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저, 정말이요? 정말이십니까?”
젊은 시종은 말까지 더듬는다. 자작 일가와 귀족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특히 양념 불고기와 잡채 냄새 때문에 환장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보고도 몰라요? 자, 어서 갔다가 와요.”
“네? 네에.”
시종이 서둘러 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왔다. 이번엔 샤실릭을 추가로 달라고 한다.
현수는 기다란 쇠꼬챙이에 절인 고기와 야채 등을 꽂아서 숯불에 구웠다. 그러는 동안 시종은 허겁지겁 음식의 맛을 보았다.
“자, 여기……!”
“고맙습니다. 주방장님!”
시종이 깊숙이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한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맛보게 해준 대가이다.
“고맙긴……! 배고프면 또 와요.”
“네에.”
시종이 갈 즈음 하녀들의 식사가 끝났다. 모두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만족했다는 미소를 짓는다.
이보다 조금 앞선 순간, 자작 일가가 식사를 하는 홀에선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접시에 담겨 나오는 음식마다 그야말로 맛이 끝내준 때문이다.
“세상에……! 이게 뭐기에 이런 맛이……!”
“우와! 이건 진짜……!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하죠?”
“어머나! 이 맛은……! 대체 어떻게 요리하기에 이런 맛이 나죠?”
“세상에나 맙소사나! 정말 맛이 있습니다.”
“자작님! 오늘의 초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자작님! 주방장이 바뀐 건가요?”
“정말 맛이 있어요. 셋이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를 맛이에요.”
…….
감탄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후엘 자작 역시 환상적인 맛에 눈을 크게 떴다. 귀족의 자식으로 태어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연회에 참석한 바 있다.
부친이 사고사 한 후 후계를 이으러 왕궁에 갔을 때에도 여러 번 연회 음식들을 먹어보았다.
오래토록 율리안 영지를 건사하기 위해 거의 모든 고위 귀족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마다 음식을 먹었다.
백작, 후작은 물론이고, 공작과 대공가까지 방문했었다.
하지만 오늘 먹은 이 음식보다 더 먹음직스럽고, 더 맛있는 음식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여 놀라고 있는데 귀족들의 찬사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모두 칭찬 일색이다. 그것도 평범하고 의례적인 칭찬이 아니다.
모두가 진심 어린 감탄을 하고 있다.
연회의 주최자로서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다. 이때 곁에 앉아 있던 엘리시아가 나직이 속삭인다.
“거봐요, 아버지! 하인스를 고용하게 한 거 잘한 거죠?”
“……! 그래, 정말 대단한 요리사구나.”
나후엘 자작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엘리시아로부터 하인스가 요리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다. 하지만 굳이 고용할 생각까진 없었다.
루갈도 한 요리 하는 요리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대단할 것이란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기에 마치 강펀치로 한 대 맞은 듯 놀란 상황이다.
“그럼 고용하는 걸로 하는 거예요. 전 하인스님이 만들어준 요리 아니면 못 먹으니까요. 아셨죠?”
“그, 그래!”
귀족들의 계속된 감탄사가 나후엘 자작을 세뇌라도 했나 보다.
나후엘 자작은 저도 모르게 허락한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한편, 주방에선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시종들로 북적이고 있다. 맨 처음 왔던 시종이 다른 시종들에게 말한 결과이다.
하녀들은 비워지는 접시를 닦으며 감탄사를 터뜨린다.
너무도 화려하고 유려한 무늬!
그리고 단 한 치도 다르지 않은 크기에 놀란 것이다. 물론 회수되었고, 모두 아공간에 담겼다.
“하인스!”
“네, 자작님!”
귀족들이 모두 물러간 후 현수는 자작에게 불려갔다.
“음식 맛있었네.”
“입맛에 맞으신 모양이군요. 감사합니다.”
음식을 만든 요리사로서 맛있게 먹어준 사람에게 사의를 표했다.
“엘리시아로부터 요리를 잘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네. 자네에게 내성의 주방을 맡기고 싶네.”
“네……?”
“엘리시아로부터 이곳에 당도하면 따로 고용하겠다는 이야길 듣지 못했나? 자넬 용병이 아닌 주방장으로 고용하겠다는 뜻이네.”
“저어, 자작님!”
“말하게.”
“엘리시아 아가씨로부터 그런 이야긴 들었지만 주방장으로 고용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평범한 C급 용병보다는 자작가의 주방장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벌이도 좋다. 그렇기에 당연히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던 나후엘 자작이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왜……? 그게 아니라면 왜 일행과 떨어져 여기에 남았지?”
“세상에 호기심이 많아서입니다.”
“호기심이라니?”
