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81화 (181/1,307)

# 181

이것은 궁극 마법 중 하나인 파워 워드 킬(Power Word Kill)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이 마법은 9써클이 되어야 쓸 수 있다.

현재로선 꿈도 못 꿀 마법이다.

하지만 현수가 콩고민주공화국에 갔을 때 사용한 컴퍼터블 템퍼러처는 3써클 마법으로 많은 마나가 소모되는 것이 아니다.

“흐음, 작은 금속에 마법진을 그려 넣으면 될까? 그런데 빨래를 하면 안 되잖아. 어떻게 하지?”

마법진을 그려놓고 작은 마나석을 박으면 마법은 구현될 것이다. 문제는 이걸 세탁하는 과정에서 마나석이 빠져나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이다. 지구엔 마나가 워낙 희박하기 때문이다.

“흐음, 어떻게 하면 될까?”

현수는 기약없는 서핑을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함이다. 그러던 중 호박이 만들어지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호박은 소나무나 전나무 등 침엽수의 수액이 몇 천, 몇 만 년 이상 열과 압력을 받아 생긴 보석의 일종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란 영화를 보면 호박 속에 갇힌 모기의 몸속에서 혈액 샘플을 얻어 공룡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나온다.

“혹시 단추로 만들면……?”

현수는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남겨둔 글루건1)을 꺼내왔다.

잠시 후, 시험 삼아 제작한 마법진을 녹인 글루건 심으로 감쌌다. 효과를 알기 위해 일단 1㎝ 두께였다.

마법진은 얇은 스테인리스 철판을 썼으며, 실패를 감안하여 최하급 마나석을 박은 것이다.

마법진에 그려진 마법은 당연히 컴퍼터블 템퍼러처이다.

“될까? 됐으면 좋겠는데…….”

현수는 냉온수기에서 따라 온 차가운 물속에 둥그렇게 굳은 것을 넣었다. 그리곤 아공간에서 온도계를 꺼냈다.

수족관 관련 제품을 파는 곳에 진열되어 있던 것이다.

처음 수온은 6。였다. 그런데 천천히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잠시 후 수온은 25。가 되었고,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마법진에 온도를 그것으로 정한 결과이다.

이번엔 뜨거운 물을 떠왔다. 처음 온도는 85。였다. 그런데 천천히 온도가 내려간다. 그리곤 25。에서 고정되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 현수는 흐뭇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즉시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이번엔 39。이다. 다시 시험해 보니 차가웠던 물과 뜨거웠던 물 모두 39。가 되었다.

이때의 실내 기온은 26.3。이다. 비가 내려 비교적 온도가 낮은 것이다.

“좋아, 이제 이 온도가 얼마나 유지되는지 보자.”

조심스럽게 물컵을 밀어놓은 현수는 스케치를 시작했다. 가장 효율이 좋은 마법진을 구상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똑, 똑, 똑!

“사장님! 대한약품 민윤서 사장님께서 오셨습니다.”

“응? 벌써 시간이……? 이런, 벌써 6시 반이나 되었네. 어서 안으로 모시세요.”

“네에!”

“김 사장님! 저 왔습니다.”

“네, 민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근데 뭘 그렇게 그리고 계십니까?”

민윤서는 호기심에 현수의 스케치를 보려 했다. 하나 어찌 보여줄 수 있겠는가!

“에구, 심심해서 그린 낙서입니다.”

“그래요? 아닌 것 같은데요?”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기하학적인 그림이었기에 대체 무슨 그림일까 싶다.

하나 캐물을 수는 없기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이런 때 가만히 있으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키지 않지만 밝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은 신상품 개발을 해볼까 싶어서 스케치해 본 겁니다.”

“아! 그래요?”

“근데 조금 일찍 오셨습니다.”

“네에, 오늘 우리가 갈 데가 조금 멀거든요.”

“그래요?”

“자아,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면 출발하실까요?”

“차 한 잔도 안 마시고요?”

“네에. 그러니 가시죠.”

현수는 물컵을 치우지 말라는 메모를 써놓고 일어났다.

