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대통령은 만만히 않은 저항이 있겠지만 밀어붙이면 못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으음……!”
“생각해 볼 시간은 충분히 주겠네. 언제든 말만 하게.”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오늘 자네를 만나 유쾌했네.”
대통령이 손을 내밀기에 악수를 했다.
“다음에 또 만나기를……! 언제고 나를 만나고 싶으면 전화를 하게.”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행비서가 명함을 내민다.
거기엔 이름과 전화번호만 있다.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것과 유사하다.
“대통령님, 잠깐만요.”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대통령이 시선을 든다.
“오신 김에 진맥이나 한번 해보시지요.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너무 살이 찌셨습니다.”
“흐음, 그렇지. 살이 찌긴 많이 쪘지.”
현수는 대통령의 손목을 잡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예상대로 고혈압이다. 고지혈증도 의심되고, 당뇨도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심장도 심상치 않다.
관상동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마나 디텍션!”
대통령의 체내로 스며든 마나는 자신의 임무를 잘 안다는 듯 전신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리곤 이상 부위에 대한 보고를 해온다,
예상대로 관상동맥이 많이 좁아진 상태이다. 조만간 협심증 또는 심근경색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췌장도 문제가 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이다.
“흐음……!”
“어떤가?”
진맥을 마치자 대통령이 묻는다. 사실 기오르기스는 자신의 병을 알고 있다. 정기적인 진찰을 받고 있으며 의사들의 처방에 따라 약도 먹고, 식습관 개선을 하는 중이다.
“대통령님은 현재 췌장의 인슐린 분비 이상으로 인한 당뇨병과 고혈압이십니다. 혈액 속의 지질 농도가 높은 고지혈증이며, 관상동맥이 상당히 좁아져 있는 상태입니다.”
“……!”
“과체중으로 인해 무릎에 이상이 생겨 관절염이 진행되는 중이며, 무엇보다도 협심증과 심근경색의 우려가 매우 높은 상태입니다.”
“……!”
대통령은 국빈 자격으로 영국에 갔을 때 런던에 위치한 세인트조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다.
그리고 방금 현수가 말한 모든 결과를 통보받았다.
식습관 개선, 체중 감량, 꾸준한 운동, 처방된 약 복용 및 정기적인 검사를 권유받았다. 하지만 살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꿔지겠는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상의를 탈의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수행비서의 도움을 얻어 간신히 옷을 벗었다. 그만큼 비대하기 때문이다. 별일도 아니건만 숨까지 거칠어져 있다.
이래 가지곤 오래 못 살 것이 분명하다.
“비서께서는 잠시 나가주시겠습니까?”
“안 됩니다.”
단순한 수행비서가 아니라 경호원 역할도 하는 모양이다.
“나가 있게.”
“대통령님……!”
“괜찮아.”
대통령의 말에 비서는 찍소리 않고 나간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조금 따가울 수 있으나 잠깐이니 참으셔야 합니다.”
“알겠네.”
대통령은 방송에 보도된 성자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방송이지만 진실만 보도하는 게 아니라 가끔 헛소문도 진짜처럼 보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수의 진료를 받는 이유는 왠지 믿고 싶기 때문이다. 진짜 성자라면 자신의 고질을 치료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라 해도 크게 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음 편히 있는 것이다.
“먼저 이것을 복용하십시오.”
현수가 내민 것은 회복 포션이다. 기능이 다한 췌장을 살리기 위함이다. 또한 좁아진 관상동맥이 원래대로 되길 바라서이다.
“흐음, 향이 좋군.”
꿀꺽, 꿀꺽, 꿀꺽―!
회복 포션은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헐어 있는 상피세포들을 원상으로 복원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이 자리에 눕자 현수는 침을 꺼내 들었다.
“리커버리!”
샤르르르르릉―!
서늘한 푸른빛 마나가 침을 통해 체내로 흘러들어 간다. 그와 동시에 맡겨진 임무가 뭔지 안다는 듯 췌장과 관상동맥 등으로 달려간다.
빠져나가던 마나가 멈추자 침을 꺼내 시침했다.
현수는 이제는 능숙해진 손길로 풍지(風池), 천주(天柱), 견정(肩井), 심수(心얀), 합곡(合谷), 수삼리(手三里), 족삼리(足三里)에 침을 놓았다. 고혈압을 다스리기 위한 시침이다.
