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를 마시고 나면 10분 후부터 몸에서 열이 나는 듯한 증상이 나타나. 이때 어떤 사내든 가까이 접근만 하면 이성을 잃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게 되지. 귀족가의 여인 중 이로 인해 신세 망치게 된 수효가 상당히 많아. 심지어 사내의 성노가 되어 일생을 보내게 되기도 한다는군.”
카이로시아가 설명하듯 말을 했다.
하지만 로잘린은 그런 그녀를 잠시 노려보는 듯하더니 단숨에 나머지 커피까지 모두 마셔 버렸다.
“다 마셨어요. 언니! 나더러 조심하라 해놓고 언니는… 언니만……. 언니 혼자서 백작님을 차지하려고… 나는 어떻게 하라고……. 하여간 언니는 나빴어요. 미워요.”
도전적인 눈빛이다. 하나 이 순간 현수와 카이로시아는 내심 웃겨서 죽을 지경이다.
“그, 근데…… 저 이제 어, 어떻게 되는 거죠?”
술김에, 그리고 홧김에 마신 게 분명하다. 로잘린의 음성은 몹시 떨리고 있다.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랬지? 마시지 말라고……! 너 이제 어떻게 하니?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인데. 나야 나이라도 많지만 너는…….”
“어, 언니……!”
로잘린은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안색이 하얗다.
“할 수 없잖아. 네가 마신 건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일 거야. 그게 어떤 물건인지는 너도 잘 알잖아. 안 그래?”
“언니……! 나, 나 이제 어떻게 해?”
“백작님, 어떻게 하시겠어요? 로잘린 양도 마셨는데.”
현수가 등장할 차례이다.
“흐음! 난 마시라고 강요한 적이 분명 없어. 그렇지?”
“물론이에요. 로잘린 양이 자발적으로 달라고 했지요. 그것도 두 번씩이나. 게다가 로잘린 양은 마신 게 뭔지 이미 알고 있었어요. 제가 아까 알려줬거든요. 따라서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건 모두 로잘린 양의 책임이에요.”
“그런가……? 그럼 내 마음이 조금 편하지.”
현수는 일부러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로잘린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하나 좁은 방에서 어찌 마냥 물러날 수 있겠는가!
등이 벽에 닿자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을 짓는다.
잔뜩 겁먹은 게 분명하다. 하나 현수나 카이로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이다.
“로잘린 양! 왜 뒤로 가는 거지? 어서 이쪽으로 와요.”
“네……? 네에.”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입구는 현수의 뒤에 있다.
이제 약효가 나타나면 큰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엄청 고통스럽다고 들었다. 그러고 나면 현수가 인생의 주인이 된다.
그런 미래의 주인이 와서 앉으란다. 잘못하면 평생 성노가 된다고 했다. 따라서 주인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
그렇기에 쭈뼛거리는 걸음으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귀하게만 자라서 아직은 순진한 로잘린이다.
로잘린의 눈은 벌써 눈물을 흘러내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글썽글썽해진 것이다. 그러다 기어코 한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여전히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다.
이런 로잘린을 바라보는 둘의 얼굴엔 웃음이 한가득이다.
“호호호!”
“하하! 하하하!”
“……!”
현수의 호탕한 웃음을 드디어 목적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로잘린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고서는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진주 같은 눈물이 계속해서 방울져 떨어져 내린다.
사랑받던 자작가의 영애에서 졸지에 성노로 전락한 것으로 여겨지니 괜스레 흘러내리는 눈물이다.
물론 아직 일을 당하진 않았지만 곧 당하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가 두렵고 무섭다. 하여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로잘린 양!”
“흐흑! 네에……?”
울다가도 현수가 부르니 얼른 대답한다.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시키는 건 뭐든지 다해야 한다. 안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릴 수도 있다.
짐승 같은 사내에게 팔린다면 어쩌겠는가!
돈만 있으면 노예를 부릴 수 있으니 평민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
그렇기에 부름에 즉각 응답한 것이다.
“조금 전에 마신 거. 그거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 아니니까 울지 마요.”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답은 카이로시아가 했다.
“그건 그냥 커피라는 거야.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라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런 효과는 전혀 없어. 그러니 울지 마.”
“지, 진짜요?”
“호호, 언니가 장난 좀 쳐 봤는데 어때……? 감쪽같이 속았구나. 그런 거야? 호호호!”
“뭐예욧……? 언니……! 나, 진짜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흐흑! 난 진짠 줄 알고……. 난, 오늘 무슨 일이 나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흐흐흑!”
