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33화 (233/1,307)

# 233

“으으음……!”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냈다.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걱정없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너무 딱하다.

어찌 짠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제가 침술을 좀 아는데 사모님을 한번 진맥해 봐도 될까요?”

“아! 한의사이십니까?”

주인이 반색한다. 요즘엔 돈이 없어 병원에 가본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아뇨, 한의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침술은 좀 알지요.”

“아! 아직 학생인가 보군요. 좋습니다. 진맥해 주십시오.”

현수의 얼굴은 나이 스물다섯 정도로 보인다.

이 정도면 한의과 대학 본과 3∼4학년일 것이다. 그렇다면 배울 건 거의 다 배운 셈이다. 그렇기에 진맥을 청한 것이다.

현수는 굳이 부인할 필요가 없기에 두말없이 내실로 따라 들어갔다. 내실은 주방 바로 곁에 있으며 문이 열려 있다. 언제든 잘 있는지 확인할 요량으로 열어두었다고 한다.

방바닥에 깔린 요에는 바싹 마른 여자 하나가 누워 있다. 두 볼이 쏙 들어가 있고, 입술은 백지장처럼 창백하다.

철분 부족으로 인한 빈혈 때문일 것이다.

현수는 뼈에 얇은 가죽을 씌워놓은 것 같이 앙상한 손목을 잡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맥이 가늘고 약하다. 전형적인 기혈쇠약이다.

게다가 잠깐 빨리 뛰다 느려지는 등 고르지도 못하다. 비(脾, 지라)가 몹시 쇠약하다는 뜻이다.

보다 집중해 보니 어느 한 구석 멀쩡한 곳이 없을 정도로 모든 기능들이 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흐으음……!”

“어떻습니까?”

현수가 긴 한숨을 쉬며 진맥을 마치자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말씀하셨던 대로 많이 안 좋습니다.”

“……! 어, 얼마나 남은 건지요?”

짐작을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묻는다. 현수는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여겼다. 하여 짐짓 웃음 지었다.

“저를 만나지 못했다면 하루 이틀 정도였을 겁니다.”

이 말은 뻥이다. 현수는 한의학을 별도로 공부하긴 했지만 이 같은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주인의 낯빛이 눈에 뜨이게 어두워진다.

자신의 예상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장례절차며, 장지는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직장을 그만둔 지 오래되어 조문객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돈도 모두 써서 장례나 제대로 치를지 걱정이다.

화장을 한다지만 납골당에도 돈을 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 그렇기에 한결 침중한 낯빛이 되어갔다.

“역시 그렇군요.”

완전히 맥 빠진 음성이다.

“하지만 제가 아는 비방으로 치료를 하면 어쩌면 많이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저를 믿어보시겠습니까?”

“네……?”

대학병원에서도 손을 놓았다. 이름난 한의원은 거의 다 가봤다. 모두 포기를 했다. 그런데 아직 졸업도 못한 학생이 치료를 해보겠다고 나선다. 표정을 보니 농담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자신감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법이다.

주인은 현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저, 정말로 나아질 수 있게 할 수 있는가?”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이기에 저도 모르게 말을 놓은 듯하다. 어찌 이에 토를 달겠는가!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확실하게 나아질 겁니다. 다만 완치까지 된다는 보장은 못 드립니다.”

“저, 정말이라면 어, 얼른……! 얼른 해주게.”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마, 말하게.”

“시끄럽거나 번잡스러우면 치료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가게 문을 닫아주십시오.”

“그, 그러겠네. 지, 지금 나가서 바로 닫고 오겠네.”

주인은 현수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현수는 아공간에서 회복 포션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곤 환자의 입을 벌리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문을 닫으라 요구한 것이다.

그리곤 침을 꺼내 환자의 단전 부위에 찔러 넣었다. 주인의 시선이 미치기 힘든 각도에 앉은 채였다.

“마나여, 모든 부위를 회복시켜라.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릉―!

서늘한 푸른빛 마나가 침을 통해 환자의 체내로 흘러든다. 그리곤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숙지하고 있다는 듯 사지백해로 흩어졌다.

수백 가닥의 실 같은 마나가 구불구불 움직이며 환자의 전신으로 뻗어나가자 위장 부위로부터 지원군이 쏟아져 나온다.

