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08화 (208/1,307)

# 208

“오래 기다리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대출 승인은 떨어졌습니다. 그전에 근저당 설정을 해야 하므로 당장은 어렵습니다. 서류를 주시면 내일 오전에…….”

“됐습니다. 다른 데서 대출 받죠.”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직원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손님! 원래 대출 절차가 그래서…….”

“다른 데는 안 그러더군요.”

현수는 찬바람이 씽 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몰차게 나섰다. 여직원은 그냥 가면 안 되는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출이 되면 본인에게 떨어질 수당이 조금 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곧장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그리곤 외장 하드의 내용들을 검색해 보았다.

예상대로 이중장부가 작성되고 있다.

전화를 들어 강민경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기자님!”

“네, 김현수 사장님.”

“우연한 기회에 불법 대부업체의 장부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어머, 그래요?”

“네, 희망 캐피탈이라는 곳입니다. 중고 컴퓨터를 구매했는데 거기서 쓰던 건가 봅니다. 대충 살펴보니 이중장부에 불법고리대금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지금 강 기자님 웹하드로 모든 내용이 올라가고 있으니 확인해 보십시오.”

“고맙습니다. 즉시 확인해 볼게요.”

강 기자는 그렇지 않아도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불법 사채업자들에 대한 기사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잘 걸렸다는 듯 웃음 띤 음성이었다.

전화를 내려놓던 현수는 떠오르는 상념이 있어 밖으로 나갔다.

일부러 버스정류장의 공중전화박스로 간 현수는 서울중앙지검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중앙지검 박새롬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일전에 세정 캐피탈 장부를 복사해서 보냈던 곽해일이라는 사람입니다. 조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잠시만요. 담당 검사님 바꿔 드리겠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다. 놈들은 어디에서 전화를 거는지 위치 추적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전화를 끊지 않고 기다렸다.

대략 2분쯤 지난 후 누군가 전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중앙지검 이경천 검삽니다. 지난번에 전화 주셨던 곽해일 씨입니까?”

“네, 저번엔 미안합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아! 그랬군요. 우린 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했습니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말이지만 모르는 척했다.

“아, 그러셨어요? 괜한 심려를 끼쳐 드렸네요. 근데 그 사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네! 수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장부 원본이 없어서 조금 난항을 겪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에게 원본을 넘겨주실 수는 없는지요?”

“장부의 원본이요? 복사본으로는 안 되는 건가요?”

“그건… 놈들이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해서…….”

현수는 이경천 검사가 하는 말을 한참이나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번에도 수사관들을 보낸 듯하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

공중전화박스를 기준으로 보면 양쪽에서 두 명씩이다.

“아! 잠깐만요.”

현수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즉각 마법을 구현시켰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플라이!”

“여보세요, 여보세요…….”

내려놓은 수화기에서 이경천 검사의 음성이 들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치고 있다.

타탁, 타타타탁―!

“여기다! 놈이 여기에 있었어. 저 전화기……! 여보세요. 네? 네. 없습니다. 네? 네, 네 알겠습니다.”

현수가 통화하던 수화기를 든 놈이 이경천 검사와 통화를 하며 사방을 둘러본다.

그러는 사이에 세 놈이 더 다가와 주변을 살핀다.

“네, 네, 알겠습니다.”

철컥―!

수화기를 내려놓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방금 전까지 통화를 했다. 이 근처 건물들을 샅샅이 뒤져라. 음성으로 미루어 서른은 안 되었다고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네, 형님!”

“……?”

세 녀석이 흩어지자 통화를 한 놈이 바로 앞 건물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방금 전 자신들은 도로의 양쪽으로부터 달려왔다.

오는 동안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뒷골목으로 빠지는 샛길도 없었다. 물론 길을 건너갈 수 있는 곳도 아니다.

택시나 버스도 오지 않았다. 따라서 인근 건물 어딘가에 은신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층에 있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간 놈은 모든 문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끝에 있는 문이 잠겨 있다.

탕, 탕! 탕, 탕, 탕―!

노크라고 하기엔 너무 세게 두들긴다. 아무튼 아무런 반응도 없다.

“어이, 안에 있지?”

