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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237화 (237/1,307)

# 237

“……!”

줄리앙은 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살짝 시선을 내린다. 선머슴 같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있다.

현수가 등을 돌려 숙소로 들어갈 때 줄리앙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다.

존경, 흠모, 갈구, 그리고 사랑이 담뿍 담긴 눈빛이다. 쏘러리스로 인해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난 하인스는 구원의 천사였다.

게다가 와이번과 대적하면서 검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았을 땐 소변을 지릴 정도로 멋있었다.

잃어버린 검 대신 쓰라면서 준 검은 이전의 것보다 훨씬 좋다. 그렇기에 줄리앙은 애검이 될 검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네게 이름을 붙여줄게. 이제부터 네 이름은 하인스야. 알았지?”

마치 에고가 있는 보검과 대화하듯 줄리앙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미쳤다 할 모습이다.

잠시 후 줄리앙은 현수가 준 검으로 검무를 추었다.

같은 시각, 현수는 배정받은 숙소에서 아공간을 뒤지고 있다.

줄리앙에게 적합할 검법서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쓸 만한 것은 많았지만 마나 심법까지 딸려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뒤적이던 중 결국 마땅한 것을 찾아냈다.

700년 전 아르센 대륙에 명성을 드높였던 여기사 라일리아의 독문 검법서이다. 그래서인지 표지엔 라일리아 검법서라 쓰여 있다.

표지를 넘겨보니 검술만으로 백작의 작위를 얻었다고 쓰여 있다. 확인해 보니 역시 소드 마스터의 반열에 올랐다.

“후후, 이 정도면 마음에 들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맨 뒷장에 귀환 마법을 기록해 두었다.

귀족인 원수를 찾아다니며 고군분투하는 줄리앙이다. 상대가 얼마만 한 세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걸 극복하고 원수를 갚으려면 실력이 우선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검법에만 매진하라는 뜻에서 귀환 마법을 건 것이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현수는 줄리앙의 방을 찾았다.

똑똑!

“줄리앙! 나 하인스인데 들어가도 돼?”

“네, 들어오세요.”

삐이꺽―!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관 하녀와 줄리앙이 있다. 침대엔 연회에서 걸칠 의복들이 놓여 있다. 전형적인 드레스들이다.

“줄리앙! 잠시 우리 둘만 이야길 나눴으면 하는데…….”

“아가씨, 전 밖에 나가 있을게요.”

둘을 연인 사이로 오해한 하녀가 얼른 자리를 비켜준다.

문이 닫혔음을 확인한 현수는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옆방들을 살폈다. 예상대로 아무도 없다.

“무슨 얘기인데요?”

줄리앙은 현수로부터 데이트 신청 내지는 결혼하자는 말이 나오길 기대했다. 못 볼 꼴 다 보였기 때문이다.

“내일 귀환한다면서?”

식사하는 동안 랄프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네, 테세린으로 가야지요. 아빠가 거기 있으니…….”

“아까 아침에 줄리앙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어.”

“……!”

“몸놀림이 빠르고 여자치고는 힘도 좋아. 검에 마나도 실을 줄 알고. 그런데 내가 보기엔 조금 부족해.”

자신보다 월등한 곳에 있는 고수의 조언이기에 줄리앙은 고개를 끄덕여 순순히 시인했다.

“그렇게 보였다면 그런 거지요.”

“내게 우연히 얻은 검법서가 하나 있어. 그런데 여자들을 위한 거라 내겐 별 볼일 없는 거지.”

“……!”

“혹시 라일리아라는 소드 마스터를 알아?”

“라일리아라면 700년 전에 매혹의 붉은 장미라 불렸던 라일리아 후작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후작? 백작이 아니고?”

“네, 후작님이셨어요. 저와 같은 여검사들의 롤 모델인 분이죠.”

“아니 다행이군. 자, 이거……!”

현수가 검법서를 내밀자 줄리앙이 받아 든다. 그리곤 곧바로 부르르 떤다.

“이, 이건……! 이, 이걸 어떻게……! 하인스님! 이걸 어떻게……?”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우연히 얻었어. 근데 그게 마법에 걸려 있나 봐. 없어졌다가도 3년쯤 지나면 다시 내게로 돌아와.”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여자들을 위한 검법서라는 걸 알고 팔았던 적이 있어. 그런데 판 날로부터 3년이 되면 다시 내게 돌아와.”

“그럼 귀환 마법이…….”

줄리앙은 현수가 마법을 쓴다는 것을 아직 모른다. 엘리시아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무튼 3년 이내에 그걸 익혀. 안 그러면 내게 되돌아오니.”

“이거 정말 절 주시는 거예요? 정말요?”

