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그럼, 여기서의 생활은 자네 마음대로 하게. 앞으론 내게 일일이 허락받지 않아도 돼.”
“에이, 그래도 조직인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래도 돼! 여긴 한국이 아니잖아. 그리고 여기서 자네가 할 일이 뭐가 있어? 공사는 본사에서 오는 기술자들이 알아서 할 거잖아.”
“하긴 그러네요. 그럼 며칠 동안 여기저기 좀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제 핸드폰으로……. 아 참! 여긴 그게 잘 안 터지죠? 흐음, 그럼 어쩐다?”
“생길 일도 없네. 그러니 며칠쯤 돌아다녀도 돼. 그리고 위성전화기를 준비해 놓겠네. 어차피 있어야 할 것들이니까.”
“네에, 감사합니다.”
이 지사장과 헤어진 현수는 콩고민주공화국 지도를 구입했다. 그리곤 경비행기 한 대를 전세 냈다.
킨샤사 공항에서 빌렸는데 1963년에 만들어진 세스나 172기이다. 처음 보았을 땐 과연 저걸 타도 될까 싶을 정도로 낡아 보였다.
하긴 50년이나 쓴 고물 중의 고물이다.
누런 이를 드러내 보이는 기장이 안전하다고는 했지만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걸 전세 낸 이유는 추락해도 본인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유사시 비행기를 탈출한 뒤 플라이 마법으로 날면 되는 것이다.
기장은 참 말이 많았다. 현수로부터 대략적인 이야기를 듣고 이륙한 직후부터 계속해서 떠들어댄다.
현수가 살펴보고자 하는 곳은 반둔두 지역과 오자이르 지역이다.
반둔두는 정글이 많은 곳이고, 오자이르는 그보다는 약간 덜하다. 도로조차 없는 곳이 태반이라 양쪽 모두 사람들이 거의 없다.
남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가운데 개발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이중 오자이르 지역은 현임 대통령 조세프 카빌라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지역이다. 그렇기에 현 정부에 대항하는 무장그룹들이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
현수는 두 지역을 놓고 고심한 끝에 오자이르 주 비날리아 인근의 땅을 골라냈다.
붐바와 부타, 그리고 비날리아로 둘러싸인 곳이다.
이곳은 해발고도가 200m 이내이다. 게다가 양쪽에 강이 있어 농업용수 조달에 큰 어려움이 없다.
뿐만이 아니다. 인근에 세 도시가 있어 필요한 생활용품 등을 조달하기에도 용이하다. 결정적인 것은 이곳에서 생산된 곡물들을 운반할 자이르강이 인근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글뿐만 아니라 황무지도 공존하는 곳이다. 개간 비용이 덜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수는 자신에게 더없이 우호적인 콩고민주공화국 현 정부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이곳에 가산점을 주었다.
인근 지역은 반군이라 할 수 있는 무장단체들이 활개를 치는 곳이다. 따라서 현 정부의 지원도 적다.
그렇기에 이곳 주민들의 생활은 ‘피폐’라는 단 두 글자로 요약된다.
만일 이곳에 농장이 세워져 인근 주민들을 고용한다면 보다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진다. 그렇기에 이곳을 낙점한 것이다.
이렇게 하기까지 현수는 엄청난 시간을 경비행기 속에서 보내야 했다. 물론 조종사의 끊임없는 수다도 들어야 했다.
“그래, 농장 후보지를 골라냈는가?”
“네, 장관님! 오자이르 주 비날리나 인근을 골랐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이 지역입니다.”
현수가 장관실 내부의 대형 지형도의 한 곳을 짚었다.
“흐음, 거긴……! 우리 정부의 힘이 덜 미치는 곳이네.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어.”
“압니다. 그래서 이곳을 고른 겁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 형편이 나아지면 정부에 대한 반감도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자네……!”
가에탄 카구지는 현수가 어떤 의도로 이곳을 골랐는지를 깨닫고는 잠시 말문을 잇지 못했다. 남의 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웠던 때문이다.
“저는 이 지역 전체를 향후 100년 정도 불하받고 싶습니다.”
현수가 손으로 그리는 범위를 본 장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만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설득해서라도 꼭 그렇게 되도록 해주겠네. 하지만 이 상태만으론 어렵네.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니 서류로 계획안을 작성하여 가져오게.”
“물론입니다. 작성이 되는 대로 곧바로 가져오겠습니다.”
현수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장관 역시 가볍게 목례를 한다. 도와주는 입장이지만 미안한 기분이 들어서이다.
엄청난 넓이의 땅을 자비로 개간한다는데 어찌 미안하지 않겠는가!
“갔던 일은 잘 되었는가?”
