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그래도 넘겨준 서류인데 면전에서 검토조차 하지 않을 순 없다. 그렇기에 최 부장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표지를 넘겼다.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회사가 시공을 맡으려면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가 되어야…… 허억!”
첫장을 넘기고 다음 장을 넘긴 최 부장의 눈이 튀어나오려는 듯 커졌다.
20평 규모 주택 건설 3만호라는 글귀가 보인 때문이다.
현수는 주먹구구식이긴 하지만 얼마만한 인원이 필요할지를 계산해 보았다.
최초 계산은 약 3만여 명이었다. 그런데 어림없을 듯하다.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니 대략 6만여 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동자와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의 숫자이다.
아무튼 초창기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 모두에게 숙소를 제공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부부 위주로 고용할 생각을 해보았다.
따라서 그들에게 제공할 숙소 3만호가 필요한 것이다.
어제 이춘만 지사장은 팩시밀리를 전송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가 김현수에게 반둔두 지역의 땅 5,000만 평을 무상으로 불하한다는 법률이 제정되었다는 내용이다.
기간 또한 명시되어 있는데 사업을 지속하는 한 100년간 사용을 보장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에 대한 법률적 뒷받침을 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에 관한 특별법안이 마련되는 중이다.
한시적 특별법이기에 거의 현수에게만 적용되는 임시 법안을 만드는 셈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국민들 가운데 최소 1만 명을 고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애초의 인원에서 대폭 감소한 것이다. 물론 가에탄 카구지의 영향력 덕이다.
또한 농장 및 축산단지에서 생산되는 것 가운데 최하 5%는 콩고민주공화국 내수에 사용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초 법안엔 20%였으나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이 현수의 운신 폭을 넓히기 위해 은근한 압력을 넣은 결과라 한다.
어쨌거나 6만에 달하는 종업원들에게 대통령 경호원에 버금가는 급여를 제공할 수는 없다.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경호원의 급여가 월 10만원 선이다.
그러니 한 달 월급이 8만원이라면 48억이고, 9만 원이라면 54억 원이 소요된다. 한국에서 이 정도 인원을 고용하려면 최소 1,200억 원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고수익이라 할 수 있다.
단순 노동에 고용되는 민간인 급여가 월 40$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6만 원이다.
사람을 뽑는 것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실업률이 무려 50%나 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저, 정말 이런 공사를 할 생각인가?”
“일단 숙소 건설이 먼저이고, 차츰 탁아소, 학교, 보건소, 도서관, 영화관, 슈퍼마켓 등을 지어나갈 겁니다.”
“……!”
“뿐만 아니라 냉동 창고와 냉장 창고도 필요하고, 육우, 젖소, 돼지, 닭을 기르기 위한 대단위 축사도 지어야지요.”
“……!”
“또한 통조림 공장도 있어야 하고 육가공공장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농장이 유지될 수 있을 각종 시설물들이 있어야지요.”
최 부장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져 있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현수는 계속해서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최 부장이 입을 연다.
“기, 김 과장!”
“네? 왜요?”
왜 하던 말을 끊느냐는 표정을 짓자 최 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이거 장난 아니지?”
“물론입니다. 혹시 오늘 아침 신문… 아, 여기 있네요. 여기 이 광고가 사원을 뽑기 위해 낸 겁니다.”
최 부장은 5단 통으로 나 있는 광고를 보았다.
맨 아래에 ‘이실리프 상사 대표이사 김현수’라 쓰여 있다.
“이, 이게 정말이란 말인가?”
“네에, 정말입니다. 지금 콩고민주공화국에선 5,000만 평을 제게 무상으로 불하해 주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끄으응! 5천만 평이라니…….”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입이 딱 벌어진 최 부장을 본 현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떤 마음인지를 짐작한 것이다.
“아무튼 이 정도를 지어야 하는데 우리 회사에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 물론이네. 그리고 고맙네. 자넨 우리 해외영업부에 필수불가결한 인물이네. 하하! 하하하!”
최 부장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자 직원들이 웬일인가 싶어 기웃거린다.
어찌 이 기회를 놓치겠는가!