“호호! 로잘린이 진짜 많이 놀란 모양이네. 미안해.”
“싫어요. 조금 아깐 너무도 겁이 나서 심장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론 조심해. 알았지?”
“……!”
로잘린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눈에선 여전히 눈물이 나온다. 아마 안도의 눈물일 것이다.
“백작님, 하도 웃었더니 목이 타네요. 그거 한 잔 더 마시면 안 돼요?”
“그거?”
“네,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 말이에요.”
“그럼, 그럴까? 로잘린 양! 로잘린 양에게도 센트 오브 워마나이저 한 잔 만들어 줄까요?”
“네에……? 싫어요. 절대로 싫어요.”
“흐음, 그럼 그러시던가.”
다시 두 잔의 커피가 만들어졌다. 현수와 카이로시아가 느긋한 표정으로 향과 맛을 음미했다.
로잘린은 잠시 이런 모습을 보라보았다.
“아니에요. 저도 주세요. 저도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 한 잔 주세요.”
“진짜로? 호오… 그러다 신세를 망칠 수도 있는데?”
“그래요. 신세 망쳐도 좋으니 저도 한 잔 주세요.”
조금 전에 놀림감이 된 것, 눈물을 보인 것 등에 살짝 삐친 듯하다. 그래서 오기를 부림이 분명하다.
현수는 아공간에서 커피믹스 하나를 꺼냈다. 그런데 이번 것은 헤이즐넛 향이 아닌 것이다.
슬쩍 장난기가 동한다.
“자, 여기! 말씀하신 진짜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 대령이오.”
“고맙습니다.”
예의바르게 고개 숙인 로잘린은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향기를 맡고 조금 마셨다.
현수와 카이로시아는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거의 한 잔을 다 마셨을 때이다.
“로잘린 양! 그 커피 이거하곤 향이 다른 것 같은데?”
“네에……? 향이 다르다니요?”
아까는 뜨거운 걸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곤 몹시 당황하여 그 향을 잠시 잊었기에 향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만요……!”
로잘린의 커피잔을 가져간 카이로시아가 향을 맡아본다.
“백작님, 이거 혹시 진짜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 아니에요? 왜 향이 다르지요?”
“네에……?”
로잘린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라는 말에 노이로제11)라도 걸린 듯하다.
“그래……? 그럴 리가……. 흐음, 잠깐 그거 이리 줘봐.”
“여기요.”
킁킁! 킁킁킁!
“이런……! 하필이면 이게 왜……! 이건 절대 꺼내면 안 되는 거였는데 어떻게 하지?”
“으아앙! 나 이제 어떻게 해? 아아앙……!”
로잘린은 대성통곡한다. 현수의 반응을 보고 진짜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를 마신 것으로 오인한 것이다.
“백작니임……!”
카이로시아 마저 진짜인 것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제 어떻게 하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현수는 이쯤해서 장난을 끝내야겠다 생각했다.
“이건 카페인이 제일 많이 함유된 커피라 밤에 잠을 못 자게 하는 거야.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걸 꺼낸 거지?”
“네에……?”
“뭐라고요?”
카이로시아와 로잘린의 말에 현수가 피식 실소를 했다.
“후후, 로잘린 양! 이번에도 진짜 놀란 것 같은데……? 카이로시아 양도 그렇고. 아니오?”
“아, 진짜……! 어쩜, 이럴 수가……!”
“어휴우……, 나 진짜 놀랐단 말이에요. 백작님 미워욧!”
“후후, 후후후후!”
“그나저나 오늘 로잘린 양은 잠을 잘 못자겠네.”
“치이, 미워요. 놀릴 생각만 하시고…….”
“저도 놀랐어요. 백작님!”
“에구, 내가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 같은 걸 왜 들고 다녀? 코리아 제국엔 그딴 거 없어. 있어도 들고 다닐 이유가 없고. 안 그래?”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애 떨어질 뻔했단 말이에요.”
“으잉? 로잘린 양, 임신 중이었어요?”
“그러게. 임신한 건 몰랐는데……. 그렇담 미안하오.”
“쳇……! 또 놀리신다. 두 분 이러는 거 정말 싫어요.”
로잘린이 삐친 듯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얀센이 들어와 허리를 숙이며 말한다.
“백작님! 영주님께서 로잘린 아가씨가 안 오신다고 마차를 보냈습니다.”
“아……! 그렇군요. 로잘린 양, 이만 귀가하세요.”
