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86화 (186/1,307)

# 186

하나 아직 전해주진 않을 것이다. 마법을 인챈트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법이 걸린 검을 건네면 틀림없이 어떻게 된 것이냐 물을 것이다. 그때 지나가던 마법사에게 부탁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면 분명 믿지 않을 것이다.

3써클 체인 라이트닝을 인챈트하려면 최소 5써클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도면 고위 마법사이기에 길바닥을 돌아다닐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설사 진짜로 길에서 만난다 하더라도 웬만해선 인챈트해 주지 않는다. 그걸로 자신이 공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준다 하더라도 막대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체인 라이트닝 정도면 현재로선 상위 공격 마법에 속한다.

따라서 최소 300골드는 요구할 것이다. 한국 돈으로 3억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그렇기에 인챈트한 검을 아공간에 보관해 두었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그때 전해줄 요량이다.

현수는 내친 김에 대거(Dagger) 두 자루를 더 꺼냈다.

칼날의 길이가 불과 20㎝ 정도 되는 단검이다. 이 정도면 여인이라 할지라도 쉽게 소지할 수 있다.

이것은 드래곤이 수집했던 것인지라 손잡이의 문양이 무척 예술적이었다.

여기에도 로니안 자작에게 줄 아밍 소드와 똑같은 마법들이 인챈트 되었다. 그리곤 에메랄드 목걸이 두 개를 꺼내 오토 배리어와 리플렉션 마법진을 새겼다.

이것들은 카이로시아와 로잘린에게 주어졌다.

장래의 아내들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하기 위한 배려라는 말에 카이로시아는 또 한 번 현수의 품을 파고들었다.

로잘린에게는 이레나 상단의 물건을 현수가 구입하여 주는 것으로 말을 맞췄다.

어쨌거나 고블린의 끝이 없을 듯한 공격이 끝난 것은 확 트인 초지에 접어든 후이다.

“휴우, 이제 끝이군! 지겨운 고블린 새끼들!”

“그러게나 말일세. 죽여도 죽여도 줄지 않아 내가 죽을 뻔했네. 길이 조금 더 길었다면 우리가 당했을지도 몰라.”

“맞아! 이처럼 많은 고블린은 내 생전 처음이야. 그나저나 아까 자네 덕에 목숨 건졌네. 고마우이!”

“고맙긴, 우린 동료가 아닌가? 신경 쓰지 말게.”

같이 싸운 동료들끼리 모여 잡담을 할 때 랄프가 나무 등걸에 올라 소리친다.

“지금껏 모두들 수고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해야 하니 피곤하더라도 주변을 살핀다. 이상이 있으면 즉시 소리쳐라. 또한 식수가 있는지도 확인하라.”

“네, 팀장님!”

랄프의 말이 떨어지자 모든 용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초지인지라 시야가 확보되어 흩어진 것이다.

현수는 자신이 맡은 구역을 샅샅이 훑었다. 숲에는 숫자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블린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몬스터들은 없었다. 세력에 밀려난 모양이다.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기감을 넓혀 재차 확인한 결과이다.

오늘 어찌나 호되게 당했는지 모두 물러나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안전할 것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한다. 모두 경계 위치로!”

“네에.”

나후엘 자작가 마차 열두 대는 빙 둘러 원을 그렸다. 자작가는 중심부에, 용병들은 그 밖에서 머물기로 했다.

“휴우……! 이제야 좀 쉬는군. 이봐, 피곤하지 않아?”

“네……? 아, 네에. 왜 안 피곤하겠어요? 몹시 피곤합니다.”

“오늘 힘든 하루였어. 그렇지?”

“네, 고블린이 아주 지겨웠지요.”

“아까 보니까 제법 하던데? C급 치고는 제법이야.”

“감사합니다.”

현수는 초짜 용병 흉내를 그럴 듯하게 내고 있었다.

방금 현수에게 말을 건 용병은 같은 C급으로 나이는 서른 살이라는데 40이 넘어 보인다. 용병치고는 마른 몸매였다.

낡은 레더 아머를 걸치고 있는데 목덜미 뒤쪽에 상처를 입은 듯 피로 물들어 있다.

“목 뒤에 상처가 있는데 놈들에게 당한 겁니까?”

“재수가 없었지. 맨 마지막 공격 때 조금 지쳤었나 봐. 한 놈을 죽이고 있는데 갑자기 뒷덜미가 따끔하더군.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봐주겠는가?”

“그러지요.”

상처는 보기보다 깊었다. 1㎝ 정도 깊이에 폭은 0.5㎝, 길이가 7㎝ 정도 되었다.

“흠! 상처가 깊고 길군요.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은데 치료해 드려요?”

“자네가……? 혹시 전직이 치료사였나?”

“아니에요. 그냥 약을 조금 가지고 있을 뿐이에요.”

