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62화 (162/1,307)

# 162

이것이 모스크바 최고의 나이트클럽인 메트로를 유지시켜 온 원동력이다. 그런데 왠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다.

하여 만사를 제쳐 놓고 달려 나왔다.

급한 나머지 문을 걷어차기까지 했다. 큰 소리가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밖으로 튀어나왔다.

불안했던 예상대로 평상시엔 볼 수 없던 광경이 펼쳐져 있다. 사내들 여럿이 바닥에 쓰러져서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냄새가 더럽다!

하여 인상을 쓰면서도 혹시라도 쓰러져 있는 사람 가운데 보스의 귀빈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등에서 진땀이 솟는다.

하여 체면도 잊고 큰 소리로 현수를 찾았다.

웬 여자가 손을 번쩍 든다. 그 곁에 멀쩡히 서 있는 사내가 보이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여 얼른 다가가 본능처럼 허리를 꺾었다. 모스크바 최고의 보스 알렉세이 이비노비치에게만 보여주던 예절이다.

알렉세이보다 상위에 있는 레드 마피아의 두목은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른다. 베일 속의 인물인 셈이다.

따라서 세르게이에게 있어 알렉세이는 최고의 보스이다.

그 순간 문기지의 등에선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늘같은 사장이 직각으로 허리를 꺾는 귀빈에게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했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인종차별은 공공연하다.

일본계는 그런대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계는 아직은 베트남계나 다를 바 없다.

특히 ‘키타이’에 대한 반감이 크다. 이는 지나인들을 러시아어로 ‘키타이스키(Kitaisky)’라고 부르는 것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는 지나인들이 급속도로 경제를 잠식하고 있다. 당연히 이에 대한 반감이 커져만 가는 상황이다.

하여 동양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있기에 현수에게 불똥이 튄 것이다.

그나마 한류 덕분에 조금씩 위상이 올라가는 중이다. 하지만 눈이 찢어진 것은 그들에게 있어 여전히 똑같다.

어쨌거나 모두의 시선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메트로의 사장이 허리를 꺾었다.

“미스트르 킴! 제가 모시겠습니다. 안으로 드십시오.”

“……!”

현수가 웬 영문인가 싶어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리냐가 한마디 했다.

“미스트르 킴! 우리, 딴 데로 가요.”

“아이고, 아가씨, 왜 이러십니까? 혹시 저희 직원이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양해해 주십시오.”

세르게이의 안색이 허옇게 질리는가 싶더니 이내 허리를 굽신거린다. 보스의 손님에게 무례를 범했다 싶은 것이다.

이 순간 문지기는 이제는 죽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장조차 어쩌지 못할 거물에게 노랭이라는 표현을 했으니 이제 죽도록 얻어터질 일만 남은 때문이다.

“미스트르 킴! 그래도 다른 데로 가요.”

이리냐가 재촉하자 세르게이가 울 듯한 표정이다.

“아가씨! 부디 저희 업소에서 놀아주십시오. 언제든 모든 비용이 무료입니다. 그러니…….”

세르게이의 말은 이어질 수 없었다. 쏜살처럼 다가오는 네 대의 승용차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장소이건만 최하 시속 80㎞는 되는 속력으로 달려왔다.

부우우웅! 끼이익! 끼익! 끼이이익! 끼이익―!

쿵! 쿠쿵! 쿠쿵! 쿠쿠쿵―!

네 대의 승용차에서 내린 인원은 아홉이다. 모두가 건장한 체격이지만 그들 중 하나는 아니다.

여덟은 한눈에 보기에도 경호원이다. 그리고 중심에 선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내는 이들을 거느린 사람이다.

현수는 모르는 사람이기에 별반 표정이 바뀌지 않았지만 구경하던 남녀 모두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 시간에 수시로 모습을 드러내던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데니소프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러시아 외무부 제1차관이었다가 최근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사람이다.

“여러분 중 미스트르 킴이 어느 분이십니까? 아……! 거기 계셨군요.”

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 비서실장인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데니소프(Andrey Ivanovich Denisov)입니다.”