“조만간 라수스 협곡으로 들어가 볼 생각입니다.”
“뭐어? 라수스 협곡으로 들어간다고? 죽을 생각인가?”
“아닙니다. 그 너머엔 어떤 동네가 있을지 궁금한 것뿐입니다.”
“미쳤군……!”
나후엘 자작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랑거리인 검은 철퇴 기사단 전원을 이끌고 들어가도 생존율이 0%일 것이라 확신한다.
50여 년 전, 왕명으로 1,000명으로 구성된 기사단이 길을 뚫겠다며 라수스 협곡으로 진입한 바 있다. 전원 소드 익스퍼트 초급 이상이었다.
결과는 전멸이다. 레드 드래곤과 드래고니안들의 공격을 받아 모조리 시체가 되었다.
원정대에 왕자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시신이라도 거둘 목적으로 기사와 용병 1,500여 명이 재차 진입했다. 최하가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상이었다.
그 결과도 전멸이다.
이후론 어느 누구도 라수스 협곡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
눈앞의 젊은이는 음식 솜씨가 환상적이다. 그런데 미친놈이다. 그렇기에 나후엘 자작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 머무는 동안엔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졸렬한 솜씨지만 영주님께 음식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좋네, 그렇게 하게. 이곳을 떠나는 날까지 자네는 내성의 주방장이네. 그에 합당한 보수는 지급하겠네.”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현수는 다음날 아침부터 나후엘 자작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물론 음식 맛이 너무 좋아서이다.
아침 메뉴는 카레라이스였다. 독특하지만 환상적인 맛이라는 표현을 들었다.
점심 땐 국물 맛이 끝내주는 부대찌개를 선보였다.
왜 더 만들지 않았느냐는 말이 나왔다. 나후엘 자작은 다 먹고도 숟가락을 빨았다. 더 없는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저녁식사를 할 때가 되자 음식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자작 일가가 식탁에 앉아 대기했다.
현수는 갈비찜으로 이들 모두를 넉 다운시켰다.
물론 이 모든 요리를 주방 하녀와 시종들도 맛보았다. 심지어 심기 불편한 루갈까지 먹어봤다.
루갈은 내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속이야 어떤지 모르지만 깊은 반성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영주에게 저녁을 만들어준 현수는 빌모아 대장간으로 향했다.
“영감님! 다 되었습니까?”
“어? 너, 너는……. 아, 아직 안 되었어.”
“에이, 장인이라면서 뭐 그래요? 설마 그까짓 걸 못 만들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죠?”
“그, 그럼! 아암, 아니지. 전에도 말했지? 나는 빌모아 가문의 대통을 이을 뻔한 장인이야. 당연히 만들 수 있지. 근데 주문이 너무 밀려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네.”
“좋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럼 한 이틀이면 되죠?”
“그, 그럼. 이, 이틀 뒤에 오게.”
대장간을 나서는 현수는 빙긋 웃었다. 당황하는 케린도 빌모아의 표정 때문이다.
이날도 음식으로 자작 일가를 초토화시켰다.
아침엔 평범한 스테이크를 구워서 주었다. 물론 각종 소스는 아공간에서 꺼낸 것이다. 저녁엔 탕수육을 만들었다.
오늘 점심은 루갈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그가 만들었다. 나름대로 최상의 재료를 동원하여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모두 부렸다.
결과는 낙제이다.
루갈은 3분의 2 이상 남은 채 되돌아 온 접시들을 보고 고개를 떨구었다. 요리 인생 35년이 허무하게 스러진 느낌이 든 때문이다.
결국 다시 한 번 불려 들어갔다.
“정녕 본 가의 주방장이 될 마음이 없는가?”
“네, 준비가 갖춰지는 대로 라수스 협곡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끄으응……!”
나후엘 자작은 침음을 냈다. 하인스가 떠나고 다시 루갈의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다.
“자네, 엘리시아와 헤어질 생각인가?”
“네……?”
나후엘 자작이 저도 모르게 한 말이다. 어떻게든 하인스를 붙잡고 싶다. 마침 막내딸이 좋아하는 모양이다.
비록 평민이지만 음식 솜씨가 끝내준다. 그렇기에 엘리시아를 줄 생각까지 한 것이다.
현수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반문했다.
그러다 이내 속마음을 깨달았다. 귀여워하는 막내딸까지 주면서 자신을 잡으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자작님! 저는 평민입니다. 어찌 감히 엘리시아 아가씨처럼 고귀한 분을 넘보겠습니까? 추호도 그런 마음 없으니 말씀 거두십시오.”
“그, 그러게.”
자신의 말실수라는 것을 깨닫고 후회하던 차이기에 얼른 주워 담는 자작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쉽다는 표정이다.
