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03화 (203/1,307)

# 203

엔진을 공급해 주던 회사의 행태 때문이다.

그쪽도 사업하는 곳이기에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그간 상당히 속을 많이 썩였다.

외상 거래는 안 되고 맞돈을 들고 가야 엔진을 줬다. 그러더니 최근엔 선금을 주지 않으면 공급해 줄 수 없다고 한다.

물건을 사주는 입장인데 아주 고압적이었기에 그간 밸이 꼴렸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나마라도 엔진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여 형편만 풀리면 거래처를 바꿀 생각을 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독일의 Benz나 BMW로부터 엔진을 도입할 생각을 한 것이다.

처음 스피드를 만들 때에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나 국내 최초의 수제 스포츠카라는 명분을 생각하여 국내 기업의 엔진을 구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젠 그런 정나미마저 뚝 떨어졌다. 그래서 독일로 직원을 출장 보낸 상황이다.

그렇기에 박 대표는 마뜩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돈을 주고 만들어 달라고 하면 주겠다고는 하는데 재고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흐음, 그래요? 그거 문제군요. 가격은 어떤가요?”

“형편상 필요할 때마다 몇 개씩 구입하는 상황인지라 약간 높은 가격입니다.”

박 대표는 현수에겐 속내를 털어놔도 된다고 생각했는지라 있는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여차하면 엔진을 바꿀 계획이 있음도 말한 것이다.

“매월 50대씩 2년간 판매를 하려면 최소 1,200개의 엔진이 필요합니다. 그렇죠?”

“A/S를 해주려면 여분으로 더 필요하죠. 게다가 국내 수요도 있고, 이미 수출 계약을 한 것도 있으니 1,800 내지 2,000개의 엔진이 필요합니다.”

“돈은 주면 만들어준다고는 했다고요?”

“네, 그렇긴 한데 가용 재원이 많지 않아 한꺼번에 주문하긴 힘든 상황입니다.”

“엔진 자체는 품질이 괜찮습니까?”

“네, 그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선주문을 하세요. 돈이 필요하면 더 드릴 수 있으니까요.”

“사장님……!”

박동현 대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현수의 말대로 한꺼번에 주문을 하게 되면 단가도 많이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갑과 을이라는 지위가 확실하게 자리매김 된다. 물론 갑은 울림네트워크고 을은 엔진 제조회사가 될 것이다.

딱히 원수진 것은 없지만 그동안 당한 설움을 생각해 보면 큰소리라도 뻥뻥 칠 수 있어 속은 시원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방금 한 말이 진심이냐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졌다.

“나머지 부품들은 수급에 문제가 없습니까?”

“물론입니다. 이젠 선금 주고 달라고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별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납품 가격도 조금 내려갔구요.”

“그건 다행이군요. 그건 그렇고 안 쓰는 엔진이 있으면 제게 하나만 보내주십시오.”

“네……? 그건 뭐하게요?”

“엔진에 대해 알아보려고요. 스피드에 관한 내용을 읽어보았는데 효율 부분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 스피드의 연비는 다른 스포츠카에 비해서 높습니다. 다른 건 리터당 5∼6㎞이지만 스피드는 9㎞를 넘습니다.”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더 높이면 상품의 가치가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혹시 자동차공학이나 기계공학 같은 전공을 하셨습니까?”

“하하,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박 대표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문가들도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하려는 의도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수는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뜻으로 환한 웃음만 지었다.

“아무튼 쓰지 않는 엔진이 있으면 하나만 빌려주십시오. 나중에 돌려 드릴 테니……. 그리고 엔진이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뭐,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 언제 해드릴까요?”

“쇠뿔도 단김에 빼야겠지요?”

“알겠습니다. 가시죠.”

잠시 후 현수는 스피드 제작창에서 분해된 엔진이 어떤 원리로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러는 내내 박 대표는 무역회사 사장이 대체 왜 자동차 엔진에 대해 궁금해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현수는 서점에 들러 책을 몇 권 사고는 은행에 들러 그간 궁금하던 것을 묻고 돌아왔다.

“다녀오셨어요?”

“네, 별일 없죠?”