“그럼요. 제가 하는 일이잖아요.”
이춘만 지사장은 도착 즉시 전화기를 집어 드는 현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저런 열정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뜻만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의미이다.
“아! 이 실장님. 나 김현수예요.”
“어머, 사장님! 콩고민주공화국에 도착하신 거예요?”
“그래요. 회사엔 별일 없죠? 네, 특별한 일 없어요. 참, 드모비치 상사로 보낼 물건들 선적이 시작되었어요.”
“그래요? 상품에 하자가 없는지 확인 잘 해주세요. 이번에 처음 보내는 거니까 수량도 정확해야 해요.”
“네, 걱정 마세요.”
“곁에 혹시 민 실장 있어요?”
“네, 잠시만요. 금방 바꿔 드릴게요.”
잠시 후 주영이 전화를 받는다.
“주영아! 나, 현수다.”
“어! 그래. 잘 도착했어?”
“그럼……! 그쪽 일은 어떻게 됐냐?”
“여기 일……? 어떤 거?”
“직원들 새로 뽑는 일 말이야.”
“아! 그거. 계속해서 충원하는 중이다. 근데 네가 없으니까 사람 뽑는 게 여간 조심스럽지 않아 조금 버벅대는 중이다.”
주영의 말은 사실이다.
사람 하나 잘못 뽑아놓으면 조직 전체가 뒤흔들릴 수 있다.
특히,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은 뽑아선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얼굴 보고 말 몇 마디 하는 것으로 어찌 그런 걸 알아낼 수 있겠는가!
민주영이 수십 년간 사람만 뽑아온 인사 담당자라 할지라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이제 처음 사람을 뽑고 있으니 주영으로선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이다.
“그렇겠지. 하여간 심성이 올바른 사람 위주로 뽑아, 뒤틀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배반하기 쉽거든.”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현수이다. 하지만 현수로서도 방법이 없다.
“그래! 특히 그걸 유념해서 뽑는 중이다.”
“하여간 최선만 다해라. 조만간 다시 들어갈 테니까.”
“그래! 꼭 그래다오.”
잘못되면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요즘의 주영은 연애 전선에 이상이 발생되어 있다. 다시 말해, 현수가 없는 사이에 은정의 마음을 흔들어야 하는데 그럴 심적인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아무튼 이쪽으로 와야 할 사람들은 교육 끝나는 대로 바로 보내줘야겠다. 그리고 사람들도 더 뽑아야 하고.”
“왜?”
“자세한 내용은 팩스로 보낼 테니까 참고해. 알았지?”
“야!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보내려면 비자를 받아야 하잖아. 근데 꼴랑 5박 6일짜리 신입사원 연수만 시켜놓고 어떻게 보내?”
이실리프 상사의 직원이 될 사람들은 주영의 말대로 5박 6일짜리 연수를 받게 된다.
첫날엔 이실리프 상사의 비전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커피농장과 축산단지 등에 관한 것들이다.
이것은 민주영이 교육을 담당한다.
둘째 날엔 콩고민주공화국에 입국한 뒤의 행동거지 유의사항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이건 이은정 실장이 맡았다.
이춘만 지사장에게 부탁하여 그 내용을 팩스로 받아서 실시한다.
셋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기본 인성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이건 외부 기관에 위탁하였다.
머릿속의 지식보다는 인간성을 중시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재벌사의 신입사원 연수기간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뭐 때문에? 비자 발급 기간 때문에?”
“그래! 주한 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에 전화 걸어 물어보니까 최고 급행이 3박 4일이고, 보통은 7∼8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심하면 보름도 더 걸릴 수도 있고…….”
“아! 그건 걱정하지 마라. 여기 장관님께서 특별히 우리 이실리프 상사의 재직증명서가 첨부되면 심사없이 즉시 발급해 주는 걸로 이야기 다 되었으니까.”
“정말? 여기 노멀로 비자 신청해도 그 비용이 16만 원쯤 들어.”
“알아! 앞으론 대행하지 말고 회사에서 서류를 확인해서 일괄 발급 받도록 해.”
“그럼 우리야 좋지. 그렇지 않아도 그 비용을 어떻게 하나 했다.”
“그래, 어쨌거나 직원들 뽑는 대로 이쪽으로 보내. 여기서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특히 정승준 씨하고 김나윤 씨는 꼭 보내.”
“그래, 알았어. 그나저나 언제쯤 귀국할 거냐? 너하고 상의할 일이 너무 많아.”
“조만간! 어쩌면 며칠 내가 될 수도 있어.”
“알았어. 몸조심해라.”
“그래! 그나저나 집은 좀 편하냐?”
