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1장 니들이 아공간을 알아?
“매지컬 포지션 인버케이션(Magical Position Invocation)!”
현수의 입술이 달싹이고 불과 2초도 지나지 않아 트레일러의 컨테이너 섀시가 슬쩍 위로 올라간다.
그와 동시에 차에 속력이 붙는다.
하긴 컨테이너 내부에 있던 육중한 화물 전부가 갑자기 증발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트레일러 기사는 갑자기 차가 잘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별다른 의심을 하진 않았다.
마침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마법진이 발동된 때문이다.
현수가 노보로시스크에서 화물을 일일이 확인하겠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때 붙여 놓은 기업의 QR코드 같은 마법진은 화물을 아공간 속에 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아공간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복잡한 계산의 결과 창안된 이 마법은 블랙홀과 웜홀, 그리고 화이트홀의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그래서 마법진을 발동시키면 컨테이너 안에 담겨 있던 화물 전체가 현수의 아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어쨌거나 현수는 하루 종일 그곳에서 마법을 구현시켰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저쪽에선 마림바와 지르코프가 연이어 들어오는 트레일러들을 보고 일일이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때문이다.
1차로 보내진 컨테이너 118개 중 64개에 대한 것만 확인하는데도 꼬박 10시간이 걸렸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서 시작된 작업이 밤 10시가 넘도록 계속된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오후 6시를 조금 지난 시간에 끝났어야 한다. 그럼에도 늦은 밤까지 작업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천지건설 화물이기 때문이다.
무관세 통관 및 최우선 통관이라는 내무장관의 특명이 있었기에 쉬지도 못하고 하역작업 및 통관, 운송이 일관되게 진행되었다.
다시 말해 논스톱으로 배에서 내려 트레일러에 실었기에 64개라도 통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라! 아직도 안 가고 있었습니까?”
터덜터덜 걸어나오는 현수를 본 지르코프가 한 말이다.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 종일 마법을 구현시키는 것이 제법 많은 마나를 소모시켰다.
그래서인지 다크서클이라도 생긴 듯한 느낌이었다. 체내에 저장했던 마나의 93%쯤 사용된 때문이다.
마나 포션을 복용할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얼마 남지도 않았기에 아껴둔 것이다.
“저도 통관 작업을 확인해야 하거든요.”
“잘 되었습니다. 목도 컬컬한데 가서 맥주나 한잔합시다.”
“좋죠!”
둘은 의기투합한 친구처럼 환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항구 인근 숙소에서 머물기로 했다. 내일 새벽부터 통관 작업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지르코프가 선사한 저택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았다. 그곳으로 가면 이리냐를 거절할 방법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은 밤이 이슥하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르코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국립대학 출신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유서 깊고, 규모도 큰 종합대학이다.
유명한 졸업생으로 러시아의 총리인 블라디미르 푸틴과 대통령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그리고 19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이반 파블로프 등이 있다.
놀랍게도 지르코프는 이 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다시 말해 의사이다. 그럼에도 레드 마피아의 일원이 된 것은 아버지가 조직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첫 인상이 지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르코프는 겸손했다. 현수가 보스의 귀빈이라서가 아니다.
한 지역을 총괄하는 보스가 되었지만 자세를 낮춘다는 것은 처세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조직 내에서의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지르코프는 힘도 있으면서 친구도 많다.
말 나온 김에 현수는 여러 의학적인 궁금함을 풀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꽤 잘했는지 묻는 것에 막힘없이 대답해 주었다. 하여 술 마시다 웬 의학 세미나를 하는 기분이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둘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다음 날, 현수와 지르코프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통관 작업에 매달렸다.
그 결과 현수의 아공간에는 KA―52 Alligator Hokum B 공격헬기 열 대를 무장시킬 반능동 AT―16 Vikhr M과 레이저 유도 Kh―25ML 전술 공대지 미사일이 담겼다.
이밖에도 FAB―500 범용폭탄과 23㎜ 기관포탄, 그리고 80㎜ S―8 로켓과 122㎜ S―13 로켓 등이 이동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전차 로켓 RPG―32 500정, AK―103 20,000정도 있다. 이중 5,000정은 레이저 조준기와 GP―30 유탄발사기까지 장착된 것이다.
AK―47의 탄창 10만 개 역시 고스란히 이동되었다.
모든 작업이 마쳐졌을 때 현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어제 통관된 컨테이너가 텅 비었다는 것을 마림바 측이 알았다면 오늘의 일이 틀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작업이 마쳐진 시간은 저녁 8시경이다. 컨테이너 하역 장비에 문제가 생겨 지체된 때문이다.
현수는 지르코프와 더불어 저택으로 왔다.
지르코프는 일이 무사히 끝나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은 이제 끝난 겁니까?”
“네, 미스터 킴 덕분에 아주 잘 끝났습니다.”
지르코프는 환한 웃음까지 지었다.
“목도 컬컬하고 하니 맥주 한잔해야지요?”
“당근입니다.”
둘은 또 한 번 의기투합한 것이 기쁘다는 듯 환히 웃었다.
“왔어요?”
둘의 시선이 미친 곳엔 하늘하늘한 옅은 베이지색 원피스를 걸친 이리냐가 서 있다.
허리엔 파스텔 톤 연한 코발트색 띠가 리본처럼 매어져 있고, 쪽 뻗은 다리 아래엔 역시 같은 색깔 하이힐이 보인다.
소위 깔맞춤이라는 걸 한 모양이다.
“아……! 이리냐.”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에 현수가 잠시 넋을 잃었다.
