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그러고 보니 최 경사의 신체는 대단한 변화를 겪었다. 우선 혈당의 변화가 너무도 뚜렷하다.
현수의 의학 상식에 의하면 최장혁 경사는 중증 당뇨병 환자였다. 그런데 완전한 정상인이 되었다.
이전의 수축기와 이완기 혈압은 183/124였다.
그런데 118/74로 줄어들었다.
더 이상 고혈압 환자가 아닌 것이다.
기록지엔 다른 것을 검사한 결과도 있었다.
최종 검사 결과가 계속해서 유지된다면 최장혁 경사는 이제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동맥경화 등 성인병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지게 된 것이다.
고혈압과 당뇨, 그리고 콜레스테롤은 약물 등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수치를 조절할 수는 있다.
하나 정상인이 되도록 하는 기술은 아직 없다.
그렇기에 최 경사가 진료받던 병원에선 난리가 벌어졌다. 당뇨 및 고혈압이 완치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여 논문을 쓸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하지만 최 경사는 바쁜 경찰 업무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자칫 현수에게 누가 될까 싶기 때문이다.
“흐음, 회복 포션이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뜻이군. 그렇다면 양이 문제야. 얼마나 복용시켜야 하는지를 알아봐야 하는데 난감하군.”
잠시 어찌할까를 생각하던 중 번뜩이는 상념이 있었다.
“포션의 성분 분석을 해보면 대량 생산도 가능하지 않을까?”
현수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띠링, 띠링 띠리리리링! 띠링! 띠띠링! 띠리리리링!
대한약품 민윤서 사장의 핸드폰 컬러링은 미국의 남매 가수 카펜터즈의 ‘Top of the world’였다.
하긴 요즘 신명나는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날마다 근심만 하다 기쁜 일이 많으니 이런 노래로 마음을 표현한 모양이다.
현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민윤서 사장이 기뻐하는 것 역시 자신의 영향 덕이기 때문이다.
“아! 김현수 사장님.”
“네, 요즘 바쁘시죠?”
“네, 엄청 바쁩니다. 라인 돌아가는 거 확인해야 하고, 원료 사서 대야 하고, 포장한 거 확인해야 하고 그럽니다.”
“바쁘면 좋은 거죠.”
“네, 모두 김 사장님 덕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제가 인편에 뭘 보낼 겁니다. 이걸 김지우 연구소장님께 주셔서 성분 분석 좀 해주세요. 근데 조금 급한 겁니다. 특별히 처리할 일이 없다면 지급으로 처리해 주시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보내만 주시면 최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하지요. 그 밖의 다른 사항은 없으십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예를 들어 오늘 저녁에 만나서 술이나 한잔하자는 등의 용무는 없으시냐는 겁니다.”
“아! 그건…….”
현수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일이기에 말끝을 흐렸다.
“말 나온 김에 저녁 식사나 같이 하시죠.”
“그, 그럼 그럴까요?”
특별히 바쁜 일도 없는데 대놓고 거절할 수 없었기에 얼떨결에 한 승낙이다.
“하하! 네에. 이따 제가 이실리프 무역상사 근처로 가겠습니다. 그러니 저녁 때 어디 가시면 안 됩니다.”
“하하, 네에. 알겠습니다.”
상대의 의중을 알기에 현수는 기분 좋게 허락했다.
전화를 내려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월간 5천만 달러씩 수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약품에서 1,000만 달러, 듀 닥터 1,000만 달러, 스피드와 엘딕은 많아야 750만 달러 정도일 것이다.
나머지 2,250만 달러를 채워 넣어야 한다.
대기업들은 러시아에서 이미 지사를 내놓은 상태이다. 따라서 재벌사 제품을 제하고 나면 마땅한 것이 없다.
반제품이나 원료는 안 되고, 오로지 완제품만 수입하겠다고 했으니 얼른 찾아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기에 인터넷을 두루 살폈지만 마땅한 것이 눈에 뜨이지 않아 조금은 답답했다.
똑, 똑, 똑!
“사장님, 미스터 드미트리께서 오셨습니다.”
