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77화 (177/1,307)

# 177

“네에.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던 민 실장님이 출근하셨는데 저희 때문에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 칸막이를 설치했어요.”

보아하니 하나는 민주영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정의 것인 듯하다. 같은 실장급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잘 했네요. 근데 민 실장은 아직 출근 전인가요?”

“아뇨. 나오셨다가 현재는 외근 중이에요.”

“외근……? 무슨 외근이요?”

현수는 아무런 업무 지시도 한 적이 없기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은정이 배시시 웃음 짓고는 말을 이었다.

“추가로 수출할 상품을 알아본다고 나가셨어요.”

“아……!”

“사장님은 안 계신데 민 실장님이 출근하셔서 첫날은 그냥 뻘쭘하게 앉아 계시기만 했어요. 해서 제가 회사 상황을 이야기해 드렸어요.”

“잘 했네요. 사장실로 오세요.”

“네, 커피부터 한 잔 드려요?”

“좋죠.”

현수가 자리에 앉아 그간 못 본 뉴스를 살피는 동안 은정이 커피잔을 들고 들어왔다.

“자, 이건 러시아 출장 기념품이에요.”

“어머, 이건……! 와아, 정말 너무 예뻐요.”

은정의 큰 눈이 더 커진다. 현수가 건넨 것이 너무 마음에 든 탓이다.

그것은 은반지이다. 하지만 평범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아르센 대륙의 어떤 드워프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이다. 이는 멀린이 드래곤의 레어에서 가져온 것들 중 하나이다.

폭이 약 1㎝ 정도 되는데 예술적인 문양으로 제작되어 있다.

그리고 포인트를 준 것처럼 작은 다이아몬드 두 개가 박힌 것으로 보인다. 하나 이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다.

투명한 상급 마나석이다.

이렇게 생긴 것은 세 개이다. 은정와 수진, 그리고 지혜를 위해 지난밤에 만든 것이다.

박혀 있는 두 개의 마나석 중 하나는 면역력 증진 마법이 구현되는 데 필요한 마나를 공급한다. 다른 하나는 바디 리프레쉬 마법진을 작동시킨다.

상급이긴 하지만 마나석의 크기가 작은 관계로 두 마법은 일몰 후에만 구현된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작동되도록 마나 제어진이 그려져 있는 까닭이다.

계산대로라면 적어도 10년은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케이스는 없지만 상당히 고가예요. 그러니 웬만하면 손에서 빼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대놓고 아티팩트라는 소리를 할 수 없기에 돌려 말한 것이다. 하나 현수의 말은 은정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벌써부터 반지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언가 들리긴 했는지 건성으로라도 대답은 한다.

“네에.”

자신이 무엇에 대한 대답을 했는지 모르지만 은정은 이 반지를 결코 뺄 생각이 없다.

잘 때는 물론이고, 목욕을 할 때에도 빼지 않을 것이다. 반지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수진과 지혜가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녀들 역시 반지를 받고 무척이나 좋아했다. 기능도 기능이지만 디자인 자체가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셋이 있는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반지에 대해 언급했다. 단순히 비싸다고만 하면 몸에서 떼어놓을 수 있기에 노파심에서 한마디 더 한 것이다.

“그 반지들은 중세 때의 것으로 주술 능력이 있는 마법사가 만든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끼고만 있어도 몸이 건강해진다고 하니 웬만하면 빼지 마세요.”

“네, 사장님!”

수진과 지혜 역시 너무도 마음에 드는 이 반지를 뺄 마음이 없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을 먹고 나니 주영이 들어온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야, 그러지 마. 회사라고는 하지만 너 하고 난 친구다. 그러니 그냥 평소처럼 말해.”

“……!”

주영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현수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엄연한 조직이니 존칭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한 때문이다. 그런데 현수가 못을 박는다.

“안 그럼 자른다. 앞으로도 그냥 예전처럼 말해.”

“알았다. 그렇게 할게.”

주영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는 분명 대학 동창이며 친구이다. 하지만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부터 든든한 밧줄을 내려준 사람이다.

그런 친구가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는 이야길 했다. 그것 또한 자신을 구제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출근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깍듯이 대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말을 놓으라 하니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래, 앞으로도 쭈욱 그렇게 해. 알았지?”

“오냐, 네가 원하니 그렇게 하지. 참, 명함 주문한 게 다 되었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어떠냐?”

민주영이 건넨 명함엔 ‘이실리프 무역상사 신상품개발실 실장 민주영’이란 글씨가 인쇄되어 있었다.

