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90화 (190/1,307)

# 190

쐐에에에에엑―!

푸와아아악!

크웨에에에엑……!

강력한 위력을 지닌 마법 공격에 격중당한 샌드 웜은 비명도 아닌 괴성을 지르는가 싶더니 솟구쳤던 구멍 속으로 쾌속하게 들어간다.

그 사이 현수는 방향을 바꿔 암석지대로 향했다.

파파파파파파팍……!

디딜 때마다 발 뒤쪽으로 모래가 흩뿌려진다.

푸와아아아……! 크라라라랏!

“어림도 없는 수작! 윈드 커터!”

슈아아아앙……! 퍼어어어억!

쿠웩! 케에에엑……!

이번에도 솟아오른 샌드 웜을 격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는지 살필 겨를은 없다.

하여 현수는 즉시 방향을 바꿔 달려갔다.

우드드드드드! 콰지지지직!

쿠롸롸롸롸랏! 츄리리리리릿!

“야압, 윈드 커터! 윈드 커터!”

피이이잉! 쒜에에에에엑!

퍼어엉! 푸르르르르!

케에엑! 퀘에에에엑!

“허억……! 안 돼! 윈드 커터! 윈드 커터!”

쒜에에에엑―!

푸아아앙! 츄와아아악!

케에에엑! 크아아아아악!

두 마리 샌드 웜이 솟구치자 즉각 윈드 커터를 두 방 날렸다. 하나는 놈의 동체에 격중되었으나 다른 하나는 꿈틀거리는 몸짓 때문에 맞지 않았다. 놈은 이빨 수북한 아가리를 벌리곤 현수를 삼키려 쇄도하였다.

직경 5m짜리 원통 안에 길이 30㎝쯤 되는 쇠꼬챙이 수백 개가 박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실로 무시무시한 모습이다.

순간 겁이 났으나 어찌 그대로 있으랴!

재차 윈드 커터를 시전했다. 그러자 이번 것은 샌드 웜의 아가리 속을 파고들었다.

곧이어 가죽 공 터지는 듯한 소리에 이어 뿌연 색깔을 띤 무엇인가가 쏟아져 내린다. 샌드 웜의 체액인 듯싶다.

하나 그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현수는 놈들이 어찌 되었든 확인조차 안 하고 죽어라 달렸다.

이때이다.

휘리리릭! 휘리릭! 휘리리릭! 휘리리리릭!

“달려! 왼쪽으로, 조금 더 왼쪽으로……! 하인스! 오른쪽으로……! 앞에 놈들이 있어. 어서!”

갑작스럽게 요란한 호각 소리가 났다. 달려오는 현수를 돕기 위해 랄프와 조장들이 호각을 불기 시작한 것이다.

샌드 웜들은 느닷없는 호각 소리에 청신경에 교란을 겪는지 우왕좌왕했다.

그 순간 동료들이 방향을 유도해 준다. 현수는 가릴 것 없이 알려주는 대로 뛰고 또 뛰었다.

휘리리릭! 휘리리리리리릭! 휘리리리리릭! 휘리리릭!

호각 소리가 긴 것을 보니 양쪽 볼이 터져도 좋다는 듯 죽을힘을 다해 부는 모양이다.

“하인스! 달려! 왼쪽으로, 왼쪽으로……! 달려! 조금만 더!”

현수가 동료들의 도움을 얻어 달리는 동안 여섯 번의 공격이 더 있었다.

그때마다 윈드 커터 덕에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헉헉! 헉헉! 헉헉헉! 휴우……!”

“하인스, 수고했어!”

“헉헉! 헉헉! 헉헉! 헉헉!”

오랜만에 전력을 다해 달린 탓인지 호흡이 가빴다.

그런 현수에게서 20여 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네 마리 샌드 웜들이 먹이를 놓친 것이 애석하다는 듯 발광하고 있었다.

“헉헉! 이곳은… 안전합니까? 헉헉!”

“그래. 여긴 암석지대라 놈들이 올라올 수 없는 거 같아. 자네 덕에 위기를 모면했네. 고마우이. 좀 쉬게.”

랄프는 현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현수가 없었다면 희생없이 이곳 암석지대까지 올 방법이 없었던 때문이다.

아마 그냥 달렸다면 살아남은 사람 수가 겨우 한 자리 수였을 것이다. 어쨌든 현수의 거친 숨이 잦아들고 호흡이 편해진 것은 대략 2∼3분가량 지나서였다.

“하인스! 힘든 건 알겠지만 자네의 도움이 또 필요하네.”

“……?”

전력을 다해 달렸기에 지쳤던 현수는 대답 대신 눈빛으로 이유를 물었다.

“줄리앙이 부상을 당했네. 샌드 웜에게 다리를 물렸어.”

“……? 그럼 다리가 잘렸습니까?”

“다행히 그 정도는 아냐. 하나 심각하긴 하네.”

“알겠습니다. 가보죠.”

랄프의 뒤를 따라가니 줄리앙이 누워 있고, 몇몇 용병들이 근심스런 눈빛을 내고 있다.

