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세탁한 돈은 어디로 보내 드릴까요?”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계좌로 넣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언제든 송금만 해주시면 곧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약간의 비용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겠죠. 기꺼이 지불하겠습니다.”
드미트리는 메신저로 무언가를 입력했다. 방금 현수가 말한 내용일 것이다. 입력 후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물었다.
“그런데 국제 금융전산망을 이용하면 자금을 세탁하더라도 추적이 되겠지요?”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하나 우리 조직의 계좌로 들어온 돈은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왜 그런지는 아시지요?”
“그렇겠군요. 안심이 됩니다.”
현수는 지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러시아 정부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레드 마피아이다.
세정파가 어떤 계좌로 돈이 움직였는지를 알아낸다 하더라도 입조차 열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일개 조폭 조직과 레드 마피아는 아예 비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1억 2,700만 달러는 레드마파아의 계좌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또 몇몇 계좌를 거치는 동안 이합집산을 반복할 것이다. 그리곤 최종적으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개설한 계좌로 들어갈 것이다.
금융실명제가 아직 실시되지 않기에 누구의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던 상관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으로 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출처를 밝힐 이유도 없다. 물론 세금도 없다.
콩고민주공화국 입장에서는 외화가 들어와 투자되는 것이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 돈은 이실리프 농장 및 축산단지 등을 조성하는 자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돈 가운데 상당 부분은 콩고민주공화국 국민들을 위해 쓰여질 것이다.
“흐음, 보스로부터 전갈이 있습니다. 김 사장님은 귀빈이시니 특별히 수수료 없이 세탁해서 드리라고 하는군요.”
“아! 그래요? 고맙다고 전해주십시오.”
“네, 잠깐만요.”
돈세탁의 경우 적게는 6∼7%, 많게는 30∼40%가 비용으로 차감된다. 이것 역시 레드 마피아의 일 가운데 하나이다.
엄청난 거금을 세탁하는 것인지라 수수료만 해도 엄청나다. 그런데 보스는 그걸 받지 않겠다고 한다.
현수를 어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드미트리의 표정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보스께서 귀빈인 김 사장님의 일인데 어찌 수수료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아울러 조만간 술이나 한잔 같이 하자고 하십니다.”
“그래요? 새삼 고맙다고 전해주시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 전해주십시오.”
“네, 사장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레드 마피아는 한국에도 있다. 부산을 거점으로 조금씩 영역 확장 중이다.
그런 레드 마피아의 한국지부장이 드미트리이다. 그런데 지금 현수의 하수인이라도 된 양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
“여기, 케이먼 제도 율리우스 바에르 은행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입니다. 여기서 돈을 인출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신속히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쪽지를 받아 든 드미트리는 황급히 나갔다. 이건 인터넷으로 어찌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가 나간 후 현수는 은정을 불렀다. 그리곤 회복 포션 한 병을 건넸다.
“이 실장님, 이거 되게 중요한 겁니다. 대한약품으로 가서 민윤서 사장님에게 전해주고 오세요. 반드시 본인에게 넘겨야 합니다. 아셨죠?”
“네, 대한약품 민윤서 사장님 본인에게 건네 드리겠습니다.”
이은정 실장이 외출한 후 민주영을 불러들였다. 그리곤 추가로 수출할 품목 선정에 관한 논의를 했다.
하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민주영은 성과가 없음이 미안한지 다시 한 번 각종 아이디어 상품이 전시되어 있는 COEX의 전시장으로 나갔다.
수진과 지혜는 각각 제약사와 창고로 나가 있어 사무실이 텅 비었다.
현수는 사무실을 거닐면서 마땅한 수출 품목을 생각해 보았다.
일반적인 공산품보다는 한국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울러 많은 수요가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요의가 느껴져 화장실로 갔다.
새 건물이라 깨끗하다. 게다가 남자용 화장실은 현수 혼자 사용하기에 더러울 수가 없다.
용변을 마치고 손을 씻으러 세면기로 다가갔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비누가 보인다. 옆에는 정갈하게 개어진 수건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자외선 살균장치 속에 칫솔이 보인다. 곁에는 치약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한 현수는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보고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한발을 내디디려다 뒤로 돌아섰다.
