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
박근홍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현수가 말을 이었다.
“참, 군복 샘플 만들 원단 값도 필요하겠군요. 그것도 같이 계산해서 알려주십시오.”
“김 사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이제 까사, 아니, 이실리프 어페럴은 우리 둘의 공동 소유가 아닙니까?”
나중의 일이지만 현수는 까사의 주식을 모두 매집한 뒤 상장폐지하고 50대 30대 20으로 나눈다.
50은 현수의 몫이고, 30은 박근홍 사장의 지분이다.
나머지 20은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끝까지 남아서 의리를 지킨 일부 직원들과 하청공장 사장들에게 나눠서 지급한다.
현수는 영등포로 가서 철판가공업체를 방문했다.
철판을 가로 세로 10㎝ 크기로 자르고 구멍을 뚫어달라고 주문했다. 플라스틱으로 감쌀 것이기에 SUS 304 0.3T를 사용하는 것이다.
가공업체 사장은 처음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단순히 철판을 잘라내고, 구멍 몇 개 뚫는 일은 그리 큰돈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샘플로 50장을 만들었다. 직원들을 놀리느니 만든 것이다.
불경기 때문에 일감이 없어 놀고 있었다.
샘플을 확인한 현수는 곧바로 60만 장을 주문했다.
이게 초도물량이며 추후에 더 많이 주문하겠다는 말에 사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60만 장 중 50만 장은 군대에 납품할 물량이고, 10만 장은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보낼 물량이다.
사무실로 돌아온 현수는 아공간에 담긴 각종 판금도구들을 꺼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마법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흐음, 어디 한번 해볼까?”
현수는 다양한 온도를 내는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국방부에서 어떤 것을 채택할지 몰라 그러는 것이다.
25℃부터 시작하여 38℃까지 만들었다. 각 계절에 적합한 샘플을 만들기 위함이다.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였다. 그렇게 14개를 만들고 나니 허리가 뻣뻣해지는 느낌이다.
“흐음……! 이제 끝인가?”
허리를 두들기며 자세를 바로 한 현수는 탁자 위에 늘어놓은 비커의 온도계들을 살폈다.
마법진이 완성될 때마다 물속에 담고 온도계를 꽂아둔 것이다.
“흐음! 25도는 성공, 26도도 성공, 27도 성공, 어라! 28도는 뭐가 잘못된 거지?”
28℃를 가리켜야 할 온도계가 16℃를 가리키고 있었다.
비커에서 마법진을 꺼낸 뒤 인라지 마법으로 확대시켰다. 그러자 가로 세로 10㎝짜리 스테인리스 철판이 50㎝자리로 바뀐다.
이 상태에서 마법진을 새겼던 것이다. 현수는 꼼꼼한 시선으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아! 이걸 잘못 새겼구나.”
잘못된 곳은 따로 새긴 부분이었다.
새로 새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현수는 웃음 지었다. 마법진을 새기는 일이 대단히 많은 심력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공구를 꺼내 점 두 개를 더 찍었다. 그리곤 마법진을 활성화시킨 뒤 다시 물속에 담가보았다.
잠시 후, 온도계의 눈금이 조금씩 올라간다.
“흐음, 된 거 같군. 그럼 29도는? 역시 성공! 30도도 성공!”
36℃짜리도 에러가 났다. 확대해서 확인해 보니 새로 새겨야 한다.
3라고 새겨야 할 부분을 33으로 해놓았던 것이다.
“제기랄……! 바보 같이…….”
이번엔 간단히 지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귀찮고 복잡하지만 어쩌겠는가!
새로운 철판을 꺼내 다시 새겼다. 그리곤 38℃까지 모두 확인했다. 다행히 더 이상의 불량은 없었다.
현수는 다시 한 번 일일이 확인한 뒤 모든 비커를 랩으로 봉했다.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함이다.
마법진이 한 달간 유효하다는 것은 확인했다. 박히는 마나석에 따라 그 기간이 달리질 것이다.
어쨌든 현재의 마법진에 박힌 마나석 역시 최하급이다. 마법의 발현 범위가 작기 때문이다.
“흐음, 최하 3년은 가야 하는데.”
아공간에 담긴 마나석의 양을 확인해 보니 최하급으로 마법진을 만들 경우 약 200만 개를 만들 수 있을 양이다.
하급도 그 정도는 된다.
“안 되면 하급으로 박지, 뭐.”
