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임무였던 디오나니아의 열매와 쏘러리스의 간을 모두 구해왔기에 애썼다는 칭찬을 들었다.
자작은 랄프를 불러 용병들에게 약속했던 보수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죽은 이들의 유족에겐 보수와 더불어 약간의 위로금을 더 주겠다고 하였다.
숙소로 돌아온 랄프는 테일러 등 죽은 용병의 유족들에게는 자신과 B급 용병 로렌스 등이 방문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쏘러리스 때문에 죽은 이들이 너무 많아 분위기는 침체되어 있었다.
출발할 때엔 50명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인원은 불과 18명이다. 무려 32명이나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러니 우울 모드였던 것이다.
하지만 마냥 그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죽지 않았으니 앞으로 살아갈 것을 걱정해야 했던 것이다.
용병단은 며칠 쉬었다가 테세린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곳으로 향하는 상단의 호위 임무를 맡은 것이다.
하지만 몇몇은 용병단에서 빠졌다. 현수와 두 명의 용병이다. 미판테 왕국 정보부 소속으로 의심되는 자들이다.
랄프 등은 현수가 빠지는 것에 대해 많이 아쉬워했다. 유능한 치료사 겸 요리사이고, 인간성 좋은 용병이었기 때문이다.
“자네가 이곳에 남는다니 어쩔 수 없군.”
“네에, 엘리시아 아가씨가 따로 고용할 거라면서 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자네 혹시 엘리시아 아가씨와 그렇고 그런…….”
“에이, 그런 거 아닙니다.”
현수가 얼른 말을 잘랐다. 그러자 로렌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얼른 주위를 둘러본다.
귀족가의 여식이 한낱 C급 용병이랑 정분이 났다는 소문이 잘못 번지면 치도곤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네 덕을 톡톡히 봤네.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전갈만 하게. 만사 제쳐 놓고 돕겠네.”
“네에,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말만이라니? 나도 자네의 요청이 있으면 도울 것이니 언제든 우리가 필요하면 기별만 하게.”
“랄프 대장님도요?”
“그래! 자네랑 이곳까지 오는 동안 먹는 것 걱정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었네.”
“그러니까 제가 만든 음식이 또 먹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런 거죠?”
“하하! 눈치챘는가? 어떤가? 여기 주방에 양해를 구해서 실력 발휘를 한번 해보는 게.”
“그럼 그래볼까요?”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있으면 계속해서 말을 시키기 때문이다.
현수가 주방 쪽으로 가는 동안 용병들이 박자를 맞춰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지른다.
“하인스! 하인스! 우리의 요리사 하인스! 실력을 발휘해! 발휘해. 멋진 하인스! 오늘 메뉴는 뭐냐? 만들어만 주라.”
만들어주는 음식이 하도 맛있다 보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만든 일종의 구호 같은 것이다.
웬 소란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었던 여관 주인은 현수가 다가오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주인장! 용병들이 내게 요리를 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주방을 빌려주시겠습니까?”
“좋아, 재료값만 받겠네. 솜씨를 발휘해 보게.”
주인은 요리하기 귀찮은데 마침 잘 되었다는 표정을 짓고는 앞치마를 벗어 건넸다.
“좋습니다. 그럼 솜씨를 한번 발휘해 보지요.”
주인장이 뭐라 하든 일단 주방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얀센네 주방이나 다를 바 없다.
어두컴컴하고 조금은 지저분하다. 일단 입구의 문을 닫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흐음, 이 상태론 안 되지. 워싱! 클린! 워싱! 클린!”
청결 마법 몇 번에 주방은 눈에 뜨이게 달라졌다.
“라이트!”
재빨리 주방 내부를 살폈다. 고기 덩어리들이 걸려 있고, 여기저기에 조리기구들이 놓여 있다.
현수는 필요로 하는 것들을 선별하고는 아공간의 재료들을 꺼냈다. 그리곤 익숙한 솜씨로 음식 만들기를 시작했다.
용병들은 오랜 일정에 지쳐 술 한잔을 하는 중이다. 하여 기름진 안주를 준비했다.
일전에 노보로시스크에서 배웠던 음식들이다.
먼저 기다란 쇠꼬챙이에 절인 고기와 야채를 꽂아서 숯불에 구운 샤실릭과 고기와 양파, 후추와 소금으로 속을 채운 러시아식 만두 삘메니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타임 패스트 마법을 사용하였다. 안 그러면 단시간에 양념이 절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둥글고 얇은 핫케이크에 연어알, 잼, 치즈, 햄, 고기 등을 넣어서 먹는 블린을 준비했다.
