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98화 (198/1,307)

# 198

그런데 FBI, CIA 등 미 3대 정보기관이 우리 방산업체는 물론 한국산 무기 수입 국가들까지 조사를 벌였다.

한국이 자신들이 장악한 무기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결코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노골적인 반기를 들 경우 자국 무기의 수출 계약을 파기하거나 추가 계약을 하지 않는 등 제재를 가할 것이다.

어쩌면 이전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무기를 도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실로 한심한 일이다.

“아무튼 국가 대 국가가 되니 국력에 차이가 있지만 동등, 내지는 비슷한 상태는 되어야 하는데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우리가 미국의 식민지라도 되는 것처럼 하는 꼴이 보기 싫더군요.”

“그렇지?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아무튼 영어 교육에 너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서 국가 발전에 지장을 주는지도 몰라요. 그 시간에 과학과 공학을 열심히 했다면 지금보다 더 발전되지 않았을까요?”

“내 생각이 그러하네. 그런데 우리 사회 구조에 많은 문제가 있네. 그래서 불합리한 일들이 많지.”

“네, 문과 전교 1등은 법대로 진학하고, 이과 전교 1등은 의대를 가는 세상이죠.”

“그래.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국가 발전과는 거리가 있는 전공을 택하는 것이지.”

“그런 사람들이 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한다면 대한민국의 현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 동의하네. 그건 정말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이지.”

홍 교수는 또 한 번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법조인들은 범죄 행위로 먹고 산다. 그리고 범죄는 국가 발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의사들은 생명을 구하지만 그 자체 역시 산업 발전이나 신기술 개발 등과는 거리가 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조금 더 현명한 사고를 가진 분들이 나라를 이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정치인들 가운데에는 그런 분들이 적은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런가? 그런 면에서 나는 어떤가?”

“네? 갑자기 그게 무슨……?

현수는 홍 교수의 말이 무든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자네를 만나자고 한 것은 젊은이의 잣대로 재었을 때 나는 어떨까를 묻고 싶어서였네.”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춘천에서 사네.”

“네, 그렇지요.”

“얼마 전, 우리 동네 국회의원의 유죄가 확정되었네. 그래서 의원 직을 잃었지.”

“그 사람은 어떤 죄를 지었는데요?”

“이권에 개입하여 뇌물을 수수했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지. 또한 불법 선거운동도 했지.”

“그 사람 한심당 소속이죠?”

“어라! 그걸 자네가 어찌 아나?”

“한심당 사람 말고 누가 또 그러겠습니까? 하여간……!”

말끝을 흐리는 순간 떠오르는 상념이 있었다.

“그런데 혹시 보궐선거에 출마하실 생각을 하신 겁니까?”

“그렇네. 내 미약한 힘이라도 정치권에 영향력이 있을까 싶어 출마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중이네.”

“교수님! 출마하십시오. 후원금도 내겠습니다.”

“되었네. 후원금 때문은 아니고 자네가 보았을 때 내가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네.”

“당연히! 당연히 대단히 바람직한 정치인이 되실 겁니다. 초심만 잃지 않으시면 말입니다.”

“초심?”

“네, 방송에 나오셔서 하신 말씀들을 들어봤습니다. 저와 의견을 달리하는 부문도 있지만 대부분 교수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아마 제정신 박힌 사람들 거의 전부 그럴 겁니다.”

“그런가? 그럼 한번 출마해 볼까?”

“네, 꼭 출마하십시오.”

이야기하는 동안 목적지에 당도했다. 중구 순화동에 자리 잡은 ‘이화고려정’이란 한정식 집이다.

3층으로 올랐는데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었는지라 손님이 없어서 마음 편히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물론 대화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인이 홍 교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왔었던 것이다.

이후엔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야기 끝에 홍 교수는 출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마냥 남들의 손에 국정이 농단9)되는 것을 두고 보기만 할 것이냐는 현수의 물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외에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여 스스로의 손으로 뜯어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출마 결심을 한 것이다.

