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43화 (243/1,307)

# 243

흐뭇한 표정으로 트롤의 사체들을 보던 현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모두 아공간에 담았다.

이 녀석들의 피는 상처 치료에 그야말로 특효이다.

이걸 잘 정제하여 회복 포션으로 만들면 이상이 생겼던 부위가 원래대로 복원되는 기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롤의 피는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사람의 경우엔 조혈작용이 일어나는 곳이 간(肝)이다.

트롤도 간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중에 시간 날 때 해부해 볼 생각으로 나머지 사체들까지 아공간에 저장한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라 할지라도 서른두 마리나 되는 트롤을 단신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

누군가 사체를 발견하면 현수의 무위가 그 이상이라는 소문이 번진다. 그럼 문제가 되겠기에 거둔 것이다.

한편, 현수가 트롤을 숲속으로 유인해 간 지 한참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라는 것이 엘리시아에게 전해졌다.

숙소에서 오늘은 어떤 음식을 먹게 될까 행복한 상상을 하던 엘리시아가 화들짝 놀라 외성의 성벽까지 올라왔다.

“라임하르트 단장님! 구조대는 출발한 거예요?”

“네? 그, 그게…….”

“설마 아무도 나가보지 않은 거예요?”

“아, 아가씨! 트롤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삼십 마리가 넘습니다. 검은 철퇴 기사단 전원이 나가도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럼 하인스님 혼자서는요? 그러다 죽으라고요?”

“끄으응……! 죄송합니다.”

라임하르트는 입이 열 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이다. 하긴 율리안 영지를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구원해 준 사람이다.

그리고 작업 중이던 병사와 마법사들을 위해 스스로 트롤에게 달려간 영웅이다. 그런데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서요! 어서 하인스님을 구하러 사람을 내보내세요.”

“아가씨! 병사들의 힘으론 트롤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기사단이 나간다 하더라도 개죽음밖에 되지 않아요.”

“……!”

“기사단이 다 죽은 뒤에는요? 율리안 영지는 누가 지킵니까?”

“그래도요.”

엘리시아도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듯 힘없는 음성으로 반문한다.

“하인스님은 강합니다. 그리고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 겁니다. 트롤들을 숲으로 유인한 뒤 다시 돌아올 겁니다.”

“정말이요?”

“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엘리시아는 이때부터 초조한 눈빛으로 숲을 두 시간이나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눈이 커진다.

“아아……!”

엘리시아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올 때 영지민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와아……! 하인스님이 돌아오신다. 와와와와와……!”

“트롤은 보이지도 않는다. 하인스님 만세! 만세!”

트롤이 공격했다면 분명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트롤에게 있던 외성의 성벽은 난공불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트롤들을 숲으로 유인하고 되돌아온 하인스는 영지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면 귀환했다.

“하인스님!”

엘리시아가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현수의 의복 곳곳엔 초록빛 선혈이 묻어 있다. 분명 트롤의 것이다.

피를 받아내다 실수로 묻은 것이지만 엘리시아가 볼 때 그것은 악전고투의 흔적이다. 하여 감격에 찬 눈빛을 보인 것이다.

한편, 현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라임하르트 남작은 물론이고, 어느새 나온 나후엘 자작과 기사들, 그리고 영지민 전체가 둘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엘리시아는 와락 달려들 기세이다. 그럼 안아주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포옹을 하면 발목 잡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침음을 삼키며 머리를 굴렸다.

이때 라임하르트 남작이 구원이 되었다.

“하인스님! 트롤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놈들은 숲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상당히 먼 곳까지 유인했는지라 다시 돌아오진 않을 겁니다.”

“아! 다행입니다.”

“와아아아! 하인스님, 만세! 만세! 만세! 와아아아……!”

영지민들이 일제히 환호하자 현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려고 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영주님! 그래도 모르니 오크들의 시신 치우는 일은 하루쯤 미뤄주십시오.”

“흐음, 알겠네. 그리하지. 라임하르트 남작! 오늘은 성내의 복구 작업만 지시하게.”

“네, 나의 영주님!”

라임하르트가 주먹을 가슴에 대며 고개를 숙인다.

현수는 씻어야겠다면서 얼른 숙소 쪽으로 이동했다. 엘리시아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몽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전설에나 등장하는 영웅의 뒷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현수는 적당한 곳을 물색하여 앱솔루트 배리어를 쳤다. 그리곤 마나 집적진을 깔고 앉아 마나를 모았다.