민윤서 사장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탄 현수는 대체 어딜 가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가보면 안다면서 웃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에 주위 풍경이 달라졌다. 아파트와 빌딩은 사라지고 온통 푸르른 초목들만 보이는 곳으로 접어든 것이다.

스치듯 보이는 도로표지판엔 용문산 자연휴양림 3㎞라 쓰여 있었다.

“여기 양평입니까?”

“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민윤서 사장이 운전한 차가 당도한 곳은 아담한 전원주택이었다. 산 중턱을 깎아 조성한 곳에 위치한 이 집은 한마디로 그림 같은 집이다.

너른 잔디밭에 징검다리처럼 박힌 돌, 사방을 둘러싼 울창한 수목, 곳곳에 배치된 석조 조형물 등 아주 잘 꾸며져 있다.

“여기가 어딥니까?”

“우리 집입니다.”

“네에? 이런……. 빈손으로 왔는데.”

현수네 집 살림은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엔 빈손으로 가지 말라는 교육 정도는 받았다.

그렇기에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저흰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다.”

“그래도……!”

“자자, 안으로 드십시오.”

민 사장의 뒤를 따라 현관 안으로 들어가자 눈부신 미모의 여인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어서 오세요. 김 사장님! 저희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 네에. 근데 어쩌죠? 민 사장님에게 납치되어 오느라 그만 빈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어머, 아니에요. 김 사장님 덕에 저희 집에 덮여 있던 먹구름이 지워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어쨌든 반갑습니다. 김현수입니다.”

“네에, 전 윤영지라 합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네에.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민 사장의 뒤를 따라 가는 동안 현수는 실내를 살필 수 있었다. 손님이 온다하여 그러는지 모든 불이 밝혀져 있었다.

민윤서 사장의 집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깔끔함과 우아함이다. 집기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 것이 분명했다.

“이런……!”

식탁에 당도하니 그야말로 진수성찬으로 뒤덮여 있다.

“그간 제대로 된 식사 한번 대접하지 못해 안사람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김 사장님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구, 이렇게나 많이…….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현수는 거듭된 겸양을 보이기보다는 소탈한 본 모습이 낫겠다 싶었다. 그렇기에 사양치 않고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엔 민윤서 사장과 그의 부인이 앉았다. 식사 시중을 들어야 한다는 걸 억지로 앉힌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모님을 어디서 뵌 듯합니다. 흐음, 제가 아는 분은 분명 아닐 텐데…….”

“하하, 이 사람은 한때 연예인이었지요.”

“아! 그렇군요. 맞아요. 많이 뵈었습니다. 아이고,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

윤영지는 한때 초특급 탤런트였다.

20대 초반에 데뷔하여 서른 가까운 나이까지 활동했다.

장안의 인기를 끌던 드라마의 주연이었으며, TV만 틀면 각종 CF에 등장했었다. 그러다 결혼과 동시에 은퇴한 것이다.

“알아봐 주시니 고맙네요.”

“네에,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현수는 입에서 살살 녹는 갖가지 음식을 먹어보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는 동안 도우미 아주머니가 수시로 주방을 드나들며 부족한 음식을 채워 놓았다.

식사하는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하긴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민 사장의 경우엔 경영권 다툼이랄지, 계속되는 대한동물의약품의 적자, 그리고 사방에서 조여드는 자금 압박 등으로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던 중이다.

이 모든 것이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잘 나가고 있다. 따라서 현수가 은인이 되는 셈이다.

현수 역시 민 사장과의 돈독한 관계가 좋다.

인간성 좋고, 도덕적이며, 양심까지 있는 부자는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민 사장이 딱 그렇다. 여기에 호감까지 가는 얼굴이기도 하다.

약 한 시간 반에 걸친 식사가 끝날 무렵 윤영지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진다.

4장 누구나 고민은 있다

“여보……!”

“그래, 먼저 안으로 들어가 쉬어.”

“……?”

“김 사장님, 집 사람 몸이 좋지 않은가 봅니다.”

“아……! 그러세요?”

양해를 구한 윤영지가 방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저 사람이 요즘 조금 아픕니다. 그런데 오늘 무리를 한 모양이에요.”

“에구…….”