현수는 유세 기간이 언제인지를 물었다. 상대로 나올 한심당 후보가 거물이라면 거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심당에 있기는 아깝다는 평을 듣기도 한 이인지라 대중들로부터 미움이 덜한 인물이다.

다시 말해 한심당은 싫지만 그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평을 받는 인물이다.

홍 교수가 나름대로 인지도가 높지만 상대 역시 만만치 않다. 하여 현수는 여차하면 매혹 마법을 써서라도 유권자들로 하여금 홍 교수에게 투표하도록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간 이후의 일이다. 하여 차선책으로 홍 교수에게 마법을 걸어주었다.

굳건한 마음으로 유세를 하라는 뜻에서 아이론 윌(Iron Will) 마법을 걸어준 것이다. 이 마법은 결심한 것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의지를 키워주는 정신계 마법이다.

신관들의 신성력을 보고 멀린이 창안한 것이다.

두 번째 버프는 전신의 세포를 새롭게 하는 바디 리프레쉬 마법이다. 유세 기간 동안 건강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식사를 마치곤 가까운 찻집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각종 현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주제를 홍 교수가 내놓으면 현수는 그것에 대한 생각을 내놓는 정도였다.

그렇게 꽤 시간이 흘렀다. 홍 교수는 찻잔을 들어 다 식은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네.”

“네, 말씀하십시오.”

또 다른 현안인가 싶어 현수는 눈빛을 반짝였다.

곧 국회의원이 될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즐거웠던 것이다.

“그날 말이네. 우보와 내게 대체 무엇을 어찌한 것인가?”

“네……?”

“시치미 떼지 말게. 비록 단 한 번의 만남이지만 나는 자네에 대한 신뢰가 크네. 그래서 오늘과 같은 자리도 만들었고.”

“……!”

무엇을 묻는 건지 어찌 모르겠는가!

현수는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기에 대답 대신 물 한 모금 들이켰다.

“나는 중풍이었고, 우보 선생은 보청기가 없으면 벼락이 쳐도 모르는 사람이었네. 그런데 자네를 만난 다음 날 우리 둘 다 정상인이 되었네.”

“그, 그러셨어요?”

“그 이틀 동안 내가 본 사람은 우보와 자네뿐이네. 말해주게. 대체 어떻게 하여 우리를 고쳐 주었는지.”

현수는 대답 대신 주위를 살폈다. 현재 둘이 있는 곳은 전통찻집이다. 그런데 손님이 없다.

주인도 잘 안 되는 장사에 미련이 없는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이다.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홍 교수가 설마 찻값 떼어먹고 도망가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어서인 듯하다.

“병원에서도 뚜렷한 방법이 없어 산막골로 들어간 것이네. 우보 선생 역시 그렇고……. 그런데 어떻게 그랬는가?”

“……!”

현수는 속 시원히 대답을 해줄 수 없는 난감함 때문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밀인가? 내게도 말해줄 수 없는가?”

“그렇습니다.”

“그럼 자네에게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그러는 건가?”

“그것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알겠네. 말하기 힘들다니 더 이상 캐묻지 않겠네. 아무튼 자네 덕에 다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네. 은둔하지 말고 참여하는 뜻으로 알아들었기에 출마하려는 것이네.”

“네, 꼭 큰 정치인이 되어주십시오.”

“노력하지. 기대에 부응하도록 나 자신을 채찍질하겠네.”

“네, 그러셔서 썩어빠진 정치판을 쇄신해 주십시오.”

“다음에 볼 때엔 어찌된 영문인지 알려주었으면 하네. 그래줄 수 있겠는가?”

이제 곧 러시아를 거쳐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다. 그렇기에 현수는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홍 교수와 헤어진 현수는 곧장 역삼동으로 향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김 사장님!”

부동산 사무소의 문을 열자 사장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인다.

“제가 늦은 거 아니죠?”

현수는 핸드폰을 꺼내 시각을 확인해 보니 4시 58분이다.

“아이고, 그럼요. 자, 이쪽은 세정빌딩의 소유주이신 유국상 사장님입니다.”

“아, 그러세요? 김현수라 합니다.”

