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82화 (182/1,307)

# 182

그렇기에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수는 뛰어난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여겼다.

“우연한 기회에 침술을 조금 배웠습니다. 시중의 한의사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분으로부터 사사했지요. 그래서 어쩌면 발병 원인을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수가 파악하고 있는 의학 상식 가운데 중중근무력증은 가장 대표적인 면역학적 질환이라 할 수 있다.

신경근 접합부2) 중 근육 쪽 종판3)에 대한 자가항체4)가 나타나서 조직에 손상을 줌으로써 발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항체가 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원인을 모른다. 다만 흉선5)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뇌리를 스치는 의학적 상식에 뒤이어 언젠가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이 독화살에 사용하는 큐라레(Curare)라는 물질이 종판에서의 전달을 차단하여 근활동(筋活動)을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이건 식물에서 추출되는 물질로 알카로이드6)이다.

‘그러니까 중증근무력증은 체내의 이상 때문에 발생되는 거잖아. 혹시 회복 포션으로 해결이 되는 건 아닐까?’

현수가 잠깐 사이에 생각을 정리했을 때 민윤서가 물었다.

“그럼 진맥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제가 진맥을 해도 원인을 찾아내거나 치료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어떤 병원에서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냥 부담 없이 진맥 한번 해주십시오.”

“그러지요. 그런데 부인께서 허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에, 예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을 마친 민윤서는 현수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나타났다.

“제가 신경 쓰게 해드렸나 보네요.”

“아닙니다. 괜히 저 때문에 번거롭게 해드린 것 같아섭니다.”

윤영지를 다시 보게 된 현수가 한 말이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청해야 할 일입니다. 자아, 진맥해 주세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맥문에 손을 얹은 현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곤 나직이 중얼거렸다.

“마나 디텍션!”

현수의 손끝을 통해 윤영지의 체내로 흘러들어 간 마나는 전신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우선 마나가 건강한 사람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그리고 그것의 움직임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곳곳에서 마나의 흐름이 끊기는 곳이 있었던 것이다.

‘흐음, 어떻게 마나가 이렇게 적을 수 있지?’

고개를 갸웃거린 현수는 계속해서 마나의 흐름을 살폈다.

그러던 중 뇌 쪽에 뭉쳐 있는 마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 군데 몽땅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다.

‘혹시 이게 풀리면 나아질까?’

의구심이 들었으나 시도해 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이다.

‘좋아, 한번 해보자.’

현수는 더 많은 마나를 밀어 넣었다. 그리곤 뭉쳐진 것들이 풀려나가도록 계속해서 두드리고 어루만졌다.

한편 곁에서 지켜보던 민윤서는 땀을 뻘뻘 흘리는 현수를 보곤 한 발짝 물러섰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애를 썼지만 10분이 지나도록 뭉쳐진 마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현수는 할 수 없이 마나를 회수했다.

마나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윤영지는 불어넣은 마나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휴우∼!”

“괜히 저 때문에 힘만 드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자 윤영지가 한 말이다.

현수의 손가락이 맥문 위에 얹히자 왠지 모를 상쾌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상쾌함이 무거움으로 느껴졌다. 실제는 통증이었는데 그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눈을 떠 현수를 살피니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상당한 심력을 쓰는가 보다 하여 미동도 않고 진맥이 마쳐지길 기다렸던 것이다.

“장담할 순 없지만 어쩌면 증상이 완화되도록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물어본 이는 민윤서였다.

“제게 비방으로 전해지는 처방이 있습니다. 그걸로 약을 한번 만들어보지요.”

“김 사장님……!”

“그렇다 하여 완치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사람만 좋아진다면…….”

눈물까지 글썽이는 모습에 현수는 회복 포션 한 병을 희생시킬 작정을 했다.

어찌 되었든 이젠 동업자나 마찬가지가 된 셈이기 때문이다.

현수가 집 앞에서 내린 시각은 밤 11시경이다.

민윤서가 데려다 준 것이다. 민 사장의 차가 멀어지자 현수는 텔레포트 마법을 구현시켰다.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현수의 몸이 나타난 곳은 세정빌딩 주차 관리실 지붕 위였다. 락희에 왔을 때 좌표를 확인해 두었던 것이다.

내려와 살펴보니 언제 귀신이 나타났었냐는 듯 락희가 성업 중이다. 12층 세정상사도 불을 환하게 밝혀놓았다.

“후후, 며칠 잠잠하니까 괜찮은가 했나 보지? 슬슬 귀신 놀이를 시작해 볼까?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현수는 지하 1층 락희와 12층 세정상사를 드나들었다. 다른 층에 가지 않은 것은 그곳과는 유감이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비명 소리에 이어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아아아악! 귀, 귀신이닷!”

“으아아아악! 귀신이야. 사람 살려!”

건물 내의 모든 사람들이 튀어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을 넘지 않았다. 얼마 전, 귀신 소동이 있었기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이다.

새벽 1시, 귀가한 현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세정빌딩의 값이 점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세정빌딩은 매일 밤마다 귀신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물론 지층과 12층이 그 대상이다. 아마 다시는 건물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현수는 울림 네트워크를 방문했다.

“어서 오십시오.”

박동현 대표가 반색하며 맞이한다.

“며칠 러시아 출장을 다녀오느라 그간 전화 못 드렸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박동현 대표는 현수의 전화를 기다렸다.

주문 물량도 확정지어야 하고, 선금으로 준다던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선 스피드에 관한 이야기부터 하지요.”

“네, 말씀하십시오.”

“자금은 필요하신 만큼 선지원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월간 생산대수가 얼마나 될까요?”

