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1장 잡초 쉐리엔의 변신
쉐리엔은 아르센 대륙엔 지천으로 널려 있는 잡초의 이름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멀린의 레어를 떠나 테세린에 이르는 길 곳곳에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코찔찔이 세실리아네 여관 뒷마당에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현수가 지구로 차원 이동을 감행했던 캐러나데 사막의 바위 아래에도 있었다. 이중 가장 많은 곳은 멀린의 레어로부터 알베제 마을에 이르는 숲속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곳엔 그야말로 지천에 널린 것이 쉐리엔이었다.
여름이면 하얀 꽃이 핀다는데 그 향이 제법 달콤하다고 한다.
아직 여름이 되지 않았기에 현수는 쉐리엔의 향기를 맡아보지 못한 상황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아르센 대륙에서 많은 여자들을 보았다.
올테른에선 세실리아, 테세린에선 로사 같은 평민을 보았다.
귀족으로는 카이로시아와 로잘린, 그리고 그녀의 모친인 세실리아 자작부인이 있다.
이밖에도 맨 처음 방문했던 알베제 마을 사람들도 있다.
어쨌거나 아기 낳을 날이 가까워진 로사를 제외한 여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어느 누구도 뚱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수와 동행하고 있는 줄리앙의 경우 음식을 먹는 양이 다른 용병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허리는 24인치를 넘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이봐, 줄리앙! 전에 보니까 너 엄청 먹던데 그렇게 먹는데도 어떻게 살이 안 쪄?”
“내가 많이 먹긴 뭘 많이 먹는다고 그래?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나중에 시집가는 데 지장 있으니까.”
“얼씨구, 시집은 가려고?”
“당연한 거 아냐? 나, 아직 꽃다운 청춘이야. 그리고 날 노리는 놈들도 많다고. 저기 보이는 저 자식 있지?”
줄리앙이 가리킨 용병은 일행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무식한 놈이다. 한 끼 식사에 한국식으로 치면 공깃밥 다섯 그릇을 순식간에 뚝딱 해치우는 대식가이기도 하다.
“저 녀석이 왜?”
“아무래도 저놈이 날 노리는 거 같아.”
“그래……? 내가 보기엔 안 그런 거 같던데?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냈어?”
“짜식이 날 보는 눈이 늘 음흉하잖아. 그래서 재수없어!”
줄리앙이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 현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줄리앙이 지목한 사내가 줄리앙을 바라보는 이유는 자신과 거의 비등하게 먹어치우는 여자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녀석이 현수에게 했던 말이기에 기억하는 것이다.
어쨌든 줄리앙은 한 끼 식사에 공깃밥 네 그릇 정도를 먹는다. 그리곤 저녁 때 30분쯤 검을 휘두르는 것 이외엔 별다른 수련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날씬하기에 물어본 것이다.
“아무튼 줄리앙의 몸매가 유지되는 이유를 알고 싶은데 가르쳐 줄 수 있어?”
“네가 내 목숨 구해준 거 하나를 까준다면 말해주지.”
자신의 목숨 값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잠시 말을 멈췄다.
“……! 너 그렇게 싸구려야?”
“싸구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네 자신을 조금 더 존중해 주는 건 어때?”
“뭐, 싫으면 말고.”
줄리앙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현수는 몸매 유지 비결이 궁금했다.
“아, 아냐! 좋아, 하나 까줄게. 말해줘.”
“그게 그렇게 궁금해? 너도 내게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지? 설마 그런 거야?”
눈빛이 반짝인다. 특정한 대답을 원하는 모양이다. 현수는 선을 그어놓지 않으면 지구에서처럼 여자들이 꼬인다 생각했다.
“아닌데? 나 사귀는 여자 있어.”
“정말……?”
이번엔 줄리앙이 말을 끊었다. 그리곤 진위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듯 시선을 맞춘다.
그러고 보니 조금은 매력적인 얼굴이다.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 기름기로 젖어 있지만 풍성한 머리카락이 반곱슬이라 파마를 한 듯하다.
얼굴의 절반은 차지할 듯 커다란 눈망울을 보면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아 보이기도 한다.
콧날도 곧고, 오똑하다. 입술은 한국의 잡지책 표현대로 한다면 ‘키스를 부르는 연분홍’이다.
하지만 하는 짓은 선머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왈가닥이다.
가꾸기만 하면 꽤 아름다운 얼굴임에는 틀림이 없다. 게다가 몸매는 정말 끝내준다.
튀어 나올 부분은 강조하듯 튀어 나왔고, 허리는 잘록하다 못해 부러질 듯 갸날퍼 보인다.
