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
“지금 아디스아바바에는 성자가 출현했다는 소문이 무성한 것은 아십니까?”
“물론 모릅니다. 그리고 전 성자가 아닙니다. 그냥 의술을 아는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너무 과한 칭찬이니 거둬주었으면 합니다.”
“아까 촬영을 하면서 보니 다 죽어가던 환자가 뾰족한 침 몇 방에 활기를 찾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건 무어라 설명하시겠습니까?”
“동양의, 특히 대한민국의 침술입니다. 저는 진료를 하면서 성심을 다해 환자가 쾌유하길 비는 마음으로 치료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한의사들보다 치유 효과가 조금 빠른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리포터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저도 의과대학을 나온 사람입니다. 지금껏 성자의 치료만큼 획기적이고 즉효 있는 것은 본적이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선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한다는 것뿐입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가히 기적이라 불려도 좋은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환자들이 밀려 있어서……. 치료를 하고 시간이 나면 그때 다시 말씀 나눴으면 합니다.”
“아! 네에.”
리포터가 어정쩡한 표정을 짓는다. 질문을 더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곤 다시 진료를 시작했다.
리포터는 진료 받고 나가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붙잡고 계속해서 취재를 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외부에선 천막 안의 현수를 촬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음 편히 환자들을 돌보았다.
저녁을 먹은 시간은 밤 10시경이다. 끝없이 늘어선 환자들 때문에 차마 밥을 먹겠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리야가 먹을 건 먹고 하라고 채근하지 않았으면 굶었을 것이다.
밤 11시경, 진료를 재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리야! 밖에 무슨 일인지 알아볼래요?”
“네, 성자님!”
“에구, 제발 그 성자라는 소리는 좀 빼세요.”
현수의 짜증 아닌 짜증에 리야가 생긋 웃는다.
“그럼 성함을 알려주세요. 성함도 모르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잖아요. 안 그래요, 성자님!”
“끄으응!”
“성자님은 성함은 뭐죠?”
“에구, 그냥 그렇게 부르세요.”
“차암, 이상하시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알리지 못해 안달인데 성자님은 진짜 성자님이신가 봐요.”
“에구, 어서 바깥의 상황이나 알아보세요. 심상치 않으니!”
“네에, 성자님!”
리야는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말꼬리를 올리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천막을 걷고 누군가 들어선다. 제복을 입었는데 군인인지 경찰인지, 아니면 공무원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
“……!”
환자 가운데 하나라 생각하고 물었는데 대답하지 않는다.
“환자 아니십니까?”
“당신, 의사 면허는 있나?”
“네?”
현수의 반문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에티오피아가 가난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법까지 없는 나라는 아니오. 당신은 지금 우리 국내법을 위반하고 있소. 그러니 당장 진료를 멈추시오.”
“……!”
대체 왜 이러나 싶은 마음이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약을 선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훈계하듯 하니 어이가 없다.
“에티오피아는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은 일체의 진료 행위를 할 수 없는 나라이오. 그러니 그만하라는 말이오. 알아들었소?”
“그건 알겠는데 에티오피아가 아닌 나라의 의사 면허는 허용이 안 된다는 겁니까?”
현수는 뭐라 하는지 들어보자는 표정이다.
에티오피아는 분명 의료 후진국이다. 이런 나라에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의사 면허에 대한 의견을 알고 싶은 것이다.
참고로, 에티오피아에서는 여전히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주술사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돌보았던 환자들 가운데 주술사를 찾아갔다가 질병이 악화되어 온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 면허를 받았다면 인정이 되지. 다만 입국할 때 신고가 되었어야 하네.”
“콩고민주공화국의 면허는 어떻습니까?”
사내는 동양인인 현수가 콩고민주공화국의 면허가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상상치 못하는 모양이다.
“그 나라의 면허는 당연히 허용되지. 그건 그렇고 면허증이나 내놔봐. 없으면 즉시 여길 떠나라고.”
이 사내는 아디스아바바 시내에 소재한 병원에서 파견한 사람이다.
아침에 신문을 본 환자들이 대거 병원을 빠져나가는 상황이 되자 경찰에 압력을 넣은 것이다.