“부탁하네. 치료해 주게. 난 죽으면 안 되거든.”

“그러죠. 근데 조금 아플 수 있습니다.”

“참겠네.”

“나무토막 하나를 입에 무는 편이 나을 겁니다.”

용병은 더 묻지 않았다. 마법사나 신관이 아닌 이상 상처를 치료할 때 몹시 아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수는 아무도 모르게 마법배낭에서 과산화수소를 꺼냈다. 이를 상처에 붓자 흰 거품이 생긴다.

치이이익 !

“으으으으윽……!”

“조금만 더 참으세요.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거니까요.”

“그래, 으으윽……!”

탈지면으로 과산화수소를 닦아내고 상처 치료에 좋다는 후시딘 연고를 꺼냈다. 그리곤 상처 안쪽에 길게 짜 넣었다.

다음엔 상처 좌우를 꽉 눌러 서로 맞닿게 하였다. 밖으로 삐져나오는 것들은 탈지면으로 닦아냈다.

물론 아프다고 나지막한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했다.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스테리 스트립(Steri Strip)이라는, 찢어진 상처를 위한 봉합 테이프이다.

강한 장력을 지닌 테이프이기에 꿰매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특히 감염이 적고, 흉터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됐습니다. 하나 심하게 움직이면 다시 상처가 벌어지니 가급적이면 과격한 동작은 하지 마세요.”

“고맙네. 난, 꼭 살아서 돌아가야 하거든.”

“고맙긴요. 근데 아까부터 같은 말을 하네요. 누구나 다 살아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누구나 그래. 근데 난 아픈 마누라와 아직 어린 애들만 남겨놓고 와서 꼭 돌아가야 해.”

남의 애달픈 가정사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현수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이봐! 조금 전에 보니 테일러의 상처를 치료하던데, 자네 치료사인가?”

“C급 용병인거 몰라요?”

이번에 말을 건 사람은 테일러라 불리던 용병보다 두 살쯤 더 먹은 텁석부리장한이다.

전래 동화에 나오는 산적이 연상되는 얼굴이다.

“어쨌든 테일러의 상처를 돌봐주지 않았나? 나도 치료를 부탁하면 안 되나?”

“아! 어디 다쳤습니까?”

“여기…….”

사내가 뒤로 돌아서니 엉덩이가 선혈로 흥건하다.

“어찌 되신 겁니까?”

“고블린을 쫓다가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네. 한데 부러진 나뭇조각이 있어서…….”

“일단 엎드려 보세요.”

“고맙네.”

사내는 바지를 내렸다. 당연히 팬티 같은 건 없다.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시커멓고 지독한 냄새가 난다.

하나 내색치 않고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 지혈은 되었다. 하여 탈지면으로 피를 닦아내니 나뭇조각의 끝이 보인다. 살에 박힌 채 부러진 것이다.

핀셋을 꺼냈다. 알콜로 끝 부분을 소독하고는 그것으로 뽑아냈다. 선혈이 또 나오기 시작한다.

분말 지혈제를 쓰면 금방 지혈이야 되겠지만 아무는 데 지장을 초래한다.

지혈제가 떡이 되어 상처에 들러붙기 때문이다. 이러면 새살이 돋아도 붙질 않는다. 하여 과산화수소를 뿌렸다.

치이이이익 !

“으으으으윽!”

잠시 기다렸다가 상처의 양쪽을 꽉 눌렀다. 그리곤 솜에 알콜을 묻혀 상처 주변을 닦아냈다.

시커멓던 엉덩이가 하얘진다. 내친 김에 나머지 부분도 슬슬 닦아냈다. 움찔하더니 시원함을 느끼는지 가만히 있다.

손을 떼고 후시딘을 상처에 짜 넣었다.

다시 꽉 눌러 삐져 나오는 것들을 닦아냈다. 다음엔 스테이 스트립을 넉넉히 자른 뒤 상처를 봉합시켰다.

“다 되었습니다. 나뭇조각이 박혀 있어 빼냈는데 상처가 제법 깊어요.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됩니다. 상처가 덧날 수 있거든요. 잘 때도 엎어져서 잘 것을 권합니다.”

“정말 고맙네.”

텁석부리장한이 고개까지 숙여가며 감사를 표한다. 하여 환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해 줬다.

그런데 누군가가 또 다가온다.

“이보게. 내 상처도 치료해 주면 안 되겠는가?”

이번에 온 사내는 변강쇠처럼 생겼다.

상처를 보여주려 일부러 상의를 벗은 상태이다.

그런데 덩치가 커서 그런지 고블린의 침에 많이 맞았던 듯 여기저기 붉은 자국들이 남아 있다.

“일단 앉으세요.”

현수는 각각의 상처를 짜냈다. 다음엔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을 바른 뒤 조금 있다가 후시딘을 살짝 발랐다. 그리곤 대일밴드로 마감을 했다. 무려 서른두 개의 대일밴드를 썼다.

