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1장 코리안 빌리지의 성자
“바샤 아스토우 할아버지 계십니까?”
현수의 조심스런 부름에 늙수레한 음성이 대꾸한다.
“누구슈?”
“저는 한국에서 온 의료봉사원입니다.”
“한국에서……? 아, 한국! 어서 들어오슈!”
어두컴컴한 생철 집 안에 발을 들여놓으니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들어서면서 보니 참으로 열악한 환경이다.
한국으로 치면 도둑이 들어와도 훔쳐 갈 물건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거지 같은 집구석이다. 모든 것이 낡고 볼품이 없다.
얼마나 가난한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현수가 방문한 바샤 아스토우는 셀라시에1) 황실 근위대 출신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용사이다.
2011년에 한국의 의료봉사대로부터 안과 수술을 받아 거의 잃었던 시력을 되찾은 분이기도 하다.
현수가 바샤 아스토우 할아버지를 찾은 이유는 코리안 빌리지에서 가장 위급한 상황이라는 말을 들은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야전침대 비슷한 것에 노인 하나가 누워 있다. 병마와 씨름하느라 바싹 말라 미이라처럼 보인다.
“끄으응……! 손님이 왔는데…….”
“아! 아닙니다. 그냥 누워 계세요.”
“미안하우. 힘이 없이 일어나질 못하겠어.”
등잔불로 치면 기름이 다 떨어져서 가물가물거리는 상황과 비슷하다. 병마가 생명력을 갉아먹어 노쇠할 대로 노쇠해진 것이다.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그러슈!”
이전에 한국 의료진으로부터 안과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어 그런지 전혀 의심하지 않는 모양이다.
“흐음, 마나 디텍션!”
샤르르르르릉―!
현수의 마나가 바샤 아스토우 할아버지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그리곤 전신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것을 느끼는지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으음! 노쇠한 데다 신부전증까지 있나 보구나. 폐 기능도 조금 약하고, 비장과 위장 기능도 많이 떨어졌네.’
진단을 마칠 즈음 바샤 할아버지의 가족들이 들어왔다. 그중 스물네댓 살쯤 된 어여쁜 처녀가 묻는다.
“누구세요?”
“아……! 저는 한국에서 온 의료봉사대원입니다.”
“그래요?”
“제가 살펴보니 할아버지에게 신부전증이 있습니다. 지금 치료를 해야 하는데 해도 되겠습니까?”
“신부전증이 뭐예요?”
“그건…….”
현수는 천천히 신부전증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신부전이란 신장이 혈액에서 노폐물을 제거하고 몸 안의 수분량과 전해질 농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기능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신장에서 만들어지는 소변량이 점차 감소하다가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 결과 몸 안에 수분이 축적되면 울혈심부전증(Congestive heart failure) 상태와 같이 폐에 물이 차서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고, 노폐물이 몸 안에 축적되면 심장이나 뇌 기능이 손상 받는다.
현수의 설명을 들은 가족들은 걱정스런 시선으로 바샤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지금 치료를 해야 하는데 해도 되겠습니까?”
“여기서 수술을 할 건가요? 아무런 장비도 없잖아요.”
“한국의 의술 가운데 침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몸을 째지 않고 병을 낫게 하는 의술입니다.”
현수가 침을 꺼내 보여주자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쇠로 만든 침 몇 개로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걸로 할아버지를 고쳐요?”
“네! 침을 쓰면 아마 많이 좋아지실 겁니다.”
가족들이 뭔가 말을 하려는데 바샤 할아버지가 먼저 입을 연다.
“이보게, 젊은이!”
“네, 할아버지.”
“그냥 치료해 주게.”
현수는 대답 대신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환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현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 조금 따끔할 수도 있지만 많이 아프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그래. 아무튼 고마우이.”
기력이 다한 듯 힘없는 목소리였다.
현수는 가방 속에 담아두었던 회복 포션을 꺼냈다. 한 병만으로도 말기암을 치료하는 놀라운 효능을 가진 것이다.
뚜껑을 따고 조심스럽게 그것을 복용시켰다.
가족들은 폐부를 청량하게 하는 향기를 느끼곤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냄새만으로 의심을 떨군 것이다.
회복 포션 한 병을 모두 복용시킨 현수는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리곤 단전에 침 하나를 꼽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마나여! 모든 것을 원상으로 회복시켜라.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릉―!
서늘한 푸른빛 마나가 단전에 꼽힌 침을 통해 바샤 할아버지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물론 가족들의 눈에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서늘한 푸른빛도 보이지 않는다.
