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와아아아! 우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와아아아……!”
“모두 제자리를 지켜라! 평상시 훈련한 대로만 하면 물리칠 수 있다. 겁을 먹고 물러나면 그 자리로 몬스터들이 들어온다. 그러면 너와 네 가족들이 놈들의 먹이가 된다. 그러길 바라는가!”
“아닙니다.”
“그럼 죽을 각오로 현 위치를 고수해라. 우리는 해낼 것이다.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알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소리치지만 현수의 눈에는 위태로움이 보인다. 다가오는 홍수를 창호지로 막으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으으음……!”
꿰에엑! 췌에엑! 꿰에에엑!
오크들이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돌을 던져라! 단 한 놈도 허용해선 안 된다. 놈들의 멱을 따라.”
“와아아아! 죽어라. 이 빌어먹을 오크 놈아!”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었다. 현수가 있는 곳으로도 오크들이 기어오른다.
“제기랄……! 할 수 없군.”
현수 역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곤 오르려는 놈들의 발목을 베어버렸다.
꿰에에엑! 쿵! 케엑! 꿰에에엑! 쿠당탕! 꿰엑!
높이가 있다 보니 떨어지면 절반은 충격 때문에 죽는 모양이다.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손 역할을 하던 발목이 베어져 더 이상 기어오르진 못한다.
“야앗! 죽어라. 이 괴물아!”
퍼억―! 꿰에에엑!
“아악! 아아아악!”
흘깃 바라보니 옆에 있던 병사의 어깨가 뭉개져 있다. 강력한 일격에 맞은 탓이다.
그러는 사이에 성벽에 올라선 오크가 병사의 머리를 짓밟는다.
빠지직―!
“케엑!”
병사의 두개골이 깨지면서 허연 뇌수가 흘러나온다.
“이런 빌어먹을……! 죽어랏!”
현수가 검을 휘둘러 오크를 베어버렸다.
쒜에에엑―! 파직!
꿰에에엑!
병사를 죽였던 오크의 대가리가 허공으로 솟는가 싶더니 초록색 피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아아악……!”
또 비명 소리가 들려 시선을 돌려보니 병사 하나에 오크 세 마리가 달라붙어 공격하고 있다.
죽었는지 축 늘어진 병사의 사체를 성벽 아래로 떨군다. 곧 오크들이 달라붙어 마구 뜯어먹는다.
가히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그러고 보니 성벽 아래 곳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굶주린 오크들이 병사들의 시체를 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죽어랏!”
분기탱천한 현수가 검을 휘둘러 오크들을 베어냈다.
워낙 숫자의 차이가 많아서인지 성벽 곳곳에서 이런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원군은 없다.
율리안 영지는 고립된 지역이나 다름없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흘깃 바라보니 외성에 있던 사람들이 내성으로 소개(疏開)되고 있다.
외성만으론 버텨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이때였다.
뿌우우우웅! 뿌우우우웅!
“모두 후퇴하라! 모두 후퇴하라!”
오크들이 워낙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있기에 라임하르트 남작의 음성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꿰에엑! 꿰에에엑!
오크들은 자신들이 승기를 잡았다 판단하는지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같은 순간, 시선을 돌려본 현수는 자신과 병사 셋이 고립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인근에 있던 병사들이 죽으면서 오크들이 난입한 때문이다.
“모두 이쪽으로……!”
현수의 말에 병사들이 얼른 다가온다. 혼자서 여러 마리를 상대하는 것을 본 모양이다.
“후퇴하라는 명이 떨어졌소. 내가 후미를 맡을 테니 여러분들은 내성으로 가는 길을 뚫으시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후퇴할 때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후미이다. 적에게 등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병사 셋이 길을 뚫는 동안 현수는 달려드는 오크들을 베었다.
샤프니스와 스트랭스가 인챈트되어 있기에 놈들의 몸을 무 베듯 벨 수 있었다.
“블로우 업 파워! 헤이스트!”
현수가 나직이 중얼거리자 병사들이 움직임이 빨라진다.
꿰에엑!
“인간, 죽어라! 케엑!”
어눌한 말투의 오크를 베어내자 초록색 피가 튄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달려드는 오크들을 베어냈다.
“바디 리프레쉬!”
현수의 입술이 다시 한 번 달싹이자 현저히 느려졌던 병사들의 움직임이 되살아난다. 피로가 단번에 사라진 결과이다.
하지만 병사들은 모른다. 지금은 언제 죽을지 모를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베고 찔렀다.
평상시 훈련이 고되었었는지 병사들은 예상 이상의 실력이었다. 최소 D급은 되어 보이는 솜씨였다.
그러나 워낙 많은 오크를 상대해야 했기에 전신에서 선혈이 솟는다. 많은 상처를 입은 것이다.
