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91화 (191/1,307)

# 191

“무슨 소린지 알겠네. 자넨 쉬게. 이건 우리가 하지.”

“그러지 않아도 그러려 했습니다. 이걸 저기까지 던질 능력은 없거든요.”

현수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자 랄프 역시 웃는다.

잠시 후, 현수의 갈고리를 들고 용병들이 상의를 한다. 하나 어찌 인간이 200m나 던질 수 있단 말인가!

한참을 숙의하더니 로렌스가 왔다.

“자네 아까 보니까 마법을 쓰던데 마법사인가?”

“마법을 쓴 게 아니라 마법검을 쓴 겁니다. 이건 우리 집안의 가보지요.”

현수가 검을 내보이자 로렌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는 아무리 피곤해도 아픈 동료들의 상처를 꼼꼼히 치료해 줬다. 먹는 음식도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것 같다.

자신이 할 일을 남에게 미루거나 빈둥거리지도 않는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인간성이 파악된다.

다시 말해 용병들에게 있어 현수는 동료애가 있는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다.

따라서 현수가 마법사라면 동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마법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마법 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실은 마법을 써서 동료들을 구할 겨를이 없었다.

그만큼 느닷없는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현수의 위치가 어땠는지를 모르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법검이라는 말에 쉽게 수긍한 것이다.

“이건 어떤 마법을 쓸 수 있는 건가?”

“윈드 커터라고 합니다.”

“윈드 커터……! 2써클 마법이군. 그럼 최소 4써클 이상의 마법사가 인챈트했겠군.”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인지라.”

“그래……? 그런데 왜 그동안 한 번도 이걸 안 썼나?”

“마나의 양이 부족해서…….”

B급 용병 로렌스는 자력으로 소드 익스퍼트 초급의 수준이 되었다. 그럼에도 더 높은 경지를 꿈꿀 수 없는 이유는 마나 심법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네, 마나 심법을 익혔는가?”

로렌스는 부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나 가르쳐 달라고는 할 수 없다. 가르쳐 줄 리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익히긴 했는데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랬군. 어쨌든 다행이었어.”

“네, 모두들 이쪽으로 온 뒤에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이 검을 보게 되었지요. 기왕 죽을 바엔 발악이나 해보자 생각하고 마나를 주입했는데 되더군요.”

“어쨌든 고맙네. 자네 덕분에 모두들 목숨을 구했지 않은가? 그나저나 자네의 이 검으로 줄을 멀리 보낼 수 있지 않을까? 200m를 던진 방법이 없어서 그러네.”

“흐음, 줄이 끊어질지도 모르지만 한번 해보죠.”

잠시 후, 암석지대 가장자리로 간 현수는 용병이 던지는 갈고리에 초점을 맞춰 윈드 커터를 시전했다.

용병보다 한참 뒤에 서서 시전해야 했다. 안 그러면 줄이 끊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수백 번이라도 시전할 수 있지만 마차들을 끌어당길 때쯤 일부러 몹시 지친 표정을 지었다.

“수고했네. 자넨, 이제 좀 쉬게.”

“어휴, 그렇지 않아도 그래야겠습니다. 어질어질해서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입니다.”

짐짓 극심한 피곤함을 표현한 현수는 움푹 파인 바위에 몸을 뉘었다. 그러는 동안 ‘영차, 영차’ 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차를 잡아당기느라 용병들이 힘쓰는 소리이다.

웬일인지 샌드 웜들이 달려들지를 않는다. 하여 왜 그런가 싶었더니 놈들은 상하 진동에 민감하다고 한다.

그런데 마차는 옆으로 끌려만 온다. 따라서 땅속으로의 진동이 아무래도 적다.

하지만 가끔 튀어나오는 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잡아당기는 걸 멈춘 채 한참을 기다렸다.

한 20여 분쯤 그렇게 누워 있는데 누군가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하인스! 하인스! 어디에 있나?”

누워 있는 현수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하인스! 아, 거기에 있군.”

또 다른 B급 용병 게리였다.

“왜 그러십니까?”

“자네의 도움이 또 필요하네. 줄리앙이, 줄리앙이…….”

“왜요? 줄리앙이 위독해졌습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붓기가 가라앉으면서 좋아지는 거 같았는데 이상이 발생한 듯했기 때문이다.

“줄리앙이 스콜론에게 쏘였네.”

“스콜론이요?”

“그래, 쬐끄만 놈인데 지독한 독성을 지닌 침으로 쏘는 놈이지. 그런데 줄리앙을 옮긴 자리에 하필이면 그놈이 있었던 모양이네.”

“어서 가봅시다.”

9장 엉덩이를 물렸다네!

줄리앙은 벌써 의식을 잃었다. 그녀의 곁에는 누군가가 짓밟아 버린 스콜론이라는 놈이 있다.