지금껏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로만 만났다. 그런데 지금은 공들여 화장을 마치고 나온 여자처럼 보인다.
여자의 변신은 놀랍기만 하다.
지르코프 역시 놀란 듯 멍한 표정이다.
이리냐가 예쁘다는 건 안다. 그런데 가꾸고 나니 이 정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이다.
“치이, 어젠 외박했어요. 벌점 10점이예요.”
“벌점? 그런 것도 있어?”
“그럼요. 어제부터 생겼어요. 이제부터 자기야가 나한테 잘못할 때마다 벌점이 생겨요.”
“그, 그래?”
현수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왠지 불리한 말이 나올 것만 같아서이다. 하지만 지르코프야 불리할 게 무어 있겠는가!
“그래? 어떤 기준으로 벌점이 매겨지지?”
“어제처럼 말없이 외박하면 벌점 10점, 그런데 그 외박 사유가 타당하면 5점을 빼줘요.”
“그밖에는?”
“나한테 잘못할 때마다 내 맘대로 벌점을 매겨요.”
“그래서?”
지르코프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벌점이 30점이 넘으면 벌칙이 있어요.”
“벌칙? 그게 뭔데?”
“호호, 그건 비밀이에요.”
이리냐가 요염한 웃음을 짓는다. 현수는 더욱 불길한 느낌을 받았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참, 아까 사람이 왔다 갔어요.”
“사람이……?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지르코프로부터 저택을 선물 받은 것은 당사자들 이외엔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자신을 찾아 누군가 왔었다는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건 몰라요. 하여간 오는 대로 내무장관님께 전화하래요.”
“가에탄 카구지 장관에게?”
“네.”
“흐으음!”
모르긴 몰라도 내무장관은 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고 있을 것이다. 요시찰 인물이 아니라 보호해 줘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심 켕기는 바가 있다.
어제 오늘 한 일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정부를 뒤엎으려는 반군에게 무기를 가져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흐음, 확인해 봐도 아무것도 없으니……. 그리고 마법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니까.’
속으론 이랬지만 겉은 아무렇지도 않다.
“이리냐 전화 좀 가져다줄래?”
“네에.”
이리냐가 몸을 돌려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지르코프의 전화기가 울린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진동하는 전화기를 꺼내 든 지르코프는 번호를 확인하고는 버튼을 누른다.
“그래, 나다. 그래, 그래! 알았다. 철수해라. 그랜드 호텔로 가서 대기해. 그래, 라운지에서 한잔하고 있도록. 그래!”
통화하는 모습이나 음성 등에서 관록이 묻어난다. 현수와 단둘이 있을 때완 달리 보스로서의 카리스마가 느껴진 것이다.
“……!”
통화를 하고 있기에 현수는 잠자코 있었다. 이게 미안한 듯 지르코프가 웃는 낯으로 입을 연다.
“마림바가 송금하는 걸 확인했다고 하네요.”
“그래요? 그럼 이곳에서의 일은 다 끝난 건가요?”
“그렇습니다. 미스터 킴 덕분에 차질이 없었습니다. 보스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지르코프가 새삼 고개를 숙인다. 어찌 앉아서 절을 받겠는가! 현수는 얼른 맞절을 했다.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 이번 건 덕분에 드모비치 상사로부터 12억 달러에 달하는 오더를 받지 않습니까?”
“어쨌든 잘 끝났습니다. 축배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렇지요.”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리냐가 들어선다.
“미스트르 킴! 전화기 여기 있어요.”
현수는 대답 대신 전화기를 받아 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리링―!
신호음이 울리고 누군가 전화기 드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굵고 낮은 저음이다. 현수는 누군지 금방 알아차렸다.
“장관님! 김현숩니다.”
“오! 미스터 킴, 오늘 일은 다 끝났나?”
“네, 그렇습니다. 장관님께서 배려해 주셔서 쉽고 빠르게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에탄 카구지가 뭐라 말하는 순간 지르코프는 현수를 다시 보았다. 콩고민주공과국의 실세인 내무장관과 아는 사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듯 직통번호까지 주고받은 사이인 줄은 몰랐다. 하여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와 장관의 통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전에 말했던 그 농지 건은 서류 작성이 다 되었나?”
“네, 네! 그럼요. 다 해놨습니다.”
“그럼 가지고 들어오게.”
“네? 이 시간에요? 퇴근 안 하세요?”
“하하! 우리 미스터 킴의 서류를 기다리느라 아직 퇴근 못하고 있네. 그러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지금 들어오시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수가 통화를 마치자 지르코프가 눈빛으로 물어본다.
“미스터 지르코프! 아쉽게도 오늘은 축배를 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이 들어오라고 성화네요.”
“무슨 일 때문인데요?”
이리냐가 현수의 곁에 앉으며 물은 말이다.
“내가 여기에 농장을 지으려고 해, 그래서 땅 좀 불하해 달라고 했는데 그것 때문이야.”
“근데 이 시간에 들어오래요?”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다 되어 간다.
“퇴근 안 하고 기다린다니 어쩌겠어?”
“그럼 들어가 봐야지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지르코프는 노보로시스크를 좌지우지하는 레드 마피아의 보스지만 이곳에선 한낱 외국인이다.
반면 가에탄 카구지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실세 가운데에서도 실세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참, 언제 출국하십니까?”
“내일 가야 합니다. 보스께서 모스크바에서 직접 보고받고 싶어 하시니까요.”
“흐으음, 그렇군요. 아무튼 최대한 일찍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현수는 서둘러 서류를 챙겼다. 그리곤 곧장 차를 운전했다.