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놈은 나무밑동을 잡고 돌던 시녀 하나를 어깨에 걸친 채 숲 속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시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어찌 몬스터의 강력한 힘을 이겨내겠는가!
비명 소리가 잦아드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제법 먼 곳으로 이동해 간 듯하다.
“아아! 아델……!”
엘리시아는 시중 들어주던 시녀가 몬스터에게 잡혀가자 나지막한 소리를 냈다. 안타깝다는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가씨! 나뭇가지를 수시로 바꿔 잡아야 합니다.”
현수에게 카레라이스와 양념불고기를 배식 받으러 왔던 늙은 시종의 말이다. 엘리시아는 얼른 가지를 바꿔 잡았다.
품위있는 귀족가의 여식으로 살고 싶지 미노타우르스의 모체가 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같은 순간, 현수는 고심에 잠겼다.
마법을 쓸 것인지 여부 때문이다. 마법 이외엔 이 난국을 해소할 수 없다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주변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엘리시아 때문인지 자작가 사람들은 물론이고, 용병들도 수시로 이쪽에 시선을 주고 있다.
엘리시아가 쏘러리스에게 잡혀가면 이번 용병행은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용병 열다섯 명이 희생되었다. 자작가 역시 일곱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 엘리시아 하나만 더 추가되면 모두가 개죽음이 된다. 아무런 보수도 없고, 용병들의 명예는 실추될 것이다.
어쨌거나 이목 때문에 마법은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제기랄……!”
나직이 투덜거린 현수는 위쪽의 엘리시아를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몬스터에게 잡혀갈까 싶어 벌벌 떨면서도 이 가지 저 가지를 계속해서 바꿔 잡고 있다.
여자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몬스터의 새끼를 낳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현수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 시선을 돌리려는데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아르센 대륙에는 속옷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과 달리 팬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데 치마 외엔 없으니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나 아무런 감흥도 없다. 어찌하면 저 아가씨를 희생시키지 않을 것인가를 고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인스! 이렇게 하면 돼?”
엘리시아가 불렀지만 현수는 올려다보지 않았다. 또 못 볼 것을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인스! 내가 말하는데 왜 안 쳐다봐?”
“가지나 잘 잡고 있어요.”
“하인스!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거야? 왜 안 봐? 나 이렇게 하고 있으면 되냐고 묻잖아.”
“……!”
“안 볼 거야? 아, 안 볼 거냐고?”
“……!”
엘리시아는 자신을 생각해서 고개를 들지 않음에도 짜증을 부린다.
“너어, 나 안 쳐다보면 나중에 혼나.”
엘리시아가 협박했지만 현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아홉 마리로 늘어나 있었던 것이다.
놈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들을 응징하려는 듯 엄청난 속도로 쏘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우두두두두두……! 콰지직―!
“케에엑!”
“끄악!”
용병 하나가 또 당했다. 그런데 이번엔 쏘러리스의 뿔이 용병의 가슴을 꿰뚫고 나무에 박힌 모양이다.
“사, 살려줘! 아아악! 살려줘! 랄프 대장! 나 좀 살려줘요.”
가슴에 박힌 뿔을 뽑아내려고 발버둥 치는 용병의 앞에는 마찬가지로 나무에 박힌 뿔을 빼내려고 애쓰는 쏘러리스 한 마리가 힘을 쓰고 있다.
현수는 아공간에 있던 비수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나직이 중얼거렸다.
“샤프니스! 스트렝스!”
마법이 인챈트 될 때마다 주변의 마나가 스며든다.
그간 연습을 많이 한 결과 체내의 마나가 아닌 자연의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결과이다.
현수는 아공간에 담겨 있던 스콜론의 독을 비수 끝에 발랐다. 그리곤 지체하지 않고 던졌다.
“이잇!”
쐐에에에엑―! 퍼억―!
직선으로 날아간 비수가 쏘러리스의 둔부에 박혔다.
꿰에엑! 꿰에에에엑―! 꿰에에엑―!
“아악! 아아아악!”
갑작스런 통증에 깜짝 놀랐는지 발버둥이 극심해진다.
그와 함께 놈의 뿔에 박혀 있던 용병도 비명을 지른다. 쏘러리스의 움직임이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잠시 후, 잠잠해진다. 체내에 독이 번져 죽은 것이다.
다음 순간, 모두의 시선이 현수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라 하지만 비수 한 자루로 쏘러리스를 죽일 것이라곤 아무도 상상치 못한 결과이다.
근데 문제가 있다. 나머지 여덟 마리 쏘러리스의 시선도 현수에게 향한 것이다. 놈들의 눈빛이 형형하다.
