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그간 부동산 사장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가 둔화되면서 수입이 많이 줄었던 때문이다.
게다가 자식들 둘 다 제법 비싼 수업료를 내야 하는 사립대엘 다니고 있어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지난 학기 등록은 학자금 융자를 받아 간신히 해결했다. 2학기 역시 그래야 한다 생각하고 있었다.
사무실 임대료조차 내는 것이 빠듯할 정도로 수입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라비틀어진 논에 물이 콸콸 들어가듯 현금만 2억 6,400만 원이 들어왔다.
어찌 좋지 않겠는가! 속으론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였으나 체면이 있어 애써 참고 있는 중이다.
13장 이거 살 빼는 데 특효예요
“안녕하셨습니까, 사장님!”
“여어, 이게 누구신가? 김현수 과장. 오랜만이네.”
현수가 인사를 하자 서류에 사인하고 있던 신형섭 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반색한다.
그리곤 다가와 현수를 와락 안아줬다.
“자, 자리에 앉지.”
“네에.”
현수가 소파에 앉자 조인경 대리가 찻잔을 들고 들어온다. 그리곤 잊지 않고 한마디 한다.
“몸에 좋은 더덕차예요.”
“역시 우리 조 대리밖에 없어. 하하, 그런데 조 대리가 김 과장에게 관심이 있나 본데?”
“네? 그게 무슨……?”
“이거 나한테만 준다던 거였거든. 안 그래, 조 대리?”
“어머, 사장님은……! 호호, 제가 김 과장님에게 관심 가진 건 어찌 아셨대요? 들킨 거예요?”
높은 사람들과 많은 접촉이 있어 그러는지 조 대리는 농담처럼 진담을 이야기해 놓고는 쏙 빠져나갔다.
“그럼 말씀 나누세요.”
조인경 대리가 나가는 동안 현수는 쓴웃음만 지었다. 헛물켜고 있는데 어찌 말할까 싶었던 때문이다.
한데 어찌 마냥 그러고 있을 수만 있겠는가!
“출장 다녀오셨다고요?”
“그래. 독일에 다녀왔네. 참, 휴가 잘 즐겼나?”
“네, 덕분에 아주 편히 지냈습니다.”
“언제까지지?”
“24일까지입니다.”
“허어, 벌써 3개월이 흘렀나? 세월 참 빠르네. 안 그런가? 자네와 정글을 누비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네에, 정말 빨라서 너무 아쉽습니다.”
“하하! 그렇겠지. 참, 자네에게 미안하네.”
“네? 뭐가요?”
“사실 자넬 비서실에 두려고 했네. 그런데 자네 같은 인재를 국내에서 썩히면 안 된다는 말들이 하도 많아서……. 그래서 여전히 해외영업부 소속이네.”
“저도 그게 편합니다. 거기 천지약품도 있고 하니 국내에 있는 것보다는 그쪽에 있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그래,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니 내가 더 고맙네. 언제든 돌아오고 싶으면 연락만 하게. 알았지?”
“네에, 사장님!”
“자, 차를 들지.”
“네, 사장님!”
더덕차라 했는데 일반적인 것이 아닌 듯하다.
더덕의 즙과 석청10)이 섞인 듯하다.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쓴맛과 신맛이 느껴진 때문이다.
“조 대리가 부쩍 내 건강에 신경을 써서 늘 좋은 걸 먹지. 어떤가? 더덕과 석청의 조화가!”
“달고, 쓰고, 신 맛도 나지만 건강에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지?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예까지 왔는가?”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휴가가 24일에 끝납니다. 그런데 며칠 더 연장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흐음, 하계휴가 기간이니 그걸 쓰면 되겠군. 예서 바캉스를 하고 가게.”
신형섭 사장이 너무도 쉽게 허락하자 현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3개월이나 놀고 또 휴가를 달라는 말을 하려니 염치없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왜? 조 대리랑 같이 가고 싶어? 그럼, 조 대리도 휴가를 내주지.”
“네에? 아, 아닙니다.”
“하하, 농담일세. 그나저나 저녁 식사 안 했으면 같이 하세.”
“네에? 아! 네, 그러겠습니다.”
“흐흠, 조 대리에게 퇴근해도 되는지 허락 좀 받아보세. 예서 잠시 기다리게.”
신형섭 사장은 현수로부터 선물 받은 다이아몬드 덕분에 100점짜리 남편이 되었다.