“그래, 내겐 필요없는 거잖아. 하지만 줄리앙에겐 꼭 필요한 거고. 안 그래? 그러니 열심히 익혀.”

“아아! 하인스님!”

“어어……!”

와락 품에 안기는 줄리앙을 얼떨결에 받아 안은 현수는 잠시 행동을 멈췄다. 순수한 뜻에서 감사 표시를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줄리앙!”

“어머!”

줄리앙이 후다닥 떨어져 나간다. 두 볼이 능금보다도 더 붉다. 부끄럽다는 뜻일 게다.

“여기 앉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가르쳐 줄테니.”

현수의 설명을 들은 줄리앙은 가르침에 따라 검을 휘둘렀다. 물론 마나는 싣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 이 검법서는 온갖 기묘한 자세가 다 나온다. 평상시에 쓰지 않던 근육까지 쓰게 하는 검법이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신음을 냈다.

한편, 조금 전 자리를 비켜주었던 시녀는 주방에 내려가 식사를 했다. 그리곤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되돌아왔다. 연회에서 입을 옷은 혼자서는 입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에서 묘한 신음 소리가 난다.

아침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러고 싶은가 하면서 웃었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충분히 상상되기 때문이다.

하여 자리를 비켜주었다.

엿듣는 것은 결코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방으로 되돌아가 설거지를 마치곤 다시 올라왔다. 그런데도 같은 신음 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아직 젊으니 그럴 수도 있다는 표정을 짓고 다시 내려갔다. 그리곤 꽤 오랜 시간 동안 주방과 홀을 청소했다.

다시 올라왔다. 그런데 여전히 신음 소리가 난다.

“으이그, 짐승……!”

줄리앙이 하녀를 부른 것은 점심식사 시간이 훨씬 지나서였다. 밥도 안 먹고 그 긴 시간동안 사랑을 나눴다 생각하고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줄리앙은 땀을 흠뻑 흘린 듯하다. 게다가 몹시 지쳐 보인다.

‘세상에! 밥도 안 먹고……. 어쩜 그럴 수 있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대체 몇 시간이야?’

줄리앙은 목욕을 하고 잠시 잠을 잤다. 집중적인 훈련을 받느라 너무 피곤했던 때문이다.

“어서 오게. 하인스라 했는가?”

“네! 나후엘 자작님.”

“내 딸을 위기에서 구해주느라 애썼네. 자, 이걸 받게.”

자작이 내민 것은 금화나 은화를 담는 주머니였다.

“감사합니다.”

“좋은 술을 많이 준비했네. 마음껏 먹고 마시게.”

“네, 자작님!”

현수가 자리에서 물러나자 나후엘 자작이 들고 있던 컵을 포크로 탁탁 건드렸다.

띵, 띵―!

“테세린으로부터 이곳까지 온 용병들은 모두 들어라! 오늘의 연회는 그간의 노고를 풀어주기 위함이니 마음껏 즐겨라. 다음에도 우리 나후엘가의 의뢰가 있거든 또 나서주길 바란다.”

“만세! 나후엘 자작님 만세! 만세! 만세!”

용병들이 잔을 지켜들며 환호했다.

적지 않은 보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약속했던 대로 죽은 용병들에 대한 위로금도 나왔다.

환호 소리가 잦아들 즈음 악대가 등장했다. 현악기, 타악기, 관현악기 등이 보인다.

아주 독특한 음률로 연주되는 음악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명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춤추며 노래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용병들이 술렁인다.

“우와……! 이게 누구야?”

“설마 줄리앙? 진짜 줄리앙이야?”

용병들은 술렁였다. 선머슴 같던 줄리앙이 절세미녀가 되어 왔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화려한 레이스와 주름으로 치장된 줄리앙은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있다. 게다가 머리엔 갖가지 장식이 달린 모자를 썼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현수 역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12년 전의 전성기 때 안젤리나 졸리가 화려한 드레스를 걸치고 입장했기 때문이다.

줄리앙은 무엇인가를 찾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환한 웃음을 짓는다.

“뭐야? 내게 관심 갖기 시작한 거야?”

예쁘기는 하지만 여자들이 많이 꼬이는 것은 사절이다. 카이로시아와 로잘린을 감당해 내는 것만으로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줄리앙이 다가왔다.

“나 어때요?”

“응? 예, 예뻐. 정말 아름다워.”

“호호, 칭찬 고마워요.”

줄리앙이 치마의 양쪽을 잡고 살짝 무릎을 굽혔다 편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우아한 모습이다.

현수는 줄리앙이 곁에 서자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앙, 다른 사람들과는 이야기 안 해?”

“네, 하인스님 곁에만 있을 거예요.”

“끄으응……!”

