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48화 (248/1,307)

# 248

현재의 마타디 항은 컨테이너로 가득하다.

일부러 조금씩 적체되도록 수를 쓴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반입은 늘리고 반출은 최대한 뒤로 미루었다.

어쨌거나 내일 천지건설의 화물들이 들어오면 오래도록 대기해야 할 것이다. 컨테이너를 내려놓을 장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뇌물을 못 받으니 골탕 먹이려는 심보이다.

현수가 어찌 이런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겠는가!

그렇기에 내용을 문의했다. 관계자는 적체된 화물의 반출이 늦어서 그런 것이라며 자신들은 책임없다고 말을 한다.

더 말해봐야 소용없기에 관계자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곤 인근 바에 들어가 전화를 빌렸다.

공중전화가 있기는 한데 누군가가 계속 통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바텐더는 전화 사용을 하락하면서 한 통화에 10달러를 내라고 한다. 외국인이라고 바가지 씌우려는 모양이다.

OK 하고는 보는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내무부지요? 저는 김현수라 합니다.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님과 통화하고 싶습니다. 네, 네!”

귀에 익은 이름이 나오자 마른 수건으로 컵을 닦던 바텐더의 귀가 쫑긋한다. 하나 모르는 척하며 잠시 기다렸다.

“아! 장관님. 김현수입니다. 네, 네. 저는 지금 마타디 항에 나와 있습니다. 네, 네! 천지건설의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선은 내일 오전 9시에 입항 예정이라고 합니다.”

바텐더가 여전히 힐끔거리고 있다. 긴가민가 하나 보다. 그래도 10달러는 받을 생각이다.

“네, 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컨테이너 야적장에 컨테이너들이 너무 많습니다. 네! 네. 어림짐작으로 헤아려 보니 대략 9,000개 정도 되는 듯합니다. 네, 네. 제가 알기론 20피트형 컨테이너 3,500개를 수용할 능력이 있습니다.”

수화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바텐더는 관심있다는 듯 귀를 쫑긋거린다.

“네, 네! 장관님 말씀대로 내일까지는 치워지지 않으면 화물 하역이 어려워 보입니다. 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밤새 하역 작업을 해도 힘들 것 같습니다.”

한편, 가에탄 카구지는 현수로부터 전화를 받고 화를 냈다. 자신의 지시사항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에 대노한 것이다.

얼마 전, 장관은 천지건설 화물의 입항일자를 확인한 바 있다. 친애하는 현수가 이 일에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여 신속한 하역과 통관이 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입항과 동시에 최우선적으로 처리할 일이라는 것도 분명히 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컨테이너들이 적치되어 있어 아무리 봐도 하역과 통관에 많은 시일이 걸릴 것 같다는 이야길 들었다.

현수는 혹시라도 일이 늦어질까 싶어 걱정된다는 어투로 이야길 했다. 이에 분기탱천한 것이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저는 그럼 장관님만 믿겠습니다.”

통화가 끝나는 듯하자 바텐더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이를 슬쩍 응시한 현수가 한마디 더했다.

“참, 항구 인근에 공중전화가 별로 없더군요. 그래서 바에 들어와 전화를 합니다. 네? 아, 조금 비싸긴 해요. 네, 미화로 10달러를 내라고 하더군요. 네? 여기 상호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네, 전화를 썼으니 당연히 돈을 내야지요. 네. 네.”

철커덕―!

현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곤 10달러짜리 지폐를 꺼냈다.

“여기! 전화 요금입니다.”

“아, 아닙니다. 아까는 농담이었습니다. 그냥 넣어두십시오.”

바텐더는 아예 사색이 되어 있었다.

실세 중의 실세인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과 직통으로 통화하는 사람일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받을 건 받으셔야죠.”

현수가 10달러 지폐를 밀어주자 바텐더가 정색한다.

“조, 좋습니다. 대신 위스키 한잔 하십시오. 아니면 가벼운 음료라도……. 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바텐더는 눈썹이 휘날리게 냉장고로 가서 콜라 한 병을 꺼내왔다.

“우선 이거라도 드시면서 목을 축이십시오. 금방 구아바 과즙이라도 만들어 오겠습니다.”

“……!”

현수는 콜라를 받았다. 어차피 어딘가에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목이 마르던 차이기에 빨대로 빨아 마셨다.

한 병을 거의 다 비울 즈음 바텐더가 구아바 과즙을 가져왔다. 달콤하면서도 비타민 함유량이 많은 것이다.

“천지건설 직원이신가 봐요.”

“네에.”

“근데 차는 천지약품 것이던데. 그 차 혹시 손님께서 타고 오신 겁니까?”

