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23화 (223/1,307)

# 223

가에탄 카구지는 관심이 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하긴 내무장관으로서 부족한 식량을 만들어 내겠다는데 어찌 싫겠는가!

“네, 제 힘이 닿는 한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 좋네, 규모는 얼마나 원하는가?”

잠시 상념에 잠겼던 장관의 물음이다.

“주실 수 있는 만큼 주십시오. 다만 기존의 농지 인근이 아니라 현재 농사를 짓지 않는 곳으로 주십시오.”

현재 농사를 짓지 못하는 곳은 정글 속이거나 물이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혹시 한국엔 농업용수가 없음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술이라고 있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저는 쓸모없다 판단되어 버려진 땅을 개간하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싶네.”

현수는 허리를 펴고 눈빛을 빛내며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현재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을 구획하여 주면 그곳을 개간하여 농작물을 재배하겠다는 생각이다.

주위에 강이 흐른다면 관계시설을 만들어서라도 농업용수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물론 엄청난 설비 투자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어쩌면 투자 대비 회수 비율이 상당히 낮을 수도 있다.

가에탄 카구지는 이 대목에서 감동받았다.

자기 나라도 아니고, 자기 소유의 땅도 아닌 곳을 위하여 돈과 노력, 그리고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려 한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장관의 생각일 뿐이다.

현수의 복안은 다음과 같다.

먼저, 콩고민주공화국으로부터 토지를 불하받는다. 그 기간은 대략 100년 이상을 예상한다.

다음엔, 불하받은 땅의 정글을 개간하면서 막대한 양의 목재를 취한다. 이것은 각종 건축물의 재료가 될 것이다.

그리곤 농지 조성 직전 개간된 토지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맥을 찾아낸다.

아르센 대륙에서 만났던 엘프 레이찰 토들레아가 말하길 모든 땅속엔 물이 있다. 사람들이 찾아내지 못할 뿐이라고 했다.

반면 엘프들은 땅속 어디에 물이 있는지 안다. 그렇기에 마음만 먹으면 사막도 비옥한 숲으로 조성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때 사용되는 것이 바로 이그드라실의 잎이다. 헤어지면서 현수에게 주었던 그것은 현재 아공간에 곱게 모셔져 있다.

그동안 레이찰 토들레아의 말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어젯밤, 현수는 이춘만 지사장, 그리고 마투바와의 맥주 파티 이후 이그드라실의 잎을 꺼내 주변을 탐색해 보았다.

그 결과 레이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그드라실의 잎은 다소 두툼하고 뻣뻣한데 수맥이 있는 곳으로 가면 잎사귀가 아래로 구부러졌던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장관을 만나러 왔던 것이다.

아무튼 물을 찾아내면 농사짓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풍부한 노동력과 성능 좋은 농기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농지 조성이 끝나고 농작물을 수확하게 되면 그중 절반 정도는 콩고민주공화국 정부에 판매할 계획이다.

가난한 나라이니 생산에 들어간 가격만 받겠다고 했다. 나머지는 한국으로 가져가거나 곡물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판매한다.

모든 계획을 들은 가에탄 카구지가 정색하며 입을 연다.

“미스터 킴!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 정부가 매입할 때엔 생산원가 대비 15%의 마진을 보장해 주겠네.”

“……!”

이번에도 가에탄 카구지는 현수에게 호감 어린 배려를 한다. 하여 뭐라 대답하려는데 장관이 먼저 입을 연다.

“아니, 20%가 적당하네. 자네도 남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장관님!”

이번에도 현수는 말문을 열지 못했다.

“자네가 하려는 일은 콩고민주공화국의 국익과 직결되어 있네. 우린 1976년을 결코 잊지 않고 있지.”

장관이 언급한 1976년에 콩고민주공화국의 국가명은 ‘자이르’였다.

이때 국가 경제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수입했던 곡물 대금을 제 날짜에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콘티넨탈은 밀 공급을 즉각 중단해 버렸다. 그 결과 심각한 식량난을 겪었고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국제사회엔 곡물 메이저라는 것이 존재한다.

국제 곡물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막강한 정치적 힘까지 가진 다국적기업들이다. 이들을 5대 곡물 메이저라 칭한다.

미국의 카길과 콘티넨탈,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 스위스의 앙드레, 아르헨티나의 붕게가 그들이다.

