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그 결과 징역 45년이란 중형에 처해진다.
두 보좌관 역시 각기 15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모두의 인생이 완전히 쫑난 것이다.
“이상으로 긴급 속보를 마칩니다.”
현수는 경찰차에 올라타는 변의화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문득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악인은 지옥으로!’라는 말도 떠올랐다.
컴퓨터를 끄고 돌아서려는데 인터컴이 울린다.
“사장님 검찰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검찰……?”
“네, 김세윤 검사라고 합니다.”
“알았습니다. 돌려주세요.”
현수는 김세윤 검사의 얼굴을 모른다. 그렇기에 조금 전에 방송에서 보았던 그 인물이라곤 생각지 못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네, 김현수입니다.”
“서울중앙지검의 김세윤 검사입니다.”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중앙지검이라면 이경천 검사가 있는 곳이다. 국가의 녹을 받는 검사이면서 조폭의 뒤나 봐주는 놈이다.
같은 곳에 근무한다기에 저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진 것이다.
“말씀하십시오.”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김현수님은 지난 7월 17일에 변의화로부터 건네받은 4천만 원을 사용하신 바 있습니다. 맞습니까?”
“네, 그런데요.”
“그 돈이 어떤 성격의 돈이었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 돈은 변의화의 아들 변병도의 무고에 대한 합의금이었습니다.”
“변병도의 무고요?”
“네, 일전에 청담동 클럽 제이에서 있었던 폭행사건으로 제가 무고를 당했었거든요.”
“흐음, 그래요? 죄송하지만 검찰에 출두하여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현수는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에 주재하고 있어야 한다. 입국 신고가 안 되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법률적인 행위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거절한 것이다.
“김현수 씨는 주요 참고인으로 검찰에 출두하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제가 쓴 그 돈, 어디에 쓴 건지는 확인하고 전화주신 겁니까?”
“100만 원짜리 수표 40장이 국민은행에서 환금되었습니다. 길숙희 씨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김세윤 검사님, 그 돈은 제가 변의화로부터 받은 합의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그 돈이 더럽다 생각했습니다. 하여 전액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써달라고 동사무소 사회복지사 길숙희 씨에게 기부했습니다.”
“기부요?”
“관내 동사무소, 아니, 주민센터라고 이름이 바뀌었죠? 거기에 전화 걸어 확인해 보세요.”
“……!”
김세윤 검사는 잠시 아무런 말도 없었다. 변의화와 관련된 사람 하나를 더 엮어내나 싶었는데 아닌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럼 혹시 주효진 변호사를 아시는지요?”
“네, 그 사건의 제 변호사였습니다.”
“아! 이런……. 미안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김세윤 검사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자신의 이마를 탁 소리가 날 정도로 때렸다.
이번 사건은 주효진으로부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사건이다. 어느 날 전화를 받고 관심을 기울이던 중 검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곤 담당검사가 되었던 사건이다.
신나게 비리를 파헤치느라 김현수가 주효진이 말하던 인물이라는 것을 깜박한 것이다.
“이런 제기랄! 효진이 녀석이 알면 난리 치겠군. 끄응!”
친우인 주효진은 변호사 사무실을 접었다. 그리곤 이실리프 상사의 법률 담당 변호사가 되었다.
이실리프 상사의 대표이사가 클럽 제이에서 있었던 사건의 당사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깜박 잊은 것이다.
김현수라는 이름이 너무 흔하기에 빚어진 일이다.
김세윤 검사는 서둘러 주효진에게 전화를 걸어 자진 납세를 했다. 물론 욕을 실컷 들었고, 이날 저녁의 술은 김세윤이 샀다.
전화를 내려놓은 현수는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 전화는 받아선 안 될 것이다. 은정이야 현수가 정상적인 입국절차를 밟아 귀국한 것으로 생각하여 바꿔준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입국 기록이 없는 귀국이다. 법률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 현수가 인터컴을 눌렀다.
띵똥―!
“이 실장님!”
“네, 사장님!”
“이 시간 이후엔 외부에서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차단해 주세요. 외국 출장 중이라 하시면 됩니다.”
“네, 근데 권지현 씨 같은 분은 어쩌지요?”