이는 잘 발달된 둔부가 아래를 받쳐 주기 때문이다.
아래위는 불룩한데 중심부만 쏙 들어가는 형국인 것이다.
현수는 세 번이나 목숨을 구해준 자신에게 줄리앙이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듯하여 아예 싹을 잘랐다.
“그래, 나 사귀는 여자 있으니까 넘보지 마.”
“뭐라고? 내가 널… 넘봐……? 제길, 날 뭘로 보고……. 난 나보다 급수가 낮은 인간에겐 관심 없으니 내가 널 노릴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버리도록 해.”
말은 이렇게 했지만 눈빛은 빛나고 있다. 내심이 아닌 것이다.
“아무튼 어떻게 해서 살이 안 찌는지나 알려줘. 선천적인 체질이라는 말은 하지 말고.”
“알았어. 저기 저거 보여?”
줄리앙이 가리키는 곳에는 별다른 게 없다. 커다란 바위와 그 그늘에 잡초들만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거 뭐? 내 눈엔 바위와 잡초밖에 안 보이는데.”
“잡초……? 하긴 네 눈엔 저게 잡초로 보이겠지. 저기 있는 저 잡초의 이름은 쉐리엔(Sherien)이야.”
“쉐리엔?”
“그래, 저걸 잘 짜서 즙을 마시면 살이 안 쪄. 찐 살은 쏙 빠지고……. 맛도 제법 달지.”
“정말?”
“속고만 살았나? 그리고 내가 너한테 왜 거짓말을 해? 내 목숨 값 하나와 바꾼 건데.”
“……!”
줄리앙이 지목한 것은 현수도 많이 본 것이다.
너무 흔해서 하나도 귀해 보이지 않는 저것이 살 빼는데 효과가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현수는 속는 셈치고 바위 아래와 그 인근에 있던 쉐리엔을 전부 베어 왔다. 뿌리만 온전하면 금방 다시 자란다 하였기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싹쓸이를 했다.
그리곤 아공간에 넣으려다 생각을 했다.
잠시 후, 쉐리엔의 절반은 건조 마법으로 건조되었다.
현대의 기술로 말하자면 동결 건조 시킨 것이다.
이렇게 하면 영양소 파괴 없이 수분만 제거한 상태가 된다. 물을 부으면 다시 원상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즙을 내서 먹으라는데 이렇게 한 것엔 이유가 있다.
상당수 여자들이 변비에 시달린다. 그런데 쉐리엔도 식물이므로 상당한 섬유질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냉동 건조 했다가 적절한 크기로 가루 낸 뒤 물에 타 먹이면 살이 빠지는 효능 플러스 배변을 돕는 기능까지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고운 분말이 아닌 약간 거칠거칠한 분말로 만들었다.
그것을 은정과 수진, 그리고 지혜에게 주어 임상실험을 하려는 것이다. 물론 반복해서 먹어도 인체에 아무런 해도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줄리앙이 말하길 쉐리엔의 즙을 마시면 살이 빠지는 효능은 알려진 지 2,000년이 넘는다고 한다.
그간 수많은 여자들이 이것을 복용했지만 이상이 생겼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하였다.
은정이 나간 후 현수는 쉐리엔 분말과 즙이 담긴 병 하나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나가세요?”
“대한약품에 들렀다가 우리 건물에 갔다 올게요.”
“사장님, 우리 사무실도 그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건가요?”
“왜요? 가고 싶어요? 근데 여기서 역삼동이면 조금 멀지 않나요? 퇴근 하는 데 힘들 텐데.”
“그럼 여기 계속 있어요?”
“그야,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거죠. 모두가 원하면 옮기고 아니면 계속해서 여기 있읍시다.”
“네에,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현수는 곧장 대한약품으로 향했다.
“김 실장님, 안녕하십니까?”
“아! 네에, 어서 오십시오. 김 사장님!”
연구에 몰두 중이던 김지우 실장은 현수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김 실장님을 조금 귀찮게 하려는데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근데 저번에 주신 것에 대한 성분 분석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계속 에러가 나서요.”
“그래요?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그거 말고 또 일감을 드리려 하는데 괜찮은지요?”
“하하, 일감이라니 반갑네요. 뭔지 말씀해 주십시오.”
“네, 이거 두 개의 성분 분석도 의뢰할게요.”
“흐음, 이건 뭔가요?”
“하나는 어떤 식물의 즙이고, 다른 하나는 그걸 동결 건조 시킨 뒤 분말로 만든 겁니다.”
“그래요?”
대체 뭘까 싶은지 병을 들어 살펴본다.