그래서 전에는 늦게 퇴근한다면서 바가지를 긁었는데 이젠 새벽에 들어가도 그런 소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현수와 더불어 오랜만에 술 한잔할 생각이다.
너무 과분한 선물을 받았는데 마땅히 갚을 방법이 없기에 술이라도 사줄 생각을 한 것이다.
신 사장이 현수를 데리고 간 곳은 대치동에 위치한 ‘수담’이란 한정식 집이다.
전복죽으로 시작하여 활어회와 궁중송이신선로, 랍스터회와 찜, 그리고 대하 소금구이와 한우 꽃살구이까지 그야말로 거나한 상을 받았다.
이 자리엔 현수와 신형섭 사장, 그리고 조인경 대리가 있었다. 조 대리가 현수에게 흑심 품었음을 고백하고 신 사장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신 사장은 입안의 혀처럼 마음에 드는 일처리를 해왔던 조 대리를 아끼는 마음이 각별하다. 그래서 윙크까지 해가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현수는 곁에 앉은 조 대리가 약간 불편했다. 하나 신형섭 사장의 호의를 알기에 내색하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그간 있었던 일이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청담동 클럽 제이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그후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었던 일들이 화제에 오른 것이다.
신 사장은 이야기 전개에 따라 인상을 찌푸리기기도 하고, 파안대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변병도와 그의 부친 변의화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무조건 현수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자, 늙은 나는 들어갈 테니 젊고 팽팽한 사람들끼리 2차를 가. 알았지?”
“네에, 사장님! 안녕히 들어가세요.”
“그래, 김 과장! 우리 조 대리 잘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신형섭 사장이 탄 차가 떠나자 조인경 대리가 기다렸다는 듯 팔짱을 낀다.
조인경은 직장 동료이며 비서실에 근무하는 실세이다.
이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인데 내부에서 편들어줄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재과의 곽 대리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인사부의 이준섭 차장 역시 큰 힘을 발휘하기엔 역부족이다.
신형섭 사장이야 어떤 부탁을 하든 다 들어주겠지만 사소한 것을 시시콜콜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그렇다면 조인경 대리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매정하게 팔을 떨쳐 내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싶었던 것이다.
‘허, 참!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계산적이 되었지?’
현수는 조 대리의 순정을 이용하려는 속내가 마땅하지 않았다. 하나 내색하진 않았다.
“우리 이제 어디로 가죠?”
“그냥 조금 걷는 게 어떨까요? 배도 부르니.”
“네에. 좋아요.”
현수와 조인경은 간간이 대화를 하며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다. 낮에 잠깐 비가 와서 그런지 기온이 약간 내려가 상쾌한 기분이었다.
조 대리는 회사 내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현수는 간간히 맞장구를 쳐 주었지만 속내는 어찌하면 이 저돌적인 대쉬를 멈추게 할까를 생각했다.
‘서로 호감 갖는 좋은 동료로만 남게 하는 방법은 없나?’
강연희 대리가 귀국을 하고 자신과의 관계가 드러나면 어쩌면 배반감에 치를 떨지도 모른다. 천지건설의 양대미녀로서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으음, 사람의 마음을 어쩔 수도 없고……. 제기랄!’
조 대리와의 산책은 거의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둘은 커피숍에 들어가 하던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헤어질 때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쩌겠는가!
부우우웅! 부우우웅―!
샤워를 마치고 비망록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던 현수는 진동하는 핸드폰을 꺼냈다.
‘흐음, 드미트리가 이 시간에……? 웬일이지?’
“여보세요.”
“아! 김현수 사장님, 깊은 밤에 전화드려 혹시 실례가 되는 건 아닌지요?”
드미트리는 점점 저자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시각에 웬일이십니까?”
“네, 화물 확인 일정이 확정되어 알려 드리려고요.”
“그래요? 언제지요?”
“7월 28일 일요일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잠깐만요. 흐음…….”
현수는 날짜를 확인해 보았다.
7월 24일에 3개월짜리 포상휴가는 끝났다.
그것에 이어 25, 26일과 29, 30일이 하기 휴가이다. 중간에 토요일과 일요일이 끼어 있어 6일간의 휴가인 셈이다.
날짜가 중간에 끼어 있어 어정쩡하지만 어쩌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날 확인하는 것으로 하지요.”
