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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211화 (211/1,307)

# 211

“근데 이것들은 먹을 수 있는 건가?”

얀디루라는 놈은 영락없이 미꾸라지처럼 생겼다. 그렇다면 추어탕의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라니야는 손바닥만 하다. 구워먹기 딱 좋은 사이즈이다.

이들 둘만 남기고 나머지 잡고기들은 모두 땅에 묻었다.

“강력한 뇌전의 기운에 쏘였으니 기생충이 있더라도 모두 죽었겠지?”

현수는 얀디루의 배를 따서 내장을 끄집어내다 이내 포기했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얀디루들도 모조리 땅속에 묻혔다.

남은 것은 라니야이다. 이것들은 그리 숫자가 많지 않아 금방 내장을 긁어낼 수 있었다.

“우와, 하인스! 냄새 좋은데? 오늘 아침 메뉴는… 어라! 그거 물고기 아냐? 그물도 없는데 어떻게 잡았어?”

“하하. 제가 재주가 좋지 않습니까? 기대하십시오. 오늘 아침, 아주 싱싱한 생선 구이로 배를 채울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기대하지. 고맙네.”

“고맙기는요. 제가 먹고 싶어서 잡은 건데요 뭘.”

현수는 아공간에서 간장 등의 재료를 꺼내 간장구이 소스를 만들었다.

여기에 손질한 라니야를 넣었다. 그리곤 시간이 빠르게 하는 마법인 패스트 타임으로 삽시간에 양념장이 배어들도록 했다.

요즘엔 음식을 만들면서 일부러 마법을 쓴다. 그래야 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것들을 꼬챙이에 꿰어 은근한 불에 익혔다.

타지도 않고 잘 익는다. 다음엔 연기에 쏘였다. 이렇게 해야 향도 좋고, 맛도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렇듯 맛있는 생선 구이는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간이 딱 맞은 모양이다.

음식을 만든 사람으로서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기에 현수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불렀습니까?”

“그래. C급 용병 하인스라고?”

모자에 붙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용모 및 나이를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음성이나 겉으로 드러난 손을 보니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것 같은데 대놓고 반말이다.

하긴 귀족이 일개 평민 용병에게 존댓말을 써줄 리 없다. 하여 그러고 싶으면 그러라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엘리시아 나후엘 드 율리안이라고 해.”

“그런데요?”

엘리시아는 줄리앙이 구해줬던 바로 그 여자이다.

“너는 치료사인가, 요리사인가?”

“C급 용병인데요?”

“그건 아무래도 좋아. 나후엘 자작가에 당도하면 너만 따로 고용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어?”

“따로 고용이요?”

“그래, 우린 네가 가진 재주가 필요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우리 영지에 당도하더라도 가지 말고 남아줬으면 좋겠어. 그럴 수 있지?”

“뭐, 당분간 머무는 정도라면…….”

“그럼 됐어. 이만 가봐.”

볼일 다 봤다는 듯 고개까지 돌린다. 현수는 어이없었으나 뭐라 하겠는가! 지금은 신분을 감춘 상태이다.

그렇기에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며 걸었다.

호숫가에 당도하니 일행이 가진 것들을 재정비하고 있었다. 부산한 움직임을 보았지만 현수는 끼어들지 않았다.

사막을 벗어나기 전에 디오나니아의 열매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도 잡아먹는 식인식물인 이것을 상대하려면 준비할 것이 만만치 않다.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면서 거들 수는 없기에 구경만 한 것이다.

현수는 때때로 고기 잡는 시늉을 했다. 라니야 간장양념구이를 제공하려면 물고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엉성하게 만든 소쿠리를 수초 사이에 넣고 철퍼덕거리면 잡힌다. 다만 맨발로 이러면 거꾸로 라니야의 먹이가 된다.

그렇기에 다리를 식물의 넝쿨 말라붙은 것으로 칭칭 감은 채였다. 그러다 사람들의 이목이 없다 싶으면 슬쩍 2써클 마법인 라이트닝 쇼크 내지는 기가 라이트닝을 시전했다.

고기도 잡고 마법 연습도 되는 일석이조이다.

아무튼 잡은 라니야들은 향기 좋은 생선구이가 되어 용병들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해 줬다.

그래서 호수를 만날 때마다 안에 살고 있는 얀디루와 라니야를 멸종시켰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십여 개의 호숫가를 지나쳤을 때이다.

“멈춰!”

랄프의 명에 따라 모두의 발걸음이 멈췄다.

사막으로 들어선 지 이레가 지난 날 오후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불편한 것이라곤 먹을 게 부족했다는 것뿐이다.