아르센 대륙에서 마나석이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는지를 모르는 현수는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현수가 일련의 작업을 하는 동안 박근홍은 군복 원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추 값을 얼마로 책정해야 할지 난감하다.
현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 문자를 넣었다.
김현수 사장님! 납품가를 결정하려면 원가가 먼저 계산되어야 하는데 단추 값은 얼마나 됩니까?
문자를 넣었음에도 한참 동안 답신이 없다. 마법진을 그리느라 전화기를 꺼놓았던 때문이다.
기다려도 회신이 없자 직원들의 밀린 급여와 미지급 퇴직금, 그리고 거래처에 정산해 줘야 할 금액을 뽑아보았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군복 샘플을 만들 금액도 산정했다.
이메일로 작성하여 보내고도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에 김주미 여사가 들어온다.
“여보! 진짜로 돈을 부쳐 올까요?”
“그럴 거야. 거짓말할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잖아.”
“역삼동에 이실리프 빌딩을 검색해 보았는데 그런 건물 없던데요?”
현수가 가자마자 확인해 본 내용이다. 김주미는 이실리프 빌딩이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실망한 상황이다.
“그래? 당신이 잘못 찾은 건가 보지.”
“아니에요. 당신도 한번 찾아보세요. 진짜 그런 건물 없어요. 그 근처 복덕방에 전화까지 해서 물어봤는데 그런 거 없대요.”
“그래? 흐으음……!”
살짝 기대가 무너지는 느낌이라 박근홍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러게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면서 쫑알거리던 김주미 여사가 화장실에 가는지 자리를 떴다.
박근홍은 얼른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명칭 검색을 해보았으나 뜨지 않는다. 하여 복덕방에 전화를 걸었다가 핀잔만 들었다.
하필이면 김주미 여사가 물어봤던 그곳에 전화한 것이다.
“우릴 속일 이유가 없는데……. 그리고 그 옷도 사기는 아닌데…….”
박근홍이 혼자 중얼거릴 때 핸드폰에서 소리가 난다.
띵― 똥!
문자가 왔다.
단추 값은 산정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보통의 군복 납품가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려주십시오.
네, 확인해 보고 곧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메일 보냈습니다. 확인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박근홍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띠리링! 띠리리리링……!
“여보세요.”
“아! 김 사장님. 현재의 납품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왜요?”
“그게… 어느 업체에서 공급하는지 알 수 없어서입니다. 더 알아본 뒤에 보고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2005년도의 군복 납품가는 사계절용이 25,000원, 여름용은 26,286원입니다. 자이툰 부대 대원들이 입는 사막색 전투복은 52,580원이었구요.”
“대량 납품인데도 값이 싸지 않군요. 군복이 그렇게 비싼 겁니까?”
“네, 저희가 납품하던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흐으음, 사계절용이 25,000원이라……. 조금 비싼 것 같은데 까사에서 만들어도 그 정도 듭니까?”
“그 가격이면 국산원단을 써서 만들어도 됩니다.”
“그럼 군복의 원단이 국산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확인해 보니 지나산이더군요.”
“으음……!”
조금 어이없는 말이다. 군복은 한두 벌 납품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 게다가 원단도 지나산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저품질의 대명사가 된 이름이다.
그렇다면 뭔가 야로가 있다는 뜻이다. 납품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뇌물을 수수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나머지 옷들도 확인해 보셨습니까?”
“네, 병사들이 입는 팬티는 2,173원, 러닝셔츠는 2,380원입니다.”
“그 죽죽 늘어나는 팬티와 러닝셔츠가요?”
현역시절 입었던 팬티를 떠올린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너무 잘 늘어나서 삼각팬티가 금방 사각팬티로 둔갑하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근홍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네,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겨울용 체육복은 31,285원이고, 춘추 체육복은 18,900원이었습니다. 모두 2005년 납품가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납품가는 이보다 분명히 높을 겁니다.”
너무 비싸다는 느낌에 현수는 또 한 번 이맛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문제가 있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더 확인해 주십시오. 납품가는 나중에 정해야겠군요.”
“네. 더 알아본 뒤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참, 우리가 납품할 군복의 원단은 국산이어야 합니다.”
“물론이죠. 허접한 지나산 원단은 절대 사용치 않을 겁니다.”
“아울러 고어텍스에 버금가는 투습 및 방수 기능이 있어야 합니다. 적외선 관측장비에 잘 포착되지 않도록 특수처리도 되어야 하구요.”
