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휴우∼! 다행히 늦지 않았군.”
현수는 서둘러 항구로 들어갔다. 파견되어 있던 천지건설 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 아서 오십시오. 김 과장님!”
“네, 배는 들어왔나요?”
“도착은 했는데 아직 접안한 것은 아닙니다.”
“통관에 필요한 서류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네, 모두 접수시켰습니다.”
“이쪽 세관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통관시킨다고 합니까?”
“여기 내무장관님의 명이 있어 무관세 통관이며, 화물은 무작위 표본 검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X―ray 검사 같은 걸 한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형식적으로라도 해야 한다는군요.”
“네에.”
직원과의 대화를 마친 현수는 문득 허전하다는 느낌이다. 많고 많았던 컨테이너의 절반 정도가 치워진 때문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를 짐작한 현수는 피식 웃었다. 어제 여기 직원들 거의 모두 퇴근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나서서 직접 하역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현수는 구경하기 좋은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문득 크론 식당에서 만났던 환자가 떠오른다.
현대 의학으로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회복 포션과 리커버리 마법으로 완치에 가깝도록 치유시켰다.
문득 마나가 대체 어떤 작용을 해서 그러는지 궁금했다. 하여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샅샅이 훑었다.
마법만 사용하거나 포션만 사용하는 것보다는 둘을 병행하는 것이 확실히 효과가 뛰어나다.
뭔가 유기적인 관계가 있지 않나 알고 싶었다. 하여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데 하역 작업이 시작된다.
장관의 명령 때문인지 하역 작업은 순조롭다.
통관절차는 거의 없었다. 하역하는 즉시 트레일러에 실려 곧장 반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형식적으로 100개당 하나 정도 X―ray 검사를 했다. 문제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너무도 순탄하여 현수는 하품까지 했다. 졸릴 지경인 것이다. 그렇게 작업은 진행되고 있었다.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현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곤 수고하라는 말을 하려 가까이 다가갔을 때 사람들이 흘리는 땀을 보았다.
“이런……!”
시원하다 할 수는 없지만 그늘에 있었기에 땡볕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안 되겠군.”
현수는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기 힘든 곳으로 가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곤 여전히 냉장 보관되고 있는 각종 음료수들을 꺼냈다.
“이 과장님! 이거 드시고 일하세요.”
“어라! 이건…….”
내려지는 컨테이너의 번호를 일일이 확인하며 기록하고 있던 업무지원팀의 이철수 과장은 얼떨결에 받아 든 시원한 음료수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갈아 만든 배라는 시원한 음료수 캔이었기 때문이다.
“더우시죠?”
“네, 근데 이걸 어디서……? 여기 이런 거 파는 데도 있습니까?”
콩고민주공화국에 온 지 두 달이 넘었지만 한국산 음료는 처음 보는 것이기에 물은 것이다.
아무튼 같은 과장급이지만 나이는 이철수 과장이 열 살쯤 많다. 그럼에도 말은 놓지 않았다. 본래 인품이 그래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조직 사회에선 드문 일이다.
기분이 좋아진 현수는 살짝 웃어주었다.
“하하! 알면 다치십니다. 아무튼 시원하게 쭉 들이키세요. 더 드시고 싶으시면 말씀하시고요.”
“하하! 네에. 고맙네요.”
“네에.”
현수는 캐리어 위에 얹은 아이스박스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부두를 누볐다.
“수고 많으십니다. 더운데 이거 한 잔 하시죠.”
“……!”
하역 작업을 하던 인부들은 물론이고, 트레일러 운전자 등 눈에 뜨이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나눠줬다.
대환영을 받은 것은 당연지사!
더운데 잘 되었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로 그럴 것이 너무도 시원했기 때문이다.
아이스박스에 담긴 얼음 덕분이다.
제법 넓은 하역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두 번이나 음료수가 떨어져서 아공간을 더 열어야 했다. 물론 사람들이 눈치채기 어려운 곳에서 꺼냈다.
현수는 음료수를 넉넉히 꺼내 놓고는 점심식사를 하러 나가려 터덜터덜 걸었다.
“이봐요!”
“……?”
“여기요, 여기!”
“아! 네에.”
누군가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던 현수는 항만 관제소의 창을 열고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보았다.
“그거 나도 주면 안 됩니까?”
“네?”
“음료수요. 나도 목마르다고요.”
“아! 네에.”
현수는 활짝 웃고는 관제소로 올라갔다.
항만 전체가 보이도록 타워 형식으로 만들어진 관제소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10여 명 정도가 분주한 손길을 놀리고 있었다. 누군가 싶어 살피는데 손드는 사람이 있다.
“여깁니다.”