동족을 살해한 인간을 용서할 수 없다는 눈빛이다.
두두두두두……! 쐐에엑! 쑤아앙! 쒸이익! 쐐애액―!
현수는 순식간에 네 번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당하진 않았다. 놈들이 올 때마다 마치 권투선수가 상대 선수의 펀치를 피하듯 슬쩍슬쩍 자리를 바꾼 덕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가씨! 조금 더 위로 올라가요.”
“뭐라고?”
“지금보다 더 높은 가지로 올라가라고요.”
“싫어!”
엘리시아는 단칼에 현수의 말을 거절했다. 조금 전 봐달라는데 안 봐줘서 삐친 때문이다.
“안 그러면 위험할지도 몰라요. 놈들이 이쪽만 공격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 어서 올라가요.”
“싫어, 네가 날 쳐다보지 않으면 안 올라갈 거야.”
“끄응……!”
저 철없는 아가씨는 현수가 왜 위를 올려다보지 않는지 모른다. 그저 조금 전 자신의 말을 씹은 것만 괘씸할 뿐이다.
“너, 날 똑바로 쳐다보고 말하지 않으면…….”
엘리시아의 말은 중간에 잘렸다. 현수가 고개를 들며 한마디 한 때문이다.
이때 현수는 상당히 화가 난 상태였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사람들이 죽어가는 판에 자기 말을 안 들었다고 땡깡을 피웠기 때문이다. 하여 거칠게 말했다.
“자요! 됐어요? 근데 아가씨, 여기서 보니까 아가씨 치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 알아요?”
“뭐, 뭐라고……! 꺄아악! 이 치한! 네가 감히 내 치마 속을……!”
엘리시아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치마를 여미느라 몸을 숙이는 순간 쏘러리스가 쇄도한 때문이다.
두두두두두……! 찌이익―!
“꺄아아아악……!”
“아, 아가씨!”
늙은 시종이 화들짝 놀라는 소리를 내는 순간 현수는 재빨리 위를 살폈다.
다행히 치마의 일부만 찢겼을 뿐 납치되지는 않았다. 엘리시아는 벌벌 떨며 이 가지 저 가지를 바꿔 잡고 있었다.
쐐에에에엑―!
현수가 두 번째 발걸음을 떼던 바로 그때 쏘러리스의 움직임이 파공음을 만들어냈다.
안도의 한숨도 쉬기 전에 현수는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왔다. 또 다른 쏘러리스의 공격이 느껴진 때문이다.
그 순간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아이언 스킨! 헤이스트! 실드!”
눈에 보이지 않은 마나 실드가 쳐지던 그 순간이다.
두두두두두……! 콰앙―! 콰지지직―! 케에엑―! 우당탕탕―!
현수의 몸통에 뿔을 박아 넣기 위해 쇄도하던 쏘러리스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자빠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실드와 충돌한 결과이다.
실드에 부딪쳐 나가자빠지는 사이에 현수는 비수 한 자루를 꺼내 스콜론의 독을 묻혔다. 그리곤 곧바로 놈에게 던졌다.
쐐엑―! 퍼억!
꿰에에엑! 꿰에에에에엑―!
이번에도 놈의 엉덩이에 박혔다. 그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런 통증 때문일 것이다.
이 순간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인간은 물론이고 다른 쏘러리스들까지 자빠진 놈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잠시 후, 스콜론의 강력한 독에 중독된 놈이 네 다리를 바르르 떠는가 싶더니 움직임을 멈춘다.
다음 순간, 현수는 한꺼번에 쇄도하는 여섯 마리 쏘러리스를 느낄 수 있었다. 나무밑동에 헤딩을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반드시 현수를 아작 내겠다는 기세이다.
현수는 비수 여섯 자루를 꺼냈다. 그리곤 여섯 방향으로 그것을 던졌다. 이번엔 독을 바를 시간이 없다.
하지만 비수를 꺼내며 마법을 구현시킬 여유는 있었다.
“매스 스트렝스! 샤프니스!”
퍽! 퍼퍽! 퍼퍽―!
“오토믹 밤!”
펑! 퍼펑! 퍼펑―!
여섯 번의 폭발이 일어났다. 쏘러리스의 단단한 두개골을 뚫고 들어간 비수들이 터진 것이다.
물론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현상이다.
케엑! 꿰에엑! 끄와악! 끄륵! 케켁―!
우당탕탕―! 콰콰콰쾅―! 와당탕―!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놈들의 사체가 나뒹군다. 그 순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괴상한 소리가 났다.
뀨이이이익―! 뀨이이이이익―!