현수가 단전을 택한 이유는 그곳이 몸의 중심부이기 때문이다. 신체 전체에 골고루 리커버리 마법이 구현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지속적으로 이어지던 마나의 유출이 중단되자 현수는 한시 바삐 기력을 회복하라는 뜻으로 시침을 했다.
가족들은 천주교에서 미사2)를 집전하는 신부의 경건함과 같은 모습으로 시침하고 있는 현수를 보았다.
왠지 믿음이 가서 그런지 어디에 침을 놓든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소문이 났는지 몇몇 사람들이 들어와 기웃거린다.
하지만 가족들이 소리 내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 실내는 몹시 조용했다.
“휴우∼!”
현수가 긴 한숨을 내쉬곤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가족들이 본 것처럼 정성을 다해 시침하느라 심력을 소모한 탓이다.
쿨―!
바샤 아스토우 할아버지는 편한 듯 코까지 골며 잠을 자고 있다.
“어머! 할아버지가 잠에 드셨어.”
손녀의 말에 현수가 시선을 돌렸다. 무슨 뜻이냐는 말이다.
“지난 열흘간 아프다면서 한잠도 못 주무셨어요. 근데 너무 달게 주무시네요. 몸이 편해지셨나 봐요.”
“그럼 조금 주무시게 밖으로 나갑시다.”
현수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컴퍼터블 템퍼러처!”
마지막으로 나서던 현수가 입술을 달싹이자 실내 기온이 내려간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쾌적한 온도가 될 때까지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서너 시간은 유지될 것이다.
덕분에 바샤 아스토우 할아버지는 단잠을 더 달게 주무실 것이다.
“그런데 의료봉사대 본부는 어디에 있어요?”
“어떤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거죠?”
“우리 할아버지는 복수가 차서 임산부처럼 배가 부른데 그것도 치료 가능한가요?”
“우리 할아버지는 결핵이라는데 치료해 줄 수 있는 거죠?”
밖으로 나오자 쏟아진 질문들이다.
현수는 강렬한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입을 열었다.
“급한 분부터 치료할 생각입니다. 누가 가장 급한지 알려주십시오.”
“우리 할아버지요.”
“아냐, 우리 할아버지가 더 급해.”
“무슨 소리! 우리 할아버지도 급하다고.”
“근데 할아버지들만 치료해 주는 건가요? 우리 할머니도 많이 편찮으신데…….”
현수는 코리안 빌리지에 이틀을 머물렀다. 첫날엔 30여 명을, 둘째 날엔 46명을 치료했다. 셋째 날엔 환자 61명과 씨름했다.
보유하고 있던 회복 포션을 아낌없이 썼다. 컴플리트 힐과 리커버리, 그리고 큐어와 힐 마법은 몇 번이나 썼는지 그 숫자를 잊었다.
마나가 고갈되기 일보 직전까지 마법을 구현하고 또 구현시켰다.
그리곤 밤새 결계 안에 들어가 마나를 모았다.
단 사흘이었지만 현수에 관한 소문이 아디스아바바 전역으로 번졌다. 한국에서 의술의 신이 왔다는 것이다.
그러자 바늘 몇 개로 못 고치는 병이 없는 신기한 의술을 경험하기 위해 환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수는 가야 할 길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중에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하고야 떠날 수 있었다.
아무튼 병마에 시달려 오늘내일하던 바샤 할아버지는 현수를 만난 덕에 수명이 10년은 늘어났다.
자리를 털고 있어났을 뿐만 아니라 현수가 제공한 음식들을 왕성하게 섭취했다. 그 결과 흐리멍텅하던 눈빛도 또렷해졌다.
나머지 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구루병, 각기병, 야맹증 등 비타민 결핍증에 걸려 있던 환자에겐 적절한 비타민을 주었다.
그렇게 성심으로 환자를 돌본 현수는 한국에서 온 성자 대접을 받으며 코리안 빌리지를 떠났다.
현수가 떠나는 길 뒤엔 무려 천여 명이 손을 흔들며 환송했다. 그러면서 꼭 다시 오라는 합창을 했다.
당연히 환히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곤 다음 예멘, 오만 등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어머! 사장님. 소식도 없이 어떻게…….”
“하하! 휴가는 잘들 다녀왔어요?”
“네에.”
“민 실장은요?”
“민 실장님은 지금 외근 중이세요.”
이은정은 현수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사장은 멀고 먼 아프리카까지 가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민주영과 등산 다니며 데이트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언제쯤 들어올지 연락 한번 해보세요.”
“네. 근데 차 드려요?”
“좋죠! 시원한 사과 주스 있어요?”
“토마토 주스는 어때요? 시원한 거 있는데요.”
“좋아요. 그걸 주세요.”
