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35화 (235/1,307)

# 235

“그런 오늘은 무슨 일로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첫 거래 이후 모든 주문은 팩스로 한다.

그렇기에 평상시엔 통화조차 하지 않았다. 주문한 대로 물건이 납품되면 즉시 현금으로 결제해 주면 끝이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어 감사 표시를 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한 번도 현수와 통화하지 못했다. 은정이 중간에서 이러실 필요 없다는 것을 정중히 알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부러 오기까지 했기에 물은 것이다.

“뭐긴요. 주문할 게 있어서 왔지요.”

“주문이요? 어제 들어온 주문 말고 추가로 더 있는 겁니까?”

“네, 그거 말고 백신용 일회용 주사기 10만 개를 더 주십시오.”

“네에……? 10만 개요?”

김연철 사장의 눈이 커진다. 보아하니 이실리프 무역상사에서 필요로 하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네에, 일단 10만 개를 주십시오. 그 정도 재고는 있으시죠?”

“잠깐만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연철 사장이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건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그만큼은 없다. 현재의 재고는 6만여 개라고 한다.

“흐음, 나머지 4만 개는 언제쯤 주실 수 있는지요?”

“며칠은 주셔야겠는데요. 이실리프 무역상사에서 주문한 물량도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래요. 그럼 일단 6만 개만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늘 보내던 곳으로 보내면 되지요?”

김연철 사장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거래처가 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이번엔 역삼동에 소재한 이실리프 빌딩으로 보내주십시오. 역삼역 근처에 있는 겁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세정빌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건물 지하 3층 주차장으로 보내주십시오. 인수자는 곽인겸 씨가 될 겁니다.”

“역삼동에 빌딩도 있으셨습니까?”

김연철 사장이 놀랍다는 표정이다.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로 보이는 현수가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사장이라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그런데 강남에 빌딩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문이다.

“네, 어쩌다 보니 하나 샀습니다. 아무튼 그곳으로 보내주십시오.”

“네에.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하지요.”

김 사장이 일련의 지시를 내리는 동안 현수는 묵묵히 기다렸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 사장이 싹싹한 표정을 짓는다.

“김 사장님! 모처럼 오셨으니 조금 있다 점심식사라도 하시죠. 근처에 음식 잘하는 집 있습니다.”

주요한 거래처 사장이 왔으니 접대하겠다는 것이다. 현수는 어차피 먹어야 할 점심이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죠.”

얼마 후, 김 사장의 차를 타고 약간 떨어진 한정식 집으로 갔다.

김 사장은 1인당 45,000원짜리 정식을 주문하려 했다. 하지만 현수는 점심 메뉴 중 청국장을 달라고 했다.

청국장에는 B1, B2, B6, B12 등의 비타민과 칼슘, 포타슘 등의 미네랄이 풍부하다.

이것들은 인체의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비만을 막아준다.

레시틴과 사포닌도 과도한 지방을 흡수하여 배출한다.

또한, 제니스테인(Genistein)이라는 물질도 풍부하다.

유방암, 결장암, 직장암, 위암, 폐암, 전립선암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포닌 또한 암 예방에 큰 역할을 하며, 파이틱산(Phytic acid), 트립신 억제제 같은 항암물질도 들어 있다.

게다가 섬유질이 풍부하여 당의 흡수가 서서히 일어나도록 돕고, 트립신 억제제와 레시틴은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므로 인슐린이 부족한 당뇨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

이밖에도 많은 효능이 있는 건강식품이 바로 청국장이다.

아무튼 김연철 사장은 그러지 말고 정식을 먹자고 했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거래처에 바가지를 씌우고픈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거래해서 얻는 이득을 어찌 갉아먹겠는가!

결국 김 사장도 청국장을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내내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어찌 그냥 놔두겠는가!

“참, 아까는 깜박 잊고 말씀 안 드렸는데 주사기를 추가로 많이 만드셔야 할 겁니다.”

“네? 얼마나……?”

“정확한 것은 나중에 알려 드리겠지만 일단 1,000만 개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겁니다.”

“……!”

일회용 주사기의 수출가격은 개당 50원 꼴이다. 현수가 납품받는 가격은 당연히 이보다 적다.

그래도 1천만 개라면 작지 않은 돈이다. 그리고 현금으로 거래하는 거래처의 주문이니 적지 않은 이익이 남는다.