“반갑소. 생각보다 엄청 젊은 친구구만. 나 유국상일세.”

“자자. 이제 자리에 앉으십시오.”

“험, 그러지!”

유국상이 거들먹거리며 자리에 앉자 현수는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 유국상의 곁에는 얇은 입술에 매부리코가 잔인한 인상으로 보이게 하는 유진기가 앉았다.

“참, 이쪽은 유 사장님의 자제분이신 유 전무님입니다.”

“아, 그러세요? 김현숩니다.”

“네에, 유진기라 합니다.”

형식적인 인사를 하자 중개인이 매매계약서를 꺼내놓았다. 그리곤 파일을 펼쳤다. 세정상사가 세입자들과 체결한 임대 계약서이다.

“김 사장님! 이건 입주해 있는 병원 등의 임대차 계약서입니다. 이건 이것들을 요약한 겁니다. 검토해 주십시오.”

서류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하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하지 않았던가!

“죄송한데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저 혼자 계약을 체결하기엔 금액이 커서 변호사를 불렀습니다.”

“네에? 그, 그럼……!”

중개인은 중개수수료를 변호사와 나눠야 한다 생각했는지 안색이 변했다. 다 된 밥에 초를 치나 싶었던 모양이다.

“아, 부동산 중개 건으로 부른 게 아니라 서류상 하자가 없는지 확인해 달라는 차원입니다.”

“그, 그러세요?”

현수는 가급적 별일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맞은편에 앉은 유진기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짜식! 돈 많은 부모 밑에 태어나 고생이라곤 한 번도 안 한 새끼인 모양이군. 계약하고 난 뒤에 뒷조사를 좀 해야겠어. 어느 집 새끼인지는 몰라도 만만하면 확 벗겨먹어야지.’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현수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잠시 후, 주효진 변호사가 들어왔다. 예의상 유국상과 유진기와 인사를 했다.

“변호사님, 이게 그 서류입니다. 검토해 주십시오.”

“네, 한번 보죠.”

오는 동안 전화로 대강의 내용을 설명했기에 주 변호사는 두말 않고 서류들을 대조했다.

잠시 시간이 흘렀지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주 변호사를 제외한 네 명 모두 이 거래가 정상적으로 끝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서류상 이상 없습니다. 도장 찍으셔도 되겠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계약을 하죠.”

서류에 모든 도장을 찍은 후 현수는 부동산 사무소 앞에 세워둔 차로 갔다 왔다. 그리곤 현금 31억 3천만 원이 든 박스들을 꺼내왔다.

30억 원은 우리은행에서 찾아온 것이지만, 1억 3천은 이전에 세정상사 금고에서 꺼내온 것이다.

“자, 확인해 보십시오.”

“그러지요.”

유진기가 나서서 돈다발을 세기 시작했다.

세정상사에서 사용하던 지폐계수기를 두 대나 가져왔지만 5만원권 62,600장을 세는 것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부동산 중개인에게 계좌번호를 물었다. 그리곤 은정으로 하여금 중개수수료를 송금토록 했다.

당연히 입이 쫙 찢어지도록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했다.

잠시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유국상이 중개인에게 수수료를 얼마나 주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현수가 1억 3,200만 원을 지불했다고 하자 세어놓은 돈다발에서 1억 3,200만원을 말없이 밀어놓는다.

그리곤 중개수수료에 대한 영수증을 요구했다. 중개인은 즉각 두 장의 영수증을 만들어왔다.

한참이 지나 금액이 정확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유국상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젊은 친구! 화통해서 좋았네.”

“네, 귀신이 나온다 하여 조금 찝찝하기는 하지만 좋은 가격에 사서 저도 좋습니다.”

“12층 사무실은 내일 비우겠네.”

“네, 그렇게 해주십시오.”

유국상과 유진기가 나간 후 현수는 주 변호사에게 등기를 의뢰했다. 서류 검토만 하고 수임료를 지불하겠다고 하면 안 받을 것 같아서이다.

부동산 사장은 이마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말하길 세정빌딩에 공실이 생길 경우 가장 먼저 채워지도록 노력하겠다며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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