“네, 저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지금 우리 군복은 폴리에스터와 면 혼방입니다. 이것의 장점은 싸다는 것 이외엔 불합격입니다.”
“네, 유사시 면이 심지 역할을 하고 폴리에스터가 발화 역할을 하죠. 군복으로선 최악의 혼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군은 70년대부터 폴리에스터로 된 군복을 입지 않습니다. 탄환이나 폭탄의 파편 같은 1차적 타격에 의한 사망보다도 화상에 의한 군인들의 사망이 더 많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현수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기에 박근홍도 간단한 대답만 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군은 나일론과 면의 혼방 원단으로 된 군복을 했었습니다. 물론 내구성이 더 증가된 나일론66이지요.”
“맞습니다. 그건 폴리에스터보다 세 배 정도 더 비싼 거지요.”
전문가답게 금방 값이 계산되어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현재엔 내열섬유인 아라미드계 섬유와 나일론66 혼방 원단을 쓰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어 가공을 해서 투습 및 방수 기능을 부여한 것입니다.”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납품할 것은 이보다 뛰어나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입을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입니다. 그들은 군인이기 이전에 국민의 자식들입니다. 당연히 최상의 것을 제공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저하고 뜻이 맞아 좋군요.”
“하하! 네에.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네요.”
비록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현수는 박근홍 사장과 뜻이 맞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여 사람 하난 제대로 만났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웃음을 베어 물었다.
3장 사회악 청소하기
“어쨌거나 요청하셨던 자금은 송금했습니다. 그리고 이실리프 빌딩도 이야기해 놓았으니 오늘이라도 그쪽으로 가십시오. 웬만한 가재도구는 다 있으니 몸만 가셔도 될 겁니다.”
“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이실리프 빌딩의 옛 이름은 세정빌딩입니다. 역삼역 근처에 가시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12층짜리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박근홍은 즉시 인터넷 뱅킹으로 잔액을 확인했다.
요청한 금액은 13억 6천만 원이었다. 들어온 돈은 15억 원이다. 나머지 돈은 여유자금으로 쓰라는 뜻이다.
보내주신 돈 잘 쓰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박근홍의 문자를 받은 현수는 회신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써서 보내든 생색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다시 엔진과의 씨름을 시작했다. 반드시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듯 눈빛마저 형형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라! 너 왜 집에 안 갔어?”
주영은 은정과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러 나갔다 들어왔다. 한 건물에 살기에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어 들어온 것이다.
“어! 왔냐? 이 실장님도 같이 왔어요?”
“네에.”
데이트 현장을 들켜 부끄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짜식! 그렇게 좋으냐?”
“무슨 소리야?”
주영이 웬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이다.
“얌마, 입이 귀에 걸려 있다. 그만 좋아해라.”
“데이트하라며? 안 하면 자른다고 해서 하는 거다.”
“오호! 그래? 그럼 내가 데이트 안 해도 된다고 하면 이 실장님과 헤어질 거냐?”
“응……? 무, 물론 그건 아니지. 한번 시작했는데 어떻게…….”
“이 실장님! 이 실장님도 주영이 괜찮아요?”
“네……? 네에.”
은정은 거의 속삭이듯 대답했다. 너무 부끄러웠던 것이다.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럽네요.”
“죄송합니다.”
“아뇨, 죄송하긴요. 보기 좋은데. 그건 그렇고, 너는 염장 지르지 말고 그냥 올라가라. 나도 이제부터 슬슬 데이트나 해야겠다.”
“퇴근하려고?”
“그래! 너하고 이 실장님 보니까 샘나서 나도 데이트하러 간다.”
그렇기 않아도 엔진 때문에 골머리를 썩였다. 하여 밖으로 나왔으나 막상 갈 데가 없다.
집에는 못 들어간다. 콩고민주공화국에 가 있는 걸로 알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빌딩으로도 못 간다.
박근홍, 김주미 부부에게 쓰라고 했기 때문이다.
“끄으응! 혼자서 술을 마실 수도 없고…….”
현수는 한여름 밤의 서울 거리를 터벅터벅 걸었다. 열대야 현상 때문에 덥다고 길로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모기에게 뜯기는 것보다는 시원한 것이 낫다는 뜻이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나지막한 누군가의 음성이 들린다.
“그러니까 가져온다는 거야, 안 가져온다는 거야?”
“그걸 어떻게 가져와? 안 돼! 그거 없어진 걸 알면 나 우리 아버지한테 죽어!”
“안 가져오면 우리한테 죽을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