보아하니 사막에 사는 전갈 비슷한 놈이다.

“어딜 쏘인 겁니까?”

“모르네. 스콜론이 줄리앙의 몸 아래에서 나오기에 밟아 죽인 것뿐이네.”

“알겠습니다. 혹시 주변에 또 다른 스콜론이 있는지 모르니 살펴봐 주십시오.”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병들이 흩어졌다.

“하루에 두 번 중독이라……. 줄리앙, 너 되게 재수없는 날인가 보다, 오늘! 어디 보자. 대체 어딜 물린 거야?”

줄리앙의 몸을 뒤집었지만 쏘인 부위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현수는 엎어놓은 줄리앙의 상의를 위쪽으로 들춰보았다. 다음엔 가죽바지를 조금 끌어 내렸다.

상처가 보인다. 엉덩이와 허리의 경계쯤 되는 곳이다.

언제 쏘였는지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부풀어 있었다.

“흐음! 메스가 필요해.”

아공간에 손을 넣어 메스와 알콜, 그리고 탈지면을 꺼냈다. 먼저 알콜에 적신 탈지면으로 상처 부위를 닦아냈다.

다음엔 메스에 알콜을 조금 부은 뒤 상처 부위를 절개했다.

주르르륵―!

악취 풍기는 시퍼런 피가 흘러내린다. 이 순간이다.

“줄리앙 용병님은 괜찮으신 건가?”

“누구……? 아, 오셨습니까?”

아까 줄리앙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자작가의 여인이다.

“그래. 그분… 괜찮은 건가?”

“보다시피 스콜론에게 쏘여 중독된 상태입니다.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지요.”

“그럼 어떻게 해? 꼭 구해줘. 아직 고맙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못했단 말이야.”

“알았습니다.”

말을 마친 현수는 절개된 곳에서 흘러내리는 초록에 가까운 피를 보았다.

독이 혈관에 침투했다면 순환기관을 거쳐 심장까지 갈 것이고, 이것이 심장 근육을 멈추게 하면 죽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사에게 물리면 심장에 독혈이 흘러가지 않도록 묶는 것이다. 그런데 줄리앙은 묶을 곳이 없다. 굳이 묶으려면 허리 또는 가슴을 묶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걸 빨아내려면 부항기7), 아니면 착유기8)가 필요해. 근데 꺼낼 수가 없잖아. 아이참, 가라고 할 수도 없고…….’

바로 곁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는 자작가의 여인 때문이다.

“저어, 내가 도와줄까? 뭐든 말만 해.”

“아닙니다.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죄송한데 잠시 자리를 비워주실 수 있는지요?”

완곡하게 비켜달라는 뜻을 표했다. 그런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아니야. 이분이 이러신 것은 나 때문이야.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거니까. 그러니 곁에 있으면서 도와줄게.”

보아하니 귀족가의 여식이다. 용병 따위의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제기랄! 하필이면……!’

현수는 부항기나 착유기 꺼내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상처 주위를 우악스런 손길로 쥐어짰다.

완연히 초록색으로 변한 피가 더 많이 흘러내린다.

‘에이, 내가 꼭 허준 흉내를 해야 한단 말이야?’

오래전 보았던 드라마에서 조선시대 때 서민들의 위한 단 하나뿐인 국가 의료기관 혜민서에서 명의 허준이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현수는 그냥 놔두면 독혈이 심장까지 침투할 것이란 생각을 하며 상처에 입을 가져갔다.

쭈우욱! 쭈우우욱! 퉤에―!

쭈욱! 쭈우욱! 퉤에―!

쭈우우욱! 쭈우욱! 퉤에―!

독혈을 빨아 뱉어내길 이십여 차례나 했다. 강력한 흡인력 때문인지 그럴 때마다 줄리앙의 몸이 꿈틀거렸다.

뱉어내며 보니 독혈의 색깔이 점점 붉어지는 느낌이다. 아직 심장까지는 가지 못한 듯하다.

현수는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입으로 독혈을 빨아냈다.

이런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자작가의 여인은 놀랍다는 듯 꼼짝도 않고 있었다.

“휴우……!”

현수는 입안을 찌르르 하게 하는 독혈을 물로 헹궈낸 뒤 털썩 주저앉았다.

아공간의 해독 포션이 또 있나 싶어 손을 넣었으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더 이상은 없다는 뜻이다.

“이제 괜찮은 거야?”

“그러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일단 독혈은 어느 정도 해소된 거 같은데 남은 것은 줄리앙이 가지고 있는 면역 기능에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군.”

잠시 줄리앙의 용태를 살폈다. 여전히 의식은 없지만 맥박도 뛰고 호흡도 한다.

“하인스, 이야기는 들었어. 줄리앙은 어때?”