약 3분 후 모든 침을 회수했다. 다음엔 무릎 관절 부위에 침을 놓았다. 관절염을 위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대통령의 체내에서는 망가지거나, 기능이 떨어진 장기들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회복 포션을 많이 복용시켰다면 단숨에 일어날 일이다. 하지만 성자라 불리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필요량의 3분의 2만 복용시켰다. 서서히 치료 효과가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수의 이런 기대는 깨졌다.
회복 포션의 양은 적었지만 리커버리라는 걸출한 마법은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침까지 더해지자 대통령을 괴롭히던 질병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침을 회수하고 보니 코를 골며 잔다. 무척 편안했던 모양이다.
“바디 리프레쉬!”
샤르르르르릉―!
마나가 스며들자 호흡이 고르게 변했다. 뚱뚱한 사람들은 잠잘 때 호흡이 규칙적이기 힘든데 멀쩡해진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살이 안 빠지지.”
현수는 아공간에서 쉐리엔 분말을 꺼냈다. 그리곤 적절한 용기에 담았다.
약 20여 분 후 일련의 작업이 마쳐졌다.
“어웨이크!”
“끄으응……! 후아아암!”
하품을 하며 눈을 뜬 대통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몸이 좀 편해지셨죠? 이제 서서히 혈압도 정상으로 내려갈 겁니다. 당뇨 수치도 정상에 가까워질 거구요.”
“……!”
“그리고 이거! 오늘부터 매일 식사 후에 하나씩 복용하십시오. 이걸 복용하시면 살이 몰라보게 빠질 겁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대통령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산뜻한 느낌이 믿을 수 없는 듯하다. 어깨도 돌려보고 다리를 들어보기도 한다.
“편하시죠?”
“미, 미스터 킴! 정말 성자셨소?”
“네? 아, 아닙니다. 성자는 무슨……. 그냥 독특한 의술을 시전하는 것뿐입니다.”
대통령 일행이 간 후 촌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일생의 광영이라는 듯 밝은 표정이다. 그리고 희망에 들뜬 모습이다.
코리안 빌리지의 낙후된 환경을 본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개선사업을 계획하여 시행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간 때문이다.
대통령을 배웅하기 위해 천막 밖으로 나갔을 때 눈에 익은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의사 면허가 없으면 당장 꺼지라던 관할 경찰서장이다.
서 있는 자리를 보니 가장 말석이다. 다시 말해 대통령을 수행해 온 사람들의 직위가 경찰서장보다 낮은 이가 없다는 뜻이다.
경찰서장은 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자신과의 일이 알려지면 아주 작살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현수는 피식 웃어주고 말았다.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굳은 표정을 푼다. 그리곤 아주 정중히 고개 숙여 절을 했다.
고맙다는 뜻일 게다. 굳이 원수질 일 없기에 그냥 웃어만 주었다.
* * *
“미스터 킴! 어디 갔다 온 거야? 며칠 동안 연락도 없이. 바람난 거야? 응? 나 말고 다른 여자한테 한눈팔면 죽어.”
“마투바! 나 바빴어. 할 일 많은 사람인 거 알잖아. 안 그래?”
“하여간 잠은 여기 와서 자! 알았지? 딴 계집 쳐다보면 안 돼!”
마투바의 한국어 실력은 대단하다. 하여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미스터 킴은 마투바의 어장에 갇힌 고기야. 잡은 고기에겐 미끼를 주지 않는대. 알았지?”
당최 무슨 소린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요즘 마투바가 푹 빠져서 보는 한국 드라마의 악영향이다.
스토리를 보는 게 아니라 이상한 말만 배우고 있다.
“지사장님은 어디 나가셨어?”
“응! 한국에서 컨테이너들이 올 때가 되었다면서 알아본다고 나가셨어.”
“그렇구나. 그럼 마타디 항으로 가신 거야?”
“아마도……! 근데 지사장님 나쁘다.”
“왜……?”
“미스터 킴 없을 때 막 욕해!”
“그래? 뭐라고 하는데?”
“이 노무 자식은 대체 어딜 싸질러 다니는 거야? 눈에 띄어야 뭔 말을 할 텐데. 바쁜 일은 다 나 시키고……. 제기랄! 맨날 이래.”
“하하, 그래? 알았어. 근데 그건 욕이 아니야.”
“아닌데? 이 노무 자식도 욕이고 제기랄도 욕이다.”
“맞아. 근데 가끔은 욕이 아닐 때도 있어.”
“그래? 그런 거야? 언제 그렇지?”
마투바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드라마를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투바와 말장난하고 있을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보니 산타페 한 대가 서 있다. 천지약품에서 쓰는 자동차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천지약품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써 있었던 것이다.
“마투바, 저 차 키는?”