“네, 제가 몰고 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바텐더가 대답하는데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삐뽀, 삐뽀, 삐뽀……!

웬일인가 싶어 창밖을 살피던 바텐더의 안색이 확 바뀐다.

약 10여 대의 경찰차가 요란한 경음을 내며 마타디 항 내부로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 손님!”

“네?”

“시원한 음료 더 드릴까요?”

“아뇨. 이거면 됩니다.”

현수는 바텐더가 왜 그런지 뻔히 안다. 자신이 없을 때 이곳에 경찰이 들이닥치면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이곳에 있으면 무탈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잡으려는 것이다.

현수는 겁에 질린 바텐더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다.

예상대로 내무장관이 보낸 경찰들이 항만 직원들을 닦달하는 듯하다.

“쨔식들! 그러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지. 어디서 감히……!”

뇌물을 받지 못해 심통이 난 항만 직원을 떠올린 현수는 그의 이름을 가르쳐 줄 것을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면 아마 조인트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깨질 것이다. 다음 수순은 해고 아니면 오지 발령이다.

돈 몇 푼 먹으려다 인생을 조지는 것이다.

“그래, 노골적으로 요구하진 않았고, 그게 지금까지의 관행이었을 것이니…….”

현수는 이쯤해서 봐준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오늘은 할 일이 없다. 하여 차를 몰고 다시 킨샤사 쪽으로 이동했다.

“참, 컨테이너! 그거 확인해 봐야지. 흐음, 두 개를 꺼내야 하니 공터가 좀 있어야 하는데.”

차를 몰면서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괜찮아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 울창한 숲 때문에 도로를 달리는 차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장소이다.

시동을 끄고, 혹시 맹수나 뱀 따위가 없나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아무것도 없다.

“아공간 오픈! 컨테이너 아웃!”

쿠웅―! 쿠웅―!

제법 무게가 나가는 게 들었는지 육중한 소리가 난다.

“흐음, 뭐가 들었기에.”

“제기랄, 꼼꼼히도 용접해 놓았네.”

나직이 투덜거린 현수는 어떤 마법을 써야 하나 생각해 보았다. 전기가 있다면 그라인더로 갈아버리면 되지만 정글 한가운데에서 전기를 어찌 공급받겠는가!

“가만, 검기로 어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나자 즉시 검을 뽑았다. 한눈에도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보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은 검이다.

현수는 마나를 불어 넣었다. 즉시 새파란 오러가 넘실거린다.

“에잇!”

쫘아아아악―!

예상대로 용접 부위가 베어진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문을 열 수 있었다.

“대체 뭐가 들은 거지?”

문이 열리자 종이박스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하나를 꺼내 열어보았다.

“이건 옷이잖아? 어디 나라 제품이지? 메이드 인 지나? 제길, 쓰레기군.”

라벨에 쓰인 ‘Made in China’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흥미가 싹 가신다. 여자들이 입는 원피스 종류인데 한 번만 빨래를 해도 물이 쫙 빠지거나 후줄근해질 것이다.

메이드 인 지나는 전 세계적으로 저품질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 박스도 역시 지나산이다. 안에 든 것은 티셔츠였다. 그 다음 박스에선 남성용 바지가 나왔다.

그리고 보니 박스 한쪽에 내용물이 무언지가 기록되어 있다.

몽땅 옷이 든 박스들만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용접까지 해서 보냈지?”

고개를 갸웃거린 현수는 박스 하나를 계속 끄집어내며 확인해 보았다. 그러던 중 눈에 익은 글씨가 보인다.

“한국산……?”

박스를 개봉해 보니 라벨에 Made in Korea라 선명하게 인쇄된 옷들이 들어 있다.

“쨔식들, 이젠 가짜 한국산도 만드나?”

중얼거리며 옷을 꺼내 보았다. 티셔츠이다. 전문가가 아니기에 육안으로는 구별해 낼 수 없었다.

“흐음, 진짠가? 에이, 설마!”

현수는 몇 개의 박스를 더 꺼냈다. 지나산이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산 브랜드 의류이다.

“여기서 옷 장사를 하려고 수입한 건가?”

밖을 보니 박스들이 수북하다. 풀어헤쳐진 것들이 있어 다시 컨테이너에 넣기는 뭐하다.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상자들을 다 꺼내 놓아 온통 엉망이다. 박스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던 때문이다.

“에구, 괜한 짓을 한 거네. 어라! 저건……!”

아공간에 꺼냈던 것들을 모두 집어넣으려던 현수의 눈에 뜨인 것은 바닥이다. 지금껏 바닥인 줄 알았던 것의 아래에 목재로 만든 박스가 보인다.