“으으으! 으으으으……!”

“비켜봐! 하인스가 왔으니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 거야.”

랄프의 말에 모두가 비켜선다.

줄리앙의 왼쪽 다리는 오른쪽의 두 배는 될 정도로 부어 있다. 옷을 찢어놓아 상처가 드러나 있었는데 종아리 부근에 동전 구멍만 한 상처가 보인다.

그곳으로부터 시커먼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줄리앙의 시퍼렇게 부풀어 오른 다리를 잡으며 묻자 누군가 대답한다.

“줄리앙이 쓰러졌던 자작가 사람을 데리고 오다가 물렸네. 다행히 옆에 있던 랄프 대장이 놈의 아가리를 칼로 쑤셨지.”

“그래서요?”

“하여 다행히 상처만 입고 몸을 빼내긴 했는데 아무래도 샌드 웜의 이빨에 독이 있었던 것 같아.”

“대답을 듣는 동안 마법배낭에서 과산화수소를 꺼낸 현수는 일단 상처에 들이부었다.

치이이이이……!

“으윽! 으으으으윽! 으아아아아……!”

“참아, 줄리앙! 하인스가 치료 중이야. 곧 괜찮아질 거야.”

“으으으! 으으으으윽……!”

줄리앙의 종아리는 샌드 웜이 날카로운 이빨에 의해 관통당했다. 겉보기엔 끔찍하지만 실상 이것은 중요치 않다.

뼈가 바스라진 것도 아니고, 힘줄이 끊긴 것도 아니다. 근육에 약간의 손상이 있으며, 혈관 몇몇이 파열된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상처 주위가 퉁퉁 부어올랐으며 보라색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중독 증상이다.

해독제가 없으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현수는 아공간에서 해독제를 찾았다. 그런데 일반 약국에서 이런 몬스터 독을 해독할 해독제가 있을 리 있겠는가!

하여 손을 빼려는 순간 무언가가 손에 잡힌다.

삼각 플라스크처럼 생긴 것이다. 코르크 비슷한 마개가 끼워져 있는 이것의 안에는 푸른색 액체가 찰랑인다.

꺼내서 보니 플라스크의 앞부분에 글씨가 있다. ‘해독 포션’이라 쓰여 있다.

마개를 뽑으니 청량한 향이 흘러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3분의 1쯤 상처 부위에 부었다. 그러자 미약한 빛이 나는가 싶더니 사라진다. 그런데 줄리앙의 반응이 없다.

‘뭐야? 벌써 심장까지 독이 퍼진 거야?’

얼른 가슴에 귀를 대보니 아직 심장은 뛴다. 그런데 정상은 아닌 듯싶다. 그냥 놔두면 죽을 것 같다.

해독 포션! 현수의 것이 아니다.

멀린이 아공간에 넣었던 것인 듯싶다. 지금으로선 먹어도 되는 건지 알 수 없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놔두면 죽을 테니…….’

양쪽 볼을 눌러 줄리앙의 입을 강제로 열었다. 그리곤 해독 포션을 흘려 넣었다. 그런데 의식이 없어 넘기질 못한다.

자칫 기도로 흘러들어 갈 수 있음을 알기에 얼른 입을 맞췄다. 그리곤 바람을 불어넣었다.

후우욱―!

쿨럭……!

해독 포션을 넣고 바람 불어넣기를 서너 번 하니 포션이 떨어졌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였다.

이제 현수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한 것이다.

구멍이 났던 상처 부위는 어느샌가 약간 가라앉아 있었다.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상처를 살피니 여전히 선혈이 흘러나온다. 하나 색깔이 달라졌다. 이번엔 붉은색이다.

서둘러 지혈제를 뿌렸다. 그리곤 상처에 마데카솔을 바르고 거즈로 덮었다. 다음은 붕대 감기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많은 상처를 다뤄봤기에 마치 간호사처럼 능숙한 솜씨이다. 마지막으로 반창고를 길게 잘라 붕대를 고정시키곤 일어났다.

진짜로 더 할 게 없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이분이 우리 아가씨를 살렸네. 살 수 있겠는가?”

시선을 돌려보니 자작가의 늙은 시종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습니다. 이제 줄리앙의 운명은 신만이 알겠지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현수는 얼른 자리를 옮겼다. 그리곤 저쪽에 놓인 마차들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성질이 난 샌드 웜들이 지랄발광이라도 했는지 거의 다 부서져 있다.

“저어, 하인스! 이야기 좀 나눠도 괜찮겠는가?”

“뉘신지요?”

로브는 아닌데 그것 비슷한 것으로 몸은 물론이고 머리까지 모두 가린 여인이다.

가녀린 체격과 가냘픈 음성이 이를 증명한다.

“나후엘 자작가의 식솔이다.”

이름을 대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이유가 있는 듯하다. 현수는 굳이 이름까지 알 필요는 없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흐음, 말씀하십시오.”

“저분은 나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 살 수 있나?”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살 수 있다는 대답은 못 드립니다.”