어쨌거나 병사 셋과 현수가 혈로를 뚫는 사이에 내성의 문은 거의 닫히고 있었다.
한편, 오크들은 외성의 성문을 활짝 열어 제쳤다. 그 결과 엄청난 수가 안으로 난입하고 있다.
“이런 제기랄……! 조금 더 힘내시오.”
고개를 돌렸던 병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최소 5천 마리 이상의 오크가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문이다.
사람이란 위기의 순간이 되면 본래 가졌던 힘의 몇 배를 보인다고 했던가! 지금의 병사들이 그렇다.
혼신의 힘을 다해 다가오는 오크들을 베고 또 베었다.
“성문을 닫아라!”
끼이이이이―!
누군가의 명에 따라 내성의 성문이 조금씩 닫힌다. 워낙 육중하기에 금방 닫히지는 않을 것이다.
현수는 닫히는 성문과의 거리를 계산했다. 지금의 속도라면 문이 닫힌 뒤에나 당도한다.
그럼 병사들 셋은 오크의 먹이가 된다.
“이런 빌어먹을……! 우리는 보이지도 않나? 제기랄……!”
한편, 명을 내린 라임하르트 남작은 현수네 팀 이외의 네 팀이 고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말은 안 하지만 이들 네 팀 모두 오크에게 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전진 속도는 느리고, 놈들의 숫자는 점점 많아진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하다. 이들을 살리기 위해 성문을 늦게 닫으면 오크들이 난입하게 된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그렇기에 눈물을 머금고 문을 닫으라 명한 것이다.
“안 되겠습니다. 내가 선두에 설 터이니 여러분들이 뒤를 맡아주십시오. 이 속도로는 문이 닫히기 전에 당도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앞을 맡아주십시오.”
현수는 실력을 감추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기에 선두를 맡자마자 검기를 뿜어냈다. 시퍼런 오러가 쭉 뿜어져 나가자 흉악한 표정으로 쇄도하던 오크들이 주춤거린다.
“야아아압!”
쒜에에엑!
퍼억! 쉬릭! 싸악! 파직……!
꿰엑! 꾸아악! 케엑! 컥! 끄아악……!
단 한 번의 칼질에 여섯 마리 오크가 반 토막이 되었다.
뒤따르던 병사들은 시퍼런 오러를 뿜어내는 현수는 보고는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라임하르트 남작보다도 월등하기 때문이다.
“차아앗! 죽엇!”
쑤아아앙―!
요란한 파공음에 이러 파육음이 들린다. 오크들의 살과 뼈가 베어지는 소리이다.
퍽! 파직! 스윽! 퍼억! 퍽! 파직! 스윽! 쉬릭! 파팍……!
꿱! 켁! 커컥! 끄악! 케엑! 끄아악! 퀘엑! 끄윽! 컥! 커컥……!
단 한 번 칼질에 열 마리 오크가 죽어 자빠진다.
현수는 계속해서 전진하며 베고 또 베었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 무렵 고전하던 병사와 기사를 만나게 되었다.
기사 하나에 병사가 여섯이다. 모두가 선혈 범벅이다. 너무 지쳐 헉헉대는 숨소리가 가쁘다.
“헉, 헉! 고, 고맙소! 헉, 헉……!”
장검을 늘어뜨린 기사가 고맙다고 고개를 숙인다. 방금 죽을 뻔한 위기를 현수가 구해준 때문이다.
9장 혈로, 그리고 드러난 신위!
“자, 이러고 있을 시간 없습니다. 제가 앞장설 테니 뒤를 맡아주십시오.”
말을 마친 현수는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듯 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오크들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현수에겐 상대되지 않는다.
이들 일만과 맞붙어도 결코 당하지 않는다. 바디 리프레쉬라는 마법 하나만으로도 감당해 낼 수 있다.
하지만 뒤에는 열 명이 있다. 현수가 사라지면 이들은 금방 오크의 먹이가 된다. 그렇기에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잠시 후, 또 다른 사람들을 구해냈다. 이번엔 기사 셋에 병사 넷이다.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이다.
그야말로 악전고투를 한 때문이다.
한편, 내성 성벽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던 라임하르트 남작은 경악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낮춰 잡아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른 검사가 병사들을 이끌고 성문 쪽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오크들이 둘러싼 채 공격했지만 선두의 인물 때문에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수가 길만 뚫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기사와 병사까지 구하고 있었다.
현수 일행이 성문과 불과 30m를 남겼을 때 성문이 닫혔다.
“이런 젠장……! 성문을 여시오! 여기 병사들이 있소.”
힘껏 소리를 질렀지만 라임하르트 남작은 문을 열라는 명을 내리지 못했다. 오크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성문을 열란 말이오. 우리가 보이지 않소?”