“권지현 씨 아니라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도 모두 차단하세요.”
“알겠습니다.”
은정은 왠지 현수의 음성이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뭔가에 몰두하려는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그냥 넘어갔다.
현수는 서점으로 가서 엔진과 미션에 관한 책들, 그리고 전기와 계측제어에 관한 서적들을 추가로 구입했다.
구입 대금은 전액 현금으로 지불했다. 카드도 쓰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의문점이 생기면 천지대학 도서관으로 향했다.
천지그룹이 설립한 학교이기에 과장급 이상에겐 도서관 이용 등의 특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책 속에 묻혀 며칠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엔진과 미션에 관한 박사 수준이 되었다. 워낙 뛰어난 두뇌를 가지게 된 덕분이다.
그 결과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 어떻게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쌓게 된 것이다.
손에서 책을 떼는 시간은 여러 가지 생각을 메모하거나 스케치 하는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밖에도 동력 전달에 대한 갖가지 아이디어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SNS3)를 통한 의견도 수렴했다. 여러 사람들의 반응과 생각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문제점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라 고려해야 할 사항들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어쩌면 인류에게 큰 선물을 할 수도 있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몇 가지 실험이 병행되었다.
첫째는 항온 유지가 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성공이다. 마법진에 박힌 마나석이 활성화되면 세팅된 온도가 유지되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현수는 의류 제조업체를 물색했다. 국내 자본에 의해 설립된 회사이며 브랜드 파워가 약해 고전을 면치 못하는 회사를 찾았다.
상장기업이기에 주식거래소를 통해 그 기업의 주식을 매집했다.
‘(주)까사’는 망해가던 중인지라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이 단돈 83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의류업체 가운데 가장 저가이다.
이 회사의 주식이 관리 종목으로 지정된 것은 3개월 전이다.
초창기엔 군복을 만들던 회사이다. 사주가 고위 장성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면서 국방부 납품이 끊겼다.
다행히 영역을 넓혀 가던 중인지라 나름대로 괜찮은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서 팔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까사를 중저가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다.
캐주얼한 티셔츠와 면바지 등을 취급한다.
어쨌거나 변신은 성공이었다. 사업이 점차 활성화되자 사주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
건설회사를 만들어 아파트 건설에 뛰어든 것이다.
그 결과 자금 경색이 되어 직원들 급여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부동산 시장이 불경기 때문에 꽁꽁 얼어붙으면서 아파트 분양에 차질이 빚어진 때문이다.
결국 건설회사는 도산하고 말았다.
아무튼 현수는 불과 일주일 만에 까사의 주식 63.7%를 매입했다.
주가가 급격하게 하락하여 묻지마 투매 현상이 벌어지는 중이기에 사들이는 것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현수가 까사를 방문한 것은 주식의 71.3%를 매집한 날이다.
이 회사의 본사는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7층 건물에 있다.
한때 잘 나가던 회사이기에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듯하다. 그런데 다소 휑하다는 느낌이 든다.
회사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로비를 지나 각층을 둘러보았다.
직원들이 움직이고는 있지만 활력이 없어 보인다.
하긴 누가 봐도 망해가는 회사이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은 것은 의리도 의리지만 나가봐야 갈 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똑, 똑, 똑!
“네, 들어오십시오.”
여직원의 음성이 들려 문을 열고 들어섰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직원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마주 인사를 하곤 사무실을 살폈다.
잘 꾸며진 인테리어, 곳곳에 놓인 소품들을 보니 남에게 과시하기 좋아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의 사무실이란 느낌이 든다.
“어서 오십시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까 전화 드렸던 김현수라 합니다. 사장님을 뵈었으면 하는데요.”
“아! 그분이시군요. 네, 안으로 들어가세요.”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박근홍입니다.”
“네, 김현수입니다.”
인사를 하면서 보니 여기저기 서류 등이 쌓여 있다. 사장실이 조금 어수선해 보인다. 이때 박근홍이 물었다.
“저의 회사 주식의 71%를 가지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의류업에 관심이 있어 이 회사의 주식을 샀습니다.”
“왜 저희 회사 주식을 샀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네에.”
