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하여 10년 기약의 마지막 날이었던 오늘 새벽, 하산을 결심하고 내려가던 중이다. 도술과 인연이 닿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늦게나마 세상의 일원이 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수가 아르센 대륙으로 차원 이동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되었다. 알고 있던 우화등선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사람이 안개 스러지듯 그렇게 사라지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여 도술로 결론을 내리고 지금껏 기다렸다.
다시 10년 기약으로 현수를 기다려 보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만에 다시 나타났다. 어찌 이 기회를 놓치고 싶겠는가!
게다가 도술을 배우고 싶으냐는 하문을 한다.
“네, 도사님!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가르쳐 주시기만 한다면 정말 열심히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도사님!”
“그래요? 그럼 잠시 눈을 감으세요.”
“네, 도사님!”
사내는 두말 않고 눈을 감았다.
“리딩 메모리!”
마법이 구현되자 사내의 기억이 보인다. 바로 오늘 새벽의 일이었는지라 금방 문제가 된 기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메모리 일리머네이션!”
샤르르르릉―!
마나가 스며들자 사내가 흠칫거린다. 그리곤 눈을 떴다.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이, 청년!”
“네? 저 말씀입니까?”
“그래, 근데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현수가 그런 걸 왜 자신에게 묻느냐는 표정을 짓자 사내는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다.
“아, 아니네. 일 보게.”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산을 시작했다.
‘이제 정신 차려서 제대로 한번 살아보세요.’
짧은 시간이지만 사내가 어찌 살았는지를 알았던 것이다.
현수는 정승준이란 이름을 가진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의지 하나만은 대단한 사람이야. 자신이 뜻한 바를 성취하기 위해 10년이나 일로매진하긴 힘든 세상인데. 게다가 마음씨도 순박하군. 그나저나 이제 슬슬 내려가 볼까?”
벌여놓았던 것들을 아공간에 담은 현수는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잠시 바람 가르는 소리를 즐겼다. 그러다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현수가 좋아하는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이 흘러나온다.
허밍으로 멜로디를 따라 부르는데 갑자기 음악이 끊긴다.
“응……? 방송 사곤가?”
“긴급 속보를 알려 드립니다.”
“긴급 속보? 뭐지……?”
“방금 전 일본 수상 고이즈미 준이찌로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아울러 독도에 주둔 중인 독도경비대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였습니다.”
“뭐야? 이런 미친……!”
현수가 말을 잇기도 전에 방송이 계속되었다.
“또한 혼슈(本州) 서쪽 마이즈루(舞鶴)의 제3호위대군 산하 제14호위대(DDH)의 함정 전부를 전진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정부와 해군은…….”
아나운서의 보도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런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이나 깔 새끼들이……!”
현수는 치미는 분노 때문에 부들부들 떨었다.
아버지에게 이야기 듣기로 할아버지는 이북사람이다. 예전 지명으로 평안남도 용강군 대대면 매산리가 고향이다.
이곳엔 사신총(四神塚)이 있다. 무용총(舞踊塚)처럼 말을 달리면서 사슴을 뒤쫓는 수렵도가 벽화로 있는 고분이다.
고향과 개성을 오가며 장사를 하던 조부는 독립군의 전령이 되었다. 장사를 핑계로 개성과 진남포뿐만 아니라 만주를 오가며 독립군의 주요 문서를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그러다 밀정의 밀고로 왜놈들에게 잡혔다.
조부를 고문한 것은 일본군 해주지방 법원 송화지청에서 검사 겸 통역을 하던 이홍규였다.
어찌나 지독하게 고신(拷訊)을 했는지 잔인하기로 이름난 왜놈 형사들조차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고 한다.
조부는 놈의 고문을 이기지 못해 운명하였다.
인도된 조부의 시신은 손톱과 발톱 전부가 빠져 있었으며, 안구까지 적출되어 있었다.
부친은 온몸을 인두로 지진 흔적과 채찍 등으로 갈긴 흔적을 보고 기절하고 말았다고 한다.
