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85화 (185/1,307)

# 185

마나 친화력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현수는 최상의 마나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너무도 뛰어난 마법사 멀린의 덕이다.

아무튼 현수는 강렬한 쾌감에 진저리를 쳐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의 임무를 아예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곧바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또 다른 곳에 저장된 기억을 찾아냈다. 아마도 무의식 쪽인 듯하다. 워낙 강렬했던 기억이라 백업이라도 해놓은 모양이다.

과연 예상대로 다른 곳에 똑같은 기억이 잠재되어 있었다. 어찌 그냥 두겠는가!

“메모리 일리머네이션!”

샤르르르릉―!

기억 삭제 마법이 다시 구현되었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양의 마나가 빠져나간다. 워낙 단단한 기억이었는지라 이를 지우는 데 엄청난 대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에 현수의 전신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휴우……! 슬립!”

기억이 삭제되었음을 감지한 현수는 얼른 수면 마법을 걸었다. 눈을 뜨면 틀림없이 뭔가를 물을 텐데 지금은 그 물음에 대답할 기력조차 없기 때문이다.

털썩―!

현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어질어질한 느낌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데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들었다.

하여 스르르 누워버렸다. 그리곤 곧장 눈을 감고 마나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마나 포션을 꺼내서 마실 기운조차 없었던 것이다.

멀리서 이런 광경을 보았지만 지현은 다가오지 않았다. 절대 그러지 말라는 말을 이미 들었던 때문이다.

하나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머니와 현수 모두 풀밭에 누워 있다.

와서 확인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현은 견뎌냈다. 그리곤 혹시라도 다가오는 사람이 없나 확인했다.

대략 20분쯤 지난 후 현수가 먼저 일어났다. 하긴 깊은 잠에 취한 지현의 모친이 먼저 일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현 씨!”

“네, 현수 씨!”

기다렸다는 다가와선 곤히 잠든 엄마의 얼굴을 본다. 그리곤 어떻게 되었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 아마 정상이 될 거예요. 하지만 예전의 그 기억이 전부 지워지지 않았다면 또 고통을 겪을 수도 있어요.”

“아! 고마워요. 정말…….”

지현은 현수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렇기에 모친이 정상이 된다는 말에 벌써부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휠체어를 밀어 병실로 되돌아온 것은 저녁나절이다. 이제 요양원 원칙에 따라 둘은 나가야 한다.

지현은 여전히 깊은 잠에 취해 있는 모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깨어날 때까지 있고 싶다.

정말 정상이 되었는지 확인하고픈 것이다. 하지만 일어나질 않으니 어쩌겠는가!

“우리 엄마 참 예쁘죠?”

“네?”

느닷없는 말에 현수가 반문했지만 지현은 대꾸를 바랐던 것이 아닌 듯 다음 말을 이어갔다.

“한때 메이퀸이셨어요. 옛날 사진을 보면 정말 날씬하고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요양원에서 주는 음식이 시원치 않든지, 환자 본인의 식욕이 약하든지 둘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많이 야위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가요.”

“네에. 엄마, 저 갈게요. 집에서 다시 만나요.”

대구 시내에 당도할 때까지도 지현은 별말 없이 창밖만 응시했다. 지난 몇 해 동안 겪었던 일을 회상한 것이다.

“다 왔네요.”

지현의 집 근처에 당도했을 때 현수가 한 말이다.

“우리 저녁 먹으러 가요. 이 동네 아구찜 잘하는 집 있어요.”

“그래요. 가요.”

지현의 심사를 이해했기에 현수는 두말하지 않고 핸들을 돌렸다.

지현이 인간 내비게이션이 되어 간 곳은 중구 행촌동에 자리 잡은 ‘마산아구찜’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집이다.

저녁시간이 훨씬 지난 9시 반경임에도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현수는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아구찜 大가 20,000원밖에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집 맛도 좋고, 값도 싼 데다 양도 푸짐해요.”

언제 우울한 기분이었느냐는 듯 환한 웃음을 짓는다.

“우야꼬! 언제 왔능교?”

“아……! 아주머니. 조금 전에 왔어요.”

자주 들르는 집인지 종업원 아주머니가 아는 척을 한다.

“뭘 드실라꼬?”

“아구찜 큰 거 주세요.”

“알았심더.”

종업원 아주머니가 가자 화사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고마워요.”

“네에. 애 쓴 것 맞아요. 엄청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효과가 있었는지는 두고 봐야지요.”