랄프이다. 마차 끌어당기는 일을 진두지휘하다 스콜론에게 줄리앙이 당했다는 이야길 듣고 온 것이다.

“상황이 위급하여 제가 아는 방법으로 일단 응급처치는 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하늘의 뜻뿐입니다.”

“흐음, 알겠네. 자넨 이곳에서 계속 줄리앙을 보살펴 주게.”

“네, 가서 일 보십시오.”

잠시 후, 용병들이 와서 현수와 줄리앙이 춥지 않도록 엉성하지만 휘장을 쳐 줬다.

현수는 가끔 줄리앙의 엉덩이와 허리 사이의 상처에서 독혈을 빨아냈다. 그러는 사이에 어둠이 사방을 점령했다.

사막의 밤은 몹시 춥다. 그래서인지 줄리앙의 체온이 점점 내려간다. 현수는 아공간에서 온찜질팩을 꺼냈다.

안에 담긴 금속 조각을 똑딱이자 스르르 변하면서 따뜻해진다. 수시로 상처를 보아야 하기에 줄리앙은 얇은 모포 위에 엎어놓은 상태이다.

온찜질팩은 그녀의 가슴과 배, 그리고 허벅지 부위에 놓였다. 등에도 하나, 엉덩이에도 하나를 올려놓았다.

용병들이 볼 수 있기에 모두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현수 본인도 하나를 꺼내 깔고 앉았다. 터지거나 말거나이다. 몹시 추웠기 때문이다.

마법을 쓰지 않은 이유는 혹시 있을지 모를 시선 때문이다. 또한 이런 극한 상황을 겪어보자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새벽이 되자 비로소 의식이 돌아오는 모양이다.

“으으으응……! 으으응! 여긴……?”

“아! 이제 정신이 들어?”

“하인스……?”

“내 목소릴 기억하는 모양이군. 그래, 나야. 몸은 좀 어때?”

“나른해. 힘이 없어. 근데 나 왜 이러는 거야? 샌드 웜의 이빨 독 때문이야?”

“아니야. 널 옮겨 좋았는데 하필이면 그 자리에 스콜론이 있었나 봐. 그놈이 널 쏘았어. 그래서 또 중독이 된 거지.”

“……! 그럼, 네가 또 날 구한 거야?”

“그래. 이제 나를 세 번은 구해줘야 할 빚을 진 거지.”

“고마워, 꼭 그렇게 할게.”

웬일인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아. 빚은 나중에 갚아도 되니까. 근데 몸은 좀 어때?”

“아직은… 힘이 없어. 움직일 수 없는 거 같아.”

“기운 내. 날이 밝으면 내가 먹을 걸 좀 만들어줄게.”

“알았어. 고마워!”

의식을 찾은 줄리앙은 전후사정을 모두 이야기 들었다.

“설마, 의식이 없는 사이에 내 엉덩이를 본 건 아니지?”

“엉덩이를 봐? 내가……?”

“그래. 사내들은 모두 엉큼하잖아.”

“너, 어디를 쏘였는지 감각이 없어서 잘 모르지?”

“허리 조금 아래쪽이라고 했잖아.”

“허리는 허리야. 근데 엉덩이하고 붙은 데야. 여기쯤.”

현수가 자신의 엉덩이를 가리켰다. 그런데 일부러 조금 아래를 지목했다. 오른쪽 엉덩이 한가운데이다.

“……!”

“따라서 엉덩이를 보기 싫어도 봐야 하잖아.”

“그럼 내 엉덩이를 보고, 만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입으로 빨았단 말이야?”

“안 빨아냈으면 벌써 죽었을 텐데?”

“으으, 이 자식이 감히 내 엉덩이를……!”

줄리앙은 언제 아팠느냐는 듯 또 다시 당찬 소리를 낸다.

“뭐 별것도 아니던데. 때도 좀 있고, 냄새도 좀 나고……. 그런 델 빨아야 하는 내 기분은 어땠겠어?”

“뭐라고? 이,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감히……!”

줄리앙은 바르르 떤다.

“흐음, 이제 좀 살아나는 모양이군.”

“너, 너어……! 다 낫기만 하면…….”

줄리앙이 바르르 떨자 현수는 짐짓 딴청을 피운다.

“어디 보자. 독혈이 아직도 남았으려나?”

줄리앙의 몸은 또 다시 엎어졌다. 아직은 힘이 없기에 현수가 엎으려는 것을 막아낼 수 없었던 때문이다.

상처를 보니 아직 붓기가 있다. 또한 살짝 푸른빛을 띤다.

“흐음! 아직 안 되겠군. 아직 독이 남아 있는 거 같아. 줄리앙! 아파도 좀 참아. 알았지?”

“뭐어? 너……! 으으윽!”

쭈우우욱―!

“야, 너 인마……! 으으으윽……!”

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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