다음 날 아침, 현수는 또 다시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루갈은 스스로 주방보조가 되겠다며 가르침을 청했다.
하녀들은 좋았던 시간이 끝났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곳의 원래 주인은 루갈이다.
현수는 아침식사로 햄버거를 만들었다. 루갈은 빵 사이에 고기와 아채를 끼워 먹는다는 말에 놀라는 표정이다.
이 같은 음식 조합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점심식사도 준비했다. 닭볶음탕이다. 다만 매운 맛을 조금 덜하게 만들었다.
루갈은 본 적도 없는 식재료를 대체 어디서 구해오느냐고 물었다. 이에 현수는 가까운 숲에서 얻었다고 둘러댔다.
점심을 마치고 저녁은 무엇으로 만들까를 고심하고 있는데 요란한 종소리가 들린다.
땡, 땡, 땡, 땡, 땡, 땡……!
“몬스터다! 몬스터가 공격해 온다!”
땡, 땡, 땡, 땡, 땡, 땡……!
“몬스터가 공격해 온다고! 병사들은 어서 성벽 위로…….”
창밖으로 내다보니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
“여긴 봄만 되면 몬스터들이 공격해 와요.”
현수의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루시아였다. 신임 주방장이 온 이후 한결 일하기 편하다. 고함도 치지 않고, 욕도 하지 않는다.
때리지도 않고, 몸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음식을 만들면 자신들도 먹을 수 있게 해주고, 남은 것은 가족들과 먹으라며 싸준다.
신임 주방장은 신이 보낸 선물이다. 그렇기에 루시아를 비롯한 일곱 하녀는 하인스를 신처럼 떠받든다.
루갈처럼 몸을 요구했다면 모두가 기꺼이 옷을 벗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자 얼른 설명해 준 것이다.
“매해 봄마다?”
“네, 이때쯤이면 숲에도 먹을 게 없어서 산 밑으로 내려온대요.”
“그럼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은?”
“벌써 며칠 전에 전부 성안으로 들어와서 살아요. 안 그럼 몬스터에게 먹히거든요.”
나후엘 자작은 욕심만 많고 못된 귀족이 아니다. 이곳 나후엘 영지는 라수스 협곡 인근인지라 몬스터의 출몰이 잦은 지역이다.
이런 곳의 영지를 유지하려면 영지민들의 숫자가 일정 수 이상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영지민들에게 비교적 유(柔)하게 대하고 있다.
“그럼 병사들만의 힘으로 몬스터들을 막아내는 거야?”
“네, 검은 철퇴 기사단의 지휘를 받아 병사들이 막아내지요.”
“으음……!”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루시아의 말이 믿기지 않아서이다. 산에서 쏟아져 오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 그간 파악한 바에 의하면 검은 철퇴 기사단은 총원이 35명뿐이다. 이들 하나하나가 병사들 20명씩을 지휘한다 해도 735명이다.
그런데 몬스터의 숫자는 10,000이 넘는 것처럼 보인다.
땡, 땡, 땡, 땡, 땡, 땡……!
“몬스터다! 몬스터가 공격해 온다!”
요란한 경종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병사들은 성벽 위에 준비해 놓았던 화살이며 창 등을 계속해서 끄집어내고 있다.
다른 쪽을 살피던 중 누각 위에 올라선 나후엘 자작의 모습이 보인다. 몬스터의 침입을 살피는 모양이다.
표정이 밝지 못하다. 하긴 몬스터들이 다가오고 있는데 웃고 있으면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늘 있었던 일이라면 저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 심각하다는 표정이었던 것이다.
“으음……!”
집히는 바가 있기에 시선을 외성 쪽으로 돌렸다.
“안 되겠군.”
주방을 빠져나온 현수는 외성 성벽으로 올라갔다.
영지민들이 병사들을 위해 각종 병장기들을 운반하는 상황이기에 올라서는 것은 쉬웠다.
“오크들이군! 근데 엄청나게 많군.”
적게 잡아도 일만 이상이다.
우와우와 꿰에엑! 꿰에에! 우와우와……!
소리를 지르며 쇄도하는 오크 무리를 본 병사의 눈에 긴장의 빛이 아닌 공포의 빛이 떠돈다.
마치 시커먼 물결이 다가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현수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몬스터 침공은 이전의 그것에 비해 숫자가 훨씬 많은 것이다.
“모두 들어라! 놈들은 오크들이다. 우리의 힘만으로도 능히 물리칠 수 있다. 우리에겐 성벽이라는 아군이 있다. 안 그런가?”
검은 철퇴 기사단의 단장 라임하르트 남작의 말에 병사들이 고함을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