“아마 애쓴 보람이 있을 거예요. 어머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시면 그때 정식으로 초대할게요.”

“그럼 지현 씨 음식 솜씨를 볼 수 있는 겁니까?”

현수가 부러 너스레를 떨자 또 웃는다.

“네! 근데 좀 짜고, 시고, 맵고 할지도 몰라요. 어쩌면 떫은맛까지 느낄 수도 있구요. 제 솜씨가 형편없거든요. 그래도 좋다면 얼마든지 대접해 드릴게요.”

“하하! 네에, 기대하죠.”

시원시원하게 대꾸하자 배시시 웃음 짓는다.

“애쓰셨는데 시원한 맥주 한 잔 어때요?”

“……! 그럼 운전을 못하는데…….”

“저희 집에 빈 방 많아요.”

“네……?”

“오늘 저희 집에서 쉬셨다 가라구요. 아까 보니까 땀도 엄청 흘리셨잖아요.”

“아! 그랬죠. 근데 제게서 땀 냄새 나지는 않죠?”

“네에, 괜찮아요.”

보통의 경우 예의상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지금 지현이 한 말은 예의가 아니다.

오늘 현수는 땀을 많이 흘렸다.

그러나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바디 체인지를 하면서 체내의 모든 노폐물들이 빠져나간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아구찜은 일품이었다. 어차피 쉬어가기로 했기에 술도 마셨다.

그리곤 지현의 집으로 갔다. 예고 없던 방문이었지만 권철현 지검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6장 드디어 출발!

샤워를 마친 현수는 지현이 준비해 준 반바지와 셔츠를 걸쳤다. 그런데 권철현 지검장이 부른다.

탁자엔 양주 한 병과 간단한 안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둘은 병이 빌 때까지 마셨다. 그 자리에서 지현은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술이 취했던 때문이다.

현수는 불편했지만 권 지검장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이미 부친의 반로환동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현수에게 뭔가 재주가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거듭해서 고맙다는 말만 했다.

다음 날 아침, 현수는 대구를 떠나 서울로 향했다. 물론 단골처럼 계룡산 먼저 들렀다.

이전의 그 장소에서 마나 심법으로 마나를 모았고, 전능의 팔찌가 정상이 되자 지체없이 아르센 대륙으로 향했다.

뭔 일이 일어났거나 일어나려 한다는 느낌이 든 때문이다.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그늘 속에 있던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스러졌다. 그런데 이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던 30대 후반인 사내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깨달음이 없었기에 포기하고 하산하던 차이다.

“허억……! 저건, 우화등선(羽化登仙)……?”

도문의 최고봉을 우연히 목격했다 생각한 사내는 현수가 머물던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언젠가 신선이 된 도인이 다시 현세로 올 때 깨달음의 반푼이라도 얻기 위함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테세린의 외곽에 당도했다.

이곳은 아직도 봄인 4월이다. 그렇기에 얼른 적당한 의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계산이 맞다면 오늘은 4월 27일이다.

이곳을 기준으로 본다면 어제 레이찰 토들레아 등 엘프 남매들이 베세른 산맥으로 떠났다.

그리고 노예 자매 로즈와 릴리는 지금쯤 마법 익히기에 한창이어야 한다.

여관으로 가서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였다. 기분 좋아진 현수는 내일 떠날 차비를 차렸다.

차비라고 해봤자 별거 없다. 전형적인 C급 용병 차림을 한 것과 용병지부에서 봤던 B급 용병의 조언에 따라 여러 물품들을 하나의 배낭 비슷한 것에 담은 것이 전부이다.

배낭 속엔 의복 한 벌과 바싹 말린 빵 몇 개, 그리고 수통 하나가 들어 있을 뿐이다.

아공간에 담아도 되지만 남들의 이목을 고려하여 일부러 이렇게 한 것이다.

이날 저녁, 얀센과 로잘린이 와서 그간 장사한 것에 대한 중간 결산을 했다. 꽤 많이 팔려 상당한 골드와 실버가 있었지만 챙기지 않았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경우 하인스 상단의 밑천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여느 날처럼 카이로시아가 왔다.

이른 새벽, 현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여관을 떠났다. 용병지부 앞에 당도하니 일행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현수는 편한 자리를 잡고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곤 액체처럼 풍부한 마나를 즐기고 있었다.

“자아. 출발!”