마차로 실어왔던 식재료는 진즉에 떨어졌다.

그렇기에 현수가 호수를 만날 때마다 라니야 구이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최소 나흘을 굶었을 어느 날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또 호수가 보인다. 초승달 모양으로 둥글게 휘어진 호수의 주변이 온통 초록색이다.

용병들은 어제 오전 이후 물을 마시지 못했다.

사막이지만 심심치 않게 눈에 뜨이는 것이 호수였기에 수통에 물 채우는 것을 게을리 한 결과이다.

물론 현수는 아니다.

아공간 속에 제법 많은 양의 물이 있다. 그럼에도 물을 주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너무 의존하는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갈증 때문에 죽을 지경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와아, 물이다!’라고 말하며 무작정 뛰어들면 목숨을 잃는다. 근처에 보이는 초록색 전부가 디오나니아라는 식인식물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놈들이 자리 하나는 좋은 데 잡았다.

다른 호수와의 거리가 멀어 누구나 갈증을 느낄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혹자는 식물은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식물도 분명히 움직인다. 햇볕으로 광합성을 해야 하는 놈은 방향을 바꿔놔도 천천히 몸을 돌린다.

물론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느린 속도이다.

그런데 디오나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선인장과 식인식물은 전광석화처럼 빠를 때가 있다.

물론 지나치는 동물을 사냥할 때이다.

뿌리가 박혀 있기에 다른 곳으로 이동만 못할 뿐 이때의 움직임은 웬만한 사람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이다.

그렇기에 속절없이 잡혀 먹히는 것이다.

아무튼 촉수의 끝에는 매우 아름다운 꽃이 핀다. 그런데 여느 꽃과 달리 크기가 매우 크다.

직경 30㎝ 정도 된다. 이것은 향기가 매우 그윽하다. 하여 드래곤들도 이 꽃을 따다 자신의 레어에 넣어둔다.

적어도 몇 년은 향기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열린다. 바나나처럼 생긴 열매이다.

열매는 진통 효과가 뛰어난 약재이며, 두어 개만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과실로 분류되어 있다.

일행이 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디오나니아는 중앙의 굵은 줄기 하나에서 좌우로 줄기 여러 쌍이 갈라져 있다.

그리고 각각의 줄기엔 넓적한 잎사귀가 한 쌍씩 달려 있다.

그런데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잎사귀는 높이 2m, 폭 1.3m 정도 된다.

이것은 몹시 질기다. 하여 껍질만 벗겨 방검복을 만들기도 한다. 웬만한 검으론 찔리지도 않고 베이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검으로 베어내는 것이 웬만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도끼질도 마찬가지이다. 찍었을 때 생긴 상처가 금방 아물어 버린다. 하여 식물계의 트롤이라는 별칭도 있다.

아무튼 사람이 안에 갇히면 검이나 도끼로는 나올 방도가 없다. 움직일 공간이 없도록 삽시간에 둘러싸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힘 센 사람이라도 힘을 쓸 수 없어 당하고 마는 것이다.

일단 사람이나 짐승을 포획하면 두 잎사귀에서 염산과 같은 산성 물질이 함유된 가스가 뿜어진다.

이 가스에 중독되어 기절하면 두 잎사귀는 물샐 틈 없이 서로 맞붙는다. 그리곤 서서히 녹여서 소화시킨다.

사람으로 치면 잎사귀가 위벽인 셈이다.

아무튼 이곳에 오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아찔한 순간은 느닷없는 샌드 웜의 공격을 당했을 때이다. 안타깝게도 몇몇이 목숨을 잃었지만 비교적 쉽게 지나칠 수 있었다.

현수가 있었기 때문이고, 바로 곁에 샌드 웜이 공격할 수 없는 암석지대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스콜론에 의해 B급 용병 하나가 죽었다.

자다가 물린 상태에서 중독되어 죽었기에 현수가 근처에 있었어도 구조할 방도가 없던 죽음이다.

던전에서 목숨을 잃은 용병들 역시 현수가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모든 위기 상황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병든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 테일러의 죽음이다.

그래서 시간을 되돌리려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구로 귀환했다가 테일러가 죽기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게 아르센 대륙에서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지로 무언가를 바꾸려 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그 결과 이곳까지 왔다.

이제 디오나니아의 열매를 얻어내고, 쏘러리스라는 놈의 간을 구하면 끝이다. 다음엔 라수스 협곡 너머로 가는 것이다.

최종 목적지는 당연히 아드리안 공국이다.