현수의 시선은 칫솔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순간 스치는 상념이 있었다.
‘맞아!’
현수는 얼른 사무실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그 결과 러시아 사람들도 치과 질환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은 치과의사를 만나기 힘들어 그 지독한 고통을 생으로 견뎌내고 있다.
자료를 더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알아냈다.
모든 사람의 입안에는 스트렙토코커스 뮤탄스(Streptococus Mutans)라는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이놈은 치아 사이에 낀 음식물을 흡수해 포도당을 발효시킨다. 이때 만들어진 젖산 같은 여러 종류의 유기산이 치아를 손상시켜 충치가 생긴다.
특히 이 박테리아가 치아 표면에 들러붙어 프라그를 만들면 충치뿐 아니라 잇몸 질환까지 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까 이놈만 지속적으로 제거할 수 있으면 충치를 예방할 수 있는 거지?”
현수 역시 어린 시절 충치 때문에 여러 번 치과 신세를 졌다. 그때 ‘위이이잉!’ 하며 돌아가는 치과 드릴 소리를 상기하면 너무도 끔찍하여 몸서리가 쳐진다.
만일 충치가 생기지 않게 하는 상품을 만들어낸다면 떼돈 버는 건 순식간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치과의사들은 몹시 싫어할 것이다.
‘흐음, 그런데 어떻게 해서 충치를 예방하지?’
많은 의서들을 읽었지만 의약품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문득 포션이 생각났다.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능력이 있으니 충치 예방에 효과가 있을 듯하다. 하나 대량생산하기엔 역부족이다.
“마법은 어떨까? 입안에 들어온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만 박멸하면 되지 않을까? 근데 어떻게 만들지?”
일정 범위 내의 생명체를 말살하는 마법은 있다. 문제는 살아 있는 세포까지 죽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마법을 창안해 내야 한다. 그런데 스트렙토 어쩌구로 시작되는 그 박테리아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흐으음, 쉬운 일이 아니군.”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에 단편적인 생각만으론 신상품이 개발될 수가 없다. 그렇기에 현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칫솔을 떠올렸다.
‘칫솔에 마법진을 그려 넣으면 어떨까?
하지만 마땅한 마법이 없다.
현수는 볼펜으로 수첩을 탁탁 두드리며 상념에 잠겼다. 잘만 생각해 내면 뭔가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에어컨에 시선이 갔다. 출국 전에는 없던 것이다.
“저걸 언제 설치했지?”
에어컨은 현수가 앉은 의자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좌측에 달려 있다. 이렇게 되면 업무 보는 내내 왼쪽으로부터 찬바람이 불어온다.
“저걸 딴 데는 못 다나?”
새삼스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그 결과 에어컨이 왜 거기에 달려 있는지 이해가 된다.
첫째는 실외기와의 거리가 작은 곳이다. 둘째는 콘센트와 가까이 있다.
그러고 보니 실외기는 다른 곳에 놓을 수도 있다. 결국 콘센트의 위치가 에어컨이 달려 있는 장소를 결정한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될 텐데 찬바람이 늘 왼쪽에서만 온다는 말이지?”
한쪽만 먼저 시원하다면 분명히 몸에 좋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다른 장소는 안 되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에어컨이 설치될 곳은 그곳뿐이다.
다른 곳에 달려면 전선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결코 보기에 좋지 않을 것이다.
이때 책상 위의 컴퓨터가 보인다. 모니터와 본체, 본체와 프린터, 그리고 각각의 전원 연결선이 보인다.
결코 깔끔하지 않은 모습이다.
인테리어 업자가 나름대로 신경을 쓴다고 써서 길게 늘어진 선을 정리해 놓기는 했다. 그래도 스마트해 보이지는 않는다.
“흐음, 전선이나 연결선이 없으면 훨씬 보기 좋을 텐데.”
혼자서 중얼거린 순간 문득 스치는 상념이 있었다.
‘만일, 전선을 없앨 수 있다면…….’
