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그것만으론 화력이 부족하여 남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할 때마다 플라즈마 볼을 구현시켰다.
오늘의 메뉴 역시 찬사를 들었다.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맛있고, 부드러우며, 향기 좋은 빵은 처음이라고 했다.
빵이 부드러운 것은 밀가루를 치대는 기술이 좋아서, 향기는 굽는 기술이 좋아서라고 둘러댔다.
“하인스, 넌 나중에 마누라 굶겨 죽이진 않겠어. 아니, 마누라에게 사랑받으며 살겠어.”
“후후, 맛이 괜찮았나 보지?”
“정말 괜찮았어.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게 입에 꼭 맞았어. 솔직히 이렇게 맛있는 빵은 처음이야. 대체 어디서 이런 기술을 배운 거야?”
“배운 게 아니고 타고난 거야.”
“치이, 가르쳐 주기 싫은 거구나. 혹시 가족 중에 궁정 요리사라도 있었던 거야? 아니다. 나야 먹어만 주면 되니까 굳이 알 필요까진 없겠다, 그치?”
줄리앙은 눈에 뜨이게 부드러워져 있었다.
“움직이지나 말아. 그나저나 상처 좀 봐야겠으니 엎드려.”
“꼭 봐야 해?”
왜 이러는지 어찌 모르겠는가!
“솔직히 네 엉덩이 볼 게 뭐 있냐? 비싼 척하기는…….”
현수의 의해 엎어진 줄리앙의 두 볼은 붉어져 있었다. 그런데 상의를 슬쩍 위로 올리는가 싶더니 금방 내린다.
하나 현수는 볼 건 다 봤다.
“다행이야. 붓기가 많이 가라앉았어. 상처 주위도 색깔이 정상이고. 이번엔 다리 좀 볼게.”
급해서 누군가 허벅지까지 길게 찢어놓은 바지를 들추고는 상처를 살폈다. 마찬가지로 상당히 많이 좋아졌다.
후시딘을 한 번 더 바르면서 슬쩍 힐 마법을 걸었다.
삽시간에 아무는 것이 확연히 눈에 뜨인다. 여러 번 시전한 결과 이제 능수능란하게 힐 마법을 쓰게 된 듯하다.
‘역시……!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진짜……!’
한국으로 돌아가 외과의사 행세를 해도 좋을 정도로 효과가 만점이었던 것이다.
“다리도 많이 좋아졌어. 다행이야. 그런데 아직도 통증이 느껴지는 건 아니지?”
“그래. 많이 좋아진 것 같아. 통증도 별로 없어. 근데 말이야. 왜 위의 상처는 제대로 안 살펴?”
“그건 왜?”
“보는 둥 마는 둥 했잖아. 엉덩이라면서…….”
“그야 네 엉덩이 다시 보는 게 끔찍해서…… 가 아니고, 사실 네 상처는 허리쯤에 있어. 아직도 거기 촉감이 얼얼해?”
“허리……?”
“그래, 허리! 내가 설마 네 엉덩이를 쭉쭉 빨았겠냐? 허리니까 그래줬지. 네가 아무리 말괄량이라곤 하지만 다 큰 처녀인데. 안 그래?”
“……!”
“자, 난 밖에 나갔다 올게.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얌전히 누워 있어. 알았지?”
“끄으응……!”
줄리앙은 자신이 속은 걸 알면 발끈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지막한 침음만 냈을 뿐이다.
이날 용병들은 하루 종일 사막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끌어당기느라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소득은 별로였다.
저녁때엔 물이 적게 드는 콩 통조림과 스팸을 사용한 죽을 만들었다. 모두들 두말 않고 숟가락질하기에 바빴다.
일행은 현수의 마법배낭 속에 적지 않은 물이 들어 있었음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갈증 때문에 엄청 고생을 했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 날, 줄리앙이 제 발로 일어섰다. 마법 덕분이다. 아직은 부축이 필요하지만 굳이 혼자 걷겠다고 한다.
일행은 출발을 했고, 암석지대로만 골라서 걸었다. 샌드 웜이 꿈틀거리며 먹이의 이동을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흘을 걸었다. 지치고 힘든 일정이었지만 다행인 것도 있다. 이제 샌드 웜의 위협으로부터는 멀어졌다.
그간 마실 물이 다 떨어졌다. 아공간에 생수가 잔뜩 있기는 하지만 그걸 어찌 꺼내놓을 수 있겠는가!
모두들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지만 아무도 내색치 않으며 터벅터벅 걸었다.