“그럼요. 차 드릴까요?”

“아뇨, 차는 됐어요. 근데 내게 뭐 온 거 없어요?”

“조금 전에 울림네트워크 직원들이 사장님 방에 뭐 갔다 놨어요. 근데 그게 뭔지는…….”

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은정은 엔진을 보고도 그것이 뭔지 모르는 모양이다.

“아! 그건 자동차에 쓰는 엔진이에요.”

말을 마친 현수는 사장실로 들어섰다. 아까 보았던 엔진이 배달되어 있었다. 곁에는 엔진에 관한 책자가 있다.

일단 자리에 앉은 현수는 오는 동안 구입한 서적을 펼쳐 들었다. 자동차 엔진에 관한 전문서적들이다.

꽤 두툼했지만 두 권 모두 읽는 데 세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고스란히 현수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제 엔진에 관한한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책을 덮고는 분해된 엔진 앞에 섰다. 그리곤 한참을 석상처럼 멈춰 있었다. 하지만 생각마저 멈춘 것은 아니다. 현수의 뇌리로는 수많은 상념이 교차되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의 가솔린 엔진은 내연기관이다.

이것의 열효율은 약 25%이다. 즉, 100이란 열이 엔진을 통해 약 25의 운동에너지로 변환된다는 뜻이다.

나머지 75는 운동에너지로 변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것을 잡아내는 것이 자동차 엔진 기술의 목표이다.

가솔린 엔진은 공기와 연료를 섞은 혼합기에 점화장치가 불꽃을 터뜨려 폭발시킨다. 그래서 ‘흡입→압축→폭발→배기’라는 4사이클 행정이 완료되는 것이다.

반면, 디젤 엔진의 열효율은 35% 정도로 고압으로 연료를 안개처럼 뿜어서 자체 폭발을 유도한다.

경유를 비롯한 디젤 연료들은 400∼500℃의 온도에서 자체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체 폭발을 일으키면 골고루 동시에 폭발을 하게 된다.

따라서 연료의 연소율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는 연비가 좋아지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가솔린 엔진에서도 압축 폭발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HCCI(Homogeneous Charge Compression Ignition)엔진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직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완전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흐으음, 어떠한 주행 조건에서도 압축 폭발이 일어날 수 있게 하면 일단 효율은 높아지겠군. 그리고 뭐가 또 있을까?”

많이 쓰이는 오토매틱은 엔진으로부터 바퀴까지 동력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될 수 있다.

엔진의 힘이 미션에 전달될 때 토크컨버터를 통해서 전달되는 데 유체의 힘에 의해 동력 전달을 하기 때문이다.

현수는 깊은 고심에 잠겼다.

어찌하면 효율을 극대화할지에 대한 상념이다. 그러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마법들이 스쳐 지났다.

어차피 과학 기술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수의 뇌리를 스치는 마법은 서로 상반된 성질을 가진 것들이다. 압축, 팽창, 경량화, 중량화 마법 등등이다.

최종 목표는 시내 주행 연비를 리터당 100㎞대로 높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차체의 무게도 적절하게 줄여야 한다.

2012년에 미국은 이란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어쩔 수 없이 이란으로부터 원유 수입을 중단했다.

그 결과 휘발유 가격이 2,500원 대를 오르내린다.

서민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고유가이다. 이런 상황이니 월등히 높은 연비를 가진 차는 당연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스피드는 분명 스포츠카이다. 따라서 소비자층이 한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70 먹은 노인이 몰기엔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등한 연비를 내기만 한다면 이런 고정관념은 깨질 것이다. 그리면 더 많은 매출이 발생될 수 있을 것이다.

현수가 이런 고심을 하는 이유는 원유 도입을 위해 치르는 돈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에 대한민국이 수입한 원유는 1,007억 달러에 달한다. 한화로 환산하면 무려 113조 6,700억 원이란 거금이다.

물론 이것 전부가 자동차용 연료가 된 것은 아니다. 산업용으로도 쓰였지만 상당 부분인 것만은 틀림없다.

따라서 자동차의 시내 주행 연비가 열 배쯤 늘어난다면 국가적으로 상당한 이익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학교 선배인 김형윤 상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런 골머리 썩는 일을 자청한 것이기도 하다.

