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87화 (187/1,307)

# 187

“자네가……?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자아.”

테일러는 음식을 휘젓고 있던 작대기를 얼른 건네준다. 숲의 나뭇가지 하나를 자른 뒤 대강 손을 본 것이다.

현수 역시 테일러가 그랬던 것처럼 식재료들을 휘저으며 국물을 찍어 맛을 봤다. 이도저도 아니다.

결국 아공간에서 쇠고기 다시다가 튀어나왔다. 적당량을 넣으니 냄새부터가 달라진다.

어제는 밤이 늦었기에 곰팡내 나는 빵으로 배를 채웠다

냄새가 역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먹는 것이니 훈련받는 셈치고 먹었다.

이빨로 갉아먹던지, 침으로 녹여 먹어야 할 정도로 딱딱했다. 그리고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듯하다.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던 것이다.

현수는 그런 부위들을 도려내 가며 먹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런 것을 먹고도 멀쩡할까 싶었다.

이곳 사람들의 위장은 곰팡이와 세균까지 완벽하게 소화시키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문득 카이로시아와 로잘린이 떠올랐다.

그녀들 역시 이곳 사람이니 그녀들의 위장도 그러할 것이란 생각을 하곤 키득키득 웃었다.

왠지 웃겼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천하절색인데 위장은 스테인리스 철판도 녹일 초강력 위장이라는 걸 상상한 때문이다.

어쨌거나 아침식사는 현수의 용병생활 첫 번째 식사이다.

처음부터 아무런 특색도 없는 맨송맨송한 국물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하여 쇠고기 다시다가 동원된 것이다.

전원일기의 회장댁 김혜자가 국물을 맛보곤 십 수 년 동안이나 ‘그래, 이 맛이야!’라고 광고했던 바로 그 제품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스튜가 적당해질 때를 기다리던 용병들이 하나둘 다가온다.

“후와아……! 이거 무슨 냄새야?”

“그러게? 대체 뭘 넣었기에 이렇게 기막힌 냄새가 나?”

“우와아! 도대체 오늘 아침은 뭐가 되려고 이런 기막힌 냄새가 나는 거야? 기대되는데?”

“헐……! 세상에 맙소사. 국물에서 어떻게 이런 냄새가 나?”

“이봐! 국물에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다가온 용병들마다 한마디씩 한다. 그리곤 먼저 먹겠다는 듯 줄을 선다.

김이 조금씩 피어오르던 국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에는 현수를 제외한 49명의 용병이 긴 줄을 서 있었다.

“잠시만 더 기다리세요. 이제 끓기 시작했으니 조금 있으면 먹을 수 있을 겁니다.”

먹고 싶어 침을 질질 흘리는 용병들을 훑어본 현수는 다시다 넣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자아, 지금부터 배식하겠습니다.”

용병들은 찍소리 않고 현수가 주는 만큼을 받아갔다. 더 달라는 소리를 하는 용병들은 하나도 없다.

모두 푸짐하게 담아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수가 식재료를 휘저으면서 마트에서 가져온 배추와 무, 당근, 콩 등을 더 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싱싱한 쇠고기도 다량 투입되었다.

모두에게 배식하고 남은 것을 맛 본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광고대로 국물 맛이 끝내줬던 것이다.

“너, 하인스라 했나?”

“네.”

식사를 마친 랄프가 한 말이다.

“넌, 식사 당번 고정이다. 다른 것은 할 필요 없다. 오늘과 똑같은 맛만 내주면 된다. 오늘 아침, 정말 최고였다.”

아침식사 후, 현수는 모든 용병들이 아는 인물이 되었다.

설거지를 마친 후 행렬은 즉시 출발했다.

아직 먹은 게 꺼지지 않아서 그러는지 모두들 아침식사 칭찬을 한다.

현수는 계면쩍었지만 두말 않고 척후팀의 일원으로 행동했다. 둘째날은 오크 여섯 마리를 처리하는 게 전부였다.

산불로 많은 나무들이 불타 시야가 넓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수풀 속에는 고블린이나 오크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 이쪽의 인원이 만만치 않기에 감히 도발하지 못한 것이다.

“저녁 식사도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데 되겠는가?”

“해보지요. 그런데 식재료를 제가 볼 수 있을까요?”

“그야 요리사 마음 아니겠는가? 마차로 가보게. 맨 뒤의 세 개가 식재료를 실은 마차라네.”

“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랄프가 알려준 마차로 갔다. 그리곤 식재료들을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형편없다. 채소들은 모두 시들시들하다.

겨울임에도 채소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다.

그런데 거의 쓰레기장으로 보내질 만큼 시들거나 부패가 시작되어 있었다.

항구도시 테세린에는 수확한 것을 보존 마법을 걸어 보관했다가 비싸게 파는 마법사가 있다.

