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68화 (168/1,307)

# 168

현수는 카이로시아로부터 반지를 돌려받자 그걸 들고 밖으로 나갔다.

마법을 쓸 수 있음을 아직은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전에 쓴 것은 말끔히 지웠다. 그리곤 정성 들여 새로운 문구를 새겼다.

My lovely first wife Kairosia Edelman de Royier will be forever!

― Korea Empire’s Count Hains Merlin ―

반지를 돌려받은 카이로시아는 짧은 시간 만에 반지 안쪽에 문구를 새겨온 능력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저 감격에 겨운 격동만 했을 뿐이다.

겨우 두 줄뿐이지만 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하인스가 카이로시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둘째, 영원히 함께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셋째, 부인으로 맞아들이지만 성을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이다.

결혼과 동시에 여자의 성이 남편의 것으로 바뀐다는 것은 친정을 버리고 시집의 일원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남편에게 귀속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여 반역 등의 혐의로 가족 중 일원이 체포되면 남녀 구분할 것 없이 모두 처벌받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 전 성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동등하게 대접하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장사를 하면서 세상 경험이 많은 카이로시아이기에 이 모든 뜻을 단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넷째, 반지에 새겨진 문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현수는 자신의 출신을 명확히 밝혔다.

코리아 제국의 백작 하인스라 새긴 것은 카이로시아가 명실상부한 백작부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인스 백작님! 정말, 정말… 고마워요. 흐흐흑!”

카이로시아가 와락 달려들자 현수는 두 팔을 벌려 안아 들었다.

‘아무래도 양쪽을 오가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 같군.’

양심상 이 여인의 순정을 짓밟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백작님……!”

“로시아, 이제부턴 그렇게 부르지 마. 코리아 제국에선 남편의 작위를 부르지 않는단 말이야.”

“그럼 뭐라 불러요?”

“흐음! ‘자기야’라고 부르면 어떨까?”

아르센 대륙 공용어가 아닌 한국말로 ‘자기야’라고 말하니 품에서 떨어져 나오며 눈을 둥그렇게 뜬다.

무슨 뜻인지 묻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생각난 어휘 하나를 더 댔다.

“아님, 아예 ‘여보’라고 불러.”

“여, 여보요?”

발음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응, 코리아 제국에서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그거야. 그러니 그냥 ‘여보’라고 불러. 난 ‘당신’이라 부를게.”

“그럼 ‘자기야’는 뭐죠?”

“그건 연애할 때 주로 쓰는 말이야. 다시 말해 결혼 전에는 ‘자기야’라 부르다가 결혼하면 ‘여보’라고 불러.”

“그럼 먼저 ‘자기야’라고 할래요. ‘여보’라는 말은 우리가 첫날밤을… 첫날밤을 함께 보낸 뒤부터 그렇게 부를게요.”

“첫날밤?”

“네에.”

카이로시아는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 정도로 작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곤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배배 틀었다.

“하하,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자, 그럼 날 한번 불러봐.”

“여, 여보! 아참, 아니다. 자, 자기야.”

“잘 하네.”

한국말의 어려운 혀놀림을 어렵지 않게 극복한 듯하다. 정말 한국 여자가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백작님, 아니, 자기야!”

“왜?”

“하루만,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왜?”

“오늘 우리 첫날밤…….”

“무슨 소리야? 난 아직 청혼도 안 했어. 그리고 로시아의 아버지와 오빠들도 만나보지 않았잖아. 그런데 어떻게 아무렇게나 첫날밤을 지내? 그건 나중에. 알았지? 나중에…….”

“……!”

“설마 로니안 자작 부부와 결혼을 합의했으니 로잘린과 먼저 첫날밤을 보낼까 봐 그러는 거야?”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자기야가 떠났는데 만일……. 아, 아니에요. 알았어요. 자기야의 뜻대로 해요.”

로시아가 말을 맺지 못한 내용을 현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떠났던 현수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게 자의일 수도 있고, 타의일 수도 있다.

변심하여 오지 않는 경우, 또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었을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현수의 아내로 존재하고 싶어 첫날밤을 보내자는 이야길 하려던 것이다.

“걱정 말아. 로시아가 생각하는 것보다 난 훨씬 강해. 그리고 이곳 테세린은 나의 아내가 있는 곳이야. 로시아처럼 예쁘고 착한 아내가 있는데 어찌 다른 데 한눈을 팔겠어? 반드시 돌아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그래도 세상은 무척 험하단 말이에요. 듣자하니 자기야는 소드 익스퍼트 중급 정도 된다고 해요. 그런데 그 정도 실력으론 헤쳐 나가기엔 너무 험하단 말이에요.”