연신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지만 성문은 열릴 기색이 없다.
‘이런 빌어먹을……!’
오크 무리에 둘러싸인 현수는 라임하르트 남작이 어떤 생각인지 알기에 욕은 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문을 여는 순간 오크들이 들어간다. 최소 백 마리는 넘을 것이다. 그러면 많은 희생이 있을 수 있다.
내성에는 병사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여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일단 성문 앞까지 갑시다. 내가 여러분을 보호하겠소. 힘내시오.”
현수는 병사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시퍼런 검기가 쭉 뻗어 있다.
비록 검강은 아니지만 닿는 것은 무엇이든 베어낼 기세이다.
쒜에에에엑―!
퍽! 파직! 스윽! 퍼억! 퍽! 파직! 스윽! 쉬릭! 파팍……!
꿱! 켁! 커컥! 끄악! 케엑! 끄아악! 퀘엑! 끄윽! 컥! 커컥……!
이번엔 이십여 마리가 한꺼번에 쓰러진다. 놀란 오크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일행은 성문 앞까지 당도하는 데 성공했다.
“반원을 만드시오. 결코 놈들의 공격을 허용하지 마시오.”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사와 병사들이 자리를 잡는다. 기사가 앞쪽 병사가 그 뒤에 있다.
현수는 반원의 정점에 서서 검을 고쳐 잡았다.
오크들이 다시 쇄도한다.
“야아아아아압―!”
향후 200년간 나후엘 자작가의 전설로 남을 역사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현수의 검끝에서 솟은 오러는 오크들을 모조리 베어버릴 기세로 뿜어졌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오크들이 어찌 당해내겠는가!
성문 앞에는 금방 오크들의 사체가 수북해졌다.
그렇게 20여 분간 피와 살이 튀는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슈슉! 슈슈슈슉!
“와아아아……!”
“성문을 열어라!”
라임하르트 남작의 명이 떨어지자 지금껏 숨죽이고 있던 병사들이 온 힘을 다해 거대한 막대를 밀었다.
끼이이이이―!
나직한 마찰음에 이어 문이 조금씩 열린다.
라임하르트 남작의 명령이 늦었던 것은 병사들을 공격하는 오크들을 막아낼 화살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벽 위에 준비해 놓았던 화살은 진즉에 소진되었다. 그렇기에 창고에 있던 것을 꺼내오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다.
남작의 명에 따라 궁수들이 일제히 성문 앞 오크들에게 화살을 쏘았다. 가히 화살의 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쏟아졌다.
그러는 사이에 성문이 열렸고, 일행은 안으로 들어섰다.
“성문을 닫아라!”
끼이이이이익―!
문이 닫히는 동안에도 화살비는 오크들의 전신을 노리고 쏟아졌다.
“휴우……!”
“헉, 헉! 고, 고맙습니다. 헉, 헉!”
투구에 붉은 수실을 매단 기사가 고개 숙여 인사한다. 목숨을 주해준 자신보다 강자에게 바치는 예의이다.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잘 견뎌주셨습니다.”
“헉, 헉! 감사합니다. 헉, 헉, 헉!”
현수 덕에 목숨을 구한 기사와 병사들 전체가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때 병사 하나가 다가왔다.
“펠릭스 기사님! 남작님께서 하인스님과 같이 성벽으로 오시라 합니다.”
“알겠네. 하인스님!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절대 강요하는 어투가 아니다.
“그러죠.”
현수가 내성 성벽 위로 오르는 순간 병사와 기사, 그리고 모든 영지민들이 박수를 쳤다.
“와와와와와! 하인스님 만세! 만세! 만세! 와아아아……!”
“고맙습니다. 기사와 병사들을 구해주셔서…….”
라임하르트 남작이 고개 숙여 사의를 표한다.
하인스가 평민이라는 것은 알지만 검의 길을 검사로서 자신보다 강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행히 구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시지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연치가 이제 겨우 스물다섯으로 보이는데.”
“스물아홉입니다.”
“그래도 정말 대단한 겁니다.”
라임하르트는 새삼 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체형이 장난이 아니다. 쓸데없는 살과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는 쪽 뻗은 몸이다.
피나는 수련의 결과라 생각하였기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언제고 가르침을 한번 주시겠습니까?”
“일단 이놈들을 쫓아내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성은 외성보다 훨씬 높습니다. 이번엔 우리가 유리합니다. 화살도 넉넉하고요.”
영지민들은 연신 돌과 화살 등을 성벽 위로 운반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안 나섭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별하러 갔습니다. 몬스터 침공은 늘 있었던 일이고 우리들만의 힘으로도 가능했기에 조금 전갈이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