다음엔 맑은 콩소메 수프에 큼직하게 썬 고기와 야채가 듬뿍 든 러시아식 수프 솔랸캬를 만들었다.
“자아! 요리가 나갑니다. 이름하야 하인스 특제 요리!”
일부러 큰 소리를 치며 음식들을 날랐다.
용병들은 머리에 털 나고 처음 보는 음식들을 보고 이걸 어떻게 먹는 건가 하는 표정을 짓는다.
“하인스! 이거 이름은 뭔가? 그리고 어떻게 먹는 거야?”
“자아, 이건 샤실릭이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소스를 찍어서 먹으면 됩니다.”
“샤실릭?”
“네, 제 고향 요리입니다. 그리고 이건 삘메니라는 건데 이렇게 손으로 집어먹는 겁니다. 이건 블린이라는 음식인데 요기 이것 위에 이렇게 조금씩 올려 넣고 싸서 먹습니다. 마지막으로 솔랸캬는 숟가락으로 떠서 먹으면 됩니다.”
“하인스! 고맙네. 잘 먹겠네.”
랄프가 숟가락을 들어 솔랸캬를 떠먹었다.
후르르릅―!
“흐음, 어떻게 이런 맛이……!”
랄프의 뒤를 이어 로렌스와 줄리앙 등 음식을 맛 본 용병들이 저마다 탄성을 터뜨린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것이지만 너무도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으으음! 그래, 이 맛이야. 후와, 정말 맛있네.”
“으음! 입에서 살살 녹네.”
“역시 제대로 된 주방에서 만든 음식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쩝쩝,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맛이네.”
추운 지방인 러시아 요리인지라 술안주로는 그만이다.
용병들은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즐겼다.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위기의 순간들을 견뎌냈으니 즐길 만한 자격이 있다.
덕분에 현수는 계속해서 음식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되었다.
현수가 만든 음식을 맛본 주인장이 만드는 법을 배우겠다며 주방으로 난입한 것이다.
어쩌겠는가!
비법이랄 것도 없기에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주인장이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재료를 바꿔치기 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 주방에 있던 고깃덩이들을 아공간에 넣고 냉장 보관되던 신선한 고기들을 꺼내 요리한 것이다.
아무튼 현수의 요리는 대히트였다.
어떻게 외부로 알려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인근 주민들까지 들어와서 왁자지껄해졌다.
한바탕의 유흥은 오후 늦게야 끝났다.
현수는 밖으로 나가 잠시의 산책을 즐겼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주민들 가운데 일부가 비틀거리거나 구토를 한다.
열 명 중 세 명 정도가 이러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천천히 걸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구토하거나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뜨였다.
그러다가 건물 하나가 눈에 뜨였다. 건물의 벽에는 유려한 글씨체로 쓰인 글귀가 있다.
궁극의 플래이팅(Plating)! 성찰의 글로스(Gloss)!
“저게 무슨 소리야? 무슨 뜻이지?”
읽기는 했으나 도금과 광택이라는 의미만 알 수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누군가 그 건물 안에서 나온다.
손에 도끼를 들고 있는데 유난히 반짝인다.
호기심이 인 현수는 사내가 들고 있는 도끼를 눈여겨 살폈다. 새로 만들어 자루를 끼운 듯 신품으로 보인다.
사내는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어서 옵셔!”
현수가 발을 들여놓자 방금 들어갔던 사내가 얼른 다가온다.
곁눈으로 살펴보니 이곳 대장간은 광부들을 위한 장비와 무기 제조가 전문인 듯하다.
“찾으시는 무기라도 있습니까?”
“아! 네에. 검을 좀 보았으면 합니다.”
아공간에 있는 검 대부분은 속칭 희대의 명검 반열에 오를 것들이다. 이곳의 평범한 검은 어떤가 싶어 한 말이다.
“여기부터 저기까지가 검입니다. 레이피어도 있고, 바스타드 소드도 있습죠.”
“흐음!”
“세이버도 있고, 시미터도 있습니다. 찬찬히 둘러보시지요.”
“네에. 그러지요.”
현수는 대장장이 말대로 천천히 병기대를 둘러보았다.
클레이모어나 투 핸드 소드는 물론이고, 프람베르그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기형검도 간간히 눈에 뜨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삐까번쩍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그것보다는 약간 떨어진다. 다시 말해 크롬 도금이 아닌 납 도금을 입힌 듯하다.
약간의 무게가 늘어난다는 것과 쇠보다는 번쩍인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조치인 듯하다.