현수는 할 말을 잃었다. 환히 웃으며 행복해하는데 초 치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둘은 손을 마주잡고 왈츠 비슷한 춤을 췄다. 현수도 현수지만 선머슴 줄리앙의 춤 솜씨는 대단했다.

하여 둘의 움직임은 군계일학이었다.

잠시 음악이 멈추고 휴식을 가졌다. 그때 악대에 시선이 미쳤다. 여러 악기 가운데 기타와 아주 유사하게 생긴 것이 보인다.

“저어, 그 악기 내가 한번 연주해 봐도 될까요?”

“그러시구려.”

기타 비슷한 악기를 다루던 악공이 순순히 악기를 건넨다.

“그거 연주하기 힘든데 해본 적이 있나 보죠?”

“네, 그건 아닙니다. 제 고향에도 이거 비슷한 게 있어서요.”

말을 하며 음을 맞춰보았다. 금방 기타 음을 낸다.

악공은 애써 맞춰놓은 음을 이상하게 바꾸는 모습을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았다.

용병의 비위를 거슬러 좋을 것 없기 때문이다.

이때 랄프가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

7장 노래의 향연!

“어이! 하인스. 그때 그 음악 한번 연주해 주지 않겠어?”

“그때 그 음악이라니요?”

“거 있잖아. 방구쟁이 제니스! 그거 한번 연주해 주게.”

“하하, 네에. 알겠습니다.”

띠리리리링―! 촹, 촹―!

악기의 줄을 훑어보니 현대의 기타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띠리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리……!

현수가 전주로 멜로디를 연주하자 용병들의 시선이 단번에 쏠린다. 오는 동안 수없이 불렀던 신나는 멜로디가 그럴듯한 악기 음에 실리자 반갑다는 표정이다.

가방 속에서 하모니카까지 꺼내서 입에 물었다. 그리곤 연주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용병들의 합창 또한 시작되었다.

드래곤 제니스는 방귀 냄새 지독해!

누구든 그를 보면 얼른얼른 도망가.

다른 모든 드래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제니스 외톨이가 되었다네.

안개 낀 그 어느 날, 친구 말하길

제니스는 방귀쟁이, 냄새가 넘 지독해!

그 후로 모든 드래곤 제니스를 피했다네.

제니스의 방귀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와하하하! 와하하하!”

노래가 계속되자 나후엘 자작가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는다. 드래곤이 방귀쟁이라는 노래는 난생 처음이기 때문이다.

노래가 몇 번 반복되자 자작가의 시종과 시녀들까지 따라서 부른다. 바야흐로 미판테 왕국에 새로운 히트곡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열 번쯤 반복되자 B급 용병 로렌스가 외쳤다.

“이보게, 하인스! 다른 노래는 없나?”

“그래, 다른 노래도 가르쳐 주게.”

“……!”

한참 신나던 참이기에 현수는 얼른 뇌리를 뒤졌다. 마침 생각나는 곡이 있다. 하여 연주를 멈추었다.

“이 노래는 신나는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은 노래이기도 합니다. 제가 한번 불러볼 테니 들어봐 주십시오.”

현수는 음을 다시 한 번 조율하고는 노래를 시작했다.

Puff, the magic dragon lived by the sea.

마법의 드래곤 퍼프는 바닷가에 살고 있다네.

And frolicked in the Autumn mist in a land called Hanalei.

그리고 하날리라 불리는 땅에서 가을 안개 속을 뛰놀았지.

Little Jackie Paper loved that rascal Puff.

꼬마 재키 페이퍼는 그런 장난꾸러기 퍼프를 사랑했네.

and brought him strings and sealing wax and other fancy stuff.

그래서 실과 봉랍, 그리고 다른 멋진 물건들을 가져왔다네.

미국에서 동요처럼 불려지는 이곡은 1963년에 ‘Peter, Paul & Mary’가 발표한 곡이다.

요즘 나오는 노래보다는 올드 팝을 좋아하는 현수이기에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발표된 이 곡을 아는 것이다.

꽤 경쾌한 멜로디이다. 용병들은 물론이고 자작가의 식솔들까지 가사를 알려 달라 하여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 노래 역시 열 번 이상 반복되었다. 솜씨 좋은 악공들은 반주까지 섞는다.

잠시 노래가 멈췄다. 술로 목을 축이곤 또 다른 곡을 요구한다. 이번엔 ‘The Classic’의 ‘마법의 성’을 불러주었다.

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속에서 너는 마법에 빠진 공주란 걸.

언제나 너를 향한 몸짓엔 수많은 어려움뿐이지만.

그러나 언제나 굳은 다짐뿐이죠.

다시 너를 구하고 말 거라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죠. 끝없는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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