“아! 네에.”
현수는 아이스박스를 열어 음료수를 꺼내 주었다.
“고맙습니다.”
나이가 50은 되어 보이는 사내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캔 뚜껑을 땄다.
따악―!
벌컥 벌컥 벌컥……!
“후와아……!”
캔 하나를 거의 단숨에 비웠다.
“이거 뭡니까? 뭔데 이렇게 맛이 있는 거죠?”
캔의 겉면에 사과가 그려져 있지만 사내는 처음 보는 과일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건 사과 주스입니다.”
“정말 맛있는데 하나 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죠.”
하나를 더 건네고는 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씩 나눠주었다. 모두들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숙인다.
맛을 보고는 ‘세상에 이런 맛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한데 시원하기까지 하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천지건설 직원이시죠?”
“네, 김현수 과장입니다.”
“반갑습니다. 관제탑 센터장인 데니스 은탕가라 합니다.”
예상대로 50대 인물이 이곳의 수장이다.
“저희 회사 일 때문에 많이 분주하시죠?”
“네, 솔직히 그렇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와서……. 하하, 그래도 괜찮습니다. 시원한 사과 주스를 얻어마셨으니 비긴 셈 칩시다.”
센터장은 사실 바쁜 하역 작업에 끼어들어 잠시라도 작업을 멈추게 한 현수에게 한마디 하려 불렀다. 화를 내면 그냥 갈까 싶어 나도 하나 달라는 소리를 한 것이다.
얼굴을 마주보니 상당히 젊은 얼굴이다. 게다가 싹싹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문득 이 사람이 뭔 죄가 있나 싶었다.
어제의 소동은 마타디 항만청장 및 그 휘하들의 조직적인 태만으로 빚어진 일이다. 그 일은 만연되어 있는 뇌물수수 때문이지 현수의 탓은 아니다. 그리고 뇌물을 받는 것이 결코 올바른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사실 센터장도 눈감아주는 대신 상납을 받아왔다.
그런데 천지건설 또는 천지약품과 관련된 화물로 장난하다 걸리면 그 즉시 파면과 동시에 악명 높은 교도소행이라는 지령이 내려왔다.
일반 과장이나 국장도 아닌 내무장관의 특명서이다. 게다가 대통령 비서실로부터 비슷한 내용의 명령서가 내려왔다.
천지건설 및 천지약품과 관련된 통관은 항상 최우선적으로 처리하라는 내용이다.
가에탄 카구지 장관은 매우 엄격한 사람이다. 따라서 명을 어기다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것이다.
어쨌거나 어제 군인들에게 조인트가 까여가면서 밤새 컨테이너들을 반출해서 자리를 비웠다. 하여 몹시 피곤한 상태이다. 그렇기에 돌아다니는 현수에게 짜증이 났던 것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천지건설 화물만 취급하게 생겼습니다.”
“네에, 화물이 좀 많지요?”
“어마어마하더군요. 공사가 엄청난가 봐요.”
“네, 잉가강에 댐을 만들고 수력발전소까지 지어야 하는 공사라 좀 크죠.”
“흐으음! 댐이라……. 정글 속에 있어 공사하기 어렵겠네요.”
“네, 그곳까지 가는 길을 먼저 닦아야 할 판이에요.”
현수는 센터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원들 손에 들린 서류를 본 때문이다.
이전에 처리한 화물선의 선명과 컨테이너 수, 그리고 각각의 컨테이너의 화물주 등이 기록된 것이다.
“참, 전에 얼핏 들었는데 여기서 컨테이너가 없어진 일도 있다면서요?”
“……! 그건… 천지건설 것은 저희가 확실하게 신경 써서 안 그렇게 될 겁니다.”
행여 화물이 사라질까 싶어 우려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네에, 당연히 그렇겠지요. 근데 그 사건은 어떻게 해결되었죠? 잃어버렸던 컨테이너는 찾았나요?”
현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아뇨, 아직 못 찾았습니다. 그때 그것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죠. 덕분에 항만청장이 옷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간부들 여럿도 사표를 써야 했지요.”
센터장은 자신이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사건으로 간부 거의 전부가 물갈이되었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마타디 항의 관련자 여럿이 작살났다.
뭔지도 모르고 깝죽대거나 반항하다가 얻어터진 것이다. 하여 잃어버린 화물이 몹시 중요한 것이라는 소문이 번졌다.
“그럼 화물주는요?”
“미스터 왕이 여기까지 쫓아와서 노발대발했죠.”
“미스터 왕이요?”
“네, 곰베 지역에 있는 화원공사라는 회사의 사장인데 정말 성질 더럽고 끈질긴 놈이었습니다.”