“참 많이도 당했습니다.”

“대신 많이 죽이기도 했지. 고맙네.”

그러고 보니 싸울 때 바로 곁에 있던 사내이다. 덩치에 맞게 육중한 도끼를 쓰던 사람이다.

현수네 팀에서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은 조장인 로렌스뿐이다. 용병들은 역시 B급은 다르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현수가 단 하나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밤이 되자 모닥불을 피웠다.

아르센 대륙엔 텐트라는 개념이 없다. 하여 저마다 동물 가죽을 간이용 요와 이불로 사용했다.

현수 것도 있다. 다른 팀에서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난다. 현대인인 현수가 어찌 그 심한 악취를 견디겠는가!

페브리즈가 있어도 냄새 제거를 할 수 없다. 이목 때문이다.

숲으로 들어가 겨울용 방한복을 속에 입었다. 기모가 있어 촉감도 좋고, 보온성도 좋다고 광고하던 제품이다.

그래도 춥다. 4월 말이지만 숲이 울창해서 그런지 몹시 춥다. 할 수 없이 준비해 온 가죽 사이에 침낭을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추운 것보다는 나았다.

짹짹! 짹짹짹……!

“기상! 기상! 모두 일어나라. 오늘 아침식사 당번은 척후팀이 맡는다. 나머진 주변 경계 및 정찰을 맡도록!”

랄프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들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난다.

현수는 부산한 틈을 타 얼른 침낭을 접어 아공간에 넣었다. 숨 쉴 때마다 허연 김이 나는 몹시 추운 아침이다.

“아하암……! 잘 잤나?”

어제 상처를 치료해 줬던 테일러라는 용병이다.

“네, 근데 아침식사는 뭘로 준비하지요?”

“그냥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 걸 넣고 대강 끓여서 먹는 거지. 그나저나 자네 솜씨가 좋은 모양이야. 덕분에 지난밤엔 아프지 않고 잘 잤네.”

테일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상처 입은 날 밤 상처 부위가 욱신거려 제대로 잠자지 못했다. 그런데 아주 잘 잔 모양이다. 현수가 준 소염진통제와 항생제 덕분일 것이다.

“어이, 젊은 친구! 고맙네. 덕분에 잘 잤어.”

엉덩이에 나무 조각이 박혀 있던 장한도 한마디 거든다.

팀장인 로렌스 역시 부스스한 얼굴이다.

“자, 오늘 아침식사 당번은 우리 팀이다. 당연히 오늘 메뉴는 빵과 잡탕 스튜다. 너, 너는 솥을, 너와 너는 장작불, 너와 너 물, 너는 재료, 너도 재료……. 넌 요리.”

로렌스가 일일이 손가락질 하며 임무를 부여했다. 용병들은 찍소리 하지 않고 흩어졌다.

현수가 다른 둘과 산 아래까지 내려가 계곡의 물을 길어왔을 때엔 커다란 솥단지가 내걸려 있었다.

밑에는 장작불이 피워질 준비가 한창이다.

재료를 맡았던 이들은 솥단지 안에 각종 재료들을 대충대충 썰어 넣고 있었다. 배추, 무, 당근, 콩 비슷한 것들이다.

그런데 세척 작업을 하지 않은 채 그냥 넣는다.

배추는 누렇게 말라붙은 부위까지 그냥 잘라서 넣는다.

안을 들여다보니 말린 고기 찢은 것도 조금 들어 있다.

“이걸 세척도 안 하고 그냥 넣습니까?”

“그럴 시간과 물이 있어? 그냥 대충 끓여서 위의 것만 떠먹으면 되잖아.”

테일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을 했고 나머지 용병들 역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 팀이지만 식재료는 꽤 괜찮은 걸 준비했더군. 이 정도면 싱싱하지?”

식재료에 물을 붓는 동안 야채가게에서 최소한 일주일은 묶었을 법한 누런 배추를 들고 웃는다.

식재료가 좋아 기분이 좋다는 표정이다.

“아! 소금도 넣어야지. 이봐, 그거 조금만 넣어.”

“네……?”

“자네 옆에 있는 자루를 열어봐. 암염이 들어 있을 테니 한 주먹 털어넣게.”

“아……! 네에.”

현수는 시키는 대로 자루를 열었다. 누런 빛깔 암염이 있다. 그런데 이물질이 제법 많이 섞여 있다.

암염을 채취하면서 딸려온 흙가루 등이다.

“어휴, 어떻게 이런 걸……!”

가공을 거치기 전에는 사람이 먹을 것은 못되어 보인다.

현수는 결국 아공간에서 한국의 천일염을 꺼냈다. 신안군 비금도가 산지인 최고급 소금이다.

“저어, 이거 간은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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