조금 전에 복용시킨 회복 포션의 기능이다.

마나와 회복 포션 연합군은 망가지거나 쇠약해진 장기들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중병이라 그런지 마나 소모가 상당했지만 견딜 만했다.

하지만 만일을 대비하여 마나 포션 한 병을 꺼내 두었다. 흘러들던 마나가 끊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많은 환자들을 접한 경험이 있기에 마나는 거침없이 환자의 몸속을 누빈다.

한편, 식당의 문을 닫고 돌아온 주인은 땀을 뚝뚝 흘리며 치료하고 있는 현수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침이라곤 딱 하나 박아 넣었다. 그것도 단전 부위이다.

그 침을 박아놓고 손을 떼거나 살살 돌리는 것이 보통이다.

가끔은 툭툭 치기도 하는 것이 시침법이다. 많은 한의원을 돌아다녔기에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침을 박아 넣은 채 손을 떼지 않는다. 돌리지도 않고, 툭툭 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

‘기(氣)를 이용한 치료법인가?’

의아했으나 아내에게 해될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오늘 아니면 내일 세상을 떠날 사람이다. 더 이상 무슨 해가 있겠는가!

고통만 느끼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수가 곁에 있던 플라스크 비슷하게 생긴 것의 뚜껑을 열더니 자신이 마신다.

약을 환자에게 쓰지 않고 자신에게 쓰는 것이 괴이하다 여겼으나 현재는 무엇을 물을 상황이 아닌 듯하다. 하여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20분쯤 지나자 현수가 손을 뗀다.

“휴우∼!”

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낸 현수는 환자의 용태를 살폈다. 아까보다 한결 편해 보인다.

겉으로는 알 수 없지만 환자의 내부를 괴롭히던 크론병은 완치되어 가고 있다. 말기암도 제압하는 회복 포션과 리커버리 연합군을 어찌 크론 따위가 이겨낼 수 있겠는가!

그래도 확인은 해야겠기에 나직이 중얼거렸다.

“마나 디텍션!”

한줄기 마나가 스며들어 환자의 내부를 정찰하고 돌아왔다. 마나는 ‘근무 중 이상 없었음!’이라는 보고를 한다.

‘휴우∼! 다행이군.’

“어, 어떤가?”

주인의 물음에 현수는 돌아앉았다.

“다행히 효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라고……?”

침을 딱 하나 박았다. 그리곤 그걸 붙잡고만 있었다. 그런데 완치시킨 듯한 말을 하기에 반문한 것이다.

“사모님의 내부를 혼란에 몰아넣었던 근본 원인이 무언지를 찾아내서 그걸 제거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고생하지 않으실 겁니다.”

“……!”

“다만 오랫동안 섭생이 시원치 않아 현재 영양 부족 상태입니다. 균형 잡힌 식사를 준비하되 너무 되지 않도록 하세요.”

“균형 잡힌 식사……?”

“네, 빈혈 증상도 있으니 철분도 신경 쓰셔야 합니다. 그리고 단백질이 풍부한 콩으로 만든 음식이나 생선을 섭취하면 좋을 겁니다.”

“……!”

한의원에서 시료를 마친 한의사들이나 할 법한 소리를 한다.

주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치료는 언제 또……?”

“더 이상의 치료는 없습니다. 원인을 제거했으니 이제부턴 회복에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모든 병원이 포기한 환자를 딱 20분쯤 치료했다. 침이라곤 하나밖에 박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 끝났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하여 한마디 하려고 했다. 지금 장난하는 거냐고……!

그런데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여, 여보……!”

아주 작은 소리였다. 그 순간 둘의 시선이 환자에게 향했다.

“여보……! 나, 물 좀!”

“응……? 그, 그래. 알았어. 금방 가져다줄게.”

아내는 이틀 전부터 물 한 모금 못 마셨다. 혼수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19에 전화하지 않은 건 돈이 없어서이다.

어차피 모든 병원에서 포기를 했다.

그런데 응급실로 간다 해서 뭐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밤새 지켜보느라 잠을 못 잔 것이다.

“좀 어떠세요?”

“누, 누구시죠?”

“사모님의 병을 치료한 사람입니다.”

“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몸이… 아프지 않아요. 힘은 없지만 점점 나아지는 기분이에요.”