이들은 전 세계의 곡물 생산지와 수요처에 거미줄 같은 지점망을 설치, 운영하면서 다른 기업과는 전혀 제휴 관계를 맺지 않는 독특한 경영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이들 가운데 콘티넨탈에게 호되게 당한 것이다. 가에탄 카구지 역시 1976년 당시엔 주린 배를 움켜쥔 소년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기에 한시바삐 식량 자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하지만 나라 사정과 제반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현수가 나서서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넓은 영토가 있지만 제대로 개발된 곳은 거의 없네. 자네가 원하는 지역을 개간할 수 있도록 하겠네. 얼마만큼 필요한지를 말해주면 법안을 마련하여 지원하겠네.”

가에탄 카구지는 아주 썩어버린 정치인은 아니다.

정권을 잡기 위한 투쟁에서 많은 희생이 발생되었지만 자기 부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 전체를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눈빛을 형형히 빛내고 있다. 현수에게서 콩고민주공화국의 미래를 느낀 모양이다.

“네, 적합한 지역을 찾아 조만간 장관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그건 좋으네. 문제는 자금이네.”

“……!”

“자네는 월급쟁이이고, 천지약품에서 돈이 많이 벌리지만 그것만으론 자네가 말한 것들을 이루기 힘들다는 판단이네.”

“맞습니다. 그래서 장관님께 또 다른 도움을 받아야겠습니다.”

“말만 하게. 무어든 돕겠네. 하나 정부의 자금 지원은 어렵네.”

“돈은 필요없습니다. 제겐 선조대대로 물려받은 금이 조금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처분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황금……? 좋네. 얼마나 되지?”

“우선은 1,000㎏ 정도를 처분할 생각입니다.”

“무어? 황금을 1톤이나……?”

대경실색하는 표정이다. 하긴 국제 금시세로 따졌을 때 황금 1톤은 6,010만 달러 정도 된다. 한화로 672억 5,000만원이다.

이러니 놀랄 수밖에 없다.

“그밖에도 가공된 보석들이 조금 있습니다. 그것의 처분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황금은 전량 정부에서 매입하는 것으로 하지. 하지만 보석은 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지 않은가?”

“송금된 돈이 있어 우선은 쓸 수 있을 겁니다.”

“송금된 돈……? 혹시 1억 2,700만 달러의 주인이 자네인 건가?”

얼마 전, 장관은 스위스은행으로부터 콩고민주공화국 국영은행 계좌로 송금된 돈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 사실은 소문이 되어 정가에 번졌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고 있지 않기에 누가 주인인가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다.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말도 있었고, 가에탄 카구지가 몰래 감춰두었던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1,421억 3,100여만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기에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끝내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 소문만 무성하던 돈의 임자가 현수임이 밝혀지자 장관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만 알았는데 양파 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장관의 시선을 받은 현수는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 겁니다.”

“자네 혹시 천지그룹 회장의 아들인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거금을……?”

“저희 집안에 내려오는 자금입니다. 이곳 콩고민주공화국의 발전을 위해서 쓰려고 마음먹은 거구요.”

“……! 고맙네. 정말 고맙네.”

가에탄 카구지는 진심을 담아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아무튼 돌아가는 대로 원하는 지역을 알려주게. 나는 대통령과 각료들에게 이야기해 놓겠네.”

“네, 근데 조금 넓어도 되죠?”

“하하, 물론이네. 자네 돈 들여 개발할 건데 넓으면 넓을수록 우리가 좋은 거 아닌가?”

“그렇군요. 하지만 이번 건엔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저희가 조성하려는 농지의 사용 기간을 최대한 늘려주십시오. 또한 그곳까지의 도로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개설해 주십시오. 대신 가급적 많은 인원을 고용하겠습니다.”

“……!”

고용이 늘면 국민 소득이 늘어난다. 먹고살 만해지면 정부에 대한 불만은 사그라들게 된다.

그렇기에 현수의 제안은 정부로선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조건이다.

어차피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대동맥 같은 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산물이 수확되면 인근에 가공 공장들도 지을 생각입니다. 쌀의 경우엔 도정 공장도 필요하니까요.”

“말만으로도 고맙네. 자네의 뜻이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해주겠네.”

“네, 감사합니다.”