문득 스치는 상념이 있어 현수는 ‘전기의 무선 전송’을 검색해 보았다.
생각대로 이미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전압이 극히 낮은 것뿐이다. 예를 들어 인공심박기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 등이다. 이밖에도 공명현상을 이용하여 2m 정도 떨어진 곳의 전구의 불이 들어오게 하는 장치도 있다.
현수는 더 먼 거리에서도 전기를 무선으로 보낼 방법은 없나 고심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기술 시간에 라디오의 기본 원리에 대해 배운다.
멀리까지 전달되지 못하는 음파를 음성신호로 바꾸어 주파수가 높은 전파와 함께 보내면 라디오에서 이 전파를 받아서 다시 음성신호를 분리해서 소리로 바꾼다.
사람의 목소리조차 무선으로 전송 가능한데 어찌 전기라 하여 불가능하겠는가!
콘센트에서 전기를 전파로 바꾸어 전송하고, 가전제품이 이를 받아들여 전기로 변환할 수만 있다면 일대 혁명이 빚어질 수 있다.
모든 가전제품에 달려 있는 전선과 플러그가 필요없어지는 것이다. 플러그가 콘센트에 꼽히지 않는다는 것은 불필요한 대기전력을 제로로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에너지 때문에 문제가 많은 요즘 이런 것이 개발되기만 하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된다.
물론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이득이다. 전기의 원료가 되는 비싼 원유의 수입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콘센트와 각각의 가전제품이 같은 코드일 때만 전기가 전송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웃집에서 내 집 전기를 쓰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흐음, 이건 동조와 검파, 그리고 변조와 증폭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일이군.”
현수는 즉시 인터넷을 뒤져 관련 서적들을 주문했다. 본인이 직접 공부하여 만들어볼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당장 상품화 될 수 있는 게 아냐. 그렇다면 뭔가 다른 게 필요한데……. 맞아, 그거!”
현수의 뇌리에 문득 떠오른 생각은 콩고민주공화국은 몹시 덥고, 러시아의 겨울은 몹시 춥다는 것이다.
민주영에게 좋은 뜻으로 선사한 조끼엔 항온 기능이 부여되어 있다.
만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의복을 만들어낸다면 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고,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도 견뎌낼 수 있게 된다.
또 다시 인터넷을 뒤졌다. 생각대로 아이디어 상품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얼음조끼와 발열조끼가 바로 그것이다.
발열조끼의 경우는 탄소섬유를 이용한 면상발열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제법 무게가 나간다.
여기에 100∼200g짜리 배터리를 달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100g짜리는 네 시간, 200g짜리는 열 시간 동안 열을 발생시킨다고 되어 있다.
얼음조끼의 경우엔 특수냉매가 담긴 아이스팩을 사용한다. 그렇기에 이것 역시 적지 않은 무게가 나간다.
그리고 하루 종일 시원한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은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 것도 있다.
천천히 상품 검색을 마친 현수는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입안의 박테리아를 박멸할 마법은 어렵지만 항온 기능을 가진 조끼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일정 범위 내의 생명체를 말살시키는 마법이 있다.
오거니즘 익스터미네이션(Organism Extermination)이 그중 하나이다. 이것은 생명체 말살 마법이다.
현수가 콩고민주공화국에 머물렀을 때 아나콘다에게 먹힌 후투족 소년의 주검을 꺼내서 준 적이 있다.
그때 후투족 족장 므와섬이 원수인 아나콘다의 살을 대충 익혀서 주었을 때 이 마법을 구현시켰다.
혹시 있을지 모를 기생충을 없애기 위함이다.
7써클 마스터인 현재 이것을 스무 번 정도 구현시키면 마나가 모두 소진된다. 그만큼 많은 마나가 필요한 마법이다.
이런 것을 어찌 상품에 적용시킬 수 있겠는가!
마나 소모량으로만 따진다면 차라리 리커버리나 컴플리트 힐을 인챈트한 아티팩트를 만들어 파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밖에 일정 범위 내의 모든 생명체를 박멸시킨다는 익스터미네이션(Extermination)이란 마법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