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아무튼 로드가 된 그는 만일 제니스가 종족의 맹세를 깨면 즉각 파문당할 것이라 선언했다.
드래곤에게 있어 종족에서의 파문은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수치이다. 그렇기에 말썽쟁이 제니스이지만 찍소리 못하고 500년짜리 수면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1년도 안 남은 이때 귀가 간지럽다면서 깼다.
아무튼 현수는 재미로 개사를 했다.
용병들은 웃겨 죽는다면서도 이 노래를 배웠다. 그리곤 가는 곳마다 이 재미있는 노래를 전파시킨다.
그 결과 현수는 이것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 물론 훗날의 일이다.
“랄프 대장! 왼쪽에서 갑니다.”
현수는 좌측으로부터 다가오는 거대한 덩치의 움직임을 살피는 한편 기감을 넓혔다. 또 한 마리 샌드 웜이 움직인다.
“줄리앙, 네 오른쪽에서 한 마리가 다가가.”
이것은 목소리로 하는 말이 아니다. 손짓이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런 손짓이다.
소리에 너무나 민감한 적을 만난 때문이다.
사막의 몬스터 샌드 웜은 몸통 둘레가 5m, 길이가 25m를 넘는 거대한 놈이다. 이놈들은 모래 속에 은신해 있다가 느껴지는 진동으로 먹이를 찾아 잡아먹는다.
일행은 오늘 아침, 느닷없는 유사(流砂)를 만났다.
유사란 글자 그대로 흐르는 모래이다.
이것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몰라 수십 번이나 사막을 횡단한 사람도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덕분에 두 명의 용병이 실종되었다. 정확히는 죽었다. 다만 시신조차 찾을 수 없기에 실종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다.
그것도 식사를 하다 죽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전하던 곳이 갑자기 위험지대로 변모한 것이다.
마차 역시 두 대나 사라졌다. 식재료를 실었던 것인데 거의 빈 상태였다는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그 즉시 이동했다.
그런데 맨 앞에서 달리던 용병 하나가 괴물에게 잡아먹혔다. 유사만 신경 쓰다 샌드 웜의 먹이가 된 것이다.
현수는 더 이상의 희생을 두고 볼 수 없기에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기감을 넓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곤 적절한 경고를 시작했다.
처음엔 현수의 손짓을 무시했다. 경험이라곤 하나도 없는 C급 용병의 의견을 누가 듣겠는가!
하나 경고를 무시하고 움직이던 용병 하나가 샌드 웜의 먹이가 되었다. 두 번째 희생이다.
또 다시 경고를 했지만 이는 또 무시되었다. 그 즉시 그 용병도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현수의 경고를 무시하는 용병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경고를 받은 랄프와 줄리앙은 즉각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모래를 헤치고 솟아오르는 거대한 덩치를 보게 될 것이다. 놈은 시체 썩는 것과 유사한 악취를 뿜으며 한 입에 삼킬 것이다.
현재 모든 용병들은 움직임을 멈췄다. 마차 안에 타고 있는 인물들 역시 모두 내린 상태이다.
말들은 모두 풀어주었다. 겁에 질린 말의 움직임 때문에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은 총 서른두 마리가 있었다. 그중 열여덟 마리는 샌드 웜의 먹이가 되었다. 나머지 열네 마리는 도망갔다.
샌드 웜들은 달리는 말을 잡아먹을 수 없다. 하여 도주하는 말을 쫓다가 모두 되돌아와 주변을 맴돌고 있다.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기감을 넓혀보니 40마리 정도가 주변에서 꿈틀대고 있다.
말을 잡아먹은 것들까지 포함된 건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이놈들은 먹이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슬금슬금 꿈틀거리며 겁을 주는 중이다. 때론 모래 위로 솟구쳐 올라 둘러보는 시늉을 한다.
하나 이건 위장이다. 놈들에게도 눈 비슷한 것은 있지만 시력이 제로이기 때문이다.
이에 속아 겁을 먹고 도주하려다간 가장 먼저 먹이가 될 것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진동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아마 연못 안의 잉어에게 먹이를 줄 때 서로 먹겠다고 달려드는 것처럼 모여들 것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 갈림길을 만났다.
하나는 암석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 가는 길이다.
절벽과 절벽 사이의 아슬아슬한 길이라 웬만한 간으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길이다. 그럼에도 A급 용병 랄프는 그 길로 가자 했다. 지름길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때 줄리앙이 나섰다.