현수가 사장실로 들어가자 은정이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너무도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데 배반한 기분이 든 때문이다.
한편 사장실로 들어온 현수는 두 개의 컵을 보곤 이마를 쳤다.
“아! 이걸 깜박 잊고 있었네.”
현수는 별 기대 없이 컵의 온도계를 살펴보았다.
“으응? 39℃……? 그때가 며칠이었지?”
현수는 얼른 다이어리를 찾아 펼쳤다. 거기엔 생각날 때마다 기록한 메모들이 그득하다.
무엇을 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등을 써놓았던 것이다.
“가만있자……. 뭐야! 7월 15일이면 한 달이 다 되어가잖아?”
오늘은 8월 13일 화요일이다. 꽉 채운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온도엔 변함이 없다.
현수가 쓴 치우지 말라는 메모를 본 은정은 컵을 종이로 덮어놓았다. 온도계가 꽂혀 있는 부분을 제외하곤 막힌 것이다.
이유는 먼지 들어갈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한 달이 지났음에도 완전히 증발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건 성공한 거야?”
현수는 컵 속에 담긴 단추처럼 생긴 것을 꺼냈다.
스테인리스 철판에 마법진을 새기고 최하급 마나석을 박은 뒤 리덕션(Reduction)으로 축소시켰다.
그리고 반투명한 플라스틱으로 감싼 것이다.
이번엔 증발을 막기 위해 병을 하나 꺼냈다. 그리곤 그 안에 그것을 넣었다. 온도계도 넣고, 뚜껑을 덮었다.
이 실험이 성공이라면 항온 마법이 걸린 의복을 만들어낼 수 있다.
겨울이 되면 두꺼운 의복을 걸쳐 행동이 둔해지는데 얇은 옷 한 벌만으로 그런 효과를 낸다면 방한복 시장에 일대 파란이 일 것이다.
기분 좋아진 현수는 분해된 채 놓여 있는 엔진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골치가 아파지면 전기에 관한 전공서적들을 읽었다. 선이 없는 전기기구를 고안해 내기 위함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사장님!”
“네, 들어오세요.”
이은정 실장이 들어선다. 환히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이 화사하다.
아마도 주영과 연애 때문일 것이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더 아름다워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장님, 텔레비전을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텔레비전이요?”
“네, 지금 속보가 나오고 있어요. KBC에서 해요.”
“알았습니다.”
얼른 방송국 홈페이지를 연결해 생방송을 연결하였다.
“그간 설(說)로만 무성했던 국회부의장 변의화 의원에 관한 소문이 모두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속보를 발표하는 아나운서의 뒤에는 느물느물하게 생긴 변의화 의원이 연행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수많은 플래시 세례가 시작되자 변의화 의원은 고개를 깊숙이 숙인다.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변 부의장은 일본계 사채업체의 뒤를 봐주면서 막대한 뇌물을 받아 챙겼습니다. 또한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온갖 불편부당한 일이 자행되도록 부추겼으며…….”
아나운서의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화면엔 변 부의장을 구속에 이르도록 수사를 책임졌던 김세윤 검사의 얼굴이 비춰진다.
계속된 보도에 의하면 변의화 부의장은 엔터테인먼트사로부터 성상납을 받았고, 무기 도입 과정에도 영향력을 끼쳐 많은 커미션을 챙겼다. 변 부의장의 지시를 받아 일선에서 활약했던 보좌관 둘 역시 구속되었다.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어 구속된 것이다.
이는 현수가 헤어질 때 걸었던 ‘올 웨이즈 텔 더 트루스’라는 마법의 결과이다.
김세윤 검사의 심문에 사실 그대로를 진술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감춘 것이 없기에 관련자들까지 모두 걸려들었다.
방송사에서는 변의화 부의장의 하나뿐인 아들 변병도에 관한 내용도 묶어서 방송했다.
현수가 관여된 사건 이외에도 온갖 나쁜 짓을 했다. 폭행, 강간, 감금, 납치, 유기, 폭행 교사 및 강간 교사 등 여러 범행을 저질렀다.
나중의 일이지만 변의화는 의원직에서 제명당한다. 그리고 감형이나 가석방 없는 징역 20년형에 처해진다.
뿐만 아니라 그간 받아왔던 뇌물과 커미션 등으로 추징당해 완전히 거덜 난다. 추징금은 1,360억 원이나 되어 국민들이 혀를 내두른다. 해먹어도 너무 많이 해먹었던 것이다.
변병도는 많은 범죄 행위를 저질러 그것만으로도 중형이 짐작된다. 그런데 방송이 끝난 뒤 당했던 사람들의 고소와 고발이 빗발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