현수가 보니 변기가 망가져 폐쇄된 듯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놈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린다.

쾅, 쾅, 쾅, 쾅―!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응?”

대답이 있을 리 없다. 하나 놈은 현수가 자신을 무시한다 생각했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발길질을 했다.

“나와, 이 새끼야!”

콰앙―!

“……!”

놈의 발길질에 잠금장치가 망가지면서 문이 열렸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이런 제길……!”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바보짓 한 게 멋쩍었는지 투덜거리며 돌아선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려 몸을 돌렸다.

이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부른다.

“어이, 거기!”

“……!”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웬 사내가 서 있다. 방금 전 그곳은 텅 빈 공간이었다.

“헉……! 너, 너, 어디서 나왔어?”

화장실엔 분명 자신밖에 없었다. 들어서면서 문을 잠갔기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그리고 칸칸마다 모든 문을 열어서 일일이 확인했다.

그럼에도 유진기가 서 있자 대경실색한 것이다.

“나오라며? 그래서 나왔는데 왜 애꿎은 문은 걷어차?”

“너, 넌 누구냐?”

“누구긴? 네가 찾던 사람! 중앙지검에 전화한 사람이지.”

“……!”

“신분증 내놔봐.”

“뭐?”

“신분증 내놔보라고.”

“왜?”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내 얼굴 잘 봐.”

“헉… 저, 전무님! 전무님이 어떻게 여기에……?”

예상대로 수사관이 아니었다. 유진기더러 전무라 부른다면 세정파 일원이라는 소리이다.

“너, 일루 와!”

“네……? 네에.”

사내는 진즉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곤 다가섰다.

퍼억―! 와당탕탕―!

현수가 배를 걷어차자 거칠게 쓰러진다.

하지만 이내 일어나서 원위치를 했다. 하늘같은 조직의 실세를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한 처벌을 받는다 생각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전무님!”

퍼억―! 와당탕탕―!

“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놈은 벌떡 일어나 고개를 조아린다. 상명하복을 철저히 하라는 조직의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다.

“이 근처에 희망 캐피탈이라는 업체가 있다.”

“네, 전무님!”

“우리 세정 캐피탈의 영역을 잠식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중이지. 너희들은 오늘 그곳을 지옥으로 만든다. 알았나?”

“네, 전무님!”

“비상연락망을 가동하여 즉시 실시한다. 알겠나?”

“네, 전무님!”

“계속 서 있을 건가?”

“아, 아닙니다. 가, 갑니다.”

후다다다닥―!

사내가 꽁지 빠져라 나가는 모습을 본 현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희망 캐피탈은 세정파에 의해 박살 날 것이다.

내일 아침 신문엔 희망 캐피탈의 불법 고리대금업에 대한 기사가 날 것이다. 그리곤 수사관들이 급파될 것이다.

남은 것은 공중분해뿐이다. 희망 캐피탈의 사장 등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불법 추심을 했던 자들 역시 폭행 및 협박 등의 혐의로 수감될 것이다.

손에 피 묻히기 싫어 중앙지검에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수사관이 왔어도 세뇌하여 희망 캐피탈을 두들기도록 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정파 조직원이 왔기에 일석이조가 된 셈이다.

5장 반품은 사절일세!

현수가 희망 캐피탈에 다시 나타난 것은 엉망진창이 된 후였다.

모든 집기들이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밖에는 현장을 보존하기 위한 경찰들이 있다. 현재 희망 캐피탈의 직원 거의 모두 병원 또는 경찰서에 있는 상황이다.

“흐음, 어디 보자. 언락!”

촤르륵! 촤르르르륵! 촤르르륵! 철컥―!

저절로 다이얼이 돌아가는가 싶더니 금고의 문이 열린다.

상당히 많은 현금과 수표, 그리고 금괴가 쌓여 있다. 그밖에도 각종 장부들이 놓여 있다.

빠르게 장부를 살펴본 결과 놈들이 저지른 각종 탈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것들은 내버려 두었다.

다른 서류 뭉치가 있어 살펴보니 동현처럼 고리사채를 한 사람들의 약정서 뭉치이다.