“네, 백작님! 저녁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로잘린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이로시아 역시 이레나 상단으로 되돌아갔다.
선물 받은 에이스 침대 위에 극세사 순면 패드를 깔고, 쟈가드 원단으로 가공해 만든 오리털 이불을 덮고 자려는 것이다. 물론 베개는 라텍스로 만든 것이다.
속옷은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칠 것이고, 오늘의 잠옷은 가슴이 푹 파인 섹시 망사 슬립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
자기 전에 짭짤한 크래커 두어 조각과 달콤한 버터링 쿠키 한 개를 먹을 생각이다. 그렇기에 서둘러 돌아갔다.
모두가 가고난 뒤 현수는 제 방으로 올라가 가부좌를 틀었다. 단전호흡으로 주기를 몰아내기 위함이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 때이다.
똑, 똑!
“하인스 백작님!”
“들어오시오.”
“백작님, 아래층에 영주님 내외분이 와 계십니다.”
“뭐라고요?”
“지금 로잘린 아가씨와 두 분 모두 아래층에 와 계십니다. 어서 내려가 보셔야 할 듯합니다.”
“알겠소.”
현수는 서둘러 의복을 정제하고는 내려갔다.
“허험……! 밤늦게 미안합니다. 하인스 백작님!”
“백작님을 뵙습니다.”
“로니안 자작님, 그리고 세실리아 자작부인! 야심한 시각에 어찌 이곳까지……?”
“험험, 백작님과 긴히 할 말이 있어 실례를 무릅썼습니다.”
“긴히 할 말이라니요?”
“흠흠, 당신은 잠깐 빠져 계세요. 이런 일은 아녀자인 제가 나서는 게 맞으니까요.”
“……?”
현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작님,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목이 너무 많군요.”
얀센과 로사, 그리고 세실리아가 있기에 한 말인 것 같다.
“그럼 제 방으로 가시지요.”
“네, 그렇게 하지요. 당신은 여기 계세요. 로잘린 너도.”
“그렇게 하리다.”
“네. 어머니!”
잠시 후 현수는 세실리아 자작부인과 마주 앉아 있었다.
“백작님! 거두절미하고 여쭙습니다. 오늘 로잘린 데리고 장난치셨습니까?”
현수는 이들이 왜 왔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여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자작부인! 사과드립니다.”
“좋아요. 발뺌하지 않고 인정하시니 사과는 받아들이지요.”
“너그러운 마음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에게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를 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아……!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그것과 유사해서 장난으로 그냥……. 죄송합니다.”
“로잘린은 두 번이나 자신이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를 마신 걸로 알았다더군요. 그래서 순결을 잃을까 몹시 두려웠다고 했어요. 장난이라곤 하지만 도가 지나친 것 아닙니까?”
입이 백 개 있어도 할 말이 없던 현수이기에 고개만 떨궜다. 그러자 세실리아 자작부인의 말이 이어진다.
“로잘린은 오늘 육체적으로는 순결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 정신적으론 이미 순결을 잃었습니다. 두 번이나!”
“……!”
“그래서 백작님이 부르면 즉각 다가갔다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에게 팔릴 것이 몹시 두려웠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백작님은 여기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느끼십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들으려 깊은 밤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우리 로잘린은 순결을 잃었습니다.”
“……!”
“미판테 왕국의 왕자님께서 청혼을 하셨을 때 이를 거절했던 아이입니다. 결혼을 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정원 가꾸기를 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지요.”
“……!”
“그간 수많은 청혼이 있었지만 그것 역시 모두 거절했어요. 그런데 이제 우리 로잘린은 청혼을 받을 자격마저 잃었네요. 이 일에 대한 책임감 혹시 못 느끼시나요?”
신랄하게 몰아붙이는 세실리아 자작부인의 말에 현수는 대답할 말이 없어 묵묵부답했다.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라니요……? 이제 겨우 열아홉 살 먹은 아이에게 장난치기엔 조금 위험한 물건이 아닌가요?”
“죄송… 합니다!”
“오늘 백작님이 어찌 책임지실 것인지 확실한 답을 듣기 전에는 한마디도 더 하지 않고, 물러가지도 않을 겁니다. 자, 이제 묻겠습니다. 우리 로잘린을 어쩌시렵니까?”
“네? 그, 그게……!”
현수는 속 시원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실리아 부인은 잠시 침묵하며 현수의 반응을 살폈다.
‘흐음……! 너무 세게 몰아붙이면 역효과가 나니 이제 슬슬 풀어줘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