회사의 로고는 마법사의 로브 위에 스태프와 장검이 교차되어 있는 그림이다.

“신상품 개발만 하려고?”

“그럼, 이거 말고 다른 업무도 있냐?”

“당근이지. 너 오늘부터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출납 장부를 맡아야겠다.”

“장부 기장을 하라고? 세무사 사무실에 맡기지 않았어?”

“그랬지. 그런데 앞으론 우리가 직접 했으면 해. 그래야 현황 파악이 더 쉬울 것 같아서.”

“그럼 신상품 개발은?”

“장부 정리할 거 다하면 그때 쉬엄쉬엄 해.”

“알았다.”

주영은 어째 일이 쉽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다 만들어놓은 것 중 러시아와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수출할 만한 것을 찾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일이지만 크게 힘들 것도 없다. 그렇기에 뭔가 회사에 도움 되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이다.

하여 얼른 기장 업무를 맡겠다고 한 것이다.

“근데 나한테 주는 선물은 없냐?”

“물론 있지. 자, 이거!”

현수가 건넨 것은 금속으로 만든 듯한 조끼였다. 주영은 한 여름에 웬 조끼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방검하고, 방탄 기능이 있다는 거야.”

“뭐어……? 크크! 선물하고는…….”

“다시 다치면 못 고칠 수도 있으니까 앞으론 몸조심해. 나쁜놈들 보면 덤벼들지 말고 슬슬 피하고. 알았지?”

“오냐! 고맙다. 잘 입으마.”

주영은 보라는 듯 조끼를 걸쳤다.

“크크, 7월에 조끼 입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그래. 그렇긴 해도 보기엔 좋다. 잘 어울려.”

현수는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주영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잠깐 걸친 거지만 계절이 계절인 만큼 살짝 덥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다.

그렇기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참, 그거 러시아에서도 특수부대에서만 사용하는 신형 특수 금속으로 만든 거라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기능도 있다고 했다.”

“진짜……? 진짜 그런 거야?”

“그래, 항상 36.5∼37.2℃를 유지시켜 준다고 해. 그래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게 느껴질 거라고 하더라.”

“와아, 이게 진짜 그거면 대단한 거잖아? 근데 세탁 방법은 뭐래? 드라이 맡겨야 하나? 흐음, 물빨래는 안 될 것이고.”

주영이 진짜 심각한 고민이라는 듯 이맛살을 찌푸리자 현수가 피식 웃었다.

“그건 금속으로 만든 거라 세탁할 필요 없어. 가끔 젖은 수건으로 닦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라.”

“아, 그래?”

주영은 마음에 든다는 듯 새삼스레 조끼를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어떤 금속인지 알 수 없지만 매끄럽다는 느낌이다.

현수는 곁눈질로 주영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안 입겠다고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이 조끼는 드래곤의 레어에서 나온 갑옷 중 하나를 변형시킨 것이다.

그 갑옷은 아다만티움 합금으로 제작된 것이다. 실제 무게는 약 30㎏이 넘는데 갑옷 내부에 경량화 마법을 인챈트했다.

하여 주영이 체감하는 무게는 약 300g 정도이다.

그리고, 본래는 약 7㎜ 두께였지만 압축 마법을 걸어 1㎜ 내외로 얇아진 상태이다.

그렇기에 딱딱하기만 하던 것에 연화 마법까지 걸어서 일반적인 옷감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끝으로 형상 기억 마법까지 구현시켰다. 금속이기에 찌그러지면 원상태로 복원하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한 마법이다.

어쨌거나 이 갑옷은 칼과 창, 그리고 기사들의 랜스(Lance) 및 화살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따라서 현수가 말한 방검 기능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방탄 기능이 있다고 한 것은 일종의 뻥이다.

요즘 세상엔 방검보다 방탄 기능이 우선이다.

그런데 방검 기능만 있다고 하면 이상하다 여길 것이기에 한 말이다.

하지만 현수가 하나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

그것은 아다만티움이란 금속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다만티움은 단단한 금속이라는 뜻인 아다만트(Adamant)라는 어원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렇기에 웬만한 권총 탄환 정도는 막아낼 능력이 있다.

다시 말해 주영이 걸친 갑옷은 권총 탄환 정도는 무난히 막아낼 능력이 있는 물건이다.

어쨌거나 주영은 조끼가 마음에 드는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리저리 살펴보고 쓰다듬지 않을 것이다.