그리고 이 사내는 아디스아바바에서도 가난하기로 이름난 코리안 빌리지를 관할하는 경찰서의 서장이다.
“그럼 제가 입국하면서 면허를 신고했으면 진료를 계속해도 되는 겁니까?”
“물론! 당연히! 하지만 면허가 없거나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당신은 현행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구금될 것이네.”
“……!”
“예상대로군! 베켈레, 킬라! 안으로 들어와.”
“네!”
대답과 동시에 두 사내가 들어선다.
“이자를 체포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덩치 큰 두 경찰이 다가서자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
둘이 멈칫하는 사이에 현수는 신분증을 꺼냈다.
물론 콩고민주공화국이 마련해 준 준외교관 신분증이다. 또한 공항에 입국하면서 직업을 신고한 신고서류도 꺼냈다.
“여기 제 신분증과 의사면허증, 그리고 입국신고 서류입니다.”
현수가 내민 것들을 받아든 사내는 그것들을 살피더니 흠칫거린다.
분명한 동양인이면서 콩고민주공화국의 준외교관 신분이라는 것 때문이다.
“흐음, 실례가 많았소.”
서장은 트집 잡을 게 없자 살짝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나간다. 모르긴 몰라도 계면쩍어서일 것이다.
잠시 후, 자동차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보아하니 대여섯 대는 몰려왔던 모양이다.
11장 과체중이십니다
“괘, 괜찮으세요?”
“네, 리아 양은 어때요?”
“저도 괜찮아요.”
손목에 수갑이라도 찼었는지 양쪽 손목을 만지작거린다.
“진료 계속합시다.”
리야는 어찌 된 영문인지를 묻지 않았다.
이날의 진료 역시 새벽 3시를 넘긴 뒤에야 끝났다.
숙소로 돌아온 현수는 식사를 하곤 잠자리에 들었다. 잠시 후, 리야가 들어온다. 대체 왜 이러나 싶었다.
그런데 잠시 후부터 살랑살랑 바람이 분다. 잠든 현수를 위해 부채질을 하는 것이다.
‘이런! 몹시 피곤할 텐데. 흐음, 안 되겠군.’
“슬립!”
입술을 달싹이자 금방 바람이 멈춘다. 피곤에 절은 리야가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얼른 들어서 잠자리에 뉘였다.
그리곤 마을 밖으로 나가 앱솔루트 배리어를 쳤다. 하루 종일 진료하느라 거의 소진된 마나를 충진하기 위함이다.
아침, 6시경. 현수는 숙소로 되돌아왔다. 리야가 잠꼬대하며 뒤척인다.
“아아! 성자님! 성자님은…….”
뒷말을 웅얼거려서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바디 리프레쉬!”
샤르르르릉―!
마나가 스며들자 웅크렸던 리야의 몸이 펴진다. 그리곤 고른 숨을 내쉰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피로가 풀린 몸이 될 것이다.
“흐으음!”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켰다. 저쪽을 보니 벌써 줄을 서 있다.
“하긴…….”
돈이 없으면 의사 만나기가 하느님 만나기보다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아무런 조건 없이 치료해 주는 성자가 나타났다.
현수는 모르지만 아디스아바바는 물론이고 소문이 번진 김버, 디레다와, 하레르 등지에서 환자들이 몰려오는 중이다.
“오늘 하루! 딱 하루만 더 있고 떠나자.”
레드 마피아가 보낸 컨테이너 통관 작업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현수가 진료를 시작하고도 두 시간이나 더 지나서 리야가 왔다.
늦잠 잔 게 부끄러운지 고개도 들지 못한다. 하긴 부채질을 해주러 들어왔다가 현수의 잠자리에서 잠을 잤다.
“리야!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보이네.”
“죄송해요.”
“괜찮아요. 너무 피곤하면 그럴 수 있어요.”
“네에.”
이날도 점심은 굶었다. 아침도 못 먹었으니 두 끼를 굶은 것이다.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아점저를 먹기 시작했다. 아점저란 아침 겸 점심 겸 저녁 식사이다. 지금 먹으면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기에 저녁까지 겸해진 것이다.
절반쯤 먹었을 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럽다.
“……!”
“촌장님! 대통령님이 오셨습니다.”
“뭐어……?”