“화원공사라면 무역회산가 보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그놈 때문에 여기가 또 한 번 쑥대밭이 되었었습니다.”
센터장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진저리를 친다.
“설마 여기에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한 겁니까?”
“아뇨, 그럴 순 없죠.”
고개를 강하게 좌우로 흔든다. 그런 일은 빚어질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쑥대밭이라뇨?”
현수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센터장이 인상을 찌푸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때 화원공사의 사장 왕영백은 자신의 화물을 내놓으라며 난리를 쳤다.
그런데 어디에 어떻게 뇌물을 썼는지 마타디 항에 적치되어 있던 모든 컨테이너를 열어봐야 했다.
무려 6,000여 개였다.
그때의 일을 어찌 잊겠는가!
밤샘 작업을 하며 일일이 확인시켜 줬다. 하지만 사라진 컨테이너는 끝내 찾지 못했다.
화원공사의 왕영백은 길길이 뛰며 책임지라고 했다. 결국 마타디 항이 화물의 가치에 버금가는 비용을 물어주었다.
물론 지나와 한국산 의류 가격이다.
안에 담겨 있던 2,000㎏의 황금과 대량의 필로폰, 엑스터시, 그리고 모르핀에 관한 것은 없다.
그걸 알았다면 돈을 물어주는 게 아니라 금괴 밀수와 마약 밀반입을 사유로 즉각 구속 후 사형감이다.
아무튼 현수는 원하던 정보를 얻고는 관제탑을 나섰다.
“그러니까 냄새나는 짱꼴라가 그랬단 말이지?”
엄청난 양의 마약이 통관되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중독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건 피폐한 콩고민주공화국을 더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짱꼴라 놈들은 거금을 벌게 되었을 것이다.
“하여간 지나 놈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상념의 소유자들이 지나인들이다.
그렇기에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잉가강으로 갈 때 공격받았던 생각이 났다.
자신들이 공들인 공사를 다른 나라 회사와 계약했다는 이유로 저격수를 보낸 놈들이다. 그것도 개인이 아니라 국가 기관 소속 저격수들이다. 그래서 여럿이 죽고, 다쳤다.
“흐으음, 그냥은 안 된다는 뜻이군.”
현수는 점심을 먹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식사 후, 항만에 들어서니 멀리서 들어오는 배가 보인다. 파나마 선적 30,000톤급 대형화물선인 G호이다.
뒤를 돌아보니 저쪽에 지르코프가 탄 차가 보인다. 시력을 돋구니 노보로시스크에서 본 적이 있는 사내가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반군 지도자인 마림바이다.
잠시 후 도선사의 지시를 받은 배가 접안을 마쳤다.
“이 과장님! 하루 종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네! 제가 맡은 일인 걸요.”
아침 일찍부터 확인 작업을 하던 이철수 과장은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그림자 하나 없는 곳에 있으려니 힘든 것이다.
조금 기다리니 서류 작업이 모두 마쳐졌는지 하역 작업이 시작된다.
현수는 자신이 붙여놓은 마법진이 제대로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이 모두 제자리에 잘 붙어 있다.
가까이 가서 봐도 어떤 기업을 홍보하는 QR처럼 보이기에 어느 누구도 마법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내려진 컨테이너는 즉시 트레일러에 실렸다. 그리곤 검사대를 지나쳤다. 직원들은 관심도 없다는 듯 통과 깃발을 든다.
현수는 얼른 트레일러에 올라탔다.
차는 곧장 항만 밖으로 향했다. 그리곤 지르코프가 있는 쪽으로 갔다. 계근장이 그곳일 것이다.
“미스터 지르코프!”
“아! 미스터 킴!”
“이제 시작인가요?”
“네, 여기서 계량만 하면 인수인계가 마쳐지는 겁니다.”
“오늘 안에 끝나겠군요.”
“아마도요. 이따 저녁 때 한 잔 더 어떻습니까?”
“저야 좋죠.”
둘이 말하는 사이에 트레일러가 계근대에 멈춰 선다.
지르코프가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에 무암바가 서류를 뒤적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확인되었다는 뜻이다.
둘이 뭔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각자 사인이라도 하는 듯 뭔가를 기록한다. 예를 들어 ‘1번 컨테이너 확실히 인수인계 받았음’ 같은 서류일 것이다.
무암바가 손짓을 하자 트레일러가 계근대를 떠나 출발했다. 그 인근엔 음료수를 손에 든 현수가 앉아 있었다.
차가 현수를 스쳐 지날 즈음 현수의 입술이 오물거린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에 시선을 준 이는 없다.
두 번째 트레일러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능의 팔찌』 제11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