하여 잠시 말을 안 한 것이다.

“더 많을 수도 있으니 재고를 착실하게 늘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김연철 사장은 회사로 돌아갔다. 물론 전력을 다해 주사기를 제조하기 위함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곤 여러 가지 마법진에 대한 연구를 했다.

문득 권지현이 생각났다. 서울로 전근 신청을 했다는데 왔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여보세요.”

“어머! 현수 씨, 점심은 드셨어요?”

“네, 지현 씨는요?”

“전 직원 식당에서 먹었어요. 근데 뭐 드셨어요?”

“저요? 청국장 먹었습니다.”

“맛있었겠네요.”

의례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래서 권지현과의 대화가 편하고 좋다.

뭔가 추궁 당한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이 없다는 느낌 때문이다. 또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네에, 근데 지금 서울이세요?”

“오늘 여기 첫 출근했어요.”

“아……! 그럼 정신이 없으시겠구나.”

“어머! 아니에요. 대구에서 하던 일과 별반 다를 바 없어 괜찮아요. 게다가 오늘 처음이라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네요. 시간 있으면 이쪽으로 오실래요? 제가 커피 한잔 살게요.”

“흐음, 그럼 그럴까요?”

현수는 곧장 중앙지검으로 향했다. 권지현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보다는 이경천 검사라는 놈이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이다.

“여기예요.”

중앙지검 입구에 당도하자 지현이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아무래도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목에는 직원들에게 걸라고 준 개목걸이가 걸려 있다. 대체 저런 건 왜 만들어서 목에다 걸어주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수 씨, 그동안 바빴나 봐요.”

지난번에 부모님과 만났는데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

“네에, 러시아에 출장 다녀왔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이제야 용서가 된다는 듯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커피는 어디서……?”

“가요, 우리!”

지현이 팔짱을 낀다. 그리곤 힘주어 현수를 당겼다.

“서울에 오니까요…….”

지현의 귀여운 수다가 시작되었다.

들으면서 어떻게 여자들은 그 모든 것을 시시콜콜 기억하고,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시험을 봐서 5급 공무원이 되었으니 머리는 좋을 것이다.

지저귀는 종달새처럼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참 괜찮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여자가 또 있다. 아르센 대륙에 두고 온 카이로시아 역시 지현처럼 쫑알쫑알거린다.

그러다 문득 아직 영국에 있는 연희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지현이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현과 있으면 편하다. 또한 즐겁다. 환히 웃는 모습을 보면 깨물어주고 싶다. 어떤 때엔 와락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으음, 이런 걸 양다리라고 하나?’

현수는 지현과 연희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저 집이에요. 어제 사전 답사를 했죠. 제가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요. 헤헤.”

어린애처럼 웃는 지현의 눈에는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다. 하긴 부모는 물론 외조부까지 남편감으로 인정한 상태이다. 그렇기에 법무부 5급 공무원답지 않게 어리광 비슷한 교태를 부리는 것이다.

“흐음, 얼마나 맛있나 두고 봅시다. 그럼 오늘 지현 씨 입맛 수준이 결정되는 건가요?”

“헤헤, 네에! 현수 씨 입에도 괜찮을 거라고 보장해요. 자, 가요.”

딸랑딸랑!

문이 열릴 때마다 손님 왔다는 소리를 내는 방울이 청아한 소리를 낸다. 그와 동시에 커피 볶는 냄새가 느껴진다.

안을 둘러보니 천으로 만든 소파 6조가 있을 뿐이다.

“작아도 맛은 웬만한 브랜드 커피보다 나아요.”

지현이 인도한 자리에 앉으니 창밖 풍경이 환히 보인다.

밖에선 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안에선 밖이 잘 보이도록 선팅지로 조화를 부려놓은 창이다.

“뭐 드실래요?”

지현이 내민 메뉴를 살펴본 현수는 달달한 라떼 마끼아또를 주문했다. 지현은 카푸치노를 먹겠다고 했다.

그리곤 직접 매대에 가서 돈을 내고 가져왔다.

“자아! 이제 맛을 보세요.”

“네에, 좋죠.”

지현이 내민 것을 보니 거품에 하트 문양이 그려져 있다. 말로만 듣던 라떼아트인 모양이다.