“제가 알기론 그게 살 빼는 데 특효가 있다고 합니다. 대체 어떤 성분 때문인지 알아봐 주십시오.”
“살 빼는 데 특효라면……!”
김지우 박사는 눈빛을 빛냈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성분을 분석하여 그걸 복제할 수만 있으면 신약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체엔 아무런 해도 없다고 하니 임상실험도 병행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건 유해 성분이 있는지 여부를 판별한 후가 좋겠군요.”
“네, 그건 알아서 하십시오. 하여간 이것들이 좋은 효과를 냈으면 좋겠네요.”
“네, 저도 그러길 바라겠습니다.”
김지우 박사는 이제부터 연구에 들어갈 테니 어서 가라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연구벌레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현수는 쓴웃음을 짓고는 대한약품 사장실로 향했다.
“민 사장님!”
“아이고, 우리 김 사장님. 김 박사는 만났습니까?”
“네. 그 양반 아주 바쁜 모양입니다.”
“맞아요. 뭔가에 몰두할 때엔 정말 확실히 빠지는 스타일이라 그렇습니다.”
민 사장의 얼굴에선 빛이 나는 듯하다. 온갖 우환이 모두 사라진데다 바라던 둘째까지 잉태되어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김 박사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앞으로는 자신을 거치지 말고 직접 연구소를 드나들어도 된다는 말에 이곳에 오기 전에 먼저 김 박사를 만났던 것이다.
“대한약품이 세계적인 제약사가 될 발판을 만들려고요.”
“하하, 그래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립니다. 그런데 무엇을 만드시려고 그러는지요?”
민 사장은 반 농담으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이에 현수는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요즘 여자들 사이에선 다이어트가 화두 아닙니까? 제가 콩고민주공화국에 있을 때 정글에서 가져온 게 있습니다. 그거 성분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아! 그래요? 흐음, 다이어트 보조제는 효과만 입증되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건데……. 이거 은근히 기대되는데요?”
“네에, 기대해 보십시오. 하하하!”
현수가 간 후 민윤서 사장은 김지우 실장을 찾았다. 그리곤 현수가 가져온 것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먼저 가져온 것은 성분 분석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에러가 나서 아직 보고서 작성이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성분이라 무어라 확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오늘 가져온 것은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천연재료인 듯한데 이것 역시 분석이 끝나봐야 안다고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먼저 가져온 것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하여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냄새만 맡아도 심신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호기심이 돋았기에 냄새나 맡아보자고 하였다.
김 박사는 삼각 플라스크에 있던 것을 샬레1)에 덜어 분석 중이던 것을 꺼내왔다.
뚜껑을 열자 향긋하면서도 상쾌한 향이 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맡아볼 수 있는 그런 냄새가 아니다.
“으응? 이건……!”
“왜요? 뭔지 아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어디서 맡아본 냄새인 것 같아서요.”
민윤서 사장은 이 냄새를 맡아본 바 있다. 아내인 윤영지를 치료하러 현수가 왔을 때이다.
그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뭔지 알 수 없는 냄새를 맡았다. 그냥 좋다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은 공기 중으로 발산된 양이 적어 농도가 희박했기 때문이다.
또한 현수가 아내를 치료하는 장면에 더 정신이 팔려서이다.
하여 대체 어디서 이런 냄새를 맡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때 김 박사가 자신의 말이 맞지 않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튼 허파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죠?”
“정말 그런데요? 흐으음, 하아아……! 우와, 이 향기만 팔아도 돈이 되겠네요. 근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하죠?”
“피로에 지친 심신을 맑게 해주는 원시 지구의 청량한 향기 정도면 어떨까요?”
“원시 지구의 청량한 향기라……. 괜찮은 것 같은데요?”
나중의 일이지만 대한약품은 회복 포션 복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증기를 캔에 담아 판매한다.
상품명은 김 박사의 말에서 착안한 ‘청향(淸香)’이다. 그리고 이 상품은 없어서 못 파는 명품이 된다.
몸은 건강하지만 지치고 힘든 현대인들이 이 향기를 맡으면 언제 피곤했냐는 듯 생생해지기 때문이다.
숙취 때문에 고생하던 사람은 단번에 술기운이 날아가는 기분을 느낀다. 이밖에도 여러 방면에서 효능을 보이는데 백미는 천식과 폐결핵 환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천식이란 기관지가 좁아져서 숨이 차고, 기침을 심하게 하는 증상을 나타내는 병이다. 다시 말해 기관지의 알레르기 염증 반응 때문에 발생하는 알레르기 질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