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면 PC방으로 직행했다.
그것도 시들해지면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을 읽느라 모든 시간을 소진했다. 잠은 하루에 최소한 열 시간은 잤다.
학원에도 다니긴 했다. 그런데 몸만 왔다 갔다 한 것이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거기에서도 학교 생활은 똑같았다.
당연히 동현은 진학에 실패했다. 어떤 대학에서도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하긴 내신 98.3%를 누가 받아주겠는가!
부모님도 동현이 공부에 대해 조금의 열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진학을 권유하지 않았다.
괜한 돈 낭비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졸업한 후엔 편의점이나 PC방 알바로 용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현은 친구의 꾐에 빠져 다단계 사업장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처음 가입할 때 물건을 600만 원어치만 구매하면 회원 자격이 생기고, 남들에게 소개를 해서 추가로 회원 가입이 되면 금방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어리석은 동현은 손쉽게 돈을 벌 욕심에 그간 저축해 놓았던 400만 원을 모두 인출했다.
나머지 200만 원은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긁었다.
그런데 학창시절에 놀기만 하던 동현에게 어찌 그만한 재력을 지닌 친구들이 있겠는가!
또한, 친구들은 동현처럼 어리숙하지도 않다.
결국 단 한 푼의 돈도 벌지 못하고 빚만 생겼다.
카드 회사에선 매월 대금 청구를 했다. 하지만 동현은 첫 번째 할부금부터 갚지 못했다. 되지도 않는 다단계 사업을 하겠다고 제돈 써가며 동분서주하느라 알바도 못한 때문이다.
경고장에 이어 신용불량자로 등재하겠다는 최고장까지 날아오자 사채업자에게서 돈을 빌려 메웠다.
그런데 그 일은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첫 달 이자부터 내지 못하자 조폭 같은 놈들이 등장했다. 나중엔 누나까지 협박당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날들이 두어 달쯤 이어지자 동현은 놈들의 협박에 겁을 집어먹고 군대에 자원 입대해 버렸다.
그렇게 하면 문제가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한 녀석이다.
사채업자들이 어떤 놈들인가!
동현이 사라지자 놈들은 누나인 임소희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소희는 자신이 그 돈을 갚을 의무가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놈들이 계산하는 이자 방식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연체이자가 복리에 복리로 계산되니 동현이 제대할 즈음이면 엄청난 금액이 되기 때문이다.
놈들은 소희에게 자신들의 업소에 취직하여 일을 하면 독촉하던 걸 멈추겠다는 제의를 했다. 그러면 아주 빠른 시일 내에 모든 빚이 변제될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야길 들어보니 그곳은 성매매 업소였다. 다시 말해 몸을 팔아 빚을 갚으라는 뜻이었다.
겁에 질린 소희는 은정의 집으로 피신해 왔다.
현재 소희의 부모님은 돈을 벌어오겠다고 외국에 나가 있다.
건설업체인 대한건설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에서 노무자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주방 보조인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모는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른다. 혹시 노심초사할까 싶어 말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현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애초의 빚은 200만 원 정도였는데 그게 2천만 원으로 불어났다는 겁니까?”
“네, 제가 빌려준 돈 800만 원을 모두 줬는데도 그렇게 많이 갚아야 한대요.”
은정이 받은 월급 거의 전부를 빌려준 모양이다.
“흐으음……!”
현수는 어이없는 일인지라 나직한 한숨부터 쉬었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국가에서 정한 최고 이자율이 39%입니다. 그런데 어찌…….”
현수는 말끝을 흐렸다. 사채업자들이 법에서 정한 이자만 받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임소희 씨가 이 실장님 집에 있다고 했죠?”
“네.”
“소희 씨는 학교를 졸업했나요?”
“아뇨, 지금 4학년 졸업반이에요.”
“어쨌든 보자고 하세요.”
“네. 금방 데리고 올게요.”
잠시 후, 임소희가 내려왔다. 사채업자들에게 쫓겨서 그런지 의기소침한 모습이다.
임소희는 큰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주눅 들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괜한 심려를 끼쳐 드려서…….”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 실장님에게서 대강의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사람들 연락처는 있습니까?”
“네. 여기요.”
소희는 가방 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
“이마에 주름 진 서민들에게 웃음을……! 희망 캐피탈……?”
현수는 또 한 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의 등골을 뽑아먹는 악덕 사채업자가 웃음과 희망이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쓴 때문이다.