이곳을 지나친 적이 있다는 것이다. 하여 줄리앙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이런 위기에 처한 것이다.
현수는 마차 지붕 위에서 주변을 살폈다.
‘할 수 없지. 위기가 닥치면 마법이라도 써야지.’
샌드 웜들은 꿈틀거리면서 여전히 일행이 있는 주변을 움직이고 있다. 누구 인내력이 더 강한지 시합하자는 듯하다.
봄이지만 바람 한 점 안 부는 가운데 태양 빛이 작렬해서 그런지 땀이 난다. 현수는 소매로 이것을 닦아냈다.
그런데 그 작은 움직임조차 감지하는 듯 샌드 웜들이 요동을 친다. 움직임을 멈추자 그들 또한 멈춘다.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이 상태로 대치하면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해.’
용병은 물론 나후엘 자작가의 식솔 또한 마차 밖에 있다.
밤이 되면 사막은 혹독한 추위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면 이가 부딪칠 정도로 달달 떨게 될 것이다.
그 작은 소리에도 샌드 웜은 반응한다. 그러면 몬스터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시선을 돌려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암석으로만 이루어진 곳이 있다. 샌드 웜으로부터 공격당하지 않을 곳이다.
문제는 약 200m가량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8장 사막에서의 악전고투
사람이 모래 위를 달리는 속도와 샌드 웜이 모래 속을 누비는 속도를 비교하면 샌드 웜이 조금 더 빠르다.
따라서 달리기를 시작하면 얼마 안 되어 잡아먹힌다.
‘흐음! 천상 누군가가 시간 끌기를 해야 한다는 건데.’
현수는 샌드 웜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면서 생각에 잠겼다. 현수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현재의 위치 어디쯤에 샌드 웜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모두의 시선은 현수에게 쏠려 있었다. 홀로 마차 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수는 아주 천천히 손짓으로 암석지대를 가리켰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것이다.
문제는 누가 남느냐는 것이다. 큰 소리를 내면 샌드 웜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고, 그럼 먹이가 된다.
현수는 손짓으로 자신이 남을 테니 신호를 주면 일제히 달리라는 사인을 보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후, 현수는 아주 조심스런 손길로 마차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식재료들이 들어 있다.
무 비슷한 채소가 있어 이를 집어던졌다.
쿠웅―!
콰르르르……! 우워엉! 크와라락! 체에에엑!
삽시간에 벌어진 상황이다. 무가 떨어지면서 진동을 일으키자 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내려간 것이다.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놈들의 모습에 질린다는 듯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A급 용병 랄프 또한 마찬가지이다.
샌드 웜은 덩치가 덩치인 만큼 검으로는 상대하기 힘든 몬스터이다. 가죽이 질긴 데다 두껍기 때문에 검으로는 상처를 입힐 수는 있으나 죽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검으로 샌드 웜을 죽이려면 최소한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르러 검기를 쏘아내거나 소드 마스터가 되어 검강을 뿜어내기 전엔 어렵다.
A급 용병 랄프는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다. 따라서 혼자 힘으론 역부족인 게 샌드 웜이다.
한 마리만 있어도 이러는데 주위엔 마흔 마리 이상이 있다. 그렇기에 잔뜩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현수는 무 서너 개를 또 던졌다.
물론 사람들로부터 가장 먼 쪽이다.
쿵, 쿵쿵, 쿠웅―!
콰르르르……! 우워엉! 크와라락! 체에에엑!
던질 때마다 서로 먼저 먹겠다는 난리가 벌어졌다.
일부러 일행이 있는 곳에서 반대쪽으로 조금씩 멀리 던지자 놈들이 쏠리는 듯한 느낌이다.
계속해서 이십여 개를 던졌다.
쿵, 쿵쿵, 쿠웅―!
콰르르르……! 우워엉! 크와라락! 체에에엑!
대가리가 나쁜지 그 정도면 먹이가 없다는 것을 알 법도 한데 소리가 날 때마다 튀어오른다.
용병 및 나후엘 자작가 사람들은 현수의 의도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모두 신호와 함께 달릴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몸이 가벼워야 하기에 무게가 나가는 것들을 몸에서 떼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현수는 아공간을 뒤져 제법 묵직한 호박 30여 개를 꺼냈다. 그리곤 이걸 던지면 일제히 달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모두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휘이이익―!