“아! 그래요? 안으로 모셔주세요.”
“네에.”
이은정 실장이 나가자 드미트리가 들어선다.
“하하! 반갑습니다.”
“네, 어서 오십시오.”
자리에 앉자 은정이 차를 내왔다. 한 모금씩 들이키자 드미트리가 웃는 낯으로 묻는다.
“저는 지르코프하곤 아주 친하게 지냈던 사이입니다. 그 친구는 어떻던가요?”
“미스터 지르코프와 친구 사이였습니까?”
“네, 같은 시기에 조직에 발을 들여놓은 동료지요.”
“아! 그랬군요. 미스터 지르코프는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드미트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그럴 겁니다. 그 친구 자기 관리가 아주 철저하거든요. 그 친구가 잘해드렸지요?”
“하하, 물론입니다.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다 미스터 드미트리 덕분이군요.”
“그게 그렇게 되나요? 아무튼 지르코프가 안부를 여쭤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불편함은 없으셨는지 알고 싶답니다.”
“아! 그랬습니까? 그런 것 없다고 전해주십시오.”
현수는 의례적인 말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드미트리의 말은 사실이다.
현수가 영국으로 떠난 다음 날 지르코프는 드미트리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현수가 잘 도착했는지 물었다.
영국에서의 일정이 딱 하루라는 말을 했던 때문이다.
아무튼 드미트리가 아직은 귀국하지 않았다고 하자 도착하는 대로 안부를 물어달라고 했다.
드미트리는 노보로시스크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레드 마피아의 보스가 대체 왜 이러나 싶었다.
휘하에 적어도 2,000명이 넘는 조직원을 데리고 있으니 이렇게까지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날 오전 지르코프는 모스크바의 보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현수의 하룻밤 상대로 준비시켰던 이리냐의 상황을 묻는 내용이다. 물론 잘 있기에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보스는 이리냐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불편함이 없도록 잘 보살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현수가 자신의 귀빈이며, 이리냐는 그의 여인이기 때문이라는 토를 달았다.
이리냐의 입장에서 보면 졸지에 현수의 현지처가 된 것이다.
아무튼 현수에게 명령권은 없다. 하지만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여 드미트리에게 전화까지 한 것이다. 자칫 보스에게 안 좋은 이야기라도 하면 오지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르코프가 꼭 한번 다시 모시고 싶다고 했습니다.”
“네에, 저도 다시 뵙고 싶다고 전해주십시오.”
현수는 의례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드미트리는 아닌 모양이다. 현수의 말을 받아 적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웬일로 나를 보자고 한 겁니까?”
“보스로부터 사장님께 새로운 제안 하나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모스크바를 지배하시는 그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뭐지요?”
“보스께서는 이번에 통관될 컨테이너 숫자를 조금 더 늘릴 수 있는지를 여쭈라 하셨습니다.”
“흐음, 그건…….”
현수는 뜻밖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이때 드미트리가 은근한 표정을 짓고는 조금 다가앉는다.
“김 사장님! 늘어날 컨테이너의 숫자는 대략 50여 개입니다. 안에 담길 것은 KA―52 Alligator Hokum B 공격헬기 스무 대를 무장시킬 각종 미사일과 포탄이구요.”
“그럼 레이저로 유도하는 Kh―25ML 전술 공대지 미사일과 FAB―500 범용폭탄 같은 것들을 또……?”
“네, 차후엔 공급하기 어렵다고 하자 콩고민주공화국 반군 측에서 긴급하게 반입 물량을 늘려달라는 청을 했답니다.”
“으으음……!”
3장 레드 마피아의 거듭된 부탁
현수는 부러 침음을 냈다.
저쪽에서 물량을 늘려서 보낸다면 어쩔 수 없이 통관시켜 줘야 한다.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면 치졸하든 어떻든 보복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낼 요량으로 꾀를 낸 것이다. 이를 완곡한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드미트리가 얼른 말을 잇는다.
“전과 마찬가지로 김현수 사장님께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라는 보스의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으으음!”