문제는 이곳은 물류가 원활치 못한 곳이라는 것이다. 하여 마법사에게 온 채소는 이미 시들시들해진 상태이다.

이것을 보존하고 있다가 사러 오면 가장 오래된 것부터 꺼내서 판다. 그렇기에 있기는 하지만 형편없는 것이다.

용병 생활을 같이 하는 첫 번째 동료들이다. 그렇기에 갖고 있는 식재료를 아낌없이 쓸 생각을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 모닥불이 피워질 즈음 현수는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식사 당번이 된 팀의 용병들은 현수의 지시에 따라 감자와 양파, 그리고 당근 껍질을 벗겼다.

한쪽에는 누런 가루에 물을 부은 뒤 휘젓고 있었다.

현수는 돌을 주워 임시 화덕을 만들었다. 그리곤 깊이가 그리 깊지 못한 솥에 식용유를 듬뿍 붓고는 화력을 높였다.

현수는 자신이 직접 작업한 잘게 썬 쇠고기를 넣고 볶다가 송이버섯, 그리고 파슬리 썬 것을 넣었다.

다음 순서는 껍질 벗긴 감자, 당근, 양파이다.

이 과정에서 맛소금을 넣었고, 후춧가루도 약간 뿌렸다.

적당히 익었다 생각될 때 모든 식재료가 잠길 정로도 카레 섞은 물을 부었다. 그리곤 작대기로 휘저었다.

감자가 익으려면 적어도 10분은 있어야 한다.

한쪽에선 무쇠 솥 안에서 쌀이 익어 밥이 되는 중이다.

마차엔 없던 재료이다. 누가 물으면 마차 안에 있었다고 우길 셈치고 꺼내놓은 쌀이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것을 지켜보던 현수는 불타는 장작 상당량을 빼냈다. 뜸 들이려는 것이다.

7장 방귀쟁이 드래곤 제니스

“하인스! 이건 대체 무슨 요리인가? 냄새가 죽여주네.”

“그러게. 이런 빛깔의 음식은 생전 처음 봐. 향도 처음이고, 이거 이름이 뭔가?”

“하인스! 자네 혹시 전직 주방장이었나? 후와, 냄새 진짜 좋다. 어휴, 침 넘어가.”

“하인스. 내 고향에 가면 예쁜 여동생이 있네. 그애랑 결혼하게. 대신 이 요리 가끔 해줘야 하네.”

결국 카레라이스 한 그릇에 동생까지 팔아먹을 용병이 나타났다. 현수는 대답 대신 웃음만 지으며 계속해서 나뭇가지를 저었다. 안 그러면 눌러붙기 때문이다.

“자아, 줄을 서시오!”

드라마 허준에서 임현식이 했던 대사를 흉내 냈다. 그런데 줄은 이미 형성되어 있다.

현수는 카레와 밥을 퍼주면서 나무로 만든 숟가락도 주었다. 물론 마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매운 것을 잘 못 먹을 것이기에 카레의 양을 조절했지만 연신 맵다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숟가락을 내동댕이치지는 않았다.

그렇게 50인분이 거의 소진되었다. 남은 것을 먹으려던 현수에게 처음 보는 노인이 그릇을 들이민다.

“나도 맛 좀 보세.”

“……?”

“나후엘 자작가의 시종이라네.”

고용주의 식솔이라는데 어찌 안 줄 수 있겠는가!

“아, 그러십니까? 자, 여기…….”

“고맙네. 잘 먹겠네.”

현수는 노인이 먹을 것이지만 넉넉하게 담아줬다.

노인은 두말없이 그릇을 들고 원형을 이루고 있는 마차들 사이로 사라졌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현수는 엄청난 칭찬을 들었다.

그들로서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카레라이스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들에게 제공된 밥은 찰지기로 이름난 이천 쌀로 만든 것이다. 곰팡이 핀 딱딱한 빵보다는 영양가 등에서 훨씬 우월한 것이다.

덕분에 불침번 열외 혜택을 받았다.

나쁠 것 없다. 잠은 잠대로 잘 수 있고, 곁에 있는 용병들의 잡담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화로부터 현수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소중한 간접경험이 쌓인 것이다.

잠들기 직전 현수는 다음날 아침의 메뉴를 구상했다.

“이보게, 하인스! 궁금한 게 있네. 대체 이 끝장나게 맛있는 음식은 이름이 뭔가?”

“하인스, 혹시 국물이라도 남은 거 없는가?”

“헤이, 하인스 요리장! 너무 맛이 좋았어. 이러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음식은 못 먹을 거 같아.”

“그러게. 하인스의 음식 솜씨가 너무 좋아. 나중에 거지 같은 음식 먹을 생각을 하면… 어휴……! 한숨이 절로 나오네.”

마트에서 파는 양념불고기는 완전 히트였다. 어제 왔던 나후엘 자작가의 시종은 세 번이나 더 가지러 왔다.