A급 용병 랄프의 신호에 따라 행렬이 출발했다.

선두엔 현수를 비롯한 척후팀이 있다. 현수는 척후팀의 중간 정도 되는 위치이다.

이들의 뒤에 열두 대의 마차가 따른다. 마차의 전후와 좌우에 각기 한 팀씩 배치되어 있다.

테세린의 영지를 벗어나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산지이기는 하나 워낙 철저히 몬스터 토벌을 했기에 별 다른 위험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 영지의 경계를 넘고 얼마 지나지 않자 풍경 자체가 확연히 달라진다.

너무도 빽빽하고 울창한 숲이다.

가히 원시림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이다. 당연히 지금까지와 같이 평탄한 길은 없다.

그나마 상행하는 사람들이 다녔던 아주 좁은 오솔길만 간신히 있는 것이다.

아직 봄인지라 잎사귀들 틈으로 멀리까지 보이지만 여름엔 무성한 잎사귀 때문에 시야가 매우 좁아지는 곳이다.

아무튼 구불구불하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오솔길은 대략 10㎞ 정도 되었다.

맨몸으로 달리면 두 시간쯤 달릴 거리이다. 하나 행렬이 이곳을 통과하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열네 시간이다.

좌우에서 수시로 튀어나오는 고블린 때문이다. 워낙 울창한 수림이기에 추격할 수 없는 곳이었다.

어쨌든 봄이 되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이동한 고블린들이 이곳 숲을 점령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행이 죽이거나 상처 입힌 고블린의 수효만 대략 800여 마리에 달한다. 다행히 목숨을 잃은 자는 없다. 하지만 부상자는 다수 발생되었다.

고블린의 마비침에 당해 움직임이 불편한 상태에서 날카로운 발톱에 의한 공격을 당한 것이다. 또 무리하게 추격하려다 나뭇가지 등에 긁힌 상처도 많았다.

행렬의 선두에 있던 현수는 많은 공격에 노출되었다. 하나 어렵지 않게 공격을 막아냈다.

오토 배리어(Auto Barrier)가 인챈트된 방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 덕분에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고블린의 마비침들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던 것이다.

현수는 어젯밤 늦게까지 작업을 했다.

카이로시아가 걱정하는 소리 때문이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몬스터로부터 해를 입을까 저어된다는 것이다.

국토 전역이 산간지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미판테 왕국엔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이 산재해 있다.

산이 작더라도 조금만 울창하면 고블린, 오크가 있다.

이보다 조금 더 큰 산엔 트롤이나 오우거의 서식지가 반드시 있다고 보면 된다. 그보다 조금 더 깊은 산이라면 라이칸슬로프, 샤벨타이거 등이 돌아다닌다.

숲의 중심부까지 들어가면 와이번, 하피, 그리폰, 드레이크까지 있다. 어떤 곳엔 리자드맨도 있다.

들어보니 코리아 제국에는 몬스터들이 멸종당했다. 심지어는 맹수들조차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하긴 드래고니안과 드래곤도 멸종당한 곳이니 이보다 못한 몬스터와 맹수들은 일찌감치 제거되었을 것이다.

하여 현수가 몬스터들의 습성에 대해 아는 바가 적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결국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다.

결국 현수는 한 자루 아밍 소드와 방패를 꺼내 마법을 인챈트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아밍 소드엔 샤프니스(Sharpness)와 스트랭스(Strength)가 인챈트되었다. 방패에는 오토 배리어와 리플렉션(Reflexion)을 인챈트하였다.

겉보기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철검이지만 어떤 보검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날카롭고 단단해졌다.

방패 역시 평범 그 자체로 보이지만 인챈트된 오토 배리어가 있어 어떠한 물리적 공격이라도 막아낼 것이다.

하긴, 명색이 7써클 마스터가 만든 것이 아니던가!

아무튼 방패에 부여된 리플렉션 마법은 4써클 이하 마법 공격을 되돌려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내친 김에 로니안 자작으로부터 받은 검에도 마법을 인챈트하였다. 샤프니스와 스트랭스는 기본이다.

여기에 마나를 주입하면 3써클 마법인 체인 라이트닝이 시전되는 마법을 추가했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이 이걸 사용할 경우 과다한 마나 소모가 우려된다. 이는 원기 손상과 심신 허약을 유발할 수 있다. 하여 하루에 세 번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였다.

장차 장인이 될 로니안 자작의 안위를 위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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