현수 입장에서 무어라 하겠는가! 자신을 접대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무리를 했다는데. 그렇기에 나직한 침음만 냈다.

“자, 자리를 옮길까요?”

“네, 그러시죠.”

응접실로 자리를 옮기자 후식으로 홍차를 내왔다.

홍차는 노화 억제, 충치 예방, 피로 회복, 중금속 해독, 골다공증 예방 및 다이어트 효능이 있는 차이다. 이는 홍차에 함유된 폴리페놀, 불소 성분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사모님은 무슨 병에 걸리신 겁니까?”

“휴우……! 작년에 진단을 받았는데 병원에선 중증근무력증(Myasthenia Gravis) 초기라고 하더군요.”

현수는 중증근무력증과 관련된 기억을 더듬었다.

이것은 뇌와 근육의 신경 교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신경근 장애로서 대체로 서서히 진행된다.

호흡기 감염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증상을 크게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사망률은 발병 첫해에 가장 높다.

“으으음……!”

“다른 병원 두 군데를 더 다녀봤는데 모두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그마나 그동안 어려웠던 문제들이 해결되면서 조금 좋아졌었는데 오늘 무리했나 봅니다.”

“미안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아닙니다. 집 사람이 김 사장님께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다고 자청한 겁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십시오.”

“네에, 그러셨군요.”

아픈 몸을 이끌고 자신을 위해 음식 준비를 했을 윤영지를 떠올린 현수는 망설였다. 어쩌면 리커버리 마법 한 방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 때문이다.

“뭘 그리 생각하십니까?”

“네? 아, 네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현수는 얼른 정색했다.

맞은편에 앉은 민윤서 사장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근데 집이 참 좋습니다.”

“아! 이 집이요? 선친께서 공들여 가꾼 집이지요.”

“그러셨군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집 구경 해보시겠습니까?”

“하하, 네에. 구경시켜 주시면 저야 좋지요.”

민윤서 사장의 뒤를 따라 여러 곳을 보았다.

그러는 동안 윤영지의 한창 때와 결혼 직후, 그리고 그 이후의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선남선녀의 결혼이었기에 보기에 좋았다.

“집 사람은 너무 좋아해서 제가 3년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래서 결혼에 성공했지요.”

이야길 들어보니 민윤서는 윤영지를 좋아했다. 그런데 만날 방법이 없었다. 하여 생전 하지도 않던 CF를 기획했다.

당연히 윤영지가 섭외되었다. 그녀 이외의 모델은 아예 생각조차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민유서의 입장에선 텔레비전에서만 보면 여인을 실물로 만나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광고를 빌미로 수시로 연락하거나 집적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민윤서는 그러지 않았다.

광고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단 한 번의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윤영지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그리곤 만나달라는 청을 했다. 그때부터 연애가 시작되었다.

윤영지는 스타답지 않게 소탈했고, 까탈스럽지도 않았다.

민윤서는 최선을 다한 구애를 했고, 그 결과 결혼을 승낙받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일 년만에 득남도 했다.

이때까지는 행복했다. 그런데 부친의 사후 경영권 도전을 받고,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서부터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때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윤영지는 시름시름 앓았다.

원인을 알기 위해 병원을 가게 되었고, 중증근무력증이 시작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말은 마친 민윤서의 표정에선 밝음이 사라졌다. 현재로선 중증근무력증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해 불치병이다.

점점 병세가 심해지다가 때가 되면 목숨을 잃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하루하루 악화되는데 마음 편할 사내가 누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민윤서의 표정은 심하게 어두워졌다.

돈으로도, 사랑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절망적인 난제에 부딪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민윤서 사장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제가, 침술을 좀 배웠는데 진맥 한번 해볼까요?”

“네에……?”

현수는 무역회사 사장이다. 그런데 한의사들이나 시침할 수 있는 침술 운운하기에 반문한 것이다.

한편, 현수는 저도 모르게 꺼낸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어 당황한 상태이다. 하지만 아니라곤 할 수 없었다.

민윤서 사장의 표정 때문이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이다.

그동안 해볼 것은 다 해본 상태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어 그냥 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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