인품 좋고, 명석한 두뇌와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가진 정말 괜찮은 선배이다. 이런 선배가 보다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잘 알지도 못하는 엔진을 뜯어보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A와 B 자동차를 택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김형윤 상무가 울림네트워크에 재직 중이라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김형윤 상무 덕에 울림네트워크는 7써클 대마법사의 도움을 얻게 된 것이다.

아무튼 한참을 고심하던 현수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일단 엔진엔 시간차로 고압 마법이 걸리도록 하면 될 것 같군. 폭발 과정에선 부드럽게 동력이 전달되도록 그리스 마법이 필요하고……. 참! 오토 미션을 하나 더 달라고 해봐야겠네.”

생각난 김에 박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오토 미션 하나를 보내달라고 했다. 물론 두말 않고 승낙을 받았다.

이날 이후 현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엔진과 미션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다. 그 결과 희대의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현수는 스피드에 장착되는 모든 엔진에 마법진을 그려 넣는다.

그 덕에 평범한 가정주부도 시내 주행을 하면서 리터당 112㎞라는 엄청난 연비를 낸다. 고속도로 주행에서는 리터당 186㎞라는 말도 안 되는 연비를 낸다.

다시 말해 숙련된 운전자가 아닌 일반인이 운전을 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연비를 내는 엔진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

물론 수십 가지 마법이 교묘히 중첩된 결과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마법은 에너지 증폭 마법이다.

과학 시간에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란 것을 배운다.

열역학 제1법칙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외력이 작용하지 않는 한 어떤 고립된 물리계(System)의 에너지는 그 형태가 달라질 수는 있으나 그 총량은 항상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중 역학적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위치에너지(Potential Energy, Ep)와 운동에너지(Kinetic Energy, Ek)의 관계로 쉽게 설명이 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등장한 이후엔 이러한 에너지 개념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공식으로 귀결되었다.

이 공식은 질량이 에너지와 같다는 질량―에너지 등가(等價)의 관계를 말한다. 질량이 에너지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4차원 시공간의 독특한 성질 때문이다.

어쨌거나 마법은 과학을 뛰어넘는다. 그렇기에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무시하는 엄청난 결과가 야기된 것이다.

예를 들어 9써클 마법사여야 가능한 워터 크리에티브 마법이 있다. 아무런 원료도 없는 가운데 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10써클이 되면 죽은 이도 되살리는 리절렉션이 있다.

이것을 어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는 과학보다 마법이 더 우월하다.

어쨌든 스피드의 연료 탱크 용량은 75리터이다. 따라서 한번 가득 채우면 8,400㎞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일 년에 15,000㎞ 남짓을 운행하는 차라면 딱 두 번만 주유소를 찾으면 된다는 뜻이다.

연평균 주행 거리를 20,000㎞로 잡았을 경우 연간 유류대는 44만 6,400원 정도가 된다. 리터당 10㎞짜리 연비를 가진 승용차라면 같은 거리에 500만 원이 든다.

두 차량을 10년간 유지할 경우 그 차액은 4,553만 6천 원이다. 웬만한 중형차를 사고도 남을 돈이 된다.

이런 상황이 되니 스피드는 없어서 못 팔 차가 된다.

엔진을 공급했던 회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스피드를 구입하여 엔진을 분해해 본다.

그런데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하여 고개만 갸웃거린다.

세계 각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다투어 스피드를 구입하여 완전히 분해해 본다. 비밀을 알아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엄청난 연비가 대체 어떤 메카니즘의 결과인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한다. 마법진 자체가 보이지 않게 하는 인비저블 마법이 적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기술을 개발하였다고 특허라도 냈다면 어찌해 보았을 것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 특허권을 사들이든지, 아니면 많은 로열티를 내고서라도 자신들이 제작하는 차에 적용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울림네트워크는 엔진에 대해 어떠한 특허도 출원하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면 엔진을 직접 제작한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대답만 한다.

하여 경이로운 연비의 원리를 캐기 위해 스파이들이 국내로 잠입한다. 물론 당장의 일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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