식사를 하던 촌장이 대경실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곤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촌장은 몹시 뚱뚱한 기르마 올데 기오르기스(Girma Wolde Giorgis) 대통령을 안으로 모셨다.
“서, 성자님!”
“네?”
“대통령님께서 성자님을 뵙고자 오셨습니다.”
현수는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네에. 안녕하십니까? 김현수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기오르기스라 하오.”
둘은 정중히 악수를 나눴다. 연장자일 뿐더러 에티오피아의 최고 통수권자이니 예의를 갖춘 것이다.
“네, 대통령님!”
“호오! 우리말을 아주 잘하는군요.”
“네, 조금 공부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공용어는 암하라어9)와 영어이다. 현재 둘은 암하라어로 대화하는 중이다.
“식사를 하던 모양인데 내가 방해가 되었나요?”
“아닙니다. 거의 다 먹었습니다.”
“이런 내가 실례를 한 거군요.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곧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정리되었다. 촌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모두 나가고 현수와 대통령, 그리고 그의 측근인 듯한 사람만 남았다.
“방송을 보고 알았습니다.”
“아! 네에.”
취재해 간 것이 벌써 방송된 모양이다.
“우리 국민들을 위해 애써 주어 고맙습니다.”
“애쓰긴요. 당연한 일입니다.”
“언제까지 머물 것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오늘까지만 진료하고 내일은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갈 생각입니다.”
“그래요? 그곳엔 왜 가는 겁니까?”
콩고민주공화국은 한국전쟁 때 참전하지 않은 국가이기에 물은 것이다.
“그곳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흐음, 사업이라……. 그래, 어떤 사업입니까?”
“한국으로부터 의약품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겁니다.”
“한국 의약품……? 그럼 혹시… 천지약품입니까?”
“어라? 대통령님께서 그걸 어찌 아시는지요?”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 다른 나라에 있는 조그만 약품상의 명칭을 정확히 거론하였기에 현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랬군요.”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현수를 찬찬히 바라본다. 현수는 분위기가 어색하여 한마디 했다.
“대통령님께서 알아주시니 황공하네요.”
그래도 대통령은 한참 동안 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생각을 정리했다는 듯 입을 연다.
“미스터 킴, 우리나라에서도 그 사업을 해볼 생각 없소?”
“네……?”
“천지약품에 대한 소문을 들었소. 이익의 절반으로 킨샤사의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한다는…….”
이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 기오르기스 대통령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에티오피아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사업을 한다.
하지만 어느 하나 천지약품처럼 이익을 환원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공무원에게 뇌물을 써서라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익을 챙길지만 궁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소문이 조금 부풀려 난 것 같습니다.”
“아니오. 소문을 듣고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과 통화를 했소. 천지약품에 대한 칭찬이 너무 자자하여 한번 가볼 생각까지 했소.”
“아, 네에.”
이 대목에서 무어라 하겠는가! 현수는 맞장구만 쳤다.
“에티오피아에서도 그 사업을 한다면 밀어주겠소. 어떻소?”
에티오피아는 현재 의약품과 곡물 등 주요 품목을 정부비축 사업으로 지정했다. 그렇기에 공무원들이 이 일에 관여한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 지나,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많은 나라의 바이어들이 개별적으로 공무원을 접촉하여 납품한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부정이 저질러지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지금껏 이 사업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 돈이 상납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수족들에게 돈이 가는 일이기에 놔두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냥 둘 생각은 없다. 손보지 않으면 점점 비싸지는 약값 때문에 국민들이 죽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즈음 천지약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질 좋은 의약품을 수입하여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소매를 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발생된 이익의 절반은 빈민 구제를 위해 쓴다.
수족들도 이젠 재산을 모을 만큼 모았을 터이니 이런 시스템을 갖추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가에칸 카구지 내무장관과 직접 통화까지 해서 사실 확인을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두 가지 이득이 있다.
첫째, 에티오피아의 국민들이 보다 저렴한 의료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재선가도가 보다 탄탄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문제이다. 천지약품의 사장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더 큰 도둑놈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많지만 믿을 만한 이는 드물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러던 차에 현수를 만났기에 대놓고 사업하라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에 천지약품을 개설하라고요?”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법안을 개정해서라도 돕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