“그렇군. 답변 감사하네.”

여인은 고개를 꾸벅이고는 물러났다.

‘상처에 항생제라도 뿌릴 걸 그랬나? 아냐, 마데카솔이면 충분하지. 그나저나 샌드 웜이라는 놈 이빨이 그렇게 길었나?’

종아리를 완전히 관통했으니 이빨 길이가 최소한 20㎝는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는 30㎝쯤 된다.

“와아아……! 정신 차렸다.”

“줄리앙, 줄리앙! 정신이 들었어?”

용병들이 소리치자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자신이 돌본 환자가 깨어나는 기미가 보이니 가려는 것이다.

“정신이 들어?”

“하인스……? 여긴… 어디……?”

“어디긴, 암석지대야. 샌드 웜의 공격 범위 밖이지. 근데 정신은 제대로 든 거야?”

줄리앙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찾는 눈치이다.

“나 여기 있어요. 목숨을 구해줘서 고마워요.”

조금 전 현수에게 물었던 여인이다.

“상처는 어때? 아프지? 그리고 몸에서 느껴지는 것은? 혹시 저릿저릿하거나 열이 나는 거 같지 않아?”

“상처는… 아파! 그치만 열이 나거나 저릿저릿한 것 같지는 않아. 근데 네가 치료한 거야?”

“그래.”

“또 빚을 졌군. 너 죽을 뻔하면 두 번 구해줄게.”

“이 상황에서도 농담이라니……. 그나저나 너나 조심하라고 했지? 칠칠맞게스리 이게 뭐냐?”

“아무튼 고마워.”

줄리앙은 고개까지 끄덕였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분이 들거나 상처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날 불러. 알았지?”

“알았어.”

“랄프 대장님! 줄리앙은 그늘이 필요합니다.”

“알겠네. 내가 조치하지. 자넨 좀 쉬게.”

“네에.”

현수가 물러나자 랄프가 나서서 용병들의 상의를 벗긴다. 그리곤 조잡한 햇빛 가리개를 만들었다.

“자네 혹시 물 가진 거 있나?”

로렌스의 물음에 현수는 마법배낭 속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곤 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를 꺼냈다.

던전에서 죽은 용병이 남긴 것이다.

“고맙네. 근데 이게 다는 아니지?”

“물까지 다 버린 겁니까?”

현수의 물음에 로렌스는 손가락질을 한다.

마차와 암석지대 사이에 칼, 도끼, 방패, 물주머니, 배낭, 레더 아머 등이 무질서하게 떨어져 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걸치고 있던 옷을 빼고는 모두 버린 모양이다.

“몇 개가 필요하십니까?”

“당장은 이것으로 어찌해 보겠네. 필요하면 다시 오지.”

“그러세요. 물은 넉넉히 있으니 걱정 마시구요.”

“자네 덕에 우리가 여러 번 사네.”

“알면 나중에 술 한잔 사십시오.”

“그러지. 꼭 그러겠네.”

로렌스가 물러가고도 한참 동안 물끄러미 사막의 풍광에 시선을 주었다.

해가 지려는지 바람이 조금 부는 듯하다. 이제 점점 더 추워질 것이다. 이곳은 숲에서의 추위보다도 더 혹독하다.

차가운 바람을 막아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버티지?”

현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자신이야 아공간에 텐트도 있고 침낭도 있다. 바닥으로부터 올라올 냉기를 막아줄 100㎜짜리 스티로폼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히말라야산 꼭대기처럼 추운 곳에서도 버틸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 있다.

하나 용병들은 물론이고 나후엘 자작가의 사람들 모두 입은 옷 이외엔 없다. 거지나 다름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수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이곳에 어찌 텐트를 꺼낼 것이며, 스티로폼, 가스버너를 꺼낼 수 있겠는가!

한참을 고심하던 끝에 묘안을 냈다. 아공간에서 가느다랗지만 질긴 아마 섬유로 만든 줄을 꺼냈다.

이것들을 이어 길이가 200m 조금 넘게 만들었다. 끝에는 갈고리가 달려 있다. 도둑들이 남의 집 담을 넘을 때 아무 데나 걸리라고 던지는 네 방향으로 갈고리가 있는 그것이다.

아마 섬유는 멀린의 아공간에 있던 것이고, 갈고리는 마트의 등산용품 코너에 있던 것이다.

“랄프 대장! 이제 곧 밤이 될 텐데 이대로 있다간 모두 얼어 죽을 것입니다.”

“흐음, 나도 그래서 여길 좀 둘러봤지, 동굴이라도 있나 하고. 간신히 바람을 피할 곳은 있는데 냉기가 문제여서 걱정하던 참이네. 묘안이라도 있나?”

“이거로 어찌해 보면 할까 싶습니다.”

“그거? 아……! 정말 좋은 생각이네.”

“이걸 암석지대 끝에서 던져서 마차를 끌어당길 수만 있다면 잠자리는 어찌 해결될 듯싶습니다. 아울러 제가 타고 있던 마차까지 끌고 올 수 있다면 금상첨화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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