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84화 (184/1,307)

# 184

마나가 유리를 투과하여 녀석의 체내로 사라졌다. 녀석은 이제 세 시간에 한 번씩 지독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이 세상 어떤 의사도 치료해 주지 못할 것이며, 통증을 덜어주지 못할 것이다.

“파이나이트 토탈 블라인드(Finite Total Blind)!”

단번에 시력을 빼앗게 되면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다고 우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서히 시력을 잃게 만들었다.

이제 하루에 약 1%씩 시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0일째 되는 날부터는 암흑 속에서 살게 된다.

취조가 계속되었는데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잡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놈은 나이가 어려 형사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느물느물거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현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녀석에게 건 마법을 절대 캔슬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앞으로 학교 폭력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어휴! 그딴 놈은 그냥 콱 교도소에 넣어버려야 하는데.”

검찰청을 벗어나자 운전하던 지현이 한 말이다.

“요즘 애들이 참 문제네요.”

“네에, 점점 더 흉폭해지고 있어요. 법을 바꿔서라도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해요. 그쵸?”

“제 생각도 그러네요.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거예요?”

대구 시가지를 벗어났기에 물은 것이다.

“어머니 계신 곳이요. 산속에 있거든요.”

현수는 창밖 풍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초록이 점점 더 짙어져 가는 계절이다.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공기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느낌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현이 라디오를 틀었는지 노랫소리가 들린다.

Moody Blues의 ‘Melancholy man’이라는 노래이다. 이건 현수가 각별히 좋아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이다.

I’m a melancholy man, that’s what I am.

나는 우울한 사람입니다. 그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예요.

All the world surrounds me,

모든 세상이 나를 에워싸고,

and my feet are on the ground.

내 발은 땅에 딛고 있어요.

I’m a very lonely man, doing what I can.

나는 매우 외로운 사람입니다. 무엇을 하든 말이지요.

All the world astounds me and I think I understand.

세상 모든 것이 나를 놀라게 해요. 그래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That we’re going, to keep growing, wait and see.

우리는 자라나고, 기다리고, 보아야 한다는 것을.

When all the stars are falling down

into the sea and on the ground,

모든 별들이 바다 속으로 땅 위로 떨어질 때

And angry voices carry on the wind,

성난 목소리가 바람 속에 실려 오고,

A beam of light will fill your head

한줄기 광선이 당신의 머릿속을 채우면

And you’ll remember what’s been said

당신은 들어온 것들을 기억할 거예요

By all the good men this world’s ever known.

이제까지 이 세상에 알려진 모든 선한 사람들에 의해서.

멜로디는 좋지만 다소 우울한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학교 앞 카페에서 알바를 하던 시절에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3류 대학 수학과 4학년이었다.

졸업해 봤자 취업하기 엄청 힘들 거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낙심해 있던 시절이기도 하다.

현수가 나직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가사를 아는 몇 안 되는 곡이었던 것이다.

지현은 눈 감은 채 노래 부르는 현수를 바라보았다.

참 듣기 좋은 음성이다. 그리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문득 현수의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오른손을 내밀어 슬며시 현수의 왼손을 잡았다.

흠칫하는가 싶더니 멈춘다. 노래도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긴 노래가 끝날 때까지 둘은 손을 잡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였어요.”

“네에, 참 잘 부르시네요. 듣기 좋았어요.”

“고마워요.”

잠시 대화가 끊겼다. 그러나 차는 멈추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국도를 이리저리 돌아 산속으로 들어갔다.

수풀이 우거진 여름이라 그런지 온통 푸르기만 하다. 건물 하나가 보인다. 학교 같이 생겼다.

지나치며 보니 ‘한사랑 보육원’이라 쓰여 있다. 조금 더 지나치니 비슷하게 생긴 건물이 또 보인다.

‘한사랑 기도원’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엄마가 있는 한사랑 요양원은 더 안쪽에 있거든요.”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건가 보네요.”