다음 날, 왜놈들이 들이닥쳐 집 안을 풍비박산시켰다. 그 결과 아버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도시빈민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알고 있기에 현수는 일본에 대해 조금의 호감도 없다. 오히려 증오에 가까운 마음뿐이다.
그렇기에 야스쿠니 신사와 고쿄라 불리는 서거(鼠居)를 완파하고 왔던 것이다.
또한 이수연을 납치했던 히로야마를 비롯한 야쿠자들을 징벌할 때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백치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제기랄……! 마법이 있으면 뭐해.”
일본을 박살 낼 수 없음에 한 말이다.
아무튼 정부에서 일본 대사를 초치하여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한 해군과 공군에 비상 경계령을 발령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후로도 속보는 계속되었다. 분통이 터졌으나 어쩌겠는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욕하는 것 이외엔 없었다.
사무실에 당도하자마자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그 결과 일본 해자대와 대한민국 해군간의 전력차가 대단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관적인 의견을 가진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한국 해군의 전력은 일본 해자대의 30% 수준이다.
다시 말해 바다에서 싸우면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보다 월등하게 전력 증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 역시 이에 못지않게 전력 증강 중이라 나날이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공군력 역시 한국의 열세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F―15K는 일본의 F―15J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하지만 한국은 F―15K가 39대인 반면, 일본은 F―15J를 200대나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엔 없는 조기경보기 E―767과 E2C를 각각 4대와 13대를 보유하고 있다.
E―767은 보잉 767을 개조한 것으로 AN/APY―2 레이더를 장착해 360。 전방위를 최대 800km까지 탐색할 수 있다.
E2C는 레이더를 APS―145로 교체하여 최대 560km까지 탐지가 가능한 AWACS이다.
현수는 한참 동안이나 한일간의 전력 비교를 해보았다.
그리곤 결론을 내렸다.
1. 우리나라 해군과 일본 해자대가 일대일로 붙으면 우리나라가 불리하다.
2. 우리나라는 자함 방어 기능을 가진 전투함이 너무 적다.
3. 잠수함의 배수량의 차이에서 오는 성능차로 인해 장기전이 되면 우리나라 잠수함은 제대로 힘을 못 쓸 수도 있다.
“제기랄! 그동안 지출한 국방비는 대체 어디에 쓴 거야?”
현수는 나직이 투덜거렸다. 그리곤 곧장 검색해 보았다.
2010년 국방비 내역이 뜬다.
전력투자비는 16.7%, 경상운영비는 83.3%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국방 예산의 대부분이 인건비 등으로 지출된다는 뜻이다.
“이런 미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욕을 삭이며 다른 자료를 찾아보았다.
전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2003년 자료를 보면 당시엔 전력투자비율이 34.2%였다.
그렇기에 KD―2 이순신급 구축함이 무려 5척이나 건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214급 잠수함 2척, 아시아 최대 상륙함인 독도함 1척, 가장 중요한 KD―3 세종대왕함도 1척 건조되었다.
KD―3 이지스함과 PKX 윤영하 고속함은 노무현 정권 시절에 최종 결정된 것이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일본 해자대와 전력을 비교하는 일조차 허무하였을 것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발언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의견과 댓글들이 달렸다. 하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리 떠들어도 벌어진 전력차를 좁힐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치인들의 뇌엔 대체 뭐가 들었을까? 모조리 잡아다 해부를 해볼 수도 없고……. 쯧쯧쯧!”
한심한 정치인들의 행태에 화가 치솟았으나 그것 역시 해결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마법을 익혀서 7써클 마스터가 되었으면 뭐해? 이럴 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데……. 제기랄!”
현수는 모니터를 꺼버렸다. 그리곤 회전의자를 돌려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오르는 상념이 있었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에게 핵무기를 팔라고 하면 팔까? …에이, 핵무기는 무슨…….”