“……!”

“대통령님께서 미스트르 킴께 접견을 요청하셨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주실 수 있는지요?”

“……!”

메트로 클럽의 사장뿐만 아니라 문지기와 대기하던 손님 모두 이게 웬일인가 싶은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 비서실장은 장관급이다. 그런데 안드레이도 현수 앞에서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놀라 자빠질 일이다.

하여 모두들 숨죽인 채 현수와 안드레이를 바라보았다.

“대통령님께서 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요?”

“굼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꼭 깊은 밤이어야 합니까?”

“내일 출국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출국하시기 전에 뵙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요?”

“네, 현재 대통령궁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특별한 용무가 없으시다면 같이 가주시길 바랍니다.”

상당히 정중했다. 현수는 대답 대신 이리냐를 바라보았다.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이고 있다. 이리냐 입장에선 대통령궁을 구경할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이다.

“그러죠.”

현수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난 이후 대통령 비서실에서 가져온 검은 세단을 타고 현장을 떠날 때까지 사람들은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문지기는 안으로 불려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방 하나를 둘러메고 나왔다.

잘린 것이다. 그의 입술은 터져 있고,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제대로 얻어맞은 결과이다.

하지만 불만은 없는 표정이다. 오히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듯 그리 굳지 않은 표정으로 사라졌다.

바닥에 나뒹굴던 놈들 역시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리곤 연이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돼지 멱따는 소리 비슷했다.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발길을 돌렸다. 그리곤 인근 펍으로 들어가 오늘 보고 들은 것에 대한 이야길 퍼뜨렸다.

동양에서 온 미스트르 킴이라는 사람이 마피아의 귀빈이며, 대통령과 독대할 정도로 거물이라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네, 반갑습니다. 대통령님!”

현수를 맞이한 것은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다.

“이리냐 양도 이쪽에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이리냐는 정중히 고개 숙여 예를 표하곤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치 박물관 견학 온 어린 학생처럼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난 후 메드베데프가 비서를 불렀다.

“미스 스텔라!”

“네, 대통령님!”

“이리냐 양을 안내해서 대통령궁을 구경하도록 해줘,”

“네, 대통령님!”

이리냐는 스텔라가 일어서서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자 발딱 일어났다. 그리곤 재미있는 구경을 간다는 듯 환히 웃었다.

둘이 자리를 비우자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뭔가를 내민다.

현수는 이게 무엇이냐는 표정으로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열어보았다. 벨벳으로 싸인 작은 상자엔 명함 한 장이 들어 있다.

“목숨을 구해주어 고맙소. 그리고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할 때 전화를 하면 통화할 수 있을 겁니다.”

“네에.”

받기는 했으나 이걸 대체 무슨 의미로 주는가 싶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일국의 정상이라 할지라도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만나려면 사전에 상당한 교감이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은 안다.

하나 현수는 정치를 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딸랑 이름과 전화번호만 명기된 명함을 주었으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드모비치 상사를 상대로 무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드모비치 상사는 레드 마피아와 관련이 있습니다.”

“네, 여기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현수는 시치미를 뗐다. 어찌 되었든 마피아는 불법 폭력 단체이기 때문이다.

“언제고 부당한 일을 당하게 되면 내게 연락해 주십시오.”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드모비치 상사와의 거래에 보증을 서주겠다는 뜻과 다름없기에 현수는 고개 숙여 예를 표했다.

“그리고 잠시 전에 나간 이리냐를 어떻게 만났는지 알 수 없으나 약간은 주의함이 필요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조심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리냐는 검은 과부단의 조직원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네에……? 검은 과부단이요?”

현수는 놀랍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러시아에 오기 전 나름대로 사전 조사를 한 바 있다. 그중에 방금 언급된 검은 과부단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기에 현수의 눈은 깜짝 놀랐다는 듯 커져 있었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 체첸공화국이 분리 독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러시아 연방은 체첸의 탈러시아를 묵과할 수 없어 이를 저지했다.