“후후, 누가 그래? 내가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라고.”

“네에, 엘리터를 베기는 했는데 그때 굉장히 위험했던 순간이었다면서요? 사람은 위기의 순간이 되면 가진 능력보다도 더 큰 능력을 보이기도 한대요.”

“그래서……?”

현수는 흥미롭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때는 운이 좋았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근데 날마다 그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으니까 제가 불안해요. 만일…….”

잠시 말을 끊은 카이로시아는 다시 현수의 품에 안겼다. 그리곤 나직이 속삭인다.

“이제 자기야가 없으면 난 못 살아요. 자기야, 사랑해요!”

“……!”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이 진심으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매우 불안해한다. 사내로서 어찌 이를 해소시켜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로시아, 잠시만…….”

10장 수학의 천재

현수가 슬쩍 밀쳐 내자 카이로시아는 순순히 떨어진다. 안전을 위해 몇 발짝 더 물러난 현수는 마법을 영창했다.

“마나의 힘이여, 생성시켜라. 플라즈마 볼(Plasma Ball)!”

“허억……!”

현수의 손 바로 위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이 있다.

붉은색이나 노란색이 아니라 아예 하얀색이다. 이는 가장 뜨거운 불길을 의미한다.

화염의 구체는 그 크기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그 뜨거움 때문에 천장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냥 놔두면 여관에 화재가 발생할 상황이다.

“매직 캔슬!”

“배, 백작님……!”

“어허, 자기야라고 부르기로 했잖아.”

“아차, 깜박했어요. 근데 마검사셨어요?”

“마법과 검을 모두 사용할 줄 아는 존재를 마검사라 칭한다면, 그래. 난 마검사야.”

“그, 근데 조금 전 그 마법! 플라즈마 볼이라는 마법은 몇 써클 마법인거죠?”

“그거……? 6써클이야.”

“네에? 헉! 그, 그럼……!”

카이로시아는 경악했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아르센 대륙엔 7개의 마탑이 있다.

이중 5개의 마탑은 마탑주가 7써클이다. 나머지 둘은 6써클이라 알려져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나이가 100살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수는 이제 겨우 20대이다. 그런데 마탑주에 근접한 6써클 마법사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이제 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알았지?”

“서, 설마 6써클 마법사였어요?”

“6써클……? 아닌데?”

“그, 그럼요?”

“나, 7써클 마스터야!”

“헤엑……!”

쿠웅 !

카이로시아는 너무도 경악하여 그대로 주저앉았다.

대륙 전체를 뒤져도 7써클 마스터는 단 한 명도 없다.

마탑주들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지녔다는 라이셔 제국의 혈운의 마탑 마탑주도 7서클 유저일 뿐이다.

“호, 혹시 위대한 존재이십니까?”

카이로시아는 부들부들 떨면서 묻고 있었다.

“위대한 존재는 무슨……! 난 사람이야.”

“자기야, 아니, 백작님!”

“무슨 소리야? 설마 내 아내가 되는 걸 포기하겠다는 거야?”

“아, 아니에요. 제가 어찌…….”

카이로시아는 경외감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현수는 슬쩍 장난기가 돋는다.

“좋아! 내가 드래곤이라고 인정하면 어떻게 할 건데?”

“아아……! 위대한 존재이시여…….”

카이로시아는 그대로 엎어지며 고개를 조아렸다.

“에구, 장난도 못 치겠네. 얼른 일어나. 나 드래곤 아니야.”

“위대한 존재시여. 한낱 인간인 저를 놀리지 마시옵소서.”

“차암 내! 진짜 아니야. 아니라고! 맹세할 수 있어.”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그냥 장난 좀 친 거야.”

“그래도…….”

“내가 7써클 마스터이자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인 마검사란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네에?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라구요?”

“그래. 얼마 전 약간의 진전이 있었거든.”

현수는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한 신색이다. 하나 카이로시아는 점입가경이라는 듯 입을 크게 벌린다.

“헐……!”

“왜? 내가 마검사라는 게 싫어?”

“아, 아니에요. 제가 어찌……. 근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할 수 없군. 자, 여기 앉아봐.”

카이로시아가 침대에 걸터앉자 현수는 어린 시절부터 마법을 익혔다는 거짓말을 했다.