가에탄 카구지는 내무부 청사의 로비까지 내려와 현수를 배웅해 주었다. 이른 본 내무부 소속 공무원들까지 가세하여 결국엔 200여 명의 배웅을 받게 되었다. 대통령이나 받아볼 환송이다.

“그래, 갔던 일은 잘 되었나?”

“네! 별일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사장님!”

“왜? 뭔 일 있어?”

“저, 여기서 농사도 지으려고 합니다.”

“농사를 지어?”

“네, 벼와 사탕수수 등 재배할 수 있는 작물들은 모두 재배해 볼 생각입니다.”

“모든 작물을?”

이 지사장은 웬 뜬금없는 말이냐는 표정이다.

“네!”

“얼마나 많이 지을 건데?”

“글쎄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한국에선 300평당 쌀 수확량이 대략 500㎏ 정도 돼요.”

이 지사장은 대꾸 대신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도시에서만 성장했기에 농사일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5천만 평의 농지가 조성될 수 있다면 한 번에 약 83,000톤가량을 생산하죠. 여긴 기후도 덥고, 일사량도 많으니 3모작까지 가능해요. 그럼 연간 24만 9천 톤까지 생산할 수 있을 겁니다.”

“헐……!”

“한국의 1인당 쌀 소비량은 약 71.2㎏이에요. 그걸 기준으로 하면 약 350만 명이 일 년 동안 먹고 살 분량이 되네요.”

“끄응!”

이 지사장은 어마어마한 인원에 놀라는 표정이다.

“여긴 쌀이 주식이 아니니 옥수수도 심어야죠. 한국인이 나이지리아에 와서 새로 품종을 개량한 GUSAU 81 TZB라는 옥수수가 있어요. 이건 ha당 5.4톤이나 수확을 하죠.”

“헥타르면 넓이가 얼마지?”

“10,000㎡죠. 이것도 5천만 평 정도에 심으면 한번에 9만 톤 정도 수확하네요. 이것 역시 1년에 세 번 수확할 수 있으니 27만 톤쯤 생산할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군,”

이 지사장은 쌀과 옥수수만으로도 700만 명 이상의 식량이 된다는 생각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옥수수의 대는 바이오디젤이나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는 원료가 될 수 있지요.”

“아무튼 그러려면 1억 평이 필요하군.”

“네, 약 330㎢의 땅이 필요하죠. 가로 20, 세로 16.5㎞ 정도 되는 땅이면 되네요.”

“끄으응!”

이춘만 지사장은 여의도 면적의 40배쯤 되는 땅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 현수를 보고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뻥치는 건 분명 아닌 것 같은데 스케일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도 고구마나 감자 같은 구황작물과 콩과 깨 같은 작물들도 심을 수 있으면 최대한 많이 심어볼 생각입니다.”

“내무장관님은 뭐라 하던가?”

“최대한 협조할 것이니 원하는 장소만 찍으랍니다.”

13장 내 뜻대로 할 겁니다

“그래서 얼마나 달라고 할 건데?”

“현재로선 2억 평 정도 달라고 할 생각입니다.”

“끄으으응!”

이 지사장은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근데 그럴 만한 돈은 있나? 여기 인건비가 아무리 싸다 해도 그만한 일을 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드네.”

“여기 오기 전에 일단 2,000억 원쯤 마련했습니다.”

“뭐어? 이, 이천억 원?”

“네,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끌어모은 겁니다.”

“자네 혹시 회장님의 조카라든지 뭐 그런 건 아닌가?”

재벌가의 자식이라도 언급하기 힘든 돈을 너무도 태연스럽게 말을 하기에 물은 것이다.

“물론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이 어디에서 났나?”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러시아와 거래를 하는 중입니다.”

“러시아와……?”

“네, 정확히는 모스크바에 있는 무역상사와 거래를 하고 있지요. 매월 5천만 달러어치를 수출합니다.”

“헐……! 5천만 달러나……!”

이젠 입만 열면 엄청난 숫자가 튀어 나온다. 이춘만 지사장은 슬슬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2년간 12억 달러어치를 거래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끄으응……!”

1조 3,428억이다. 이 지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거나 이제부턴 농사짓기에 합당한 지역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아직 기공식도 하지 않았으니 며칠 둘러봐도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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