지구로의 차원이동을 하기 위함이다.

새벽 무렵, 마나가 충진되자 곧장 마법을 구현시켰다.

“마나여, 나를 지구로……! 트랜스퍼 디멘션!”

전능의 팔찌로부터 마나가 폭발적으로 뿜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갈무리된다.

샤르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스러졌다.

* * *

“여긴……? 그렇군.”

계룡산임을 인지한 현수는 날짜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2013년 8월 23일 오후이다.

“흐음, 조금 후텁지근하구나.”

입고 있던 옷을 서둘러 갈아입었다.

비가 왔는지 잎사귀들이 젖어 있다.

하산하려 하는데 눈에 익은 인물이 보인다.

“어라! 저 사람은……?”

현수에게 도술을 가르쳐 달라던 정승준이다.

“어라! 사장님……! 사장님이 여기에 어떻게……?”

“그러게요. 예서 또 뵙네요.”

“엥? 그럼 전에 여기서 만났던 분이……?”

아주 잠깐 만났는지라 현수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긴가민가하던 참이었던 모양이다.

“맞아요. 근데 여긴 웬일이세요?”

“출국에 앞서 여기서 교분을 나누던 분들과 인사하려고 왔습니다. 내일 출국해야 하거든요. 참, 저 취직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에구, 고맙기는요. 열심히 일해주시면 됩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정말 열심히 일할 겁니다.”

“네에. 그럼 이만…….”

“아! 하산하시는 길이군요. 그럼 살펴 가십시오.”

“네에.”

산을 내려와 곧장 서울로 향했다.

10장 다시 나타난 성자

“저어! 이 머리카락으로 납중독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그런데 누구의 것인가요?”

의사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인다.

“우리 가족 것입니다. 자꾸 토하고 이러는 거로 봐서 아무래도 납중독 같아서요. 확인해 주실 수 있습니까?”

“비용이 제법 듭니다.”

“네, 감수하겠습니다.”

현수가 머리카락을 내밀자 꼼꼼하게 가족관계를 묻는다.

하여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있지도 않은 고모와 이모, 그리고 사촌들이라 하였다.

결과가 나오려면 닷새는 걸린다 하여 다시 들리기로 하였다.

역삼동 이실리프 빌딩에 가보니 곽인겸 씨가 근무 중이다.

“아! 오셨습니까?”

“몸은 괜찮으신 거죠?”

“네, 사장님 덕분에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리고 12층에 그분들은 들어오셨나요?”

“아뇨. 아직은 안 들어오셨는데 아침에 오셨다 가셨습니다. 오늘 밤부터 주무신다고 하더군요.”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이쪽으로 의약품들을 배송시켰는데 도착했나요?”

“아이고, 그럼요. 그분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의약품들은 한쪽에 잘 보관해 두었습죠.”

곽인겸은 지나치게 굽신대고 있었다. 하긴 죽을 날만 기다렸는데 말끔하게 치료해 주었다. 그리곤 취직자리까지 만들어준 사람이다.

머리카락을 뽑아 신을 만들어주어도 모자랄 은혜를 입었다 생각하기에 굽신대는 것이다. 지금은 만류해 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하여 대답 대신 엘리베이터를 탔다.

“저 혼자 내려가도 되니 안 오셔도 됩니다.”

“아이고, 네에.”

문이 닫히려는데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인다.

주차장에는 현수가 요구했던 콜레라와 홍역 백신, 그리고 주사기가 포장된 채 놓여 있었다.

이밖에도 일반 의약품이 상당수 있었다.

보는 눈이 있기에 용달차를 불렀다. 그리곤 이것들을 실어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있는 곳까지 운반했다. 지하 주차장에 모두 내려놓고 용달차가 가자 모두 아공간에 담았다.

“사장님! 오셨어요?”

“네, 별일 없죠?”

“그럼요. 차 드릴까요?”

이은정 실장이 살갑게 웃는다. 현수를 배반하고 주영에게 마음이 간 것이 미안해서일 것이다.

“좋죠. 제 사무실로 주세요.”

“네에.”

현수는 사무실에서 전투복에 달 단추를 어떤 식으로 한 건지를 구상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전투복의 단추는 중앙부에 네 개의 구멍이 있다. 실이 지나갈 자리이다. 마법진은 조금만 변형되거나 손상되어도 못쓰게 된다.

따라서 단추에 적용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다.