“정말 필요한 만큼 선지급 해주실 수 있는 겁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현수가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이자 박동현 대표는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 상당히 큰 액수를 부를 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간 준비해 놓은 서류를 내놓았다.

“이건 저희 회사가 입안한 계획입니다. 검토해 주십시오.”

“네. 그러지요.”

현수는 즉시 표지를 넘겨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울림 네트워크에서는 월간 최대 생산 대수를 50대로 잡아놓았다. 물론 자금이 충분할 경우이다.

그에 필요한 자금은 약 40억 원이다. 그런데 아무런 담보도 없이 이만한 자금을 선지급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울림 네트워크의 주식 2,380만 주를 담보로 제공한다고 한다.

주가가 워낙 형편없이 떨어져서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의 가치가 168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체 발행주식의 35.71%에 이르는 양이다.

거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경우엔 주식에 대한 권리 행사가 제한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회사의 경영권이 현수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1대 주주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뒷장을 살펴보니 5억 원 단위로 줄어든 금액을 선지급할 때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었다.

현수는 뒤를 읽어보지도 않았다. 그리곤 파일을 덮었다.

박동현 대표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애써 준비한 자료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거절하려 한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시선을 맞췄다.

“그러니까 40억 원을 선지급 해주면 매월 50대씩 납품해 주실 수 있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지원해 드리지요. 향후 2년간 매월 50대씩 스피드를 납품해 주십시오.”

“네……?”

박 대표는 이제부터 밀고 당기기가 시작될 것이라 여겨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도 쉽게 결론이 났다.

하여 허무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는 싱긋 미소 지은 뒤 다음 파일을 펼쳤다. 전기 자전거 엘딕에 관한 서류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0억을 미리 주면 매월 1,000대를 납품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발행 주식의 8.92% 정도 되는 595만 주를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것까지 합치면 지분율 44.63%가 된다.

울림 네트워크가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음이 분명하다.

“이것도 원안대로 하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이번엔 제대로 읽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너무도 쉽게 결론이 나자 박 대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걸 준비하느라고 몇날 며칠을 고심했다.

상대의 마음에 거스르는 것이 없도록 배려를 하면서도 이쪽의 입장을 충분히 견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류를 주면 최소 며칠은 검토하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과연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다. 그런데 앉은 자리에서 쑥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결정해 주니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약정서 작성을 위해 변호사를 부르고 싶은데 제가 아는 분을 불러도 괜찮으십니까?”

“네……? 아, 네에. 그럼요.”

“알겠습니다.”

현수는 주효진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찌 되었든 그에게 신세졌다 생각한 때문이다.

주 변호사는 마침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불과 20분 만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며칠 만에 뵙는군요.”

“네에. 반갑습니다.”

“이쪽은 울림 네트워크의 박동현 대표십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주효진 변호삽니다.”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리곤 곧장 실무로 들어갔다. 내용을 모두 들은 주 변호사는 컴퓨터를 쓰자고 하더니 순식간에 약정서를 만들어왔다.

과연 전문가다운 솜씨이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내용인지라 둘 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도장을 찍었다.

“박 대표님, 향후 2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저희 회사의 명운을 걸고 제대로 된 물건들로 납품하겠습니다.”

약정서 체결 후 현수는 즉시 돈을 이체시켜 줬다. 영국 엠파이어 카지노에서 송금해 온 돈의 일부를 보낸 것이다.

주 변호사에 대한 수임료 역시 바로 송금했다.

모두가 만족할 거래였기에 셋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울림 네트워크를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현수가 물었다.

“변병도 사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현재 폭행 및 강간죄, 그리고 무고죄로 구속되어 있고, 보좌관들은 협박죄로 조사받는 중입니다.”

“변 부의장은 어떻습니까?”

“자리를 내놓고 물러가라는 압력을 받는 중이지요. 자식 하나 잘못 둬서 평생 쌓은 명성을 잃을 지경입니다.”

실제로 변 부의장은 구속 위기에 처해 있다.

김세윤 검사에 의해 그간 저지른 비행이 낱낱이 밝혀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자료수집이 끝나면 기소될 것이고, 김 검사가 펼쳐 놓은 촘촘한 그물을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군요. 아무튼 수고하셨는데 고맙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변호사로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또한 아주 명확한 증거 자료는 김 사장님이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저 장단만 쳤을 뿐입니다.”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럼요.”

둘은 조만간 식사 한번 같이 하자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다.

사무실로 돌아온 현수는 다시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전기선이 없는 가전제품의 실현을 구상하기 위함이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서적들을 주문했다. 전기공학, 전자공학, 계측제어학에 관한 전문서적들이다.

똑, 똑, 똑!

“사장님!”

“네에.”

“이건 결제해 주실 서류이고요. 밖에 손님이 와 계시는데 안으로 모실까요?”

“손님……? 누구죠?”

“변의화 국회부의장님이세요.”

“……!”

“어떻게 할까요?”

은정도 변병도의 부친이 변 부의장이라는 것을 알기에 현수의 눈치를 살폈다. 그놈 때문에 팔자에도 없던 유치장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단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에.”

은정이 나가자 변의화가 안으로 들어선다.

“험험, 바쁜데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오.”

“네에. 앉으시죠.”

“험험, 그러지.”

변의화는 신문과 방송에서 보던 모습보다도 더 욕심 사납게 생긴 놈이다. 개기름 줄줄 흐르는 얼굴에 금장 안경을 썼다.

“험험, 폐일언하고 김 사장님께 청이 있어 왔소.”

“말씀하십시오.”

현수는 연장자이기에 예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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