쿵, 쿠쿵! 쿵쿵! 쿵쿵쿵쿵쿵!
콰르르르……! 우워엉! 크와라락! 체에에엑!
“모두, 달려!”
“와아아아!”
사람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쿠르르! 쿠라라라! 화라라락!
땅거죽이 울라갔다 내려가며 요상한 소리를 낸다. 샌드 웜들이 내는 소리가 뒤섞인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달리고 있을 것이다. 현수는 이들에게 도움주기 위해 이미 달려간 자리 뒤쪽에 호박을 던지기 시작했다.
쿵! 쿠쿵! 쿵쿵! 쿵쿵! 쿵! 쿵쿵!
콰르르르……! 우워엉! 크와라락! 체에에엑!
샌드 웜들이 현수의 교란 작전에 속아 솟구쳐 올랐다 내리는 동안 사람들은 몇 발짝 더 뛰었다.
조금 지나니 현수가 던질 수 있는 거리를 넘어선다.
맹렬한 속도로 도망가는 사람들의 뒤쪽 땅거죽이 들썩인다. 샌드 웜들 역시 맹렬히 먹이를 쫓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잡아먹히지 않도록 이번엔 자신과 샌드 웜 사이에 호박들을 집어던졌다.
쿵! 쿠쿵! 쿵쿵! 쿵쿵! 쿵! 쿵쿵!
콰르르르……! 우워엉! 크와라락! 체에에엑!
다행히 이십여 마리는 현수의 교란 작전에 속은 모양이다.
가던 방향을 바꿔 호박 떨어진 자리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땅거죽이 들썩이면 곧 놈들이 솟구쳤다.
“으아아아아아……!”
“와아아아……!
비명도 아니고 고함도 아닌 소리를 내며 달리는 사람들은 필사적이다. 하긴 인간으로 태어나 괴물의 먹이가 되고 싶은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죽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오죽하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암석지대 가까이 다가간 것을 확인한 현수는 자신도 도망가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사람들이 암석지대로 무사히 올라선다면 샌드 웜들이 이곳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7써클 마법사이기에 플라이 마법을 쓰면 간단하다. 하나 이들이 보는 앞에서 마법을 써서는 안 된다.
용병 가운데 둘이 미판테 왕국 첩보대 소속인 것 같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후엘 자작가의 움직임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판단하여 C급 용병으로 위장한 듯하다.
어젯밤, 우연히 이들의 대화를 들어 알게 된 사실이다.
이들 앞에서 마법을 썼다가 이실리프 마탑 소속이라는 의심을 받으면 아드리아 공국까지 가는 동안 무수한 난관을 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진짜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마법을 써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달리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고꾸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돌부리에 걸렸든지 하체 부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님 둘 다일 수도 있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 누군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용병은 아니라는 것이다. 체구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군지 알고 싶어 텔레스코프 마법을 썼다.
엎어진 사람은 자작가의 식솔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몇 발짝 앞서 달리던 시종이 뒤를 돌아보고는 몹시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때문이다.
그리곤 옆에서 달리던 줄리앙에게 무언가 말을 한다.
뒤를 돌아본 줄리앙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잽싸게 뒤돌아 달린다.
그리곤 그제야 일어서던 인영의 손을 잡아당긴다.
그 순간 샌드 웜 한 마리의 아가리가 모래를 뿜어내며 솟구친다. 잠시 모래먼지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아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판단한 현수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마차에 내렸다. 그리곤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보다도 빠른 몸놀림이다. 이는 멀린의 레어에서 죽어라 체력 단련을 한 결과이다.
1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와 맞먹을 정도로 빠르다. 어쩌면 더 빠를지도 모른다.
목숨이 달린 일인지라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파파파파파팍……!
츄리릿! 크라라라랏……!
죽어라 달리고 있는데 전면 땅거죽이 들썩이더니 샌드 웜 한 마리가 모래를 뿜으며 치솟았다.
물론 아가리를 벌린 채인지라 날카로운 이빨이 보이고, 지독한 악취도 났다.
현수는 들고 있던 아밍 소드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마나의 힘이여, 칼날이 되어라. 윈드 커터!”
2써클 마법이다. 하나 위력은 결코 2써클이 아닌 윈드 커터가 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