주소를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동생이 이놈들로부터 대출받을 때 쓴 약정서도 있죠?”
“네, 여기…….”
봉투 속의 서류를 꺼내 읽어본 현수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현행법상 법정 최고이자율은 연 39%이다. 그것 때문인지 약정서엔 대출 이자율이 그렇게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뒷장에 ‘인정서’라는 제목으로 종이 한 장이 더 붙어 있다. 보증인 없는 대출이므로 이자율은 연 300%이며, 연체할 경우엔 연 1,000%의 이자율이 복리로 적용된다는 내용이다.
살펴보니 희망 캐피탈이라는 문구 자체가 없다.
그냥 대출 받은 금액에 대한 이자를 그렇게 지불하겠다는 내용과 동현이 자필로 서명한 것만 있을 뿐이다.
법적인 다툼이 있을 경우 증거자료가 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놈들이 동생 대신 돈을 갚으라고 독촉했습니까?”
“네, 날마다 집에 와서……. 흐흑!”
놈들로부터 당한 것들이 떠오른 임소희는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도 무섭고, 두려웠던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도 왔고,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도 들이닥쳤다.
그리곤 동현이 군대에 간 걸 뻔히 알면서도 동생은 어디에 있느냐고 거의 날마다 다그쳤다.
그러다 혹시라도 성폭행을 당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바들바들 떨던 게 몇 달째였다.
그때마다 놈들은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음을 주지시켰다. 동생이 제대할 즈음에는 최소 2억은 넘을 것이라 했다.
“이 건에 대해서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네에, 감사합니다.”
사무실을 나선 현수는 곧장 희망 캐피탈이란 곳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대출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아주 상냥하고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도착하여 아가씨가 있는 창구 앞에 앉았다.
“저어, 대출 받으려고 왔는데요.”
“네, 얼마나 쓰실 거죠?”
“얼마까지 쓸 수 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창구의 아가씨는 현수의 위아래를 훑어본다. 그리곤 지극히 사무적인 음성으로 묻는다.
“직업이 뭐죠?”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 그럼, 담보로 맡길 물건은 있나요?”
“담보라면 어떤 걸…….”
현수는 짐짓 어리바리한 표정을 지었다.
“부동산이나 귀중품 같은 것 말하는 거예요.”
“그런 거 없는데요.”
“그럼 보증 서주실 분은 있지요?”
“아뇨, 없습니다.”
“손님! 지금 장난하시는 건가요?”
여직원이 째려본다. 바쁜데 와서 자기를 꼬실 목적으로 장난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창구에 앉아 있는 이 아가씨는 심한 공주병 환자였던 것이다.
하나 현수는 여전히 어리바리한 표정이다.
“그런 거 없으면 대출 못 받나요? 전단지 보니까 무담보, 무보증이라 서민이라면 누구나 대출받을 수 있다고 했잖아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여직원의 음성이 올라가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래 봤자 희망 캐피탈 직원들밖에 없다.
“미스 최! 왜 그래?”
“김 과장님, 이 사람이 지금 바쁜데 장난하잖아요.”
“뭐야?”
김 과장이라 불린 뒤쪽에 앉아 있던 사내가 일어난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이고, 인상도 더러운 놈이 덩치까지 크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위압감을 느낄 정도이다.
김 과장은 현수를 잠시 노려본다.
거기에 쫄 이유가 있겠는가!
하나 현수는 긴장했다는 듯 몸을 움츠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당신, 이쪽으로 와봐.”
김 과장이 비어 있던 다른 창구를 가리켰다. 자기보다 훨씬 어려 보여서 그러는지 대놓고 반말이다.
현수는 비칠거리는 발걸음으로 갔다. 그리곤 털썩 주저앉았다.
“돈이 필요해서 왔어? 얼마나 필요한 건데?”
김 과장의 음성은 조금 낮아졌다. 그런데 말하는 싸가지를 보니 이젠 대출 받으러 온 손님 취급도 않는다.
“이, 이백만 원이요.”
“흐음, 얼마 안 되네.”
김 과장은 백수 주제에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종이 한 장을 내민다.
“그럼, 여기하고 여기에 주소와 이름을 써.”
김 과장이 내민 것은 대출 신청서였다.
주민등록번호를 기록하면 컴퓨터로 금방 조회될 것이기에 인적사항을 기재하는 대신 김 과장을 바라보았다.