여섯 자루의 비수 가운데 하나는 목표물에 적중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방향을 선회한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놈은 동족들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곤 괴상한 소리를 냈다. 그리곤 숲속으로 사라졌다.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현수는 엘리시아를 내려주었다.
“아가씨! 이제 내려오세요.”
퍽―!
“으윽!”
“천한 것 주제에 감히 내 치마 속을 들여다 봐? 흥!”
엘리시아는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 현수의 조인트를 깠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어디 가서 입을 놀리기만 하면……! 말 안 해도 알지?”
엘리시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현수를 노려보았다. 평민에게 수치를 당했다는 표정이다.
“……!”
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럴 만한 가치도 없는데 괜히 그러라고 강조한다는 느낌이 든 때문이다.
“내 말을 또 씹어? 다시 한 번 말하지. 어디를 가든 조금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마. 알았어?”
“네.”
현수는 짧게 대답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자빠져 있는 쏘러리스를 살피기 위함이다.
한편, 나무밑동 주위를 빙빙 돌고 있던 용병들 가운데 셋이 쏘러리스의 사체를 살피러 움직였다.
이곳에 온 목적을 잊지 않은 것이다.
“빨리! 놈들이 언제 다시 올지 몰라. 그러니 빨리 해.”
용병들이 사체로부터 쏘러리스의 간을 적출하는 작업을 하는 동안 랄프는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언제 어느 곳에서 쏘러리스가 튀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아앗! 모두 피해!”
두두두두두……! 콰아앙―! 콰직―!
아아악! 케에엑!
느닷없이 쇄도한 쏘러리스에 의해 용병 둘이 목숨을 잃었다. 쏘러리스의 간을 적출하던 바로 그 용병들이다.
용병들은 다시 나무밑동으로 되돌아갔다. 현수는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되돌아온 쏘러리스의 숫자를 헤아렸다.
이번엔 무려 스물세 마리이다. 이때부터 쏘러리스의 무자비한 보복이 시작되었다.
우두두두두두……! 퍼어억―! 퍼억―!
“아아아아악! 케에엑!”
용병 둘이 또 죽임을 당했다.
사방에서 쏜살처럼 쇄도하는 쏘러리스를 피하기엔 용병들의 움직임이 너무 굼떴기 때문이다.
“아가씨, 다시 나무 위로……!”
“아, 알았어.”
엘리시아는 찍소리 않고 나무 위로 오르려 했다. 이번에도 힘이 부족하여 버둥대기만 할 뿐이다.
“자아, 올라가세요.”
현수가 또 엉덩이를 밀어 올리려는 순간이다.
쐐에엑―!
“허억!”
“왜, 왜 그래?”
털썩―!
“에구머니나!”
쏘러리스 한 마리가 섬전의 속도로 현수의 옆구리를 들이받으려 했다. 처참한 광경이 펼쳐지기 0.2초 전, 현수의 신형이 빙글 돌았다. 그와 동시에 쏘러리스가 스치듯 지났다.
그리곤 엘리시아가 뒤로 벌렁 자빠진 것이다.
엉덩이 밑으로부터 밀어 올리는 힘을 받으려던 순간 그 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엘리시아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그보다 쏘러리스가 더 빨랐다.
두두두두두……! 쐐에에엑! 퍼억―!
“아아악! 살려줘! 아아아악!”
눈앞에 있던 엘리시아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현수는 숲속으로 사라져 가는 쏘러리스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순간 동시 다발적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케에엑! 끄아악! 케에엑! 컥!”
용병 다섯이 또 당했다. 곧이어 또 다른 비명이 있었다.
“아악! 사람 살려! 아아악!”
시선을 돌려보니 줄리앙이 납치되어 가고 있다.
“이런 쉬펄! 감히 몬스터 새끼들이……!”
현수의 입에서 육두문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이성의 끈이 끊겼다.
눈앞에서 몬스터에 의해 열네 명이 죽었고, 여자 셋이 납치당했다. 그냥 놔두면 아델이라는 시녀와 B급 용병 줄리앙, 그리고 자작가의 여식 엘리시아는 쏘러리스라는 몬스터의 새끼를 낳아주는 모체로 전락할 것이다.
이쪽은 방어할 수도 없는 일방적인 상황이다.
이성의 끈이 끊긴 현수는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퍼펙트 트렌스페어런시!”
현수의 신형이 사라지던 바로 그 순간 다행히도 사람들의 시선은 자작가의 늙은 시종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공터 한가운데 쏘러리스의 뿔에 꿰인 채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이!”
허공으로 날아오른 현수는 여전히 섬전의 속도로 날뛰는 쏘러리스들에게 시선을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