“또한 이실리프 무역상사와 드모비치 상사와의 거래를 일 년간 연장해 드린다고 합니다.”
드모비치 상사는 현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이다.
한국의 종합무역상사인 LG상사의 2011년 매출은 약 14조 원이다. 이 회사는 석유화학 제품, 금속석탄 제품, 에너지 제품, 컴퓨터 주변 기기, 소형 디지털 기기 등을 취급한다.
드모비치 역시 이에 버금한다.
연 매출 120억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기업이다.
다만 취급 품목이 약간 다를 뿐이다. 각종 생활용품 및 의약품도 있지만 공산제품과 무기도 있다.
어쨌거나 현수에게서 의약품 등을 수입하는 것은 어차피 있어야 할 일 가운데 하나이다.
게다가 한국산 의약품은 품질이 좋다.
듀 닥터 역시 좋은 제품이다. 엘딕과 스피드도 고품질이다. 지나산처럼 개판인 물건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드모비치 상사로선 오히려 거래하자고 달려들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이실리프 무역상사와의 거래 연장은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거래선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으니 드모비치 상사로도 이득인 것이다.
“미스터 드미트리!”
“네, 김현수 사장님.”
드미트리의 태도는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전에도 예를 갖추기는 했으나 지금처럼 공손한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을 깔보는 듯한 거만함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보스의 귀빈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 까먹고 말을 안 했는데 이번에도 노보로시스크로 가셔서 확인하시게 될 겁니다.”
“으음, 그건…….”
현수는 언제든 다시 러시아로 가게 되면 이리냐를 취하기로 약속했다. 그렇기에 잠시 말을 잃었다.
어찌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내로서 약속을 했다. 그런데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노보로시스크는 절대 가서는 안 될 곳이다.
“그건 좋은데 노보로시스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내는 방법은 없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혹시 지르코프 그 녀석이 김 사장님께 무례를 범해서 거긴 가고 싶지 않은 겁니까?”
당장에라도 지르코프를 어찌하려는지 드미트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 그건 아닙니다. 미스터 지르코프는 제게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냥, 그럴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럽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도 항구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하나 보스의 지시에 따라 이미 노보로시스크로 모두 보내지는 중입니다. 만일 김 사장님 뜻대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선적하려면 많은 시일과 돈이 들어서…….”
드미트리는 말끝을 잇지 못했다. 생각만 해도 복잡한 일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수 역시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불편한 일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렇기에 잠시 말을 끊었다.
몸이 단 드미트리가 다시 입을 연다.
“반드시 그렇게 해달라고 하시면 그렇게 해드릴 겁니다. 아마도……! 그런데 그 이유가 뭔지 말씀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저도 보스에게…….”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합시다. 나 하나 때문에 너무 번거로운 일이 벌어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드미트리의 얼굴은 언제 붉었느냐는 듯 환한 웃음으로 채워졌다. 보스로부터 칭찬받을 일을 생각한 때문이다.
사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이번 청을 현수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을 했다.
위험부담이 커지면 자칫 천지건설과 천지약품에 큰 해가 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수가 받아들이면 좋고, 못하겠다고 하면 굳이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콩고민주공화국 반군들에게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회신을 보내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느 틈인지 드미트리는 노트북을 꺼내서 무언가를 입력하고 있다. 보스에게 임무를 완수했음을 보고하는 것일 것이다.
현수는 잠시 그 모양을 두고만 보았다. 이윽고 입력을 마치고 고개를 든다.
“미스터 드미트리!”
“네, 김 사장님.”
“나도 보스에게 청이 있다고 전해주시겠소?”
“아! 그렇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케이먼 제도의 은행에 돈이 좀 있습니다. 보스께 말씀드려 세탁을 해주십시오.”
“그렇습니까? 그건 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군요. 그런데 액수는 얼마나 됩니까?”
“1억 2,700만 달러 정도 됩니다.”
“휘유, 엄청난 거금이군요. 시간이 조금 걸리겠습니다.”
생각보다 큰돈인지 드미트리가 움찔한다. 하나 잠시였다. 메신저에 뭔가 입력하더니 이내 자신만만한 표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