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47화 (247/1,307)

# 247

“좋아요.”

이번 대답은 길을 건너려는 노인 때문에 속도를 줄이면서 한 것이다. 주의를 기울이느라 상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저기, 저쪽 길로 접어드세요.”

현수는 핸들을 틀어 셀레마니 무암바가 지시한 길로 접어들었다. 오는 동안 콩고민주공화국 축구대표팀 훈련장이란 이정표를 보았지만 자신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길이 엉망이라 거기에 신경 쓰기에 바빴던 때문이다.

아무튼 꺾어서 들어간 길은 외길이다. 똑바로 쭉 들어가니 탁 트인 공간이 보인다.

“주차장은 저쪽이에요. 고마워요.”

“다 온 거예요?”

주차장엔 낡은 버스 하나와 고물이 다 된 지프 두 대가 서 있을 뿐이다.

“자, 이제 내리세요.”

오는 내내 자신의 가치관이 묵살되었다 느낀 셀레마니가 채근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호기심 때문에 내렸다.

숲속에 잘 가꿔진 축구장 3면이 있어 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대표팀 훈련장이란 생각은 이때까지도 전혀 없었다.

간판을 보았다는 것조차 잊은 때문이다.

“미스터 킴 혼자 할래요? 아님 반대편에서 뛸래요?”

“내가요……?”

건성으로 대답했기에 현수는 자신이 뛰어야 한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렸다.

“네, 저하고 내기했잖아요. 선수들끼리 청백전을 하니 저와 반대편에서 뛰면 되겠네요.”

“뭐 그럽시다.”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보니 젊기는 하지만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처럼 입고 있다. 낡은 티셔츠 위에 붉은 조끼와 푸른 조끼를 걸쳐 어느 편인가를 구분하고 있었다.

“어이, 셀레마니! 너 10분 지각이야. 왜 이렇게 늦었어?”

약간 나이가 든 사내의 호령에 셀레마니가 후다닥 달려간다. 그리곤 꾸벅 고개 숙여 늦은 것에 대한 사죄를 한다.

사내가 무어라 하자 계속해서 고개를 조아린다. 그러더니 몇 마디 말을 한다. 그러자 나이든 사내가 현수를 바라보았다.

이때 현수는 다른 선수들이 공 차는 것을 보고 있었다. 문득 군대 시절의 일이 생각난다.

현수가 있던 부대엔 대학에서 축구선수를 하던 사람이 있었다.

체대 출신인데 ROTC로 임관하여 갓 소위가 된 그 때문에 축구 열풍이 불었다.

그 덕에 현수도 마르세이유 턴과 사포 같은 기술을 배웠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연병장에 나아가 공을 찼다. 제대와 동시에 암울해진다는 것을 잊기 위한 몸부림의 하나였다.

어쨌든 그 덕에 제법 공을 찬다는 소리를 들어 몇 안 되는 사병임에도 늘 주전으로 뛰었다.

지금 그때의 기분이 느껴진다. 탁 트인 공간에서 축구공을 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셀레마니가 부른다.

“미스터 킴!”

“왜?”

“이쪽으로 오세요.”

현수가 다가오자 나이든 사내가 위아래를 유심히 살핀다.

“내기를 했다고?”

“네! 어쩌다 보니…….”

“1,000달러면 적은 돈이 아니네.”

“그 정도는 있습니다. 그리고 잃지도 않을 거구요.”

“그래? 자신감 하나는 제법이군. 좋네. 푸른색 조끼를 입게. 먼저 두 골을 넣는 팀이 이기는 걸로 하지.”

나이든 사내는 콩고민주공화국 축구대표팀의 코치이다. 전임 대표팀 선수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현수는 나이든 아저씨가 손짓하는 곳에 있는 푸른 조끼를 걸쳤다.

“축구화는 아무거나 골라 신게.”

낡은 축구화들이 수북하게 있어 그중에 발에 맞는 것을 골랐다. 그러는 사이에 셀레마니를 비롯한 선수들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들 현수를 보며 웃는다.

“자아, 다섯 명이 한 팀이 되어 뛴다. 아까도 말했지만 두 골을 먼저 넣는 팀이 이기는 거야. 반칙은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깊숙한 태클도 하지 마라. 알겠나?”

“네에.”

편을 갈라섰다. 다섯 명이 한 팀이니 골키퍼 하나를 빼고 나면 필드 플레이어는 네 명이다. 그들과 대면한 현수가 포지션을 물으니 두 명은 수비수, 한 명은 포워드라 한다.

“우리는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했으면 하는데 니들은 어때?”

모두 현수보다 나이가 어리기에 한 말이다.

“손님이 원하는 대로…….”

포진이 완료되자 코치가 휘슬을 분다.

휘이이이익―!

12장 마법사의 내기 축구

선공은 현수네 팀이다.

