를 따랐다.

런던행 비행기는 내일 오전에 있다. 따라서 하룻밤을 보내라면서 객실을 잡아준 것이다.

“어서 오세요.”

예상대로 이리냐가 기다리고 있었다. 현수는 곤혹스런 기분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리냐, 우리 모스크바의 야경 구경하러 갈까?”

“정말이요? 호호, 좋아요. 저도 아직 모스크바 구경 못했단 말이에요.”

얼른 팔짱을 끼고 잡아당긴다. 당장 나가자는 뜻이다.

현수는 차라리 잘되었다 싶어 호텔을 나섰다.

릿츠 칼튼 모스크바 호텔은 붉은 광장에서 약 3㎞ 떨어진 곳에 위치하기에 둘은 택시를 탔다.

“어딜 제일 먼저 보고 싶어?”

“우선은 노보데비치 수도원(Ensemble of the Novodevichy Convent)을 보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밤이라……. 거긴 내일 아침에 가요. 시간 되죠?”

런던행 비행기는 오전 11시 30분에 출발한다. 그렇기에 서두르면 못 볼 이유가 없다. 하여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러지. 그럼 지금은 어디로?”

“메트로클럽(Метроклуб)이란 곳을 가보고 싶어요.”

“뭐하는 데지? 나이트클럽이야?”

“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지점이 있는 아주 큰 나이트클럽이라고 해요.”

“그래, 가자.”

둘이 향한 곳은 3층짜리 건물이다. 입구인 듯한 곳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현수와 이리냐는 맨 뒤에 섰다. 보아하니 3층 건물 전체가 나이트클럽인 듯하다.

“사람이 엄청 많은 모양이군.”

“네, 요즘 모스크바 최고의 명소라 해요.”

“그걸 이리냐가 어떻게 알지?”

“잡지에서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다. 시골 처녀의 모습이다.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지었다. 잡지에서 보던 곳을 찾아왔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나저나 줄이 잘 안 줄어드네.”

“네, 입구를 관리하는 사람이 손님을 선별한대요.”

“그래?”

현수는 수질관리라는 말을 떠올렸다.

30여 분이 지난 후 드디어 현수의 차례가 되었다.

현수는 일인당 입장료가 400루블이라 했기에 800루블을 관리인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관리인의 시선이 싸늘하다.

“넌 안 돼!”

“……! 왜요? 왜 안 되는데요?”

반문한 사람은 이리냐이다. 이럴 수는 없다는 표정이다.

“메트로에선 유색인종을 받지 않는다. 가라!”

관리인은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의 팔에는 닻이 문신되어 있었다. 러시아 해병 출신이라는 뜻이다.

“메트로는 관광객을 받지 않습니까?”

현수가 말을 했지만 관리인은 관심없다는 듯 시선을 돌리곤 뒤쪽의 남녀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한다.

“왜 못 들어가게 하냐구요.”

이리냐의 항의에 관리인이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니들은 소세지 생산공장(Колбаса завод)으로나 가봐.”

“……!”

소세지 생산공장은 최근 들어 러시아에서 각광받는 클럽이다. 사방을 철망으로 둘러싼 무대에 거의 벌거벗다 싶은 아가씨들이 나와서 온갖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곳이다.

다양한 쇼걸들이 나와 스트립쇼, 레즈비언쇼, 레스링쇼 같은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기에 남성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하나 러시아에 처음 온 현수와 노보로시스크에서만 살던 이리냐가 어찌 소세지 생산공장이 클럽이라 생각하겠는가!

관리인의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기에 둘이 소세지가 되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다.

“지금 내게 소세지 생산공장으로 가라고 했소?”

“그래! 바쁘니까 썩 꺼져라.”

관리인과의 실랑이가 길어지자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어이! 찢어진 눈을 가지고 니네 나라로 돌아가!”

“노랭이는 꺼져라!”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받은 현수는 매우 불쾌했다. 하나 인내심을 놓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동양인이라 출입이 안 된다는 것이오?”

“그래, 노랭아! 너 같은 잡종은 여기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으니 썩 꺼져!”

관리인의 노골적인 말에 현수의 안색이 붉어졌다. 그런데 여기에 기름을 붓는 놈들이 있었다.

현수 뒤쪽 약 열 번째에 서 있던 놈들이다.

6장 마법의 위력

“어이! 눈 째진 놈, 너 이리로 와봐!”

“빨리 안 와? 대갈통 부서지고 싶어?”

“지금부터 셋을 센다. 셋 안에 안 오면 뒈진다.”

사내 셋의 위협에 먼저 반응한 것은 이리냐이다.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사내들에게 소리쳤다.

“지금 뭣들 하는 거예요? 왜, 이 사람을 모욕해요?”

“어쭈! 네가 뭔데 나서? 저놈 애인이라도 돼?”

“그래요. 이 사람 애인이에요. 근데 그게 뭐요?”

“뭐야? 지금 저 눈 찢어진 노랭이가 네 애인이라고?”

“그래요. 그게 왜요?”

이리냐는 한마디도 지지 않겠다는 듯 핏대를 세우며 대든다. 어디에서 이런 용기가 났는지 알 수 없다.

한편, 사내들의 얼굴에 흉악한 빛이 어린다.

“네가 저 냄새나는 노랭이의 계집이란 말이지?”

“저놈의 돈이 그렇게 좋았어? 더러운 계집아!”

“퉤에! 갈보 같은 년!”

사내들의 말에 줄 서 있던 나머지 남녀들의 시선에 노골적인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눈 찢어진 동양인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는 표정이다.

이리냐는 억울한 모양이다.

“돈은 받은 바 없어요. 그리고 이 사람은 내 애인이에요. 그러니 사과하세요.”

“지랄……!”

“흐음, 그냥 놔둬선 안 될 계집이구만.”

사내들이 다가왔건만 이리냐는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오히려 덤빌 테면 덤비라는 듯 주먹을 말아 쥐고 있었다.

“어이, 친구들! 아주 짠한 맛을 보여줘.”

“그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눈 찢어진 놈을 데리고 와? 다시는 못 오게 혼쭐을 내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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