“여기! 차 조심해.”
현수는 마투바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하여 대답 대신 시동을 걸고는 곧장 출발했다.
마타디 항까지 가기 위함이다. 텔레포트로 가는 것이 훨씬 편하고 빠르지만 일부러 차를 몰았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길은 여전했다. 하지만 서스펜션이 충격을 잘 흡수했다.
“자동차 만드는 기술이 일취월장하는 모양이구나.”
라디오를 틀었더니 이상한 노래만 나온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는데 누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서 있다. 말로만 듣던 히치하이킹이다.
끼이이익―!
“어디까지 가십니까?”
“마타디 항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 잘 되었습니다. 가다 내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인상을 보아하니 흉악범은 아닌 것 같다. 또 흉악범이면 어떤가!
7써클 마법사를 어찌할 흉악범은 세상에 없다.
그것도 숨어서 노린다 해도 그렇다. 뛰어난 감각이 있기에 먼저 알고 움직이면 그만이다.
“그럽시다.”
“고맙습니다.”
조수석에 올라탄 사내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셀레마니 무암바라 합니다.”
“김현수라 하오.”
사내는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듯 보이기에 편하게 대답했다.
“마타디 항엔 무슨 일로 가십니까?”
“그러는 무암바는 어디까지 갑니까?”
“축구 연습장까지 갑니다.”
“축구 연습장이요?”
“네, 저 앞에 있는 축구 연습장이요. 몰라요?”
“미스터 무암바! 난 외국인입니다. 알 리가 없잖아요.”
“그럼 혹시 파브리스 무암바는 알아요?”
무암바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브리스 무암바가 누굽니까? 미스터 무암바의 형제……?”
운전을 하는 중인지라 현수의 말끝은 짧았다.
“네, 우리 형이에요. 근데 진짜 파브리스 무암바가 누군지 몰라요?
“네에. 내가 알아야 하는 사람입니까?”
“끄응……!”
작년에 영국의 볼턴 윈들러스 팀에서 경기하던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계적 관심을 받았던 파브리스 무암바를 모른다는 소리에 셀레마니 무암바는 혈압 오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수는 그때 파란만장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축구 같은 스포츠 경기에 관심 둘 시간적 여유가 없어 모르는 것이다.
“미스터 킴은 축구 별로예요?”
“축구요? 아뇨, 축구 좋아하는데요?”
비포장도로이기에 현수는 시선조차 돌리지 못하고 대답했다. 그러다 문득 비포장도로라는 영어 단어가 생각났다.
고등학교 다닐 때 ‘Unpaved road’라 배웠다. 포장도로는 ‘Paved road’ 또는 ‘Pavement’이다. 뜬금없이 왜 이런 단어가 생각났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셀레마니 무암바가 묻는다.
“혹시 축구를 너무 잘해서 그런 겁니까? 아님 축구를 못합니까?”
현수는 대한민국 육군 출신이다. 어찌 축구를 못하겠는가!
국방과학연구소 소화기 개발팀엔 사병뿐만 아니라 장교들도 많다. 일과 시간 이후나 일요일엔 글자 그대로 계급장 떼고 공을 찼다.
현수도 마찬가지이다. 마땅히 할 일이 없던 시절인지라 시간 날 때마다 공을 찼다. 그 결과 소화기 개발팀의 에이스가 되었다.
그런데 축구를 잘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때 코앞의 도로 상태가 좋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대충 대답하게 되었다.
“축구요……? 축구 좋죠.”
“근데 진짜 파브리스 무암바를 몰라요?”
콩고민주공화국 축구선수들에게 있어 무암바는 희망이며 롤 모델이다. 동생인 셀레마니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 선수는 모르지만 공을 잘 찹니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건성으로 한 대답이다.
“끄으응! 얼마나 잘 차는지 물어도 되요?”
셀레마니가 물었을 때 차는 요철(凹凸) 부위를 넘던 순간이다.
“글쎄요. 좀 차기는 합니다.”
차량의 하체가 닿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튀어 나온 부위를 넘느라 또 한 번 대강 대답했다.
“정말요? 공 한번 차 보실래요?”
셀레마니의 물음엔 다분히 오기가 실려 있었다.
“그러죠. 뭐!”
현수의 성의없는 대답에 셀레마니 무암바는 화가 잔뜩 났다.
일생을 오로지 축구에만 두고 살았다.
장래 희망은 EPL에서 뛰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가치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농담이면요?”
현수는 여전히 농담인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100달러 내기 어때요?”
“그건 적고 1,000달러 내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