실제로 환자의 내부에선 여전히 진압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회복 포션과 현수로부터 유입된 마나 연합군이 쇠약해진 장기 등을 정상 기능으로 되돌리는 재활작업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작업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사흘에 걸쳐 일어난다.

모든 작업이 끝나면 스무 살쯤의 싱싱한 신체가 될 것이다. 물론 빠진 살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원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근육 역시 적당한 운동을 해야 되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철분 부족으로 인한 빈혈 역시 철분이 보충되면 사라질 것이다.

“이제부턴 먹는 걸 잘 잡숫고, 운동도 조금씩 하셔야 합니다. 근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니 처음부터 무리하지는 마시고요.”

“네, 선생님!”

“여, 여보……!”

어느새 주방으로 갔다 온 주인의 눈이 커져 있다. 흐리멍텅하던 아내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목말라요. 여보!”

“그, 그래. 여기, 여기 있어.”

“한 번에 너무 많이 드시진 마세요. 한 모금씩 천천히……. 아셨죠?”

“네, 선생님!”

현수가 시키는 대로 물 한 모금만 머금은 환자는 그 맛을 음미하는 듯 입안에서 굴리더니 삼킨다.

“아직 위장 기능이 완전하지 않으니 미지근하게 식힌 미음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조급하게 생각지 마시고 천천히 재활한다 생각하시면 곧 쾌차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인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 죽어가던 아내가 생생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너무도 기뻤던 것이다.

“자아, 그런 전 이만 가겠습니다. 참, 아까 그 해장국 값이 6,000원이죠? 여기 있습니다.”

현수가 돈을 내밀자 펄쩍 뛴다.

“아, 아이고, 아닙니다. 그냥 가세요.”

“형편이 어려우시잖아요.”

“……!”

현수의 한마디에 주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외상으로 들여온 식재료 값을 못 내고 있으니 식당 영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현수가 우거지 해장국 이외의 메뉴를 주문했다면 죄송하다고 했어야 할 정도로 어려워진 것이다.

하여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며칠 뒤에 한 번 더 오겠습니다. 그동안 몸조리 잘 하세요.”

“네에, 선생님!”

“……!”

주인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현수가 건넨 6,000원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만 있었을 뿐이다. 물론 그의 두 눈에선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너무도 고맙고, 너무도 미안해서이다.

5장 주사기 1,000만 개

가게를 나선 현수는 간판을 바라보았다. 양철에 손으로 쓴, 요즘엔 볼 수 없는 간판이다. 그런데 이름이 심상치 않다.

크론 식당!

이게 가게명이다. 크론병에 대해 아는 사람이 들어오길 바라서 작명한 것이다. 이걸 알 리 없기에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론이 뭐지? 어디서 분명 보았는데…….”

현수는 기억을 더듬었으나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의학 서적이 아닌 부분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크론(Cron)은 진화 정도를 나타내는 시간의 단위잖아. 100만 년이 1크론이고, 밀리크론(Millicron)은 1,000년, 킬로크론(Kilocron)은 109년이지. 근데 왜 이걸 상호로 쓴 거지?”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화 정도를 나타내는 시간의 단위를 식당 이름으로 쓴 이유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흐음, 농업기술 쪽 전문용어로 다른 뜻이 있는 건가?”

아직 농사 쪽 전문서적은 읽지 않았기에 고개만 갸웃거렸다.

워커힐을 지나 광장동 쪽으로 가자 아침의 서울은 분주하기만 하다. 그런데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에겐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오로지 제 갈 길 가기에 바쁘다는 듯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걷기만 한다. 늦었는지 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단 하나! 현수는 느긋하다.

좌우의 간판 구경을 하며 천천히 즐겼다. 직장인들을 위해 커피를 볶는 냄새가 구수하다. 그러고 보니 고층건물들이 많다.

커피 한 잔을 사서 느긋한 기분으로 그것을 즐겼다.

잔이 비자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리곤 대한약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문득 떠오른 생각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네, 분석 결과가 어찌 되었나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너무 빨리 온 건가요?”

“아닙니다. 분석은 어제 끝났습니다. 먼저 처음에 주셨던 푸른 액체에 대한 것입니다.”

“네.”

“상처 치료와 세포 재생 성분이 상당하더군요. 식물 중에 센텔라 아시아티카(Centella asiatica)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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