“네. 대구 시내에 있는 어떤 단체에서 운영한다고 들었어요.”

“보육원은 일종의 고아원인 건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도원이 있는 걸 보면 종교 단체인가 보네요.”

“아마도 그럴 거예요.”

구불구불한 길을 운전하느라 그런지 지현의 대꾸는 짧았다.

현수는 더 묻지 않고 기도원 건물만 보고 있었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이다.

아르센 대륙에 머무는 동안에도 흑마법의 흔적은 본적이 없다. 하지만 이실리프 마법서엔 흑마법이 구현된 장소에서 느껴지는 음산함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방금 전 스치듯 지나친 한사랑 기도원에서 왠지 모를 음산한 기운을 느꼈다. 그렇기에 눈여겨 본 것이다.

“이제 다 왔네요. 저기 저 건물 보이시죠?”

산 중턱을 깎은 곳엔 흰색 건물 하나가 있다. 옥상에 길게 붙어 있는 간판을 보니 최종 목적지가 맞다.

주차장에 차를 댔다. 그리곤 곧장 요양원 건물로 다가갔다.

입구 안쪽에 있던 안내 데스크로 가서 면회 신청을 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에.”

지현과 현수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여긴 요양하는 다른 환자들을 위해 면회객도 통제한다고 한다. 객이 어쩌겠는가!

하릴없이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그렇게 약 5분이 지났다.

“권지현 손님! 올라가시면 됩니다.”

“네에. 고맙습니다.”

잠시 후, 현수는 지현의 모친을 만날 수 있었다. 4인 병실 가장 안쪽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았건만 젊은 시절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법하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지현을 보자 반색한다.

“와아, 언니 왔네?”

“네에. 왔어요. 근데 어디 불편한 덴 없어요?”

“응! 없어. 근데 빵 안 사왔어?”

“안 사오기는요. 자아, 여기요. 맛있는 단팥 크림빵이에요.”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라며 오다가 제과점에서 산 것이다.

“와아, 신난다!”

지현이 빵 봉지를 벗겨주자 기다렸다는 베어 문다. 영락없는 일곱 살짜리 소녀이다. 그렇게 몇 번을 우물거리며 먹더니 현수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근데 이 오빠는 누구야?”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 아하! 언니 남자친구구나? 맞지?”

“어휴, 네에.”

지현이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김현수라 합니다.”

“오빠, 잘 생겼다. 근데 이 언니하고 친해?”

“네? 아, 그럼요. 아주 친합니다.”

현수가 얼른 지현의 곁에 나란히 섰다. 오는 동안 말한 대로 일곱 살짜리처럼 보였기에 애들 대하듯 한 것이다.

“헤헤, 보기 좋다. 둘이 잘 어울려.”

“엄마, 이 빵 다 먹고 우리 산책 가요.”

“산책……? 아! 좋다. 헤헤, 그럼 얼른 먹어야지.”

나이든 사람이 아이처럼 구는 것이 너무도 이상했기에 현수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병실 내부를 둘러보니 나머지 세 자리 중 하나는 비었고, 두 자리엔 할머니들이 있었다.

일주일에 딱 두 번 면회가 허락되기에 외부인을 보는 것이 제한적이라 그런지 관심을 보인다.

이곳에 오기 전 현수는 지현의 모친을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기 힘든 곳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말을 했다.

도술 부리는 것을 남들이 보면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빵을 다 먹자 얼른 나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멀쩡히 잘 걸을 수 있음에도 지현은 휠체어를 끌고 왔다.

서두르다 계단에서 구른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4층에서 1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일주일에 딱 두 번 있는 면회날임에도 방문객이 거의 없었던 때문이다.

“지현 씨! 여긴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어요?”

“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양로원에서 오신 분들이에요. 그래서 면회가 거의 없다고 하네요.”

“그랬군요.”