“흐음, 괜찮아 보이는군요. 이 검은 얼마나 합니까?”
현수가 가리킨 것은 평범한 롱 소드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다른 것에 비해 반짝임이 더하다는 것이다.
대장장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그건 우리 대장간의 특제품으로 10골드짜립니다. 하지만 이곳을 처음 방문하셨으니 특별히 9골드 50실버만 받겠습니다.”
현수는 대장장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압니다. 다른 것에 비해 약간 비싸다는 것을……! 하지만 보십시오. 묵직하지요? 게다가 얼마나 잘 제련되었습니까? 다른 평범한 검에 비해 반짝임이 더하지 않습니까?”
“……!”
납을 도금하고 광택을 냈으니 보통의 쇠보다는 당연히 더 반짝여야 한다.
그런데 그걸 제련의 결과라고 사기 치는 듯하다.
“흐음! 그래요?”
현수가 의심쩍다는 표정을 짓자 대장장이가 얼른 입을 연다.
“손님, 이건 저희 대장간의 회심의 역작입니다. 다른 검에 비해 강도도 더 단단합니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이걸 선택하시면 후회하진 않을 겁니다. 검이란 게 유사시에 손님의 목숨을 좌우하지 않습니까?”
말 한번 현란하게 잘 한다. 대장장이가 아니라 영업사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속는 기분이다.
값을 물어보니 9골드 50실버 이하로는 팔 생각이 없는 듯하다. 한국 돈으로 치면 950만 원쯤 된다는 말이다. 비싸도 보통 비싼 게 아니다. 하여 값을 후려쳤다.
이때부터 남대문 시장에서와 같은 흥정이 오갔다.
현수는 결국 6골드 25실버에 검을 사들였다. 한국 돈으로 따지면 약 625만 원을 주고 한 자루 산 것이다.
현수가 이것을 사들인 이유는 대장장이가 말한 대로 여타의 장검에 비해 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이곳 율리안 영지는 질 좋은 철광석이 나는 산지이다. 그렇기에 상당히 많은 대장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사이에 기술 교류가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솜씨가 좋다. 그렇기에 비싸지만 산 것이다.
손으로 퉁겨보니 맑고 청량한 소리가 울린다. 여기에 납을 도금하고 광택을 내서 상품 가치를 높인 것이다.
현수는 먼 길을 가야 하는 줄리앙을 위해 이 검을 샀다. 쏘러리스에게 납치당하던 때에 애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몬스터 등에게 당하지 말라는 뜻에서 스트렝스와 샤프니스 마법진을 새겼다. 검의 경도를 업그레이드하고, 예기가 더해지도록 한 것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능히 보검 소리를 들을 것이다. 7써클 마스터가 새긴 마법진의 효능은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힐 마법이 구현되도록 마법진을 새겼다. 상처가 생겼을 때 빨리 아물도록 한 것이다.
멀린이 아더왕의 보검 엑스칼리버에 새긴 것과 같은 컴플리트 힐을 새기지 않은 것은 눈에 뜨이는 효과 때문이다.
상처를 입는 즉시 치유되는 검을 들고 다니면 줄리앙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보검은 죄가 없으나 보검을 가진 것은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모든 마법진들은 보이지 않는다. 인비저빌러티 마법을 인챈트한 때문이다.
이제 어느 누구도 줄리앙의 검이 마법검이라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현수보다 고써클 마법사 이외엔 눈치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율리안 영지 곳곳을 둘러보던 중 테세린과는 사뭇 다른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탑에 속하지 않은 자유마법사들을 여럿 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금술사들도 여럿이 있는 듯하다. 마법 용품을 파는 가게와 연금술사들의 가게가 제법 많았던 것이다.
현수는 내침 김에 율리안 영지의 외곽까지 살펴보았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여유가 없는 곳도 아니었다.
영지 외곽엔 석성이 축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마련된 초소에는 병장기를 든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초소의 벽에는 언제든 장전하여 발사할 수 있는 쇠뇌들이 걸려 있다. 물어보니 수시로 몬스터들이 내습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걸어 숙소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이곳에 온 날짜를 꼽아보았다. 얼추 보름이 넘었다.
“흐음, 귀환해야 하나? 제기랄! 좋았는데.”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몬스터와의 대결이 흥미진진했던 현수이기에 귀환이 내키지 않았다.
하나 어쩌겠는가!
이곳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지구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결국 적당한 곳을 찾아 마나를 확인하곤 곧장 차원 이동을 했다.
“마나여, 나를 지구로 귀환시켜 줘. 트랜스퍼 디멘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