즉각 작은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다. 직원들 모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인건비와 물가가 싼 콩고민주공화국이라 할지라도 3만호 건설은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부대시설도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예를 들어 돼지 70만 마리를 기를 돈사의 경우 약 7,000여 동이 지어진다. 이것의 연면적만 약 22만 평이다.
최 부장은 즉각 사장실로 보고했다.
현수는 쑥스럽지만 다시 한 번 브리핑을 했다. 모여 있던 임원들은 대체 어디서 재원을 마련할 것인지를 물었다.
이에 가에탄 카구지 등과 적당히 나눈다는 말을 했다.
수천억이 들지도 모를 일을 개인 돈으로 한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가 회사를 나선 이후 임원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현수를 차장, 또는 부장으로 승진시키자는 안건이 제시된 때문이다.
이 일은 조금 더 추이를 보고난 뒤에 결정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실리프 상사와 시공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고, 계약금을 건네받은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기획3팀장 박진영 과장은 들리는 소문에 이마를 짚은 채 털썩 주저앉았다.
과장으로 진급한 지 겨우 석 달 된 김현수를 차장 또는 부장으로 승진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다.
‘이런 빌어먹을……! 대체 김현수 이놈은……! 끄으응! 미치겠군.’
박진영 과장은 예정에 없던 월차 휴가를 냈다. 그리곤 곧장 술집으로 향했다. 끓어오르는 속을 시원한 맥주로 달래려 한 것이다. 하나 어찌 그렇게 되겠는가!
박 과장은 진정한 다크호스가 된 김현수를 어찌 견제할지를 고심했다. 안 그러면 마음속의 연인 강연희 대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낀 때문이다.
* * *
“사장님, 이 돈 전부 은행에 넣어요?”
“네, 일단 입금시켜 두세요.”
은정은 현수가 가져갔던 30억 원 전부를 다시 가져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실리프 상사 사옥 마련을 위해 가져간 돈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건물 안 사신 거예요?”
“아뇨, 샀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 돈을 다시…….”
“아, 이 돈은 러시아에서 들어온 거예요.”
현수의 말은 사실이다. 차에 싣고 온 돈은 전액 드미트리를 통하여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세정파의 두목 유국상과 계약한 것은 어제 오후 5시 30분쯤이다. 그때 전액 현금으로 매매대금을 지불했다.
이 돈은 마약 밀매 자금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유진기의 비망록에 기록된 대로라면 새벽 2시쯤 지불되었을 것이다.
하나 그 돈은 그렇게 사용되지 않았다.
7월 19일 저녁 9시 30분!
그러니까 현수가 조인경 대리와 한가롭게 거닐던 그 시각.
유진기의 집 안방에 놓여 있던 박스 속의 현금 전부는 이슬처럼 증발해 버렸다. 그리곤 곧장 현수의 자동차 트렁크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귀환 마법이 걸린 때문이다.
그것도 모르고 유진기는 부하들을 닦달하고 있었다.
이번 거래에 실수를 하면 치명적인 영향이 끼쳐질 것임을 직감한 듯하다.
밤 12시 30분, 부하들과 함께 약속 장소로 나가려던 유진기는 박스가 가볍다는 것을 느끼곤 대경실색했다.
“아악!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내 방에서 돈을 빼돌렸어?”
유진기가 비명에 가까운 고성을 지르자 잠들어 있던 유국상이 나왔다. 그리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돈이 없어졌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이리저리 뒤져 보았으나 어찌 찾을 수 있겠는가!
집 안에 들여다 놓은 후에 현금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CCTV가 있는 방에 박스들을 보관했다.
따라서 누군가의 손을 탔다면 분명 집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여 녹화된 테이프를 찾아 확인해 보았으나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아무도 드나든 바 없는 방에서 박스 속의 돈만 쏙 빠져나간 것이다.
박스 안에는 바닥에 깔아놓은 신문지만이 있을 뿐이다.
그 신문지에는 주식 투자를 하라는 광고가 실려 있다.
그리곤 오른쪽 위에 가로세로 3㎝ 정도 되는 문양이 인쇄되어 있다. 겉보기엔 광고한 기업의 홈페이지와 연계되는 QR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움직임이 멈춘 채 10분이 지나면 현수의 자동차 트렁크 속의 박스 안으로 이동하게 하는 1회용 마법진인 것이다.