자식이 분명 있을 텐데 이런 곳에서 쓸쓸히 병마와 싸우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본 현수는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데. 쯧쯧!”

나직이 혀를 차곤 얼른 지현의 뒤를 따랐다.

지현의 모친은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기분 좋은지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현수는 메모리 스캔 마법과 메모리 일리머네이션 마법의 마나 배열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그러는 동안 건물 뒤쪽 정원에 당도하였다. 나름대로 조경을 한다 하여 제법 울창하게 가꿔둔 곳이다.

현수는 소풍 온 것처럼 꾸미기 위해 피크닉 박스와 야외 돗자리를 가지고 왔다. 이것을 펼쳐 놓고 시원한 음료수와 과일을 꺼냈다. 그리곤 진짜 소풍 온 것처럼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주변을 살폈다. 병원 건물에서 누군가가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곧 시선을 거뒀다.

평범한 면회인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지현 씨! 이제 한번 해볼게요.”

“네, 근데 전 어디에 있죠?”

“저쪽에 계시다가 누가 오면 소리쳐 줄래요?”

현수가 가리킨 곳은 약 30m쯤 떨어진 곳이다.

“알았어요.”

지현은 두말없이 자리를 비웠다.

“어머니! 제 눈을 보십시오.”

“잘생긴 오빠. 눈은 왜?”

말을 이렇게 하면서도 지현의 모친은 현수와 시선을 맞췄다.

“마나 디텍션!”

마나의 분포를 살펴보니 예상대로 뇌에 문제가 있다. 마나가 잔뜩 웅크리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현수는 자신의 마나를 불어넣어 이것들을 건드렸다.

처음엔 아무런 반응도 없었으나 살살 건드리자 조금씩 부푼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20여 분이 지났다. 현수는 과한 심력 소모로 인해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나는 계속해서 불어넣었다. 이제 마지막 고비만 남았기 때문이다.

다시 5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휴우……! 메모리 스캔!”

나직이 한숨을 몰아쉰 현수는 지체하지 않고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체되면 지현의 모친은 악몽 같은 기억 때문에 또다시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마법이 구현되자 시선이 몽롱해진다. 그와 동시에 기억의 편린들이 현수의 뇌리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상당히 많은 마나가 빠져나갔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기억을 읽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 때 드디어 문제의 기억을 찾아낼 수 있었다.

현수는 찬찬히 사고 전후의 장면을 살폈다.

눈앞에서 친한 친구 둘이 끔찍한 모습인 채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으니 충격받을 만했다.

“메모리 일리머네이션!”

샤르르르르릉―!

마나가 스며들어 문제의 기억들을 삭제했다. 그러는 동안 지현의 모친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비명을 지른다.

“아아악! 영숙아. 미자야!”

‘이런! 왜 이러시지? 또 다른 곳에 기억이 남아 있나?’

“메모리 스캔!”

다시 마법이 구현되었다. 현수는 입안이 바싹 마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실리프 마법서에 기록되어 있기를 마나가 소진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되어 있다.

만일 목 뒷부분에서 찌르르한 느낌까지 받게 된다면 적어도 한 달간은 정양을 해야 할 정도로 체내의 마나가 소진된 것이라 하였다.

마나는 끊임없이 빠져나갔다. 현수는 마나 고갈 현상이 도래할 것을 직감했다. 하여 마나 포션 하나를 꺼내 들이켰다.

마른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마나가 체내 곳곳으로 파고듦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아주 상쾌한 기분이 든다.

‘우와! 이거 거의 마약이나 다름없구나.’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이기에 현수가 느끼는 쾌감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지경이다.

아르센 대륙에서 카이로시아에게도 마나 포션을 복용시킨 바 있다. 유카리안 영지에서 구해온 다음 날의 일이다.

하지만 그때의 카이로시아는 현수가 방금 전에 느낀 것과는 천양지차를 보였다. 한국으로 치면 몸에 좋은 음료수 한 잔 마신 기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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