10장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와아……! 물이다!”
누군가의 고함에 우르르 달려든다. 미판테 왕국은 산지와 호수의 나라라 칭해진다.
설마 사막 한가운데 호수가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진짜 호수가 있다. 크기도 결코 적지 않다.
원형인데 직경이 500m는 될 정도로 크다.
큰 호수의 곁에는 말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분리된 작은 규모의 호수가 하나 더 있다. 직경 50m쯤 될 호수이다.
그래도 꽤 깊은지 물빛이 에메랄드 색깔이다.
“크하하하! 오랜만에 씻는구만.”
“그러게. 온몸에 소금이 돋아 껄끄러웠어.”
어느새 용병 둘이 옷을 벗고 물속에 뛰어들어 있었다. 동작 한번 잽싸다.
다른 용병들 역시 하나둘 호수에 몸을 담갔다.
겨울이지만 기온이 낮지 않은 대낮이었고, 물 또한 그리 차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현수는 식재료들을 꺼내놓고 다시 한 번 잡탕찌개도 아닌 국을 만들고 있었다. 쇠고기 다시다가 동원되었고, 이번엔 라면 수프까지 넣었다.
지난 며칠간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모닥불가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하나둘 깊은 잠에 취했다.
오는 동안 샌드 웜들은 자연스럽게 추격을 포기했다.
모르긴 몰라도 땅속까지 온통 돌로 이루어진 곳을 통과한 듯하다.
와이드 센스로 주변을 살펴보았는데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며칠 만에 맛보는 꿀 같은 잠을 잘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홀로 깨어 있는 존재가 있다.
현수이다. 손꼽아 헤아려 보니 지구에서 아르센 대륙으로 온지 오늘로서 29일째이다.
내일이면 한 달이 된다. 하여 하루를 더 머물다 떠날 것인가 아니면 당장 떠날 것인가를 고심했다.
“에이, 여기에서의 생활도 좋은데…….”
현수는 나직이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지구로 돌아갈 날짜를 헤아려 보니 7월 18일 목요일이 된다.
휴가 날짜가 7월 24일까지이니 도착하면 곧바로 출국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일이야 이은정 실장과 민주영에게 맡기면 되지만 다른 일은 그렇지 않다.
특히 세정빌딩 매입 건은 본인이 아니면 안 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기에 일행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갔다.
“잘들 주무슈! 지구에 갔다가 올 테니…….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스러졌다.
* * *
“오늘 날짜가…….”
현수는 지구에 당도하자마자 날짜부터 챙겼다. 이번엔 제법 오래 아르센에 머물렀기에 혹여 틀릴까 싶었던 것이다.
“휴우∼! 다행이다.”
예상대로 오늘은 2013년 7월 18일 목요일이다.
아직 이른 새벽인 계룡산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혹시 다른 사람이 볼까 싶어 얼른 이전에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조금 출출한 기분이 들어 간단히 라면이라도 끓일 셈으로 휴대용 가스렌지를 꺼냈다.
“아공간은 이럴 때 정말 편해!”
냄비를 꺼내 생수로 대강 닦아낸 뒤 물을 붓고 불을 켰다. 그리곤 라면 봉지를 뜯어 수프와 면을 투입했다.
아직 찬물임에도 넣은 것은 쫄깃쫄깃한 것보다는 약간 풀어진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끓기 시작한다.
젓가락을 꺼내고, 마트에서 파는 김치와 단무지까지 꺼내 먹을 준비를 마쳤다.
이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응……? 누구지?’
시선을 돌리자 누군가 안개 속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어라……!”
털썩―!
“도사님!”
‘엥……!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도사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뭔 소리야?’
현수는 멍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닌 밤중에 뜬구름 잡는 소릴 하고 있으니 그렇다. 하여 대꾸 대신 쳐다만 보았다.
그랬더니 다시 고개를 조아리며 소리친다.
“도사님! 이놈을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쿵―!
‘제기랄, 무협지 꽤나 읽은 사람이구나.’
현수는 웃기는 사람 다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관심없다는 듯 냄비에 젓가락을 넣었다.
이때 사내가 다시 한 번 소리친다.
“도사님! 새벽에 우화등선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게도 도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도사님!”
“네? 우화등선이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어제 이 자리에서 도사님께서 우화등선하시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도술 좀 가르쳐 주십시오.”
보아하니 30대 후반 정도 된 신체 멀쩡한 사내이다. 그런데 21세기인 지금 도술 운운하고 있으니 조금 웃긴다.