“야, 근데 이건 어째 주머니가 하나도 없냐?”

“그래? 아마 군용이라 그럴 거야.”

“그런가?”

주영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참, 대구에서 전화 왔었다.”

“대구? 누군데? 남자야, 여자야?”

“여자! 근데 누구냐? 목소리 꽤 괜찮던데?”

주영이 이실직고하라는 듯 은근한 눈으로 째려본다.

“짜식! 그건 국가 기밀이라 절대 말 못한다.”

현수가 사장실로 들어가자 주영은 다시 조끼를 쓰다듬는다.

분명 금속으로 만들었는데도 촉감이 매우 부드럽다 느낀 때문이다.

“진짜 방검 기능과 방탄 기능이 있을까?”

주영은 고개를 갸웃거리곤 자신의 자리로 갔다.

2장 세정파 거덜 내기

띠리리링! 띠리링! 띠리리리링……!

“여보세요.”

“지현 씨?”

“네, 현수 씨! 저 지현이에요. 잘 다녀오셨어요? 가셨던 일은 잘 되었구요?”

“덕분에요. 근데 무슨 일 있어요? 전화하셨다고 들었어요.”

“아! 그것 때문에 하셨구나. 아뇨, 당연히 아무 일도 없지요. 전화한 건 혹시 오셨다 싶어서였구요.”

“아! 저는 또…….”

“근데 언제 귀국하셨어요?”

“토요일 밤 늦은 시각에 당도했어요.”

“아! 그러셨구나. 그럼 좀 쉬셨어요?”

“네, 어제 하루 푹 쉬었습니다. 근데 진짜 아무 일 없어요?”

“네, 그냥 여쭤본 거예요.”

현수는 분명히 무슨 용무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지현의 어투에서 약간 머뭇거린다는 느낌이 든 때문이다.

“지현 씨! 무슨 일이든 마음에 두지 말고 이야기해요. 저도 남자라 되게 둔감해서 말 안 하면 눈치 못 채요.”

“네에, 근데…….”

“……!”

현수는 채근 대신 기다렸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마음속에 부담감이 있다는 뜻이다.

하여 캐묻지 않은 것이다.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어머니한테 갈 때 같이 가자고요.”

“아! 네에, 그랬지요. 러시아 출장을 다녀왔으니 이제 가야지요. 그런데 언제 가나요?”

“내일 모레, 수요일에 갈 건데 시간 괜찮으세요?”

“수요일이요? 잠깐만요. 제 일정 확인 좀 해볼게요.”

말을 마친 현수는 송화기를 손으로 가린 채 은정을 불러 일정 확인을 했다. 특별히 서울에 있어야 할 일은 없다고 한다.

“네, 수요일에 시간이 있네요. 제가 몇 시까지 어디로 가면 되죠?”

“너무 늦은 오후가 아니기만 하면 되요.”

“좋습니다. 그러지요. 내려가면서 전화 드릴게요.”

“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번거롭게 해드려서.”

“아! 아닙니다. 여행 삼아 다녀오죠. 그나저나 제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네, 그럴게요. 그럼 수요일에 봬요.”

“네에.”

전화를 내려놓은 현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곤 핸드폰에서 이수정의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딩딩딩! 디리리리링! 딩딩! 디리리링……!

“어머, 오빠! 귀국하셨어요?”

이수정은 상당히 반색하는 음색이다.

“네에, 수정 씨! 전엔 고마웠어요. 덕분에 편하게 갔네요.”

“어머, 아니에요. 별일도 아닌 걸요.”

“그래도요. 근데 지금 근무 중이에요?”

“네, 비행기 타러 가는 중이에요.”

“그럼, 뭐 하나만 간단히 물어볼게요.”

“네에.”

“그날, 러시아에서 오면서 뭐 먹어보라고 했잖아요.”

“네, 그랬지요.”

“그래서 먹어봤어요?”

“네에. 그날 오면서 너무 배가 고파서 샌드위치를 조금 먹어봤어요. 근데 신기하게도 안 체했어요. 꼭 그랬었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턴 조금씩 먹어보는데 이젠 괜찮은 거 같아요.”

“아! 다행이네요.”

“네, 신기하게도 그 증상이 싹 사라졌어요.”

“잘되었어요. 이제 굶지 않아도 되네요.”

“아! 오빠. 미안한데요. 저 전화 끊어야 해요. 갔다 와서 제가 전화 드릴게요.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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