현수와 팀원들은 공을 돌리면서 틈을 노렸다. 상대는 중원에서부터 압박했으나 발재간들이 좋아 빼앗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조금씩 전진한 현수는 팀원에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라는 눈짓을 했다.

다시 공이 현수에게 오자 지체하지 않고 달리는 팀원의 전방에 찔러 넣었다. 그와 동시에 현수도 질주하기 시작했다.

결계 안에서 길고 긴 세월 동안 체력 단련을 한 결과 현수의 달리기 속도는 축구선수들을 능가했다.

달리는 야생마처럼 뛰어 들어간 현수의 앞으로 공이 튀어 온다. 지체하지 않고 논스톱 발리슛을 때렸다.

퍼엉―!

“젠장……!”

공은 휘어지면서 골대 바깥쪽으로 흘러갔다. 상대 골키퍼는 예고 동작 없는 슛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이번엔 셀레마니네 팀의 공격이다. 현수네와 마찬가지로 발재간이 좋아 좀처럼 공을 빼앗을 수가 없었다.

녀석들도 조금씩 전진하더니 2대 1 패스로 현수네 수비진을 흔들었다. 잘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컨트롤이 좋았다.

현수가 달려들었지만 공은 빼앗을 수 없었고, 놈들은 페널티 라인 안쪽까지 쇄도한 상태이다. 한 골 먹겠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골키퍼가 먼저 몸을 날려 공을 잡아챈다.

날랜 표범과 같았기에 현수는 박수를 쳤다.

이런 일진일퇴가 계속되었다.

현수는 자신에게 온 공을 빼앗기지 않고 패스를 하면서 공격에 가담했다. 하지만 좀처럼 골은 나지 않았다.

상대팀 골키퍼가 고무공과 같은 탄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공이 오른쪽 탑 코너10)로 가면 웬만해선 막지 못한다. 그래서 그 부위엔 야신 존이란 명칭이 붙어 있다.

레프 이바노비치 야신(Lev Ivanovich Yashin)은 구소련의 대표팀 골키퍼이다. 세인들은 그를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골키퍼라 칭한다.

그런 그도 막을 수 없었던 부위이기에 야신 존이란 명칭이 붙은 부분이 바로 오른쪽 탑 코너이다.

어쨌거나 현수가 감아 찬 공이 야신 존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는데 상대 팀 골키퍼가 이를 막아낸 것이다.

“제기랄……!”

공을 빼앗긴 현수네 팀은 곧바로 수비 모드로 돌아갔다. 그런데 상대팀이 엄청난 속도로 쇄도한다.

“어, 어! 막아, 막아!”

누군가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현수네 골망이 흔들린 것이다. 골을 넣은 셀레마니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그러면서 손가락 하나를 펴서 보여준다. 이제 한 골만 더 넣으면 끝이라는 뜻이다.

공을 센터서클에 가져다 놓은 현수는 같은 팀원에게 눈짓을 했다. 현수가 공을 차주면 그와 동시에 전방으로 길게 찔러줄 것이다.

상대에게 허를 찔려 한 골을 먹었으니 이쪽에서도 상대의 허를 찌를 계획을 짠 것이다. 관건은 현수의 공 키핑 능력이다.

혼자서 상대팀 수비진들을 뚫고 들어가 골을 넣어야 한다. 같은 팀은 만일을 대비한 수비만 맡기로 한 때문이다.

어쨌든 공이 현수의 발끝을 떠남과 동시에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공을 차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현수는 전방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시선을 돌려 공을 바라보았다. 상대 팀원들이 당황한 듯 몰려든다. 이때 달리던 속도를 줄여 가슴으로 공을 트래핑한 현수는 곧바로 슛을 날렸다.

퍼엉―! 철렁―!

초고속으로 날아간 공은 골키퍼가 동작하기도 전에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1대 1이 된 것이다.

조금 전까지 이빨을 드러내며 웃던 셀레마니가 멍한 표정이다. 방금 전 현수의 달리는 속도는 100m를 9초대에 뛸 정도로 빨랐다.

그렇기에 수비수들이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공이 다시 센터서클로 왔다. 두 팀 모두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작전으로 한 골씩 당했기에 견고한 수비를 했다.

일진일퇴가 계속되던 중 기회가 왔다. 현수네 팀원이 공을 가로챈 것이다. 그 공은 지체없이 현수에게 날아왔다.

현수는 그 공에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듯 보지고 않고 잘도 달린다. 그러던 어느 순간 돌아섰다.

공이 발아래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튀어 오른다. 이것을 잡아채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수비수가 달려든다. 마르세이유 턴으로 따돌렸다. 돌아서 달리기 시작하는데 또 다른 수비수가 다가온다.

이번엔 사포로 녀석을 따돌렸다. 그게 약이 올랐는지 미친 듯이 따라온다. 하지만 녀석의 주력은 현수를 능가하지 못했다.

