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그럼 오래 걸려요?”
“아뇨, 금방 끝납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길어야 30분쯤 걸릴 거예요. 약은 한 번만 먹으면 되고요.”
“정말요? 정말 그렇게 해서 제가 나을 수 있을까요?”
“제가 가진 비방이 효과가 있다는 전제하에선 그렇습니다. 하지만 효과가 없을 수도 있으니 기대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네, 근데 그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아뇨, 원하시면 지금 당장 해도 됩니다.”
“그래요? 그럼 지금 하죠. 근데 어디서 치료하죠?”
“여기서 하면 됩니다. 일단 이걸 마시세요.”
현수는 이곳에 오기 전에 그럴 듯한 용기에 회복 포션을 옮겨 담았다. 그것을 건네자 무엇이냐는 표정을 짓는다.
“치료에 앞서 복용하셔야 하는 겁니다. 몸에 해로운 성분은 전혀 없으니 한 번에 다 드십시오.”
“네, 알았어요.”
윤영지는 추호의 의심도 없는지 현수가 건넨 것을 천천히 들이켰다. 삶에 대한 의지가 확실하게 나타났다.
“다 드셨으면 소파에 누우세요.”
“그냥 눕기만 하면 돼요?”
“네, 진맥을 하면서 침을 몇 개 놓을 거예요. 아프지 않을 테니 긴장하지 마세요.”
“네에.”
현수는 윤영지의 맥문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곤 나직이 중얼거렸다.
“리커버리!”
샤르르르릉―!
서늘한 푸른빛 마나가 맥문을 통해 윤영지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그리곤 이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치면 내부의 저항군과 외부의 우방군이 손발을 맞춰가며 작전 수행하듯 했다.
그 결과 체내의 불합리한 부분들이 점차 본연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막힌 곳은 뚫렸고, 기능이 쇠한 것은 성해졌으며, 스러져 가던 것은 생생함을 되찾았다.
이 과정 내내 현수는 맥문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 결과 이전엔 모르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회복 포션과 리커버리가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를 느끼게 된 것이다.
‘우와……! 정말 대단하구나!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윤영지는 중증근무력증 이외에 자잘한 질병들이 있었다.
그간 고생했던 불면증, 가슴 두근거림, 신경과민은 갑상선 기능항진증의 결과였다.
이밖에도 신장과 간의 기능 저하로 인한 여러 증상이 있었다. 또한 축농증과 변비도 있었다.
이것들은 햇살에 아침 이슬 스러지듯 리커버리와 회복 포션의 협공에 하나하나 항복한다는 깃발을 들었다.
체내를 휘돌아 모든 것을 정상으로 회복시킨 후 둘은 유기적인 협력을 하며 최후의 보루인 뇌를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뭉쳐 있고, 정체되어 있던 미약한 마나는 둘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하나하나 풀어져 갔다.
현수는 눈을 감은 채 격전은 벌이고 있는 뇌에서의 마나 움직임을 체크했다. 소중한 임상 경험을 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이때 민윤서 사장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그 자리에 멈춘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방해해선 안 될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휴우∼!”
현수가 나지막한 한숨을 쉬며 물러앉았다.
“김 사장님!”
진료가 끝났다는 것을 직감한 윤영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이때 민윤서 사장과 시선이 마주쳤다.
하여 뭔가 말하려는 순간 민 사장이 둘째 손가락을 입술 앞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했다.
둘은 입정한 고승처럼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는 현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다.
“이제 시침을 하려 합니다. 다시 누워주시겠습니까?”
“네에.”
윤영지가 눕자 현수는 부러 침을 놓았다. 통점을 피해 침을 놓았기에 잠시의 따끔함 이외엔 없었을 것이다.
5분쯤 지난 후 침을 모두 회수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효과가 있으면 차도를 보일 겁니다. 불편하거나 아프진 않으셨지요?”
“네, 고맙습니다.”
윤영지가 정중히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민윤서 사장 역시 고개 숙여 사의를 표했다.
“동업자 좋다는 게 뭡니까? 제 능력이 되면 돕는 게 동업자 아닙니까? 그러니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하하, 네에. 오신 김에 맥주나 한잔 하시지요.”
“네, 날도 더우니 그럼 그럴까요?”
“제가 준비할게요.”
“아이고, 아냐! 내가 준비할게. 당신은 그냥 쉬어.”
민사장이 소매를 걷고 얼른 주방으로 갔다. 그리곤 뭘 하는지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이야길 들었어요. 수연이 언니하고 친하시다면서요?”