“네에, 전과 마찬가지로 항공편과 숙식은 저희 쪽에서 책임지겠습니다.”
“고맙군요. 보스께 감사드린다 전해주십시오.”
“네, 꼭 전하겠습니다. 그럼 편안히 쉬십시오.”
드미트리가 전화를 끊자 현수는 상념에 잠겼다.
‘가기 전에 회사를 만들어놓고 가야 하는데. 으으음!’
이실리프 무역상사와 별개로 이실리프 상사를 만들 참이다.
‘내일 주 변호사님과 상의해야겠군. 그러기 전에 먼저 광고부터 해야 해.’
현수는 광고문안을 작성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신문사와 통화를 했다. 그 결과 1면 하단에 5단 통으로 광고가 나갔다.
당사는 콩고민주공화국에 대단위 커피 및 바나나 농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단위 축산 및 가공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신입 및 경력사원을 모집합니다.
적극적인 지원을 바랍니다.
지원 요건:해외 근무에 결격 사유가 없을 것.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함.
국내직
1. 총무부:행정 제반 업무 유경험자 및 신입사원
2. 경리부:경리 제반 업무 유경험자 및 신입사원
3. 건설부:건설 제반 업무 유경험자 및 신입사원
4. 조달부:조달 제반 업무 유경험자 및 신입사원
국외직(콩고민주공화국 근무)
1. 총무부:행정 제반 업무 유경험자 및 신입사원
2. 경리부:경리 제반 업무 유경험자 및 신입사원
3. 조달부:조달 제반 업무 유경험자 및 신입사원
4. 설비부:각종 설비 실무 유경험자 및 신입사원
5. 농무부:커피, 바나나, 야자수 재배 유경험자
6. 축산부:육우, 비육우, 양돈, 양계 유경험자
7. 비료부:축산분뇨를 이용한 유기질 비료 제조 관련 경험자
8. 도축부:도축 유경험자
9. 가공부:축산물 가공 유경험자. 우유 가공 유경험자
10. 의료부:내과, 외과, 정형외과, 피부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소아과, 방사선과, 영상의학과 의사 및 간호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조무사 면허증 소지자
11. 통역부:프랑스어, 스와힐리어 회화 가능자
당사는 특별한 학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4년제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능력만 인정되면 채용할 계획입니다.
출신 대학과 영어 실력은 전혀 고려치 않습니다.
참고로, 콩고민주공화국 근무의 경우엔 1년에 한 번 귀국할 수 있습니다.
이실리프 상사 대표이사 김현수
이전 비망록엔 건설 부문 사원 모집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뺐다. 모든 일을 혼자서 다할 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설 부문은 초창기에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후엔 유지, 보수 정도만 감당할 인원만 필요하다.
그래서 천지건설이 기왕에 콩고민주공화국에 진출하는 상황이니 그곳에 맡기려고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현수는 천지건설 본사로 갔다. 그리곤 곧장 최규찬 해외영업부장을 찾아갔다.
해외에서 벌어질 공사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토요일이지만 거의 모든 직원들이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있는 상태였다.
“최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우리 해외영업부의 영웅인 김현수 과장 아닌가! 그래, 휴가는 잘 즐겼나?”
“네, 아주 잘 즐겼습니다.”
“그래, 우리 김 과장이 여긴 웬일인가? 옳아, 이제 휴가가 끝나 임지 배정받으러 왔는가?”
“임지야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지부가 아닙니까?”
“그렇지. 그 공사 끝날 때까지는 자네 도움이 필요하네.”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과의 관계를 알기에 하는 말이다.
“네, 그리고 이건 제 여름휴가 신청서입니다.”
현수가 내민 서류를 받아 든 최 부장이 확인도 않고 한쪽에 밀어놓는다.
“사장님께서 지시하여 알고 있네. 그래, 여기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가는 게 낫겠지.”
“네, 그리고 이것도 검토해 주십시오.”
이번에 현수가 내민 것은 제법 두툼한 서류였다.
“이게 뭔가?”
“제가 콩고민주공화국에 농장 하나를 개설하려 합니다.”
“호오, 농장을……?”
“네, 거기에서 일할 사람들을 위한 숙소 및 축사 등을 건축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일을 천지건설에 맡기려 합니다.”
국내 공사일 경우에도 그렇지만 천지건설이 나서려면 일정 규모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이상의 공사가 되어야 하는데 농장 숙소와 축사라는 말에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