올 때마다 많은 양을 줬는데 그래도 또 온 것을 보면 혼자 먹는 것이 아니다.

결국 불고기 때문에 행렬의 출발 시각이 꽤 늦어졌다.

마차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용병들은 준비를 갖춘 채 마차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셋째날도 오후까지는 별다른 일 없었다. 점심 나절 트롤 한 마리가 출현했었는데 랄프와 B급 용병 넷이 처리했다.

“목이 마르네. 테일러 씨 물 좀 있어요?”

“물……? 여기 있네.”

테일러가 건넨 것은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편에 나온 그 물주머니이다.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마개를 뽑고 물을 마시려던 현수는 이마를 찌푸렸다. 지독한 냄새 때문이다. 뭔가가 썩는 듯한 냄새를 맡은 현수는 물마시기를 포기했다.

그렇다 하여 음료수를 꺼내서 마실 수는 없다. 이목 때문이다. 갈증을 참고 한참을 가니 물 맑은 개울이 보인다.

“테일러 씨! 물주머니 비었죠? 줘요. 내가 채워다 줄 테니.”

“나야 고맙지.”

현수는 담겨 있던 물을 모두 빼냈다. 그리곤 투명한 위생 비닐 봉투를 쑤셔 넣었다. 마개가 있는 곳까지 넣은 후 바람을 불어넣어 펼쳐지도록 했다.

그리곤 1써클 마법 멜트(Melt)를 시전했다.

물을 담고 마개를 닫아 테일러에게 주었다. 잠시 쉬었던 행렬이 출발하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테일러가 다가온다.

“이봐, 하인스! 내 물통에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냄새가 나지 않는 거지?”

“내가 손을 좀 봤어요. 이제 냄새 안 나죠?”

“그래. 너무 좋네. 고맙네.”

“뭘요. 별거 아닌데요.”

현수는 결국 마흔여덟 개의 물주머니 전부에 위생봉투를 쑤셔 넣는 작업을 해야 했다. 물론 다들 좋아 죽는단다!

하긴 앞으론 냄새나지 않는 순수한 자연의 물을 마시게 되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저녁 식사는 라면을 끓였다. 물론 순한 맛을 골랐다.

부글부글 끓으면서 냄새를 풍기자 모두가 몰려들었다.

처음 보는 구불구불한 음식이기에 이게 무엇이며, 어디에서 났느냐는 말이 빗발쳤다.

현수는 가죽으로 만든 배낭을 보여줬다.

“이거 우리 집 가보인 마법배낭이에요. 구불구불한 건 국수라고 하는 건데요, 북해에 접한 니라스 왕국의 특산물이에요. 아버지가 거기 가셨다가 구해온 거구요.”

“국수?”

“네, 오늘은 특별히 랄프 대장님이 술을 허용했으니 제가 술을 대접하죠.”

“술도 있나?”

“네, 한번 먹을 건 있어요.”

마냥 달라고 할 수 있기에 현수는 부러 엄살을 부렸다.

용병 50명, 나후엘 자작가 인원 열여섯 명을 계산하여 라면은 150봉지를 끓였다. 일인당 2.3개 분량이다.

현수는 라면을 떠주면서 소주도 나눠주었다.

진로에서 나온 참이슬 담금주이다.

이것은 한 병이 무려 5,000㎖가 된다. 소주 한 병이 360㎖이니 하나가 약 열네 병짜리이다.

인원수를 계산하여 다섯 개를 꺼냈다.

이것은 사람들의 이목이 미치지 않을 때 나무로 만든 통에 담아두었던 것이다.

현수의 예상대로 나후엘 자작가의 인원들도 모두 배식 받아갔다. 냄새가 워낙 좋지 않았던가!

용병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하긴 한국에서도 거의 모든 국민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다. 돈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하물며 마법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것이 중세 유럽 수준인 이곳에선 어떻겠는가!

고기는 있어도 누린내가 나고, 채소가 있기는 하나 한 철뿐이다. 냉장고가 없어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평생 생선 한 번 못 먹는다.

용병들은 왕궁에서도 먹어볼 수 없을 최고의 음식이라 칭찬했다. 하긴 술과 함께 먹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현수 알기를 개똥으로 알던 줄리앙까지 한마디 했다.

“애송이! 요즘 애송이가 해주는 음식에 입이 즐거워. 특히 오늘 저녁은 최고였어. 죽을 뻔하면 한 번은 구해줄게.”

“좋았어? 다행이군. 근데 난 안 죽어. 너나 조심해.”

“또 반말……! 하지만 좋아. 오늘은 음식 맛이 좋아서 봐준다. 애송이, 내일 또 기대해도 되지?”

줄리앙이 눈빛을 반짝인다. 기대에 찬 모습이다.

“글쎄……? 그건 두고 봐야겠지?”

현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라면 국물로 쓰린 속을 달래주었다. 최고의 안주이면서 최고의 해장국이니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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