출국하기 직전 현수는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있는 건물 주인과 만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 건물을 사들였다.
건물 이름도 이실리프 빌딩으로 바꾸었다.
지하 2층은 입주자들의 주차장이고, 지하 1층은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창고로 사용하도록 했다. 건물을 사자마자 비어 있던 1층 상가에 편의점과 식당이 입주하기로 했다.
2층과 3층의 절반은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업무공간이다.
현재 쓰고 있던 사무실은 현수의 사장실과 민주영과 이은정 실장의 공간으로 쓰기로 했다.
4층의 절반엔 이전처럼 이은정 실장의 가족이 살고, 나머지 절반은 민주영이 사용한다.
비어 있던 5층 가운데 절반은 대구에서 올라온 고강철 씨 가족에게 배당되었다. 나머지 절반은 이 실장의 친구인 임소희 씨 가족이 사용한다.
희망 캐피탈은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는 중이다. 그간 불법으로 고리사채업을 했다는 증거가 있어 법의 처분을 받게 될 것이다.
임동현이 진 빚은 전액 상환한 것으로 정리되어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그동안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살았던 임소희는 졸업과 동시에 이실리프 상사의 직원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어려움을 겪었으니 편히 살라는 배려에서 현수가 결정한 일이다.
전에 살던 집에 가보니 이전의 이은정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허름한 집이다. 그렇기에 5층의 절반을 쓰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에서 일을 하던 부모님은 검찰의 연락을 받고 급거 귀국하면서 실직된 상태이다.
이들 역시 이실리프 농장의 주방에서 일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임소희의 동생인 임동현은 제대 즉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불러들여 혹독한 인생 경험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어쨌거나 2∼3평짜리 원룸에서 살던 주영에게 실면적 35평짜리 주택은 고대광실이다.
그래서 밤새 청소를 하며 행복해했다. 문제는 식사이다.
남자 혼자 해결하는 끼니에는 영양가가 없다. 라면으로 때우거나 식빵 몇 조각에 잼을 발라먹는 것으로 끝내기도 한다.
친구가 건강하길 바라는 현수는 주영의 식사를 은정의 할머니에게 부탁했다. 당연히 모든 비용을 지불한다.
주영은 정성이 깃든 맛깔난 식사를 해서 좋고, 은정의 할머니는 기대하지 않던 부수입이 생겨서 좋다.
물론 이 일의 배경엔 둘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현수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
만일 둘이 결혼을 한다면 현수는 기꺼이 집을 선물할 생각이다.
아무튼 민주영은 현수가 출국하기 전날 입주했다.
“집이 너무 넓어서 청소하는데 힘이 든다.”
“그래서 싫어? 그럼 원래 집으로 되돌아가도 된다.”
“아, 아냐! 그게 아니고…….”
주영이 펄쩍 뛰는 모습이 상상된 현수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에구, 농담이다! 그나저나 이 실장 마음은 훔쳤냐?”
“아직……!”
단 한 번도 여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는 주영이기에 말끝을 흐렸다.
“인터넷으로 연애는 어떻게 하는가 하는 걸 검색해 봐라. 주말마다 놀러 가자고 꼬시고. 참, 여름휴가들 가야지?”
“여름휴가……?”
“그래! 직원이라고 현재는 달랑 네 명뿐이니까 다 같이 워크샵 같은 걸 다녀와. 비용은 회사에서 지출하고.”
“넷이서?”
“왜? 꽃밭에서 놀 생각을 하니 좋아 죽냐?”
“아니! 나 여자들 등살에 죽을지도 몰라.”
주영이 엄살을 부린다.
“에구, 그래 가지고 장가는 가겠냐? 아무튼 둘이 가든 넷이 가든 휴가들 가라. 알았지?”
“오냐!”
“참, 여기서 대단위 벌목 내지는 개간을 해야 할 일이 생겼어. 그러니까 중고 중장비들 물색 좀 해놔라.”
“중장비를……?”
“그래, 불도저하고 페이로더도 필요해. 그리고 로그 마스
터(Log Master)하고, 타이거 캣(Tiger Cat)은 있는 대로 알아보고.”
“로그 마스터? 타이거 캣……? 그게 뭐냐?”
“로그 마스터는 나무를 제재하고 적당한 크기로 다듬어주는 벌목 장비야. 타이거 캣은 벌목된 목재들을 운반하는 중장비고.”
“그래?”
“그리고 이름을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목재를 파쇄해 톱밥으로 만드는 기계가 있어. 이 톱밥을 압축해서 목재 펠릿(Pellet)으로 만드는 것도 있고. 이것들도 알아봐라.”
“목재 펠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