어쨌거나 랄프는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용병들을 4개 팀으로 나누어 자작가의 전후좌우를 호위하도록 했다.

이제 36명이 남았으니 팀당 9명씩이다.

현수는 현재 줄리앙의 팀에 배속되어 후미에 있다. 줄리앙의 몸 상태가 아직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 정찰 실시!”

랄프의 명에 따라 주변을 살폈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땅속까지 살펴야 한다. 샌드 웜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수는 인근에 샌드 웜이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리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설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의를 기울여 손해 볼 일도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상 없습니다.”

“이쪽도 괜찮습니다.”

“후미, 이상 무!”

“대장! 여기도 이상 없습니다.”

랄프는 고개를 끄덕이곤 단호한 표정으로 명을 내린다.

“좋아, 1팀, 2팀, 3팀은 준비한 것을 들고 나를 따른다. 4팀은 남아서 고용주를 호위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용병들이 소리치자 디오나니아가 소리를 듣기라도 하는지 일제히 움직인다.

근처에 당도한 랄프가 다시 한 번 소리친다.

“주의만 기울이면 놈들에게 절대 당하지 않는다. 욕심 부리지 말고 가르쳐 주었던 대로만 해라.”

“네!”

일제히 대답하는 용병들의 손에 들린 것은 엉성하게 만들어진 쇠못이 박힌 나무인형과 밧줄 등등이다.

멀리서 지켜보니 나무인형을 던져 디오나니아가 이를 덥석 물면 밧줄로 잎사귀를 칭칭 동여매고 있다.

인형에 박힌 못 때문에 잎사귀가 얼른 벌어질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박힌 쇠못 때문인지 디오나니아는 그야말로 지랄발광을 한다.

쩔쩔매며 밧줄로 동여매던 용병 하나가 다른 디오나니아의 잎사귀에 갇혔다.

용병들은 즉각 줄기의 밑동을 공격하여 이를 잘라냈다. 잎사귀는 질기지만 줄기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출된 용병이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환호성을 낸다.

“와아아아아아……!”

폭이 좁고 긴 호숫가에는 상당히 많은 디오나니아들이 자생하고 있다. 이곳이 군락지인 모양이다.

일행은 일곱 시간이나 디오나니아 사냥을 했다. 열매가 얼마나 필요한지 몰라 왕창 사냥한 것이다.

현수는 그 와중에 디오나니아의 꽃과 열매, 그리고 잎사귀들을 상당히 많이 채집했다. 호기심 때문이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이거 통증에 좋다는데 줄리앙에게 먹이고 싶어. 괜찮을까?”

“제가 먼저 맛을 한번 보지요.”

랄프가 건넨 디오나니아의 열매는 바나나처럼 여러 개가 한꺼번에 열리는 것이다. 다른 점은 크기가 조금 더 크고,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먹어보니 과즙이 달콤하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향을 지녀 먹고 나니 폐부가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흐음, 맨톨 성분이라도 들었나? 맛도 좋고, 향도 좋으네.’

“어때, 먹여도 되겠어?”

“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건 그냥 식량으로 써도 좋을 듯합니다. 열매는 좀 땄습니까?”

“자네 말대로 식량 대용으로 하려고 넉넉하게 땄지. 자네에게 줄 테니 보관해 주게.”

현수가 받은 것은 바나나로 치면 대략 1,200송이이다.

줄리앙은 한결 나아진 듯한 모습이다.

‘원기 회복에도 효능이 있나? 낯빛이 좋아졌군.’

현수는 이곳의 좌표를 기록해 두었다. 디오나니아 열매를 먹고 싶은 생각이 나면 다시 올 생각을 한 것이다.

“자아, 이제 출발이다.”

행렬은 다시 출발했다. 그리고 이틀 후 일행은 사막을 완전히 벗어났다.

대신 울창한 숲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얼마나 울창한지 푸른 게 아니라 검게 보일 정도이다.

팀은 다시 다섯으로 나뉘었다. 현수를 제외한 나머지 35명이 7명씩 한 팀을 이룬 것이다.

처음에 현수는 척후팀을 지원했다. 그런데 엘리시아라는 나후엘 자작가의 여인이 반대했다.

하인스는 요리사 겸 치료사로 용도 변경되었으므로 나머지 인원만으로 호송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예 현수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용병들은 엘리시아가 현수에게 반해서 그러는 거라며 놀려댔다. 그중엔 줄리앙도 끼어 있었다.

놀림당하는 것이 싫어 척후팀으로 가겠다고 했더니 그럼 자신도 따라오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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