그래서 마나석 대신에 가루가 약간 사용되었다.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냐고?”
유진기가 길길이 날뛰었지만 누가 나서겠는가!
잠시 후, 유국상이 거래 상대에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흑룡방에서 뭐라 떠들었지만 이틀 뒤로 거래를 미뤘다.
그리곤 곧장 케이먼 제도 비밀계좌의 돈을 인출하려 했다.
하여 인터넷에 접속하여 순서에 따라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리곤 잔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다음 순간 유국상과 유진기는 눈을 비볐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글귀가 보였기 때문이다.
화면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 Your account balance is zero. 』
‘당신의 잔고는 0원입니다’라는 뜻이다.
또 다른 계좌도 확인했으나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즉시 국제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그랬더니 7월 16일 화요일에 전액 인출해 놓고 무슨 소리냐는 이야길 들었다.
그런 적 없다고 길길이 뛰었지만 담당자의 음색은 냉정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다른 계좌로 송금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므로 은행엔 아무런 책임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송금된 계좌번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은행원은 상대 계좌번호를 불러주었다.
다음 날 아침, 유진기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사실 확인을 했다. 그 결과 러시아로 돈이 갔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한국 내에서 아무리 힘을 쓴다 한들 러시아의 계좌까지 알아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유국상과 유진기 부자는 졸지에 모든 것을 잃었다.
남은 것은 조직원들의 명의로 해놓은 것뿐이다. 그런데 부하들의 눈치가 심상치 않다. 하여 끙끙 앓기만 했다.
세정 캐피탈에는 충분한 자금이 있지만 인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떤 미친놈이 세정의 장부를 중앙지검에 보내는 바람에 내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유진기로서는 이래저래 미치고 환장할 상황인 것이다.
* * *
“이은정 실장님!”
“네, 사장님.”
“요즘 이 실장님도 그렇고 수진 씨나 지혜 씨도 살이 좀 쪄 보이네요. 내 눈이 잘못 된 건가요?”
“네……?”
웬 실례의 말이냐는 표정을 짓고 있다. 여자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아니던가!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그렇게 보여서.”
“아! 네에. 사실 조금씩 불었어요. 요즘 야근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매일 밤마다 뭘 좀 사먹었거든요.”
이전 생활에 비해 넉넉한 월급이 가져다 준 부작용이다.
은정과 수진, 그리고 지혜는 업무가 끝나도 곧바로 퇴근하지 않는다. 대신 모여서 수다 떠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도 내일 할 일을 미리 당겨서 조금씩 한다. 그러다가 출출해지면 인근 음식점들을 섭렵했다.
그 결과 대략 2㎏ 정도 몸무게가 늘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는데 현수가 지적했던 것이다.
“내게 살 빼는 데 좋은 게 있는데 조금 줄까요?”
“어머, 정말요? 효과는 어느 정도인 건데요?”
“그건 본인이 직접 확인해 보세요. 자, 여기요.”
현수가 넘긴 것은 투명한 유리병 속에 담긴 분말이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자기 전에 티스푼으로 하나를 물에 타서 마시면 돼요.”
“매일 밤이요?”
“네, 한 이십 일 정도 먹으면 효과가 있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은정은 자신의 몸매까지 걱정해 주는 현수를 보며 생끗 미소 지었다. 이때 현수가 두 병을 더 꺼낸다.
“이 실장님만 드리면 수진 씨와 지혜 씨 삐치지요? 자, 이건 두 사람 들어오면 전해주세요.”
“네? 아, 네에.”
은정은 두 병을 더 받았다. 그런데 안색이 조금 그렇다.
자신만이 받아야 할 관심을 수진과 지혜가 빼앗는다는 느낌이 든 때문이다.
‘치이, 괜히 그 계집애들 취직시켜 줬어. 이럴 줄 알면 아주 호박만 추천하는 건데.’
은정이 나가자 현수는 비망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2013년 7월 20일.
쉐리엔 분말 300g 이은정 실장에게 지급.
『전능의 팔찌』 제9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