그 위를 모노륨 같은 것으로 덮어둔 것이다.

“뭐지? 옷은 아닌 것 같고……. 뭐가 들었는지 볼까? 뭐야, 뭔데 이렇게 무거워?”

박스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크기에 비해 무겁다.

아공간에서 장도리를 꺼냈다.

잠시 끙끙대니 상자는 이내 형체를 잃었다. 상자 안에는 또 다른 상자가 들어 있다.

“대체 뭐가 든거지? 어라! 이건…….”

뚜껑을 열던 현수의 움직임이 멈춘다.

현수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반짝이는 금괴였다. 1㎏짜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꺼내서 확인해 보니 스무 개이다.

모노륨을 드러내니 컨테이너 바닥이 전부 같은 박스들로 채워져 있다. 하나하나 꺼내서 확인해 보았다.

모두 금괴가 스무 개씩 든 상자들이다.

“호오! 이건 완전히 횡재군.”

현수는 기분이 좋아졌다.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절대 합법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좋은 일에 쓰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상자 70개면 1㎏짜리 1,400개? 완전 땡 잡았네. 근데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지? 어라, 근데 이건 왜 이렇게 가벼워?”

이번 것은 이전의 것에 비해 확연하게 가볍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며 뚜껑을 열었다.

“이건……!”

백색 분말이 든 소포장 비닐봉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척 보는 순간 필로폰(Philopon)이라는 느낌이 온다.

곁의 상자를 열어보니 앰플 속에 담긴 것은 분명 모르

핀(Morphine)일 것이다.

다음 상자엔 강력한 환각제인 엑스터시(Ecstasy) 분말이 비닐봉투 속에 담겨져 있다.

모두 확인해 보니 필로폰이 7상자, 모르핀 6상자, 그리고 엑스터시가 7상자이다.

“어떤 개새가 이 못 사는 나라에…….”

현수는 욕지기가 치미는 것을 억제할 수 없어 한마디 했다.

누군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 국민들을 마약 중독자로 만들 작정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처럼 많은 양을 반입하진 않았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른 컨테이너도 열었다.

역시 의류들이 들어 있다. 이번 것엔 확실히 한국산이 많았다. 다 꺼내 놓고 확인해 보니 이것에도 나무박스들이 깔려 있다.

1㎏짜리 금괴 1,000개와 필로폰 7상자, 모르핀 6상자, 그리고 엑스터시 7상자이다.

“흐으음! 대체 어떤 놈이지?”

현수는 박스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화물주는 확인할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한국사람 아니면 지나 놈이라는 것이다.

“좋아! 일단 접수해 두지.”

현수는 모든 것을 아공간에 담았다. 금괴 2,000㎏이라면 하는 일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표정은 밝지 못했다. 누군가 막대한 양의 마약을 반입하려 했다. 그게 풀렸다면 콩고민주공화국 국민의 상당수가 마약 중독자로 전락되었을 것이다.

그런 일을 벌이는 자가 누군지는 반드시 색출해야 한다. 그렇기에 현수는 눈빛을 빛냈다.

꼭 잡아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현수가 천지약품 사무실로 되돌아온 것은 오후 6시경이다.

“미스터 킴! 아까 손님이 왔었어.”

“손님……? 누구?”

“이름을 물어봤더니 드모비치라고 했어.”

“아! 그래.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

마투바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대꾸한다.

“도착하는 대로 그랜드 호텔 라운지로 와 달래.”

“알았어.”

어차피 해결해야 할 일이기에 두말 않고 차를 몰아 가장 번화가인 곰베 지역으로 갔다.

흰색 대리석 바닥을 격자무늬로 장식한 그랜드 호텔은 5성급이다. 한국의 호텔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이다.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가서 물었다.

“아가씨, 이 호텔의 라운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래요?”

“저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가시면 좌측에 있습니다. 손님!”

“고마워요!”

데스크의 아가씨는 유창한 콩고어로 묻는 외국인 손님은 처음이었는지라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눈을 감고 들으면 내국인이라 착각하고도 남을 정도였던 것이다.

땡―!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현수는 라운지로 향했다.

“어라! 미스터 지르코프!”

“하핫! 여기서 만나니 반갑습니다, 미스터 킴!”

“네, 저도 반갑습니다.”

뜻밖에도 지르코프와 그의 부하들이 와 있었던 것이다.

현수와 포옹을 한 지르코프는 부하들을 소개해 주었다.

겉보기엔 비즈니스맨처럼 보인다. 그럴듯하게 보이려는지 서류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다.

“여기 커피가 맛이 괜찮더군요.”

“네. 저도 커피 한잔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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