조금 전 지현은 주문을 하면서 뭐라고 쫑알거렸다. 아마도 하트를 그려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현수는 웃음 지었다. 이런 식의 애정 표현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달달하면서도 커피 특유의 맛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지현의 윗입술에 거품이 살짝 묻어 있다.

그런데 본인은 못 느끼는 모양이다. 눈만 깜박이며 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음 지었던 것이다. 이럴 땐 자연스럽게 키스를 해야 한다. 어떤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했다.

그래서 한때 세간의 유행이었고, 아마 지금도 그런 연인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쑥스럽게 어찌 그렇게 하겠는가!

“지현 씨! 입술…….”

“어머, 네에.”

혀를 날름거려 입술에 묻은 거품을 제거한다. 이런 땐 요염해 보인다. 참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이는 여자이다.

그냥 예쁘기만 한 게 아니다. 때로는 청순하고 귀엽다. 어떤 때는 우아하고 정숙해 보인다. 그런데 오늘 요염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현수 씨! 출장은 언제 가요?”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모레가 될 수도 있어요. 근데 왜요?”

“가실 때 배웅가려고요. 먼 곳이잖아요.”

처음 출장 갈 때 대구에서부터 일부러 왔었다는 것을 알기에 현수는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바쁘신데요. 게다가 출발 시각이 유동적이에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마세요.”

“어머, 그래도요.”

현수는 지현이 이런 마음을 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천공항을 통한 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출장은 동료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개인행동을 할 수 없어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아! 그러시구나. 네에, 알겠어요.”

“네에.”

잠시 대화가 끊겼다. 하지만 지현이 먼저 입을 연다.

“그런데 이번에 가면 얼마나 계세요?”

“글쎄요? 일이 많아서 꽤 시일이 걸릴 겁니다. 적어도 석 달은 넘지 않겠나 생각해요.”

“그렇구나. 근데 거기 불편하지 않아요?”

서울에서만 생활하던 사람은 개발이 덜된 지방만 가도 불편함을 느낀다. 각종 편의시설 등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킨샤사 같은 대도시를 떠나면 미개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인 콩고민주공화국은 어떠하겠는가!

그래서 물은 것이다.

6장 애인 있어요!

“조금은 불편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거기에 적응해야지요. 근데 지현 씨는 어때요? 중앙지검이 대구와는 다르지요?”

“조금이요. 하지만 곧 저도 적응할 거예요.”

“이따 구경 좀 시켜줄 수 있어요?”

“검찰청이요?”

“네.”

“저 만나러 왔다고 하면 드나들 수 있는 곳인데요?”

“아! 그래요? 하여간 이따 구경 좀 시켜줘요.”

“그럴게요.”

지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려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근데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만 물어볼게요.”

“네에.”

지현은 자신이 현수에게 가르쳐 줄 것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듯 또 웃음 짓는다.

“검찰은 범죄행위를 한 사람들을 찾아서 처벌하려는 곳이잖아요. 근데 만일 내부에 범법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죠?”

“그러니까 검찰청 직원들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네. 특히 검사요.”

“갑자기 그건 왜요?”

“전에 텔레비전에서 한참 문제가 되었던 검찰에 대한 뇌물 사건이 있었잖아요. 부산지검이던가요?”

“네, 알아요. 부산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보도되었지요.”

“그 사람들 별 처벌을 받지 않은 것 같아서요. 한 사람만 옷 벗는 것으로 끝나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경고만 받지 않았나요?”

지현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맞아요. 문제지요.”

“검찰이 내부인사들을 너무 감싸서 국민정서에 반하는 결정이 내려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랬지요. 그건 분명 잘못된 거예요. 아빠가 규명위를 맡은 서울 고검장이었다면 그런 일 절대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신대요?”

“네, 그때 그 일로 여러 번 의견을 주고받았거든요. 아빠는 전관예우 같은 것도 일종의 범법행위라 생각하고 계세요.”

전관예우(前官禮遇)란 대한민국 법조계의 잘못된 관행으로 판·검사를 하다가 물러나 변호사를 갓 개업한 사람에게 법원이나 검찰에서 유리한 판결이나 처분을 내려주는 관행이다.

이를 막기 위해 1998년 개정된 변호사법은 판·검사로 재직하던 전관 변호사는 개업 후 2년간 퇴임 전에 소속되었던 법원이나 검찰청의 형사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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