“저어, 대출은 해주는 건가요?”
“그러니까 이거 쓰라는 거 아냐.”
“대출 이자율은 연 39%지요?”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인을 입보하는 경우엔 그렇지.”
“그럼 저는……?”
“당신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조건을 제시하면 보증인 세우고 대출 받은 사람들이 섭섭하지 않겠어?”
말이야 바른 말이기에 현수는 잠시 대꾸하지 않았다.
김 과장은 잠시의 침묵도 견딜 수 없다는 듯 입을 연다.
“200만 원 대출에 선 이자와 수수료 40만 원을 떼면 160만 원을 받게 될 거야. 그리고 매달 50만 원씩 이자를 내다가 12개월 후에 원금 200을 갚으면 되는 조건이야.”
“네……?”
암산해 보니 이자율이 연 300%이다. 한마디로 칼만 안 들었지 강도 같은 놈들이다.
당장 일어나서 한 방 갈기고 싶은 걸 참았다. 그리곤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반문하였지만 김 과장은 제 할 말만 한다.
“연체 이자율은 법정이자율과는 관계없이 연 1,000%니까 하루라도 날짜가 늦으면 손해야.”
“……!”
“아, 뭐해? 돈 필요하다며? 대출 안 받을 거야?”
“자, 잠시만요.”
현수가 핸드폰을 꺼내자 김 과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어디로 전화를 걸려는 것이냐는 표정이다.
그러다 현수가 계산기 기능을 실행시켜 이자 계산을 하자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깟 걸 왜 계산해? 말했잖아. 연 300% 이자야. 다른 업체에 비하면 절반 정도밖에 안 되지. 보아하니 돈이 급한 거 같아서 특혜를 베푸는 거니까 얼른 대출 받아. 아니면 그냥 가고.”
“네? 아, 네에.”
현수는 볼펜을 들었다. 그리곤 이름과 주소를 쓰는 척하다 도로 내려놨다.
“왜?”
“미안합니다. 다른 데도 다녀보고 다시 오면 안 되겠습니까?”
“뭐야? 너,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야?”
김 과장이 화난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주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말을 마치고는 뒤에서 뭐라 하든 말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미지 체인징!”
현수는 자신의 모습을 유진기로 보이게 하는 마법을 구현시키고는 다시 희망 캐피탈로 들어갔다.
입구를 여는 순간 다시 한 번 입술이 달싹인다.
“무브(Move)!”
안에 있던 CCTV들이 스르르 움직여 천장만 찍히도록 했다. 그리곤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컨퓨징 이미지!”
혹시 숨겨놓은 CCTV가 있더라도 제대로 된 영상을 얻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마법을 구현시킨 것이다.
창구에 있던 미스 최의 눈에 현수는 말쑥한 정장 차림 직장인으로 보였다. 돈을 빌려줘도 떼일 염려가 없어 보인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하며 인사를 한다.
“어서 오세요.”
“네, 대출 좀 받으려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먼저 여기에 성함과 주소, 그리고 연락처를 기록해 주세요.”
창구 여직원이 상냥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조금 전 현수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악어의 웃음이다.
현수는 모르는 척하곤 공란을 채워갔다.
대출신청서에 쓰인 것은 유진기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주소와 연락처이다.
그것을 넘기자 뭔가를 조회한다. 그리곤 환한 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유진기 손님! 얼마나 대출을 받으려 하시는지요?”
“조금 많이 필요한데요.”
“그래도 말씀해 보세요.”
“일단 10억을 대출해 주십시오.”
“네에? 10억이요?”
여직원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조회해 봐서 알겠지만 내 집의 가격은 그걸 훨씬 상회합니다. 설마 안 된다는 건 아니겠죠?”
“무, 물론 가능합니다. 그런데 금액이 조금 커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윗분들과 상의하고 오겠습니다.”
“흐음, 그러십시오.”
짐짓 거들먹거리자 여직원이 얼른 안쪽의 방으로 들어간다.
현수는 들고 있던 손가방을 창구 위에 얹어놓았다. 바로 앞에는 여직원이 사용하는 컴퓨터의 본체가 놓여 있다.
“퍼펙트 카피!”
마나가 스며들자 본체 하드디스크에 담겨 있던 내용 전부가 고스란히 복사되었다. 그러는 동안 자판기 앞으로 가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셨다. 지극히 자연스런 움직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