드디어 페널티 라인을 넘었다.

골키퍼가 쏜살처럼 튀어 나오며 슈팅 각도를 줄였다. 그 순간 현수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리고 골키퍼를 제치곤 툭 차 넣었다.

공은 데굴데굴 굴러가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아―!”

현수네 팀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반면 셀레마니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휘이이이익―!

코치가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불자 셀레마니는 털썩 주저앉는다. 현수는 그를 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어때, 이 정도면 공 좀 차는 거지?”

“끄으응……!”

셀레마니는 침음만 내뱉었다. 현수는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셀레마니! 1,000달러는……?”

“……!”

대답이 없다. 돈이 없다는 뜻이다. 사실 현수는 셀레마니에게 그만한 돈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염장을 지르려 한마디 한 것이다.

“지금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고 꼭 갚아드릴 겁니다.”

“그래……? 그럼 그래.”

별말 없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자 셀레마니가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1,000달러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때로는 살인 청부의 대가가 되기도 하는 거금이다. 그런데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기에 놀란 것이다.

“셀레마니! 너도 제법 차더군.”

“이보게, 청년!”

현수가 시선을 돌리자 콩고민주공화국 축구대표팀 코치가 다가와 있었다.

“절 부르셨습니까?”

“차를 보니 천지약품에서 근무하는 것 같군.”

“네. 그렇습니다.”

“그럼 한국인?”

“그렇기도 하지만 콩고민주공화국의 국민이기도 합니다. 영주권과 시민권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오! 그래? 그, 그렇다면 축구해 볼 생각 없나?”

코치의 얼굴이 갑자기 확 펴진다.

“축구요? 방금 하지 않았나요?

“아니, 그 얘기가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 축구대표팀 소속 선수로 뛰어볼 생각이 없냐는 말이네.”

“네에……?”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에 코치가 대꾸했다.

“자넨 이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설마, 콩고민주공화국의 축구대표팀 선수들인 겁니까?”

“그렇네. 그런 이 녀석들을 상대로 불과 5분 사이에 2골을 뽑았네. 주력도 좋고, 개인기도 좋네. 대표팀 선수가 되게.”

“아이고, 아닙니다. 전 너무 바빠서 축구 못합니다.”

“빼지 말게. 조금 있다 감독님이 오니 그때 기량을 보여주게. 참, 자네 한국에서 축구선수였나?”

“아뇨,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끄으응! 그런데 어찌…….”

자국 대표팀 선수들을 어린애 다루듯 돌파해서는 골키퍼까지 제치고 침착하게 골을 넣는 사람이 일개 회사원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참, 저 지금 가봐야 합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요.”

“아, 안 되네. 이, 이보게.”

코치가 불렀지만 현수는 곧장 차로 가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곤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었다.

“오늘 재미있었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공을 차봤습니다. 셀레마니! 너도 나중에 또 보자.”

“……!”

콩고민주공화국 축구선수들은 혜성처럼 나타나 대표팀을 휘젓고 간 동양에서 온 사내를 멍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곤 하나둘 고개를 떨군다. 그동안 알량한 실력이 대단한 줄 알고 기고만장했었다. 그런데 겸손해지려는 것이다.

현수의 등장은 콩고민주공화국 축구선수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 * *

“마타디 항! 오랜만이군.”

현수는 항구의 전경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이했다.

“흐으음, 좋구나.”

오랜만에 맡아보는 바다내음을 흠뻑 들이킨 현수는 항구의 이곳저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컨테이너 적치장이 눈에 뜨인다.

전에 혼났음에도 여전히 부정이 저질러지는지 상당히 많이 쌓여 있다. 이걸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이춘만 지사장의 화물을 꺼내주려고 이곳에 왔다가 컨테이너 스무 개를 아공간에 담은 적이 있다. 이중 열여덟 개는 나중에 도로 꺼내놓았지만 두 개는 여전히 아공간에 담겨 있다.

문 부위를 완전히 용접해 놓았던 것이다.

“근데 그때 그거 안에 무엇이 들어 있지? 참, 일단 배가 언제 오나 확인부터 하자.”

관계자를 찾아 문의해 보니 천지건설 관련 건설 장비 등은 내일 입항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짓는다. 하긴 내무장관이 특명을 내려 천지건설 관련 화물은 무관세 최우선 통과를 지시한 바 있다.

이전 같으면 적지 않은 뇌물을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런데 그럴 기회가 완전히 박탈되었다.

만일 천지건설의 화물을 가지고 장난치다 걸리면 그 즉시 파직 당한다. 뇌물을 받다 걸리면 받은 액수의 1,000배를 벌과금으로 징수하겠다는 엄명도 떨어졌다.

그렇기에 감히 그럴 생각은 못한다. 하지만 골탕을 먹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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