“흐음, 그럼 어떻게 하지?”

단추가 아니라면 눈치채기 쉬울 것이다. 하여 여러 가지를 구상해 보았다. 그런데 마땅하지 않다.

고심 끝에 고안해 낸 것은 깃의 안쪽이다.

와이셔츠의 경우엔 깃이 둥글게 말리지 않게 하기 위해 옷감과 옷감 사이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심지 같은 것을 넣는다.

요즘엔 세탁할 때마다 뺐다가 나중에 다시 끼우는 것도 있지만 예전의 것은 옷감의 안쪽에 고정시켰었다.

이렇게 만들면 일부러 빼기도 힘들다. 재봉한 실밥을 일일이 터야 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을 좌우 양쪽에 동일하게 넣되 한쪽에만 항온 마법진이 들어가도록 하면 될 것 같다.

물론 반대쪽에도 똑같은 것을 넣어야 쉽게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마법진이 새겨지지 않은 것이다.

세탁할 때 세게 문지르더라도 플라스틱으로 코팅되면 별 문제 없을 것이다.

현수는 시험용으로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SUS 304 0.3t 철판을 문방구에서 코팅해 왔다.

얇은 것부터 두꺼운 것까지 코팅해서 구부렸다 폈다를 하면서 변화를 살폈다. 그 결과 0.7t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세탁 상황을 고려하여 연질 플라스틱으로 코팅해야 한다. 그에 따라 마법진을 새긴 철판 역시 쉽게 구부러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철판 자체가 유연해지는 플렉시빌러티(Flexibility) 마법을 추가로 새겨야 한다.

현수는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인비저블 마법진까지 새기기로 했다.

군복을 납품하면 보나마나 비밀을 캐기 위한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획기적인 물건이 아니던가!

따라서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조사가 진행될 것이다.

외국에 사대7)하는 인간들이 워낙 많지 않던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 손으로 신형 전투복을 가져다 바치며 알랑방귀를 뀌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제일 먼저 미국이 전투복을 완전 해부할 것이다. 다음은 일본이고, 그 다음은 지나가 될 것이다.

이들에 의해 비밀을 캐기 위한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깃에 있는 심지 또한 의심받을 것이다.

이때 눈에 특이한 문양이 보이면 샅샅이 뒤질 것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라지 마법으로 가로 세로 50㎝ 크기로 확대한 상태에서 작업하는 것인지라 마법진 두 개를 추가로 그리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그리는 것이 까다로울 뿐이다.

현수는 기왕에 그려놓았던 마법진들을 꺼내 모두 두 개의 마법을 추가로 그렸다. 그러자 그냥 평범한 철판으로 보인다.

이걸 축소 마법으로 적당히 줄인 뒤 코팅하면 눈치채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하더라도 결국엔 비밀이 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지나 놈들이 어떤 놈들이던가!

그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금속 자체에 기능이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래 봐야 평범한 SUS 304이다.

수명이 한없이 길다면 이걸 뽑아서 다른 용도로 써도 된다.

하지만 전투복에 들어가는 것은 평균 사용 연한을 물어 그에 맞도록 만들 생각이다. 아마 2∼3년 정도일 것이다.

이 마법진은 마나석의 수명이 다하면 아무런 능력도 없어진다. 그러면 감춰졌던 마법진이 드러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 일리머네이션까지 추가해야 하나?”

그려놓은 마법진이 삭제되게 하는 마법이다.

“근데 이 마법이 마나석의 수명이 끝나는 순간 작동되게 하려면 타임 리미트 마법도 연계해 놓아야 하는군.”

쉽게 생각했던 항온 전투복의 마법진은 보안 때문에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일일이 새기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현수는 갖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마법진을 개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두 시간이 지난 후 최종 완성본이 결정되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지워지며, 늘 같은 온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마법진이 완성된 것이다.

이 마법진은 플라스틱으로 코팅되지 않더라도 물속에서도 작동된다. 따라서 찬물에 넣고 세탁을 해도 그 물의 온도가 체온과 비슷한 정도가 될 것이다. 때가 잘 빠지는 온도이다.

플라스틱을 코팅하는 이유는 세탁 과정 등에서 마나석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전투복 문제를 해결한 현수는 우미내의 집으로 텔레포트했다.

어머니 몰래 지하실로 들어가서는 트롤의 피를 정제하여 회복 포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논 노이즈 마법을 구현시킨 상태였기에 어머니는 현수가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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