러시아는 약 120여 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그런데 체첸이 독립하면 다른 소수민족들도 분리 독립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카스피해의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를 러시아로 공급하는 송유관이 체첸 지방을 통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체첸이 독립하게 되면 거액의 송유관 통과료를 지불해야 하는 등 큰 손실을 입게 된다.

게다가 체첸엔 석유도 상당히 많이 묻혀 있다.

이런 상황인지라 독립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 1994년 12월 러시아군이 체첸을 침공함으로써 러시아와 체첸 간의 전면전이 벌어졌었다.

이때 많은 남자들이 죽었다.

이후 러시아어로 ‘샤히드카’로 불리기도 하는 ‘검은 과부(Black Widow)’ 자폭테러단이 발족되었다.

조직원은 체첸의 분리 독립을 위해 러시아군과 싸우다 전사한 남편, 남자 형제, 친척 등을 둔 여성들이다.

지난 2000년 이래 현재까지 러시아 안팎에서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의 약 절반은 이들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7장 런던에서

“이리냐의 아버지 형제들은 체첸군으로 참전하여 전사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언제 폭탄을 짊어질지 모릅니다.”

“으으음!”

“그리고 굼 백화점에서 있었던 테러 역시 체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으으음……!”

현수는 계속해서 침음만 낼 뿐이었다.

“아울러 체첸 마피아와 레드 마피아는 좋은 사이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 자리에 미스트르 킴이 있었던 것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테러 현장에서 현수가 목숨을 잃었다면 레드 마피아의 일을 방해하는 결과가 되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으으음……!”

현수는 또 한 번 나직한 침음을 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반군을 대통령궁에 데려온 셈이 되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사실 이리냐는 누군가의 주선에 의해 우연히 알게 된 여인일 뿐입니다. 이런 줄 알았다면 데려오지 않았을 것인데…….”

현수의 뒷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메드베데프가 환히 웃으며 괜찮다는 제스처(Gesture)를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궁은 잘 경호되기 때문에 단순히 내부 구경을 한다 하여 어찌 되는 것이 아니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래도…….”

현수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자 얼른 화제를 돌린다.

“아무튼 우리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맺어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회동은 그리 길지 않았다.

헤어지기 직전 대통령은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깊은 포옹을 했다.

그리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꼭 전화하라고 했다.

현수는 그날 현장에서 보았던 40대 남자의 몽타주를 그려주었다. 말이 몽타주지 사실은 거의 초상화에 가까운 그림이다.

범인 색출은 이제 시간문제인 셈이다.

이걸 그려준 이유는 체첸 마피아가 자신을 공격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검은 과부단에서 메드베데프를 노린 것인지 확인하고자 함이다. 대통령은 나중에라도 범인이 잡히면 그에 대해 말해주기로 약속했다.

“대통령님과는 무슨 이야길 했어요?”

“……!”

이리냐의 물음에 현수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검은 과부단의 조직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던 때문이다.

그런데 이리냐는 대답을 들으려 물은 게 아닌 듯하다.

“호호, 말로만 듣던 대통령궁을 구경해서 소원 하나 풀었어요. 고마워요. 미스트르 킴 덕분이에요.”

이리냐는 발랄한 여대생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다행이네. 그나저나 지금이라도 클럽에 갈까?”

“아니에요. 내일 출국하려면 좀 주무셔야 하잖아요. 그러니 그냥 호텔로 가요.”

“그럼 그러지.”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곤 맥주 한 잔을 마셨다. 이리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욕실 가운만 걸친 채 잠들어 있다.

물론 슬립이라는 마법 덕이다.

“이리냐가 검은 과부단원일 수 있다고……?”

문득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천사처럼 예쁜 여자이다.

현수는 한참을 망설였다. 이리냐에게 매혹 마법을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 그러지 않았다. 검은 과부단의 일원이라 하면 여태 좋게 보았던 것들이 사실이 아님에 실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검은 과부단의 일원이 아니라 해도 문제이다.

예를 들어, 10써클 마법 리절렉션은 취소 불능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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