“아! 이수정 씨요?”
“네, 지금은 스튜어디스지만 연예인이 될 뻔했었지요.”
“그래요?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현수는 짐짓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둘이 앉아 있는데 마땅히 할 말이 없던 차이기 때문이다.
“이수정 씨는 길거리에서 캐스팅되어 제가 속해 있던 연예기획사에 왔었어요. 그때 우리 사장님이 수정 씨에게 연예인이 돼볼 마음이 없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요?”
“자긴 싫고 동생을 추천한다고 하더군요.”
“아! 그래서 이수연 씨가 연예인이 된 거군요.”
“네, 사장님은 둘 다 연예인으로 만들 생각을 했는데 끝내 거절하더군요. 자기 인연을 만나야 한다면서요.”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전에 아주 용한 점쟁이를 만나서 점을 쳤대요.”
“그랬더니요?”
현수는 일부러 장단을 맞춰줬다.
“하늘에서 일생을 함께할 인연을 만나게 될 거라고 했대요.”
“네에? 그래서 스튜어디스가 되었다고요?”
“거짓말 같겠지만 진짜 그래요. 비행기 안에서 만났지요?”
“그, 그렇긴 해도…….”
현수는 수정이 적극적이었던 이유를 알았다.
“여보, 뭘 그렇게 재미있게 이야기해?”
“아! 여보.”
민 사장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자자, 준비 다 했으니 갑시다.”
“그래요? 기대되는데요?”
“기대해도 됩니다. 자, 당신도 가지.”
“네, 여보!”
식탁으로 간 현수는 눈을 크게 떴다.
웬만한 식당의 차림 정도는 되었던 때문이다.
“이걸 다 민 사장님이 만든 겁니까?”
“네에, 요리하는 취미가 있어서요.”
“그래도 그렇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인데…….”
얼핏 봐도 새로 만든 요리가 최소한 네 가지는 된다. 해물 전골, 파전, 그리고 두부김치와 골뱅이 무침이 보였다.
그런데 어찌 짧은 시간 만에 만들었나 싶었던 것이다.
“재료가 냉장고 안에 다 있는데 어찌 못 만들겠습니까? 자아, 자리에 앉으십시오.”
자리에 앉아 흥겨운 술자리를 했다.
민 사장은 일부러 시간을 내 부인을 치료하러 온 현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현수는 아직 효과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과분한 대접을 받는다면서도 주는 술잔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늘은 7월 18일이다. 24일에 휴가가 끝나니 25일부터는 이들 부부 얼굴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임지인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러 너스레까지 떨면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반시간쯤 지났을 무렵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띵똥―! 띵똥―!
“응? 이 시간에 누구지? 당신이 나가 볼래?”
“그럴게요.”
윤영지가 방문객을 확인하러 나간 사이에도 둘은 술잔을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회사 일을 이야기했다.
현수는 곧 휴가가 끝난다면서 대한동물의약품에서 축산과 관련된 의약품 생산 및 개발에 박차를 가해달라고 했다.
그리곤 회복 포션의 성분 분석이 끝나면 보안을 유지해 달라고 했다. 민 사장이 의아해했지만 두고 보면 안다고만 했다.
아울러 국내에 없는 동안에도 드모비치 상사로 보낼 의약품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당부했다.
그러는 사이에 누군가가 왔다.
“어라, 형님……! 형님이 어떻게 여길……? 언제 귀국했어요? 그리고 바쁘지 않아요?”
“며칠 되었네. 그리고 하나뿐인 여동생을 만날 시간은 있어. 그리고 이 사람아. 매제 만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디……. 그 동안 잘 있었지?”
“아이고, 형님! 물론입니다. 형님이 나라를 잘 지켜주셔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술이 얼큰해서 그런지 민 사장의 말이 많아졌다.
어쨌거나 예고 없던 방문객은 윤영지의 사촌 오빠이다.
윤영지는 무남독녀이고, 사촌 오빠인 윤강혁은 무녀독남이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친남매처럼 지냈다고 한다.
“형님! 저와 동업하고 있는 김현수 사장입니다. 김 사장님! 이쪽은 우리 집사람의 사촌 오빠인 윤강혁 소령입니다. 제겐 친형님 같은 분입니다.”
“아! 네에. 반갑습니다. 김현수라 합니다.”
“네, 저도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윤강혁입니다.”
퇴근을 한 후라 그런지 윤 소령은 사복 차림이었다.