레드 마피아가 무기를 밀매한다고는 하지만 설마 핵무기까지 팔까 싶었던 것이다.
“흐으음……!”
현수는 고심을 해보았다. 하지만 방법 없음이다. 정부와 군대가 나서야 해결될 일이기 때문이다.
“참, 그 건은 어떻게 되었지?”
현수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천지대학교 정문 부근으로 갔다. 공중전화박스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네에, 서울중앙지검 박새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일전에 장부를 보냈던 사람입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장부요……? 아, 정문부 검사장님 앞으로 세정 캐피탈의 장부 복사본을 보내셨던 분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네, 그러죠.”
현수는 수화기를 들고 기다렸다. 그렇게 3분쯤 지나자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네, 말씀하십시오.”
“아, 나는 서울중앙지검 이경천 검사입니다. 전화 주신 분은 곽해일 씨 본인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럼 하나만 여쭤보죠.”
“네, 말씀하십시오.”
“이 자료를 대체 어디서 얻으신 겁니까?”
“네……? 그건 왜요?”
“자료의 신빙성 때문입니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복사해서 보내셨는데 원본을 보관 중이십니까?”
“물론입니다.”
“그 원본은 나중에 증거 자료로 채택될 수 있으니 소중히 보관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현수는 이경천 검사와의 통화를 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핵심은 없고 빙빙 말을 돌리며 시간 끌기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저어, 이 검사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제게 급한 일이 있어 나중에 통화해야겠습니다. 이만 끊습니다.”
“여, 여보세요. 곽해일 씨! 곽해일 씨! 전화 끊지 마시고…….”
뚝―!
전화를 끊은 현수는 바로 옆 슈퍼로 들어갔다. 그리곤 음료수 한 박스를 구입했다. 그러자 건너편에 위치한 천지의료원에 병문안 온 사람처럼 보인다.
저쪽으로부터 경광등을 켠 순찰차 두 대가 쏜살처럼 달려온다. 현수는 천천히 걸어 주차장 입구 쪽으로 향했다.
이때 차에서 내린 경찰관 세 명이 공중전화 박스 쪽으로 뛰어간다. 어찌된 일인지 충분히 짐작된다.
“흐으음, 그랬군. 썩어빠진 놈들……!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네.”
현수는 천지의료원으로 들어갔다가 후문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곤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이때 핸드폰이 몸서리를 친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여보세요.”
“김현수 사장님이시죠? 역삼동 제일부동산입니다.”
“네에, 안녕하세요? 뭐 좋은 소식 있나요?”
“네, 사장님! 공시가인 230억만 주면 팔겠답니다.”
“세정빌딩을 230억에요?”
“네, 그렇습니다.”
“귀신이 또 나왔나 보네요.”
“아, 아셨습니까?”
“그렇지 않고야 그 가격에 나올 수가 없죠.”
“그, 그렇지요.”
부동산 사장이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수는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귀신 나오는 건물이니 그 가격엔 살 수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그쪽에 통보해 주십시오. 220억이면 사겠다고요.”
“220억 원이요?”
“네, 그 가격에 판다고 하면 사고 아니면 다른 동네 건물을 알아볼 생각입니다. 그 가격이면 싼 맛에 사지만 사면서도 귀신이 나온다 하니 조금 꺼림칙하기도 하네요.”
“네에, 그건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는 금방 끝났다.
“짜식! 급한 돈이 필요한가?”
갑자기 수십억에 달하는 돈이 필요한 일이라면 마약밀매밖에 없다. 하여 아공간의 장부를 꺼내 확인해 보았다.
“흐음, 그럼 그렇지.”
예상대로 마약 자금이 분명하다. 이번에 들여오는 것은 삼합회 조직 중 하나인 흑룡방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영악하게도 마약 거래 상대가 한둘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함은 두 가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거래선을 다양화해 놓으면 저쪽에 문제가 생겨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거래 상대가 많은 만큼 보다 폭넓은 안면이 생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