현수는 그 가운데 동현의 것을 찾아냈다. 그리곤 사무실을 뒤져 완납했다는 확인 도장을 찍었다. 컴퓨터를 켜서 거기에도 완납한 것으로 기록을 했다.

다른 서류들을 살펴보니 이놈들도 인신매매와 장기밀매를 했다. 이것들 역시 남겨두었다.

모두 증거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현금과 금괴만 아공간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물론 투명 은신 마법이 구현되는 중이라 어느 누구도 현수의 출입을 알지 못한다.

천천히 걸어 사무실로 되돌아오던 중 뒷골목에서 중학생들을 상대로 삥 뜯는 불량배들을 보았다. 어찌 그냥 두겠는가!

아주 개 패듯 패서 그 자리에 패대기를 쳐 놓았다. 정상적인 사람 노릇을 하기는 힘들 정도로 공포를 심어주었다.

남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기에 인정사정없이 짓밟아주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내내 대한민국에 널려 있는 사회악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희망 캐피탈 같은 불법 사채업자들은 일망타진의 대상이다. 세정파와 같은 조직폭력배 역시 사라져야 한다.

불의와 타협한 일부 검찰 조직 역시 쇄신 대상이다.

무능한 정부와 부패한 국회는 판을 갈아야 할 정도이다.

학교 폭력 역시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악의 온상이다.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부조리와 불의, 그리고 불법과 부정이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다.

“결국 그 방법을 써야 하는가?”

현수는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7써클 대마법사가 사회를 상대로 칼을 뽑을 것이냐는 질문을 했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답을 한 것이다.

“어머나! 언제 돌아오셨어요?”

“으응……? 아, 조금 전에.”

“가셨던 일은 어찌 되었나요?”

“큰 걱정 안 해도 될 거라고 소희 씨에게 전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은정은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는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대답해 주진 않았다.

“참, 민 실장도 들어오라고 할래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은정이 나가고 주영이 들어선다.

“부르셨습니까?”

주영은 은정이 함께 하는 자리인지라 깍듯한 존대를 했다.

“그래, 직원 모집은 잘 되고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앞으로 네게 전권을 줘야 할 거 같아서 불렀어.”

“전권이라니요?”

“알다시피 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곧 떠나야 해. 알지?”

“그 회사 그만두면 안 됩니까? 천지건설 안 다녀도 수입은 충분한데…….”

뭐하러 그 멀고 불편한 곳까지 가느냐는 표정이다. 현수는 주영의 내심을 충분히 짐작했다.

고용된 직원으로서 움직이는 것과 주체적으로 활동을 하되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 하지만 생각해 둔 바가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거기에 대해선 말하지 마.”

“알았습니다.”

주영은 네 마음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려봐야 소용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직원 모집이 끝나면 내게 연락해. 회사에 말해서 잠깐 잠깐 들어올 테니까. 알았지?”

“알겠습니다. 근데 역삼동 이실리프 빌딩은 어떻게 할 겁니까? 인원이 모두 충원되면 그것만 가지곤 좁을 수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더 사야지. 돈이 필요하면 더 보내줄 테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현수는 자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 주영과 은정이 이실리프 상사와 이실리프 무역상사를 대표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둘은 현수가 없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할 일이 생기면 곤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대신 하루에 한 번씩은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

한국에서 킨샤사로 연락하는 것보다 그쪽에서 이곳으로 연락하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이다.

“사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외근 나갔다가 귀사한 수진의 말에 누구냐는 표정을 지었다. 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

“대구에서 온 권지현 씨예요.”

“권지현 씨요? 아, 네에. 안으로 모셔주세요.”

“네에.”

은정과 주영이 나가자 지현이 들어선다.

“호호, 안녕하셨죠?”

“네에. 어서 오세요.”

지현이 앉자 은정이 냉커피를 내왔다.

“서울엔 웬일로 오신 겁니까?”

“이제부턴 여기서 살아보려구요.”

“네……?”

“아버지가 서울고검장이 되셨어요. 그래서 전 서울중앙지검으로 전근 신청을 했지요.”

“아……! 감축드릴 일이군요. 참, 어머닌 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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