“우와! 이게 웬 요린가?”
“하하, 오늘 모처럼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자아, 앉으세요.”
윤강혁 소령까지 가세하자 술자리는 더욱 화기애애했다.
“그나저나 영지, 너는 아프다더니 이제 좀 괜찮은 거냐?”
“네? 아, 네에. 지금은 괜찮아요.”
보아하니 자세한 병명은 몰랐던 모양이다.
“매제, 자네 사업을 잘 되고?”
“네에, 요즘 아주 잘 나갑니다. 모두 여기 있는 김현수 사장님 덕분이죠.”
“그래? 김 사장님도 대한약품 공동 대표이사인 거야?”
민윤서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현수가 했다.
“아뇨, 전 조그만 무역상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천지건설 최연소 과장님이기도 해요.”
윤강혁의 눈이 커진다. 거의 대부분의 재벌 계열사들이 겸직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천지건설……? 그 회사에서 겸직을 허락했어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대화를 하며 여러 순배 술잔이 오갔다. 민 사장도 그렇지만 윤 소령도 예의를 잃지 않았다. 가장 나이 어린 현수 역시 연장자에 대한 대우를 깍듯이 했다.
술자리를 파하고는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야기를 하던 중 현수가 눈빛을 빛냈다. 윤강혁 소령이 국방과학연구소에 근무한다는 이야길 들은 것이다.
“저도 군 생활을 거기서 했습니다. 소화기 개발팀이었는데 혹시 강진원 중령님을 아시는지요?”
“지상무기체계의 강 중령님이라면 알지요. 그런데 김 사장님 장교로 예편한 겁니까?”
“아뇨, 저는 사병으로 복무했습니다.”
“흐음, 사병은 별로 없는데.”
윤 소령은 인원 체계를 더듬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저는 소화기 개발팀에서 사수로 근무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특등사수이겠군요.”
윤 소령은 현수가 어려 보이고 사병 출신임에도 말을 내리지 않았다.
“네, 어쩌다 보니 총을 잘 쏘게 되어 거기서 근무했습니다. 윤 소령님도 지상근무체계팀에 근무하십니까?”
“……!”
윤강혁 소령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마도 군사 비밀인 듯하다. 이때 민윤서 사장이 끼어들었다.
“형님! 학위는 따고 들어오신 거죠?”
“그럼, 그러니까 국방과학연구소에 발령이 나지.”
“형님 전공은 뭡니까?”
“나……? 그건 말할 수 없네.”
“아마도 군사 비밀인 모양이네요.”
현수가 끼어들자 윤 소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다른 이야기해요. 참, 오늘 뉴스를 보니 고이즈미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말을 했는데 군대는 어때요?”
“어떠긴……? 의중 파악과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
민윤서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때 현수가 물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선 그런 거 안 하지 않습니까?”
“네, 우린 별로…….”
“하긴, 그렇겠네요. 연구부서에 계신 분들이니까요.”
“형님, 이젠 국내에 계시는 거죠?”
“아마도 그렇게 될 듯해. 하지만 자주 나오진 못할 거 같아.”
“아! 그래요? 그럼 오늘 진탕 마셔요.”
“하하, 그래! 그럼 그래볼까? 영지, 넌 먼저 들어가서 자라.”
“오빠……!”
윤영지가 가볍게 째려보자 윤 소령이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다.
“깨갱! 아이고, 무셔라. 그렇다고 그렇게 째려보냐? 아무튼 가서 술이나 더 내와. 모처럼 허리띠 풀어놓고 한잔하게.”
“치이, 알았어요.”
윤영지가 또 한 번 째려보고는 술을 가지러 나섰다.
“그나저나 저 녀석 무슨 병을 앓았던 거냐?”
가볍게 지나는 말로 물은 것이다. 그런데 이미 취기가 오른 민윤서는 곧이곧대로 이야길 했다.
“뭐어……? 중증근무력증? 그, 그거 못 고치는 병 아니야?”
윤강혁 소령은 너무 의외인 듯 말을 더듬었다.
“그렇죠. 근데 오늘 우리 김 사장님이 와서 치료를 해줬으니 아마 나을 겁니다.”
“그럼, 김 사장님이 의사란 말이야?”
“아뇨, 그건 아니고요. 고명한 의원한테 침술을 사사하여…….”
민윤서 사장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윤 소령이 말을 끊은 탓이다.
“설마 민간요법……? 지금 입증도 안 된 방법으로 영지를 치료 했다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