“필생의 소원입니다. 딱 한 가지만이라도 좋으니 도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도사님!”
“끄응……!”
현수는 낮은 침음을 내고는 대답 대신 냄비 속의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사내는 입 딱 다물고 아무런 말없이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냄비의 바닥이 드러났다.
그러는 동안 여러 번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하긴 시장할 때 맡는 라면 냄새가 어떻겠는가!
그래도 모르는 척하고 라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리곤 시립해 있는 사내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금 전에 도술 배우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네! 도사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받아주십시오.”
쿵―!
또 이마가 바닥을 찧을 정도로 과격하게 절을 한다.
보아하니 장난은 아닌 듯싶다.
“좋아요, 어떤 도술을 배우고 싶은가요?”
드디어 허락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사내는 부들부들 떤다.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도사는 낯설지 않다.
홍길동전에는 홍길동의 스승으로 백운도사가 등장한다.
실존인물로는 전우치와 화담 서경덕이 도사인 것으로 여겨진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 가운데 사명당에 관한 일화가 있다.
사명당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항복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왜놈들은 조선에서 건너온 고승을 죽이기 위해 무쇠로 만든 방으로 안내하고는 밖에서 잠가 버렸다.
그리곤 장작을 듬뿍 집어넣고 불을 땠다.
점점 방이 뜨거워지자 사명당은 눈 설(雪) 자와 얼음 빙(氷) 자를 써서 붙여 놓았다.
다음 날 아침, 왜놈들은 죽었겠지 싶어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사명당의 수염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붙어 있고, 방에는 서리가 잔뜩 서려 있었다고 한다.
왜놈들이 놀라 자빠지려는데 사명당이 한마디 했다.
“일본에는 나무가 많다고 들었는데 왜 방에 불을 안 넣어주는가? 지난 밤엔 조금 추웠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사명당 역시 도사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
사내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종류의 글들을 즐겨 읽으며 꿈을 키웠다. 장차 도력 높은 도사를 만나 도술을 익히겠다는 꿈이다. 그러는 동안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학까지 졸업했다.
그리곤 군대도 다녀왔다. 그후엔 취업도 했다.
이쯤 되면 도술에 대한 환상이 깨져야 한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가 있어 그것에 대한 열망만 더욱 커졌다.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도를 아십니까?’라는 말을 하며 어떤 사람들이 접근했던 것이다.
그들의 권유로 한 권의 서책을 보게 되었다.
진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명나라 시절 주장춘이라는 사람이 1580년 경에 쓴 ‘진인도통련계’라는 책이다.
이것은 한글로 번역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이 세상 모든 산의 근원은 곤륜산이니, 곤륜산의 본래 이름은 수미산이다.
곤륜산의 제1지맥이 동해로 들어서서 유발산을 낳고, 유발산이 니구산을 낳아 일어선 맥이 72봉이다.
고로 공자가 탄생하여 72명이 도통하였다.
곤륜산의 제2맥이 서해로 들어서서 불수산을 낳고, 불수산이 석정산을 낳아 일어선 맥이 499봉이다.
석가세존께서 이 석정산의 영기를 타고 왔나니 그의 제자 499명이 도통하였다.
곤륜산의 제3지맥이 서해로 들어서서 감람산을 낳고, 일어선 맥이 12봉우리이다.
고로 예수가 태어나서 제자 12명이 도통하였다.
곤륜산의 제4지맥이 동해로 들어서서 백두산을 낳고, 백두산이 금강산을 낳아 일어선 맥이 12,000봉이다.
고로 증산(甑山)이 세상에 내려와 하늘, 땅의 문호인 모악산 아래에 일순(一淳)으로부터 도(道)가 나온다.
고로 12,000명이 도통한다.
다른 것들은 이미 다 이루어져 있지만 금강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12,000도통군자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사내는 본인이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망상을 했다. 그렇기에 도사에 관한 서적들을 찾아 탐독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다니던 직장까지 때려치웠다. 도사가 되기 위해 입산수도를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험한 기운이 짙다는 계룡산을 택해 입산한 지 10년이 되었다.
그 사이 친구들은 전부 장가가서 오순도순 잘 살고 있건만 사내는 여전치 떠꺼머리총각 신세이다.
가진 재산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한 그에게 어떤 여자가 시집을 오려 하겠는가!
그렇게 10년 세월을 보내는 동안 계룡산을 찾았던 많은 이들을 접했다. 무속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외에도 사내와 같이 도술을 익혀보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 도인은 만나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