당연히 믿지 않는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마법을 익혔어도 7써클 마스터는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자신이 천재라는 거짓말을 했다. 그리곤 즉석에서 두 자리 수 곱하기 두 자리 수 문제를 여러 개 출제했다.

상단에 몸담고 있기에 카이로시아는 계산을 아주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현수의 계산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했다.

10개의 문제를 로시아가 풀 때엔 약 1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현수는 3초 만에 풀어냈다.

푸는 게 아니라 문제를 보자마자 답을 쓰는 것이다.

현수는 로시아에게 이 문제의 비밀을 말하지 않았다.

사실 현수는 중학생 시절 학원에서 이런 문제 푸는 법을 배웠다. 그렇기에 빨리 답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에는 비밀이 있다.

첫째, 곱하려는 두 수의 십의 자리 수가 일치한다.

둘째, 일의 자릿수의 합이 모두 10이다.

이런 두 수의 곱셈은 아주 간단하다.

먼저 두 개의 십의 자릿수 가운데 하나에 +1을 해준다.

예를 들어 34×36을 계산하려면, 십의 자릿수인 두 개의 3 가운데 하나를 +1 해서 4로 고친다.

하여 3×4를 하여 먼저 12를 쓴다.

다음엔 일의 자릿수끼리 곱해서 24를 쓴다.

답은 1,224가 된다. 십의 자리끼리의 곱을 먼저 쓰고, 일의 자리끼리의 곱을 이어서 쓰면 계산이 끝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면 누구나 달달 외는 구구단이 있으니 이 정도 계산은 누워서 떡 먹기이다.

다음에 낸 문제도 중학생이면 누구나 풀 수 있는 것이었다.

96×96=, 83×83=, 57×57=

로시아는 4분쯤 걸려서 풀었다. 현수는 이를 8초 만에 풀었다. 곱셈 공식을 이용해서 푸는 쉬운 문제인 것이다.

96×96 = (100 ― 4)2 = 10000 ― 800 + 16 = 9216

83×83 = (80 + 3)2 = 6400 + 480 + 9 = 6889

57×57 = (60 ― 3)2 = 3600 ― 360 + 9 = 3249

중2 때 배우는 곱셈공식 가운데 완전제곱식을 이용하여 아주 간단히 풀어냈다.

다음은 합차공식의 응용이다.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67×73 =, 82×78 =, 54×66 =

로시아는 한참 끙끙거려 풀어냈다. 한 9분쯤 걸렸다. 하나 현수는 불과 8초 만에 풀었다.

67×73 = (70―3) (70+3) = 4900 ― 9 = 4891

82×78 = (80+2) (80―2) = 6400 ― 4 = 6396

54×66 = (60―6) (60+6) = 3600 ― 36 = 3564

로시아는 현수를 상상을 초월한 천재라 인정했다.

이레나 상단에서도 로시아의 계산 능력은 탁월하다. 그런데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실력이니 어쩌겠는가!

“자, 이젠 내가 못 돌아올 일이 없겠지?”

“네, 믿어요. 정말 대단하셔요.”

이 순간에도 로시아는 남편이 될 하인스 백작이 상상을 초월한 천재인 데다가, 대륙 최고의 7써클 마법사이고,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얼이 빠져 버린 것이다.

“로시아! 내가 마법사라는 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알았지? 이건 로시아와 나만 아는 비밀로 하자.”

“네, 그럴게요.”

단둘만 아는 비밀을 공유한다 함은 둘 사이가 각별하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문득 스치는 상념이 있었다.

“그런데 7써클 마스터라면 워프나 텔레포트라는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원하는 곳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는 마법 말이에요.”

“물론이야. 그런데 그건 왜?”

“그럼 언제든 이리로 올 수 있지 않아요?”

“내가 말했지……? 이곳 테세린은 내 아내가 있는 곳이라고.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심어두었어. 그러니 오고 싶으면 언제든 올 수 있어.”

“아아……!”

“나는 로시아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때마다 돌아올 거야. 설마 박대하진 않겠지?”

“어머, 제가 어찌……! 언제든 오셔요. 전 자기야를 위해 늘 기다릴게요.”

“그래, 고마워. 후후, 후후후!”

현수는 미소 띤 얼굴로 로시아를 부드럽게 보듬어 안았다. 물론 살포시 안겨왔다. 더없이 다정한 마음이 된 현수는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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