“제가 물러나야 한다는 통보를 하실 거면 이렇게 오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괜한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박근홍은 약 40살쯤 된 인상 괜찮은 사내이다. 현수는 대답 대신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아닙니다. 참, 제가 알기로 까사의 대표이사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인데 잘못 안 겁니까?”
“아닙니다. 이 회사는 선친께서 설립하셨지요. 반년쯤 전에 지병으로 작고하셔서 제가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실례되는 질문을 드려도 되는지요?”
“말씀하십시오.”
무엇이든 말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 편한 표정이다.
“박 사장님의 지분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흐음, 아마 23%쯤 될 겁니다.”
“원래 그만큼이셨습니까?”
“아뇨, 얼마 전에 12%를 처분했습니다.”
“왜 그러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직원들 급여와 거래처 대금 결제 때문에 그리했습니다.”
박근홍은 담담한 표정이다.
“우리 둘의 지분을 합치면 94%쯤 되는 걸 보니 여기 임원들은 주식 보유량이 적은 듯합니다.”
“아닙니다. 원래는 80%가 넘었는데 회사가 어려워지자 모두 처분하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2장 의류회사를 매입하다
박근홍의 말이 사실이라면 까사의 임원들이 내다판 주식을 현수가 매입한 것이다.
국가로 치면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알게 된 고위 관료들이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게 아니라 먼저 재산을 처분하여 망명했다는 뜻과 동일하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으으음……!”
“선친께서 너무 무리를 하셔서 그런 거라 그들을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한심하다 생각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네에.”
선량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음! 들어와요.”
말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커피잔을 든 여직원이 들어선다.
“커피 드세요.”
“고맙습니다.”
현수가 사의를 표했지만 여직원은 잔을 내려놓곤 말없이 나간다. 문이 닫히자 박근홍의 입이 열렸다.
“집사람입니다.”
“네?”
“비서가 회사를 그만둬서 저 사람이 나와 고생하는 중이지요.”
“아……!”
“직원들도 90%쯤 그만둬서 현재로선 업무 진행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대표이사를 맡으시면 인원 확충부터 하셔야 할 겁니다.”
“……!”
현수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박근홍이 말을 잇는다.
“기존에 거래하던 하청업체들은 단가도 단가지만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계속 거래하시길 권합니다.”
현수는 대답 대신 알았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잘 경영해서 번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네에!”
박근홍은 회사에 대한 미련이 없어 보인다. 하긴 침몰 직전인데 속수무책이다. 대출을 받고 싶어도 추가 담보로 제공할 부동산이 없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힘든 짐을 내려놓아 후련하다는 표정이다.
이때 현수의 시선이 사장실 구석에 놓인 휴대용 가스버너에 닿았다. 위에는 양은으로 만든 냄비가 놓여 있다.
라면이라도 끓여먹은 듯하다.
현수가 말을 끊자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따라 보았던 박근홍이 계면쩍은 웃음을 짓는다.
“에구, 저걸 미처 치우지 못했네요.”
“……!”
“사실 며칠 전부터 여기서 숙식하고 있습니다.”
“네……? 왜요?”
“집을 팔았거든요.”
“……!”
“아무리 어려워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살던 아파트를 팔아 우선 급한 불을 껐습니다.”
“불을 끄다니요?”
“직원들 밀린 급여 일부와 거래처 납품 대금을 줬습니다. 따라서 회사를 맡으셔도 그렇게 큰돈이 들지는 않을 겁니다.”
“……!”
“거래처 사람들에게 참 고마웠습니다. 우리가 돈을 못 줘 어려움에 처했으면서도 돈 달라고 아우성치지 않았거든요.”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박근홍은 모든 것을 내놓은 듯 처연한 표정이다. 박 사장의 말이 100% 사실이라면 까사는 하청공장들과 꽤 좋은 사이였던 것 같다.
돈을 못 받았는데도 와서 개판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근데 여기서 나가시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우선은 친구 녀석들에게 신세 좀 져야지요.”
“으음……!”
현수가 침음을 내자 박근홍이 웃음을 짓는다. 좋아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짓는 웃음이다.
“근데 이 회사에 말단 직원으로라도 고용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회사의 모든 걸 알고 있으니 쓸 만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